오늘도 어김없이 운동 삼아 회사 주위를 뛰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안개가 걷혀 가고 화사한 아침의 태양이 고개를 내밀 즘 석훈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운동을 마쳤다.
어제 만난 여정의 잠자는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회사 후문을 통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회사 사람들 몇몇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 메뉴로 콩나물국이 나왔다. 석훈이 식판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일 아침 보이던 성호와 연희가 보이지 않았다.
석훈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자재과 사무실을 지나 구매과 사무실로 향했다. 자재과 사무실을 지나갈 즘 이상한 듯 석훈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재과 사무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안녕. 연희씨. 성호씨.”
석훈이 자재과 사무실 출입문을 열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상했다. 이 시간이면 항상 책상에 앉아 일일 업무 회의를 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재실 안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성호와 박주임의 목소리에 간간히 연희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석훈이 발소리를 죽여 걸어갔다. 더 이상 관망만 할 수 없었다.
“또 뭐가 문제입니까? 재물조사 준비하잖아요. 지금까지 박주임님 없을 때도 이렇게 했단 말입니다.”
성호가 자재가 든 박스를 선반 위에 올리며 발악을 했다.
“이봐요. 최성호씨.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원래 집주인이 바뀌면 집주인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야.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당신은 하면 된달 말이야.”
박주임이 검지로 성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뭐? 당신이 뭔데? 당신 마음대로야. 주임이면 다야. 엄연히 김대리님도 계시는데.”
성호가 눈을 부라리며 대들었다.
“맞아요. 너무 하시잖아요.”
연희가 흥분한 듯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제 떼로 덤비겠다. 이건가. 하! 참 기도 안차네.”
박주임이 비아냥거리다 석훈과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다물었다.
“다 따라오세요.”
석훈이 몸을 돌려 자재과 사무실로 향했다.
여정이 걸레를 들고 구매과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사무실 내에선 금연이었지만 야근을 하면서 담배를 피웠는지 냄새가 고약했다. 책상 여기저기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었고 빈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제품 카탈로그가 꽂혀 있는 서랍장에서 방향제를 찾아 사무실에 뿌렸다. 환기를 시키려 창문을 열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안녕. 여정씨.”
최대리가 구매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여정이 방향제를 제자리에 두며 말했다.
“우와. 향기 좋은데, 역시 사무실엔 여직원이 있어야 한다니까.”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연이어 사무실로 한사람씩 들어왔다.
“오늘부터 최대리가 여정씨 업무 가르쳐. 일주일 시간 줄 테니 완벽하진 않더라도 흐름은 알 수 있게.”
과장이 일일 업무 사항을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리가 여전히 기분 좋은 듯 싱글벙글 거렸다.
“그리고 여정씨. 아침에 우리도 커피 한잔씩 하자고.”
과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네.”
여정이 쟁반을 들고 사무실 밖 자판기로 향했다.
자재 사무실 안에 놓인 둥근 탁자에 석훈과 박주임 성호와 연희가 앉았다. 성호와 연희가 자신의 잘못을 알듯 고개를 푹 숙이곤 아무 말도 안했고 박주임은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렸다. 석훈이 아무 말 없이 셋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무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언제까지 싸울 겁니까? 같은 식구끼리 왜 모두들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 거려요. 박주임 뭐가 문제입니까?”
석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문제없습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김대리님은 묵인해 주세요.”
석훈의 눈빛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그럼. 성호씨. 뭐가 문제입니까?”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있습니다.”
성호가 고개를 살짝 들어 석훈을 보았다.
“연희씨. 뭐가 문제인가요?”
“......”
아무 말 없이 흐느꼈다.
“박주임. 내가 빠지면 조용하게 일 처리 가능합니까? 이미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김대리님은 구매과 소속이잖아요. 자재과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저는 구매 자재과 대리입니다. 자재과는 구매과 안에 같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니 꺼 내 꺼 구분해서 어쩌겠다는 소린가요?”
석훈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당연히 업무에 따라서 구분을 지어야죠. 구매과는 자재 구매만 잘하시면 되잖아요. 왜 사사건건 자재과 일에 끼어드세요. 불쾌합니다.”
박주임이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이 사람이 어디서 막말이야. 주임은 대리님께 함부로 말해도 되고 사원은 주임에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되고.”
성호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쳤다.
