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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의 서울 - 부산간의 연애 그리고 11월의 신

행복한 예... |2003.04.17 11:36
조회 842 |추천 0

남친과 전 1997. 9. 7.에 제주도 정방폭포밑에서 물에 떠내려가는 제 샌들을 주어주면서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며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97년 당시 전 22살 남친은 27살, 전 직장인 남친은 퇴직금 및 위로금을 두둑이 받은 백수.
남친은 오전에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오후가 되면 부산에 내려 왔답니다.
그리고 저랑 저녁먹구 영화보구 나서 마지막 기차로 서울로 올라갔구요..그것을 일주일주에 2-3번 우리 만난지 100일 동안을 했었답니다. 그 정성에 감동을 했던가..저의 이상형도 아닌 저의 남친을 사랑하게 되었죠..
그리고 100일째 되는 날 남친은 저에게(그땐 제가 회사를 그만 두고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이 되었답니다 남친은 새로운 직장을 구했구요.)그러더군요..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2년 후에 꼭 우리 결혼하자..결혼은 지금 해도 되지만 공부엔 때가 있는 거구..오빠가 열심히 돈벌고 해서 절대 절대 고생시키지 않을 테니까 꼭 지금 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위해 2년동안 열심히 살자구여.
그렇게 2년동안 한달에 한번씩 만나면서 더 애뜻한 사랑을 키워 나갔죠.
다시 복귀한 학생신분에 적은 용돈.. 그런 저에게 남친은 서울역에서 헤어질 때마다 뭔가 하나라도 사줄려고 했죠..정말 제가 사용하는 화장품에서부터 옷이며 용돈까지 거의 모든 걸 남친이 해결해 줬답니다. 정말 남친에게 고마웠고 저두 빨리 졸업하고 직장생활해서 울 남친에게 좋은 양복 좋은 선물 해 주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고 전 아직 백수..그리고 다가온 저의 졸업식
남친이 제 졸업식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게 인사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넌 아직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했고 아직 결혼하기엔 이르니 (제 남이 25 남친 30)지금은 현실에 충실해라..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았고
저도 아직 백조의 신분이기에 그때 준비했던 공무원준비를 열심히 했답니다.
그때까지도 남친이 저의 뒷바라지를 모두 해줬구요..용돈이며..모든 것을
그리고 1년 6개월 뒤 전 공무원이 되었고, 발령과 동시에 남친은 저희 집에 인사를 왔고  그때부터 부모님의 반대로 저의 악몽이 시작되었답니다.
저희 부모님이 남친을 반대하는 이유
1. 같은 성씨이다. 하고 만은 성씨중에 왜 하필 같은 서가이냐..
2. 남친의 직업 - 그때까지 몰랐습니다. 남친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줄은.. 전 그냥 유통회사에 다니는 영업사원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아시죠..트럭에 음료수 싣고 다니면서 배달하는..그것을 한다고 했습니다.
3. 왜 하필 서울에 가서 살려고 하니..-부산사람을 만나라.
4. 남친의 외모 - 좀 못생겼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병헌보다 송승헌보다 장동건보다 멋있답니다.

5. 남친고향 전라도..저 부산 아시죠? 지역감정
이런 반대속에서 전 남친과 헤어졌답니다...헤어지기까지의 과정 정말 넘 힘들었습니다.
여기서 쓰면 저 울까봐 쓰지 않겠습니다.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헤어지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거..하지만 그땐 남친에 대한 사랑보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에 헤어졌겠죠.??
헤어지고 3개월 2명의 S그룹 사람과 선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죠??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을
선본남자들에게서 나는 스킨이나 향수냄새보다 남친의 땀냄새가 그립고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남자들보다 울 남친의 운동화에 티셔츠가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가끔 길을 다가 보는 음료수를 배달하는 사람들을 보면 울 남친이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나에게 선물사주고 맛난거 사주고 했던가라는 생각에 남친에게 정말 미안해 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용기를 주고 일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버스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에서 들은 글입니다.
어떤 여자가 남친이 취업을 해서 기쁘다고 보낸 사연이었는데 그 남친은 약국에 드링크를 배달하는 영업사원으로 취업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남친이 자랑스럽다고.. 이 어려운 불경기에 대학나왔다고 으시대며 3D업종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기 위해 힘든 일을 선택한 남친이 너무 너무 자랑스럽다고 보낸 글이었습니다.
순간 전 지금 이게 뭔가...힘들일 하는 남친의 그늘이 되어 주지 못할 망정..그를 버리다니...그리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로 김포에서 바로 잠실로...그리고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내가 너무 어리섞었다고...내가 너무 나약했다고..부모님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지금 오빠의 사랑도 너무 중요하다고..
그렇게 다시 만난 우리는 저희 부모님과 결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왠일(^^) 그냥 순순히 저의 남친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동안 제가 남친과 헤어지고 머리숯이 1/3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스트레스에서 오는 탈모와 소화불량으로 힘들어 했었꺼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의 부모님은 이러다 딸 대머리되겠다..정말 이러다 우리딸 죽이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역시 자식이기는 부모님은 이 세상에 없는가 봅니다.
그리고 올해 설..남친의 집으로 인사를 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남친의 어머니, 형, 형수, 조카, 남동생, 누나, 매형 온 가족들이 모두 나와 반겼고 어머니와 누나는 제 손을 꼬옥 잡으면서 잘 왔다고 하시는데..정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렇게 남친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4월 6일 저흰 부산 해운대에서 상견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11월 2일 결혼날짜를 잡았답니다.
서울 부산 왕복하며 결혼준비를 하는게 남들보다 힘들지만..그래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답니다. 남친에게 정말정말루 잘 할꺼구요..이해심 많고 현명한 아내가 되어 줄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 엄마 아빠 저희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저희 행복하게 사는 모습 지켜봐 주세요. 

- 제가 글솜씨가 없어서 여기까지 읽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글 모두 읽으신분들 행복하시고 저희 행복하게 살게 꼬옥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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