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연구소 소장이 걸어 들어왔다.
나는 별 반가운 내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한다. 소장은 내 얼굴 표정에는 별로 개의치 않고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대범한 성격이라는 주위 평가니까.
170대 후반의 신장, 와이셔츠 밖으로도 짐작되는 탄탄한 상체와 군살없는 복부는
50대라는 나이가 무색해 보인다. 10년은 더 젊어보인다. 짧게 자른 머리는 잘 정돈되어 있고 적당히 그을린 피부는 긴장감 넘치게 팽팽하다.
이목구비 또한 나이를 감안한다면 준수한 편이다. 면도자국도 보기가 좋았다.
옷차림 또한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인 것 같다. 고가의 브랜드임을 짐작가게 한다.
직장 내에서 모두 다 공인하는 스타일리스트다. 당연히 호감을 유발하는 외모지만 나는 종종 미묘한 거북함을 느끼곤 한다. 자신의 매력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왠지 경계심을 불러 일으킨다.
사생활 면에서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부인과 별거 중이라는 얘기와 이미 이혼한 상태라는 풍문이 반반을 차지했다. 좀 더 소문을 빌려 말하자면 젊은 애인도 항상 끊이질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나완 별 상관이 없고 일에 있어선 내게 호의적인 상사라고 할 수 있다.
업무적인 면에 있어서 항상 우리 연구진의 요구를 많이 수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행정이나 재무부서와의 균형을 무리없이 유지하는 수완만은 나도 인정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서...............”
소장은 항상 나에게 깎듯한 경어를 쓴다.
“아닙니다. 앉으세요.”
소장이 소파에 앉자 나는 커피포트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는 황급히 손을 젓는다.
“아니, 방금 마시고 왔습니다. 차는 놔두세요.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소장은 내게 번거로운 일을 시키지 않으려는 듯 했다. 나는 소장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실은 윤 실장님께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잠깐 들렀습니다. 실장님께서도 연구소에
도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 있으실 겁니다.“
“............................”
“제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거라는....................”
들은 적은 있다. 본인은 겸손하게 얘기하지만 본사의 이사로 영전하게 된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후임자에 대한 애기도 같이 떠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후임자 후보에 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얘기겠지.
“지금 얘기하기는 그렇고 오늘 저녁에 시간을 좀 내주셨으면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상의 드리고 싶습니다.”
“...............................”
“오늘 시간 괜찮으신지요?”
“.....아직 특별한 일은 없는데.............”
직장 밖에서 단 둘이 만난다는 것이 썩 내키질 않지만 거절할 이유가 갑자기 떠오르질 않는다. 내가 승낙했다고 여기는지 소장은 웃음을 띠면서 일어났다.
“그럼 약속 장소와 시간은 이따 퇴근 전에 전화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소장이 나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남자들은 정말 모를까?
여자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만 봐도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를
훤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