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라파엘과 캬르멘은 홀로 밖에서 게리오네스를 상대하고 있던 헤라클레스에게로 가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가 보니 벌써 헤라클레스에 의해 게리오네스는 죽어있었다. 세 개의 목과 세 개의 몸체는 분리되어있었고, 분리되어 있는 몸체들은 어떠한 화기에 그을린 듯 탄 흔적이 역역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손에는 은색 찬연한 창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창의 전신에는 번개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창의 끝부분으로 무엇인가 번쩍이는 듯한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 게리오네스를 쓰러트렸군요. 잘하셨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
라파엘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례하였다.
“ 하 하 하 하. 뭐 이런 놈에게 무슨 일이야 당하겠습니까? 그나저나 바알베리트의 부활은 막으셨습니까? ”
헤라클레스의 말에 라파엘은 자신의 옆에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였다.
“ 이분이 아니었다면 바알베리트의 부활을 막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분은 레이포니에르의 주인이시기도 하답니다. ”
“ 그래요? ”
라파엘의 설명에 헤라클레스는 놀란 눈을 하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노인의 손에는 황금색의 찬란한 빛을 내는 한 자루의 지팡이가 들려져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토트신의 레이포니에르가 확실했다.
“ 당신은 누구신데 레이포니에르를 가지고 계십니까? ”
헤라클레스의 질문에 노인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대답을 했다.
“ 안녕하십니까? 헤라클레스님. 선신계의 살아있는 영웅을 봬온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 이름은 캬르멘이라고 합니다. ”
“ 캬르멘?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레이포니에르가 맞습니까? ”
“ 네. 그렇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것이 레이포니에르가 맞습니다. ”
“ 헌데 어떻게 레이포니에르를 사용한단 말입니까?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헤라클레스의 말에 라파엘 역시 신의 무기를 인간이 사용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캬르멘을 자연스레 쳐다보게 되었다. 자신이 보아도 그냥 보통 인간과 다를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캬르멘은 편안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허 허 허. 그렇습니다. 레이포니에르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요. ”
“ 그럼 당신은 드래곤입니까? ”
캬르멘의 대답에 헤라클레스가 쉴 새 없이 물어보았다. 예의는 아니었지만 헤라클레스의 성격인 것을 알고 있는 라파엘은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대답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캬르멘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 아닙니다. 저는 인간 마법사입니다. 드래곤이 아니지요. ”
“ 헌데 어떻게 레이포니에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
헤라클레스가 의심적인 말투로 계속질문을 하자 캬르멘은 살며시 웃으며 대답을 계속 해주었다.
“ 드래곤과 비슷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레이포니에르를 사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
캬르멘의 이 한마디는 충격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드래곤과 동등한 마법을 펼칠 수가 있단 말인가. 라파엘과 헤라클레스의 표정은 그 즉시 경악으로 바뀌어있었다.
“ 그렇다면 당신의 마법경지가 그 정도로 높다는 말씀입니까? ”
“ 뭐 그렇게 높다고는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15써클 정도의 마법은 펼칠 수가 있습니다. ”
“ 15써클? ”
경악하며 크게 외치는 라파엘과 헤라클레스의 이구동성이었다. 15써클이라니. 어떻게 인간이 15써클의 마법을 펼친단 말인가. 최강의 생명체라고 하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15써클 정도의 마법을 펼치려면 애이션트급 정도 이상이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 15써클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인간이라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그럼. ”
헤라클레스의 이 말은 캬르멘을 인정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충분히 레이포니에르의 주인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 헌데 어떻게 레이포니에르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까? 토트신께서 세상 깊숙한 곳에 감추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
라파엘의 질문이었다. 대천사이기에 궁금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일이 있습니다. ”
캬르멘의 말에 헤라클레스와 라파엘은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캬르멘에게 시선을 돌렸다.
“ 지금 봉인을 시킨 바알베리트의 일입니다. 제 힘이 부족하여 아직 이 레이포니에르의 진정한 힘을 사용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아까 바알베리트를 다시 봉인시킨 것은 임시방편으로 봉인된 것 뿐 전에 토트신께서 봉인하셨던 것처럼 완벽하게 봉인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200년 후에는 다시 봉인이 풀릴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
“ 200년 후라고요? ”
헤라클레스와 라파엘의 이구동성이었다.
“ 그렇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200년 후가 아마도 맞을 것 같습니다. 그때에 바알베리트를 봉인시킨 결계가 약해질 것이고, 아마도 악신계의 악마들이 봉인을 제거하려고 또 다시 이곳으로 몰려올 것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때에 어떻게 막느냐인데....... ”
캬르멘의 뒷말이 흐려지자 라파엘은 무엇인가를 느낀 듯 말을 꺼냈다.
