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존경한다.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한사람의 유능한 사회인으로서.
하지만, 나의 배우자로서의 남편은 없다.
감동적인 광고의 한장면처럼 우리 가족의 모습은 남들에게 미소를 자아낸다.
아이들과 유쾌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4인 가족... 예쁜 그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예쁜 포장 속에서 나는 왜이리 허망함에 빠져 사는 것일까.
처음 틈이 생긴건 남편의 지나친 일욕심으로 내가 느낀 외로움이었다. 아이들 둘을
미혼모처럼 키웠다. 밤새 토하고 고열로 쉬지않고 울어대는 아이를 두고도 그는
잠에서 깨지 않는 사람이었고, 새벽녘 나는 혼자서 택시를 잡아타고 응급실로 향하기도
했었다. 제왕절개로 두 아이를 낳는 그 순간조차, 나는 남편의 회사 일정이나 친구 모임에
맞춰 수술 날짜를 잡아야 했었다. 회사에선 그를 유능한 직원이자 각계에 친구를 두고있는
아주 인간성좋은 사람으로 칭찬이 자자했지만, 친정조차 4시간 거리였던 나는
아플 여유가 없어서 깡으로 버텨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무심한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리고... 바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남편은 섹스에 관심이 없었다. 서너달에 한번,
임신이 된 후부터 아이낳고 돌잔치 할 때까지 단 한번도 내게 다가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서너달에 한번하는 섹스조차 옷을 벗기는데서 돌아눕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나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섹스가 끝나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서 씻고 거실의 텔레비젼 앞으로 가버리는 사람. 나는 그에게
손쉬운 배출의 도구일 뿐이었다. 남들이 고상하게 그리고 너무도 쉽게 말하는 '대화'라는걸
나 역시 자존심 굽혀가며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태도는 정숙치 못하고
저급한 관심을 가진 여자라는 멸시였다.
'정떨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은 항상 콘돔을 사용했었는데, 어느날인가
귀찮아서인지 그냥 일을 치루게 되었고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되었다. 큰 아이가
두살 무렵이었다. 너무도 쉽게 '지우자'는 말을 하는 남편의 말이 나는 무척이나 서러웠다.
한국을 떠나있었던 그때,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나는 푸른 눈의 의사로부터
듣고싶지 않은 설명을 들어가며 수술을 받았다. 부분마취로 이루어진 수술로 나는
심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수술이 끝난 뒤 남편은 나를 집근처 한국 식당에 내려주고는
약속이 있다며 밥 한그릇 먹고 아이를 데리고 운전해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눈물떨군 설렁탕 한그릇을 아이와 나눠먹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남편은 늦은 저녁에
술 손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달 생활비가 모자라 결국 은행 잔고에
마이너스가 되었을 때, 남편은 이번달에 네가 수술만 하지 않았어도 돈이 모자라지
않았을거라고 화를 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남의 아이도 아니고 자기의
아이를 가졌던 나에게.... 정 떨어진다는 말의 의미. 나는 뼈아프게 느끼게 되었다.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된 남편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8시엔 퇴근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주말이면 나들이를 하고 큰 아이 학교일에도 적극적이다. 남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얼마나 좋아요. 저렇게 자상하시니.... 집에서는 더 잘해주시죠.
그렇게 좋으면 네가 같이 살아보라는 말을 나는 애써 누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남편은 아이들 아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너달에 한번 섹스를 하고, 침대의 가장자리에서 서로의 몸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잠들고, 등에 썬크림을 발라주는 나에게 자기 몸에 손대지 말라는
짜증을 내는 남편을 나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다. 시댁에선 예쁜 며느리이고,
친정에선 착실한 사위이고, 아이들의 좋은 부모이다.
출근과 함께 연락두절인 남편이 나는 더이상 답답하지 않다. 나도 예전엔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고 너무 당황해서 남편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고, 여보세요 하는 내 목소리에
오버랩되는 바빠 끊어 하는 남편의 한마디에 가슴아파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젠
더한 상황이 되어도 남편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그는 늘 바쁜 사람이고, 그의 일상에
내 자리는 없으니까.
이혼.... 이런건 우리 가족에겐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화목한 가정인데.
예쁘게 잘 자라는 아이들, 시댁 친정 모두 좋은 관계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남편을
둔 복에 겨운 내가 담을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답답한건지.
이젠 남처럼 느껴지는 남편,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것 같다. 회복할 수 있을까.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
돌아가고 싶은 맘 조차 사라진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