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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 넘게 사귀었어요. 해로는 9년이지요. 근데 맘이 아프네요

시린사랑 |2003.04.15 21:29
조회 659 |추천 0

그냥 저의 넋두리지만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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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친이 있다.
여친도 나를 사랑했었다.
우리는 처음 만나서부터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1995년 11월 우린 처음 만났다.
처음부터 우린 불같이 사랑했었다. 그러다 여친에겐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1996년 어느 여름밤 여친의 집앞까지 데려다 주는데 여친의 집앞에서 여친을 기다리고 있었던 여친의 또 다른 남친을 만나고야 만 것이다. 지금에서 돌아보면 흐릿한 기억속에 남아 있는 작은 사건이지만 그 때는 정말로 큰 충격이었었다. 당황한 여친은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와 또 다른 여친의 남친과 남아 그간의 얘길 했다. 철저한 양다리 연애였다. 다음날 여친은 무릎까지 꿇으며 용설 구했다. 그 후로 우린 더 사랑하고 사랑했다. 간간히 내 속을 썪이긴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우린 사랑해갔다.
여친이 대학에 들어가고 한학기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1997년 여름이 지난 후.
하지만 둘은 학교가 달라 떨어져 있고 주말에나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여친에게 나 아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
어느날 여친의 수첩에서 다른남자를 사랑한다는 메모를 보고나서야 알았다.
모든 정황들이 있음에도 여친은 완강히 아니라고 주장했다.
어느날 그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만나게 되었다.
나와 그 남자는 여친에게 푹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여친이 그렇게 철저히 이중생활
을 했음을 알고서도 서로 내가 사랑하니 포기하라는 자존심 싸움이나 했었으니...
그래서 둘은 함께 여친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당황해하는 여친의 모습 앞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여친은 그 놈을 선택했다.
난생 처음 받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채였었다. 그 때가
1997년 대학교 4학년 가을이었다. 난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날 새벽 여친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미안하다고. 사실 은근히 기다렸던 그 전화에 난 다시 여친에게 매달렸다.
여친도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놈을 정리하고 돌아온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으면서 돌아왔다. 군대까지 간 그를 만나기 위해
면회를 가고 나를 만나고 그렇게 양다리 연애를 했다. 난 그저 마음만 아파
하면서 괴로워했다. 정말이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누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러다 전체 F학점을 받는 등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여친이 휴학을 하더니
한학기가 지나 여름 방학땐 모델을 한다며 미인대회에 출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2학기가 되선 나와 동거를 했다. 동거를 하면서부터는 그 군대간 친구와
끝을 본 듯 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여친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렇게 말리고 달래고 매달려도
컨트롤되지 않았던 여친의 감성이었는데...
어쨌든 난 다시 행복해졌다. 여친이 나만 사랑했으므로.
이때가 1998년 여름이었다. 2000년 봄. 여친은 3학년이 되었고 난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어느날 여친은 친구 얘기라며 어떤 남녀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남자친구도 있는 친구가 어떤 남자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자가 여자한테 이렇게 해주면 무슨 심리냐며 묻곤 했다. 이것 바로 여친의
얘기였다. 여친을 쫓아다니는 놈이 하나 있다고 한다.
여친은 그냥 지혼자 좋다고 쫓아다니는 놈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친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지라 가끔 둘이 술도 먹고 오토바이를 태워주기도 하고 그랬나 보다. 여친은 내 친구 얘긴데 라며 정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얼마나 잘해줬는지 여친은 그런 그의 호의와 관심을 단호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급기야 여친에게 전활하면 가끔 낯선 남자가 전활 받기도 했다. 그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환장할 노릇이었지. 어느날은 여친과
주말에 영활 보는데 그놈한테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혹시 여친과 같이 있느냐며...
그 옛날 여친이 양다리 연애할때 여친의 자취집에 그 남자와 함께 갔었을 때 말고 여친의 당황하는 모습을 그때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때와 다른점은 이번엔 여친이 그 전화를 건 놈에게 화를 냈다는 것. 여친을 쫓아 다닌다는 놈은 오토바이를 타고다닌다고
해서 난 그놈을 오토바이맨으로 불렀다. 하지만 오토바이맨과의 썸씽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 오토바이맨은 애인이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내 여친도 사랑하고 전 애인도 사랑한다는 사이코 같은 놈이었고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여친은 마음을 바로잡은 듯 했다. 여친도 사실 그 오토바이맨에게 관심이 간 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너무나 잘해줬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전혀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럴테지. 애인 있는 양다리 걸치는 놈이 좋을게 있을리가... 이 오토바이맨과의 썸씽은 봄에서 시작해
그 해 봄에 끝났을만큼 짧았다.
여친은 그 후로 나를 매우 사랑해왔다. 나 또한 여친을 사랑했고. 여친은 나를 엄청
사랑한것 같다. 집착이라고 여겨질만큼 난 그걸 느꼈다. 매 주말이 되면 난 여친의 집
에 가야했다. 부모님과도 친했으니까. 주말엔 여친네 집에서 자야 했고 그렇지 않으
면 화를 내며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우리집이 그렇게 싫으냐며... 어쨌든 그정도였다. 2000년 9월 선배와 난 회사를 그만두고 벤처 창업을 했다. 바쁜 시간들을 보냈고
여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학굘 다녔다.
2001년 겨울. 여친이 갑자기 뉴질랜드 어학 연수를 간다고 했다. 엄마가 보내준다며.
난 앞이 캄캄했다. 까닭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왔으며 이유 없이 불안했다.
난 반대했지만 여친은 꿈에 부풀어 나의 반대가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여친은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떠났다. 2001년 3월 14일.
6개월까지만 하고 오겠다며 그렇게 훌쩍 가버렸다. 1995년 겨울에 여친과 처음 사귀
고서 이렇게 오래 떨어지기는 처음이었다. 여친이 없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지만