“ 그때에 당신이 없으니 걱정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
라파엘의 말에 캬르멘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 그럼 그때에 레이포니에르를 다른 사람이 사용해서 봉인을 시키면 되지 뭘 걱정합니까? 그리고 200년 후면 우리 선신계의 신들께서도 오랜 회복의 시간에서 벗어나 세상을 다시 돌보실 수가 있을 텐데 무엇이 걱정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정 안되면 제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막아도 될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라파엘님? ”
헤라클레스의 말에 대해 라파엘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자 헤라클레스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리 걱정인 것이지....
“ 아마도 라파엘님은 아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
캬르멘의 질문에 라파엘은 작은 한숨을 쉬며 대답을 했다.
“ 휴.... 그 시기에 봉인이 풀어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 밖에는 다른 할 말이 없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시는지... 정말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신 것 같습니다. ”
“ 허 허 허.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 같은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선신계에 계신 분들과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
헤라클레스는 자신만 이 둘의 대화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역시 선신계의 인물로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그런 위치라 생각을 했었는데, 어찌 이 둘의 대화에서는 아무것도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인지.....
그런 헤라클레스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라파엘의 다음 말이 헤라클레스의 답답한 심정을 해소해 주었다.
“ 200년 후면 정확히 500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카오스(Cahos)의 시기와 우연하게 들어맞으니 큰일이기는 큰일인 것 같습니다. ”
“ 카오스라구요? ”
라파엘의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의 눈이 커지며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카오스(Cahos)
일명 “ 혼돈의 시기 ”라 하여 선신계와 인간계,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제약을 받는 시기이다. 500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 시기에는 어떠한 신이라도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선신계로 갈 수도 없다. 이 제약은 악신계의 신과 악마들, 드래곤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 시기에 특이할 점은 세상의 모든 힘을 이루며 존재하는 마나의 힘이 극도로 약해진다는 것이다. 마법을 사용하고 신성력을 사용하는 드래곤이나 선신계. 악신계의 모든 이들이 마나를 사용함에 있어서 많은 제약을 받게 되고,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카오스의 시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암흑과 평화가 공존하는 딜레마(dilemma)와 같은 시기이도하다.
카오스의 시기는 태양이 달을 가리는 일식을 시작해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월식까지로서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진행된다.
“ 그렇습니다. 우연찮게도 그 시기가 바로 카오스의 시기입니다. 그때에는 누구도 이 인간 세상에 나올 수가 없으니 아무도 막을 이가 없다는 것이 큰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를 대비해서 이 인간 세상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
“ 그건 그렇지요. 그때에 인간 세상에 있다가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리 큰 힘이 되지는 못 할 테니 말입니다. ”
평소답지 않은 헤라클레스의 힘없는 말이었다. 그도 그렇듯이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천사들이나 선신계의 인물들은 보통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여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 시에는 소멸될 수도 있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는 그런 문제였다.
“ 그렇다면 캬르멘님께서는 그때를 대비해서 어떠한 대책이라도 생각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200년 후라면 캬르멘님께서도 살아계시지는 못하실 것 같은데요. ”
“ 휴~ 그렇습니다. 제가 그때까지는 살아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그리 많은 삶을 살지는 못하지요. ”
“ 허면..... ”
“ 그래서 제가 저의 후인(後人)을 찾기 위해 이 대륙의 모든 곳을 돌아다녀보려 합니다. 인간 보다 많은 삶을 살 수 있는 다른 종족을 찾으면 더 좋을 거라 생각이 되지만, 그것도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기에 걱정은 됩니다. 그러니 라파엘님께서도 이 문제를 선신계에 계신 신들께도 말씀을 드려 주십시요. 뭔가 대책을 세워주시지 않을까 합니다. ”
“ 그래야지요. 제가 선신계에 계신 신들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
캬르멘이 작별을 고하려 하자 라파엘과 헤라클레스는 조금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 그러십시요. 캬르멘님께서 이 인간세상에서 수고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선신계에서 처리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요. ”
“ 그럼 전 그리 알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
“ 조심해서 가십시요. 제우스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
라파엘과 헤라클레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캬르멘은 하늘로 솟아오라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 큰일이군. 어서 선신계로 돌아가야겠습니다. 헤라클레스님 가시지요. ”
“ 서둘러야 겠습니다. ”
말을 마친 라파엘과 헤라클레스 역시 하늘로 솟아올라 사라졌다. 그들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땅속에서 온몸이 온통 검은색의 빛깔을 나타내는 커다란 뱀 한 마리가 혀를 낼름거리며 땅위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잠깐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빛이 번쩍이며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얼굴의 반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반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기괴한 모습을 한 악마였다.
“ 큭 큭 큭 큭. 200년이란 말이지...... 200년. 큭 큭 큭 큭 ”
그 악마는 이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진 뒤에 정적만이 남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