“그만하세요. 그럼 내가 더 이상 안 끼어들면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 내일 재물조사 검열 시에 지적 사항 안 나오게끔 완벽하게 가능합니까? 재물조사는 정확하게 아홉시에 실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주임 혼자서 재물조사 준비하세요. 당신이 혼자서 완벽하게 일을 진행하고 그 결과 여하에 따라 당신이 부리는 두 사람이 따라오게끔 만들어야 그게 능력입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정시에 퇴근하세요. 단 이번 재물조사 시에 하나의 지적 사항도 나오지 않는다면 김대리님은 더 이상 자재실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 그리고 두 사람도 내가 지시하는 사항에 토 달지 마세요. 이거 약속 해주면 저 혼자서 밤샘을 해서라도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대답을 했다.
여정이 구매 관련 책을 보고 있었다. 구매라는 게 간단해 보였다. 부품은 어차피 생산 현장에서 많이 본 것들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았다. 굳이 여정이 구매과로 올 이유가 없어 보였다.
“어때?”
최대리가 서류를 프린트하며 말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 그럼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사용할지 아는가?”
“네. 간단 한건 할 줄 압니다.”
“그럼. 이 서류 퇴근 전까지 작업 부탁할게.”
손에 들린 서류를 여정의 책상에 올려 두었다.
“네.”
여정이 엑셀을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학교에서 대략적으로 배웠기에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다.
가방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렸다. 여정이 사무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받았다.
“네. 조여정입니다.”
여정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여정이니? 잘 안 들려 크게 말해 봐.”
“잠시만.”
여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응. 얘기해. 잘 들리지.”
“응 잘 들려. 저녁에 시간 있니? 저녁 식사 같이하자.”
“그래. 어디서 볼까?”
“주공으로 갈 테니 거기서 7시에 만나자.”
“알았어. 그때 봐.”
얼마 전까지 같이 일한 연희에게서 온 전화였다.
석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구매과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생산과 최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김대리님. 도와주세요.”
석훈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석훈은 깍듯이 ‘님’자를 붙이는 최과장을 보면서 분명 큰일이 났음을 직감했다.
“큰일이야. 생산라인 다 끊어 놓게 생겼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생산라인이 다 끊긴다면 두 가지가 문제인데. 뭡니까?”
석훈이 생각을 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
“서팀장은 어디 갔어? 오늘 이판사판이다. 제길.”
갑자기 사무실 안을 둘러보며 막말을 했다.
“과장님. 문제부터 해결하죠.”
“어젯밤 에스텍에서 작업을 하던 중에 자재가 모자랐나 봐. 자기들 라인 세워 두고 자재 받으러 에스텍 직원이 우리 회사로 왔는데 자재를 못준다고 그랬다네. 에스텍 임차장 아침에 전화 와서는 오늘 일정 못 맞춰 준다고 난리 났어. 오늘 출하 있는 거 알지? 이번 건은 첫 수주한 업체 거라서 사장님 특별 지시 사항까지 내려온 주문인데. 석훈대리 어떻게 하지.”
“그럼 시간은 어느 정도 있습니까?”
“오전 A타임은 가능한데 B타임부터 라인 끊기지. 서팀장 빌어먹을. 입사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거야.”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서팀장 자리를 쳐다보면서 씩씩거렸다.
“잠시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석훈이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꼭 부탁이야. 석훈대리만 믿을게.”
석훈의 뒷모습을 보면서 애원을 했다.
석훈이 에스텍 임차장을 만나기 위해 회사를 벗어나고 있었다.
회사로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 에스텍이 위치하고 있었다.
현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임차장이 석훈을 보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게? 나 좀 봅시다.”
석훈이 임차장에게 뛰어갔다.
“나 할 말 없어. 왜? 당신까지 오고 난리야.”
화가 단단히 난 얼굴로 석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안합니다. 다 내 잘못이다. 어떻게 해 줄까?”
석훈이 임차장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라. 해줄 거 없다. 이건 너무 하잖아. 한두 해 거래한 것도 아니고.”
석훈의 손길을 뿌리치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었다.
“나갑시다. 나가서 얘기합시다. 어린애도 아니고 밑에 사람들 보기 부끄럽잖아.”
석훈이 몸을 돌려 현장 밖으로 나갔다. 임차장이 석훈 뒤에서 환하게 웃으며 따라왔다.
※아래에 보니 설화님이 글을 중단하신다는데 섭섭합니다. 아무쪼록 다른 사이트에 글을 올리시더라도 건필하시길 빌께요.^^ 그리고 요즘 얼굴보기 힘든 Cute_zLol님도 얼른 돌아왔으면 합니다. 모든분들 감기조심하세요. 전 어제밤부터 콧물이 줄줄 흐르는게 낌새가 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