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지 오래다.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이 곳의 밤은 빨리도 찾아왔다. 외진 곳에 위치한 가옥…. 그 곳이 나씨본가였다. 다른 이들은 잠에 들었는지, 방안에 캄캄했다. 하지만 호서선생의 방만의 작은 불빛이 세어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듯했다.
실제로도 호서선생의 방에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호서선생과 호가서생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평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애비야. 때가 왔단다. 동천사록은 더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 오늘은 소후를 뒷산 동굴에서 재우거라. 기특한 것이 진을 쳐두었더구나. 동천사록 역시. 알았느니?”
호서서생은 비장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자,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소후는 꿈을 꾸고 있었다. 자기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하였다.
척척산중에 한 가옥…. 소후가 살던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나씨본가라하였고, 수련을 하기위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후는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소후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소후는 문득 자신을 무척 귀여워하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꿈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호서선생의 방으로 소후는 발길을 돌렸다. 옛기억처럼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문이 나왔다. 소후는 큰 심호흡을 하고선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호서선생의 방은 소후의 옛기억 그대로였다. 호서선생 역시 소후의 옛기억처럼 방안에 앉아있었다.
“어라? 할아버지의 염체네. 언제 이런 것을 만드셨지?”
소후가 그리 생각한건 다름이 아니라, 호서선생은 마치 입체영상같이 초록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후야. 동천사록을 알릴 때가 왔다. 천제(天際)로써 말세를 막거라. 소후야. 동천사록을 알릴 때가….”
호서선생의 염체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할아버지! 잠시만요. 무슨 소리예요? 예?”
“할아버지! 흐흐흐”
어느새 소후는 꿈에서 깨어나 있었다. 소후는 가쁘게 숨을 모라셨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나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 말한 그 책…. 과연 그 책을 세상에 알려도 되는 걸까? 소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요즘 따라 은명선생은 바쁘기만 했다. 계속해서 구울들(좀비같은 것임)이 나타났고, 구울같은 언데드들한테 은명선생 만큼 제격인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 구울들은 어두운 밤에만 나타나서 인근 주민들에게 목격되진 않았다. 어젯밤엔 현우와 함께 구울들을 상대하러 나갔고,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날은 다른 날보다 많았다. 물론 구울을 해치우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뒷정리에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여하튼 은명선생님은 자꾸 구울들이 나타는 것이 이상하기만했다.
아침 7시….
"소후야, 투시를 하면 찾을 수 있지? “
은명선생 설마하는 생각에 소후에게 묻자, 소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은명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단서가 있어야해요. 구울이 된 사람들의 시체라도 있으면 모를까요. 제가 천리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죄송해요.”
“그래, 별수 없구나.”
머리가 허옇게 되가는 은명선생이 나이 먹음만큼 덤덤하게 말했다.
“참, 은명선생님하고 현우오빠한테 팩스 왔었어요. 현우오빠 동생 있었다고 했었죠? 내일 두시에 온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은명선생님, 칸 브라운이라는 사람한테서 왔었는데요. 자기 제자 편으로 책을 보낸다고 하는던데요? 내일 영국행 비행기로 두시쯤이면 될 거라 하네요. 근데 무슨 책이요?”
“구울에 관한 책이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지않더냐.”
그 날 밤이었다. 은명선생님은 혹시나 구울들이 또 나타날까봐 나갔고, 현우 역시 은명선생님와 같은 목적으로 집을 나섰다. 소후는 밤에 일을 하는 그 들을 대신하여 오전에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했으며(여름 방학이었다.),
-열다섯에 맞게 공부하라고.
-일이 생기기 전에 숙제를 해두거라.
이런 잔소리 때문에 소후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남아있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영혼을 찾을 수 없었어. 그런데 언제 염체를 만들어 놓으셨지? 동천사록의 뒷부분은 이상하게 되어있어서 뭔지도 모르겠던데….’
문득 소후는 열어놓은 창을 보았다.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소후가 현제 사는 곳은 이층짜리 빌라였고, 현우와 은명선생 박영호와 살고 있었다.
가뜩이나 좀은 골목에 차가 두 대나 서 있으니 더 좁아보였고, 골목에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이 처량하게 보였다. 가로등 불빛아래엔 한 남자와 여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술에 취한 듯 보였고, 여자는 영기를 풍기고 있었다. 소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건….
“백귀술사?”
그 여자는 금발의 여자였다. 야릇한 향기를 뿜고 있었는데, 너무 진한 냄새였다. 여자의 주변에는 대여섯 마리의 백귀가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모두 범상치 않았다. 여자는 남자를 부축하는 것 마냥 서있었다. 남자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 범상치 않았다.
‘생사람의 혼을 끄집어내려하다니!’
소후는 오로라 구체를 만들어 그 백귀술사에게 날렸다. 백귀술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의 등에서 손을 떼고 옆으로 빠져나왔다. 여우같게도 남자의 혼이 빠져나간 다음이었다. 소후는 또다시 오로라구체를 날렸고 이번에도 백귀술사는 오로라구체를 피했다. 그 것도 모자랐는지 비수에 백귀를 꺼내 날렸다. 소후는 오로라구체로 백귀를 비수에서 떨어트리고, 염력으로 비수를 밀어냈다. 바야흐로 소후에게 네모난 철판이 날아왔다. 소후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피했고, 그 철판은 창을 넘어 들어 방문에 척하고 박혔다. 소후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 남자만에 쓰러져있었다.
“드르륵”
서랍문이 열리고 침통하나가 소후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염력을 쓴 것이다. 침통에는 우살침(佑殺鍼)이라 써 있었다. 침통의 문이 열리자 끝부분이 뾰족한 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한쪽 끝이 납작하고 진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소후가 염력을 사용하자 침 몇 개가 빠져나와 그 남자에게 꽂혔다.
‘저렇게 놓으면 혼을 다시 넣을 때까지는 살아있겠지?’
소후는 방문으로 다가가 철판을 뽑았다. 철판에는 ‘You, too. - 영혼조합. 카라드 -’라는 말이 써있었다.
“다음 표적이 나인가? 카라드라구? 찾기 쉽겠네?”
소후는 입을 악물었다.
‘하루…. 하루 안에 그 남자의 혼을 찾아만 준다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투시를 한다면 찾을 수 있다.’
현우는 자신의 동생이 입국한다기에 마중 나가려고 김포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후는 어젯밤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어 현우가 기분전환이나 시켜주려고 데리고 왔고, 은명선생은 칸의 제자를 만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이런, 대낮에 귀신이 나타난 건 또 뭐람. 2시라 했던가? 아무래도 늦을 듯싶구나. 소후야?”
“예?”
“네 나이에 맞는 고민을 하려구나. 음?”
은명선생의 말에 소후는 애써 웃으려했다. 그래도 되지 안되자, 소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운전을 하고있던 현우가 말했다.
“근데 좀 이상하네요. 투시가 안된다니….”
“이상하지만은 않은 일이지. 어떤 능력이 있는 사람은 투시가 안되거든. 또 우리나라 주술 중엔 타심통(염력)을 막는 주술도 있으니 말이야.”
바야흐로 차가 김포공항 주차장에 멈쳐섰다. 은명선생이 벨트를 풀며 말했다.
“하여간 나는 칸의 제자를 찾아보지. 그럼 있다가 보세.”
그리고 나가버렸다.
현우가 뒤를 돌봤다. 소후가 슬픈 눈으로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어린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