난 참았다. 좋은 시대에 사는 덕으로 여친에게 이메일로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었고
엽서도 편지도 사진도 가끔은 전화도 받았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이메일 쓴다던 약속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새부턴가 소식이 뜸해지더니 아무리 이메일을 써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비오는 어느날 울먹이는 여친의 전화를 받았다.
그냥 내가 보고 싶고 또 나에게 미안해서 운다고만 할 뿐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답답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난 알 수가 없었다.
여친이 귀국하기 한달전까진 난 언제 여친이 돌아오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친
은 뉴질랜드에서 살기를 바랬고 뉴질랜드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랬으니까.
그래서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돈도 현실도 그런 여친의 욕구
는 충족시킬 수 없었고 그해 9월27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친은 변해 있었다. 매일 전화하던 여친의 모습은 없었다. 매주 만나던 우리는 매주
만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반기지 않았고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뉴질랜드에
가고만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참 나 혼자 답답해하는데 어느날 여친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다. 2002년 2월 14일이었다.
지금껏 사귀어오면서 심지어 여친이 양다리 연애를 했었을때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진
않았었는데 헤어지잔다. 나로서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정말 큰 고통이었다.
내가 너무 괴로워하자 형은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한다며 다른 여잘 소개
시켜 주었다. 좋은 여자였지만 내 상처가 깊었는지 어쩐지 사랑의 감정이 솟는 느낌은
없었다. 어쨌든 좋은 친구로 지내며 여친에 대한 상처가 아물어감을 느꼈다.
2002년 어느 여름날 밤 여친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하지만 집요한 전화였다.
만나잔다. 머리속이 엄청 혼란스러웠다. 그날밤 만났다. 잘못했다고 했다. 다시 시작
하잔다. 난 너무 괴로왔다.
다시 시작했다. 2002년 여름이었다. 하지만 다시 연인이 된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왜냐하면 예전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전활하면 여친은 마지 못해
받았고 나에게 전활 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이럴거면 왜 나를 자꾸 잡는가 라는 생
각이 들 정도였다. 난 어떻게든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길 바랬다. 난 여친에게 여름 휴가를 같이 가자고 했다. 좋아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안된다고 한다. 여름 방학때 뉴질랜드로 혼자 여행을 다녀 온단다. 이미 그렇게 결정을 한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2002년 2월에도 3주정도 뉴질랜드에 다녀왔다더니 또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름은 지나가고 4학년 2학기를 다니고 난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며 2002년을 보냈다.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건 주말에 내가 가끔 여친의 자취방에 놀러가는 것이 전부였다. 주말에 서울에 오지 않는 경우 심심한 토요일을 같이 보내주는 것이다. 그외에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2002년 11월에 대학로에서 했던 인체의 신비전을 보러 간 기억 외에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렇게 여친은 나와 만나는 것을 귀찮아했다. 하지만 우린 애인 사이였다. 2003년 1월. 여친은 또 뉴질랜드에 갔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여친은 또 갔다. 방학동안 경험도 쌓고 공부도 하고 온다는 것.
귀국일이 언제인지도 몰랐다. 여친도 모른단다. 언제나처럼 가면 연락한다는 말과 함께 그냥 또 그렇게 가버렸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여친이 있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고개를 갸웃한다. 그 의미를 난 안다. 그러면 왜 안만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난 만난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안만나는 이유는 해외 여행을 가서라고 얘길 한다. 그러면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는다. 난 모른다고 한다. 더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떻게 여친에게 그렇게도 관심이 없느냐고 비난한다.
난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다.
여친이 귀국했다. 지금은 다시 학교 다닌다. 4학년이 지났지만 가을 학기 졸업이라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 마지막 학기라 그런가 향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가 보다. 대학원에 간다고 한다. 취직하긴 싫지만 자리가 되면 취직도 하겠단다. 이도 저도 안되면 나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술을 마시며 여친이 털어놓은 얘기는 날 한 번 더 허탈하게 했다. 뉴질랜드에서 나 이후로 처음으로 사랑 감정을 느낀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 이민자라고 했던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말은 안해 모르지만 결국 둘이 맞지 않아 그냥 친구로 지낸단다.
내 머리 속은 다시 복잡해진다. 물론 예상은 했었지만...
2001년 가을 귀국후 방학때마다 뉴질랜드로 달려갔던 여친.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랑을
느꼈었던 게다. 하지만 현실상으로 힘들었겠지. 한국과 뉴질랜드. 현실적 차이가 불가능하게 했었던 게지.

그래도 그 오랜 세월 동안 여친의 삶속에 존재하였던 남자들중에 그렇게 오래, 그리고 현재 여친의  마지막 남자가 나라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 못난 내가 그 잘난 여친의 남친으로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아니다.
음... 그리고 여친은 위에 열거한 전에 사귀던 남자들과 아직도 연락이 가능하다. 또 가끔 연락을 하기도 하는 듯 하다. 왜 단호히 끊지 않냐고 물으면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서 보면 그 때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해안갈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여친은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나 공부를 많이 해서 석박사까지 하고 능력을 키우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여친은 나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나와 결혼이나 하겠다고... 그렇게 되면 나 먹여 살릴 자신 있냐고 묻는다. 난 그냥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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