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풀님의 만화를 좋아합니다.
오늘 강풀님 만화를 다시 보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나서 글 남겨 봅니다.
글이 좀 길듯 합니다. 길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제가 7살때부터 10살까지 약 3년정도를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3년을 뺀 24년은 서울에서 살았는데, 그때 집안 사정으로 고모가 계신 광주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광주에서도 변두리...조금만 걸어가면 광주를 벗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그때는 작은 동네였습니다. 대충 20년전이니...
우리 동네에는 살짝 미친 누나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10살 많은 누나였는데, 자기네 집 대문 옆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합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그 누나는 그때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저도 어린 나이라 자세히는 몰랐지만 동네에서 워낙 유명한 누나라서
그냥 미친년이구나...이러고 말았습니다.
왜 미쳤는지도 어린 저한테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네 아이들에게 장난의 대상이 되었을뿐이었습니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누나에게 죄송합니다)
아이스께끼는 기본이고, 때리고 놀리고.....
너무도 심한 장난을 동네 아이들과 저는 아무 꺼리낌없이 했었습니다.
왜나면 그 누나는 미쳤으니까요...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집에는 큰 개를 키웠는데 목줄을 달고 저랑 같이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탈이 났는지 길 한가운데에 변을 보더군요....그것도 엄청난 양으로 -_-;;;
마침 지나가던 친구를 붙잡고 이 변을 누가 밟나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누나가 폴짝폴짝 뛰면서 오더군요
저와 제 친구는 바닥에 있는 변에 돈이 있으니 보라고 했고,
쪼그리고 앉아서 변을 살펴보던 그 누나의 머리를 눌러서 얼굴에 변이....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당시엔 국민학교였죠)
광주에 살던 고모도 그 동네에서 이사를 가셨기 때문에 저는 자연스레 그 누나를 잊었습니다.
작년이죠... D포털사이트에서 강풀님의 만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보'라는 제목이었는데 그 만화보고 문득 그 누님이 생각나더군요
그러다가 올해 초에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몇달 쉬었는데,
그때 혼자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혼자가는 여행이니 땅끝마을을 최종 목적지로 삼고,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광주에도 갔습니다
광주에 가니 많이 변했더군요. 저는 제가 살던 동네가 그리워서 발길을 옮겼습니다.
어린시절 제 호주머니속 100원을 털어가던 그 슈퍼마켓...아직도 있더군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제가 예전에 이동네에 살았다니까 한참을 쳐다보시더군요
누구네집 아들이었고 20년전에 살았다....대충 이야기하니 기억이 나시는 모양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주머니를 기억 안나서....아저씨는 기억나는데 아주머니는 기억이;;;
아주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누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지금도 예전 그대로라더군요...
어린시절 나와 내 친구들에게 심한 장난을 당해도 웃기만하던 그 누나....
철없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27살이나 되었기에 그때의 제가 한 짓에 대해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오렌지쥬스 선물세트를 사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슈퍼 아주머니가 알려준대로 가던 도중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맑게 웃으면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더군요
그 누나를 불러 세우고 날 알겠냐 물으니 놀랍게도 알아보더군요
"너 그때 내 얼굴에 똥 뭍혔잖아 ㅎㅎㅎㅎ"
이말과 함께....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누나 앞에서 무릎꿇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는 그 누나를 그렇게 만든 강간범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웅성거렸고, 그 누나는 가만히 서있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몇번을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 누나가 쪼그리고 앉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그때는 너도 어렸잖아 ㅎㅎㅎ"
그리고는 폴짝폴짝 뛰면서 가더군요
마음속의 짐을 털어내고자 했던 여행은 그렇게 저에게 더 큰 짐을 주었습니다.
지금 저는 다시 직장을 구해, 밤샘도 하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아침에 정신없이 뛰기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풀님의 '바보'를 우연히 오늘 다시 보고
제 마음은 또 무거워지네요...
그 누나도 부디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나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