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준 암호(2)
그리고 화학식은 그 애가 나를 점점 좋아한다는 것의 표현이다...
발열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애의 이름은 '연숙'이다. -Y-가 맞다.
나는 잠시 머리가 어지러움을 느꼈다.
[2]
다음 날은 의도적으로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바로 2박3일의 학과 엠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장을 봐야했다.
싼 가격으로 사려면 머리를 많이 써야한다. 여러군데를 돌아봐야 된다.
우리는 슈퍼체인점과 재래시장을 비교해가면서 물건을 골랐다.
공업제품은 체인점이 쌌고, 농산물은 재래시장이 조금 쌌다.
장을 본 후에 나는 집으로 가서 엠티준비를 했다.
드디어 엠티다. 나는 아침에 밥을 든든히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2,3,4학년들도 많이 와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지원해준 속리산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평화로웠고, 신록의 푸르름이 더욱 짙어만 가는 그런 때였다.
학생회 측에서 수업을 공결처리 해주어서 수업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3일동안 수업을 잊고 다같이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만남의 시간을 갖고 학년별 체육대회를 했다.
나와 강성이의 활약으로 우리가 선배들 틈새에서 2등을 했다.
그리고 밤에는 음주도 하고 노래도 하고 게임도 했다.
취기가 오르고 난 물을 버리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남자 소변기가 없는 탓이다.
그런데 웬 아이가 하나 울고 있는 것이다. 그 애는 우리과의 예령이었다.
술만 먹으면 우는 아이. 옆에서 누나들이 그 애를 달래고 있었다.
그 애는 우리과 형을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표현도 못하는 바보야. 언니들 나 한심하지 않아? 나 같은 애는
머리박아야 해!' 하면서 머리를 박으려고 했다. 진짜 한심해 보였다.
'안 돼!'하며 내가 그 애를 끌어내서 업은 다음에
방으로 데리고 왔다. '안돼! 너누구야! 어떤 놈이야!' 하면서
예령이가 울부짖었다. 나는 그냥 방에 예령이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혜주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혜주도 조금 취한 것 같았다.
그런 밤이 지나고 이틀째에 우리는 속리산
문장대 정상을 밟기 위해 옷차림을 간편히 했다.
여학우들도 정상에 도달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였다.
햇빛을 받으며 출발한지 20분만에 법주사에 도착을 했다.
'호서제일가람'이라 tM여져 있는 이 곳.
규모도 크지만 문화재가 많이 있다. 우리는 법주사를 충분히 보고
문장대를 향해 떠났다.
생각보다 가파른 곳이 많았다. 땀도 흘리고,
물도 마시고 하면서 우리는 있는 힘을 다했다.
나는 걷는데는 자신이 있어서 앞서 나갔다. 결국 선두권으로 정상에 도착했다.
야호~~ 하고 소리쳤다. 나머지 인원들도 속속 도착했다.
나 다리 아파 하며 엄살부리는 여학우들도 많았다.
문제는 내려갈 때였다.
혜주가 구두를 신고 왔던 것이다. 결국 내가 손도 잡아주고 부축도 해주고 했다.
내려올 때는 경사가 급해서 어어~ 조심해! 의 말밖에 하지 못했지만,
평탄한 곳으로 와서 우리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혜주가 이것저것 결혼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커서 결혼 할거냐 등의 질문을 했다.
혜주 때문에 나는 거의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하려는
우리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혜주가 심하게 취했다. '야...아까 너무 고마웠어...진짜루..'하면서 울었다.
그러면서 어제 내가 예령이를 업은 것에 대해 조금 언짢아했다.
얼굴을 들이밀며 뽀뽀해 달라고까지 했다.
사람도 많은 데 어떻게...나는 몸을 피했다.
나는 아직 혜주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엠티가 끝나고 나는 내심 다음 쪽지가 기다려졌다.
무슨 내용일까?
아침에 도서관에 갔다.
내가 항상 앉는 자리에 앉고... 월요일에는 오전에 수업이 없다.
오늘 그 애는 왔을까? 이 넓은데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러 강성이와
신문열람대에서 신문을 보고 돌아왔다.
어김없이...쪽지가 있었다.
그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엠티는 잘 다녀오셨나요? 오랫동안 못 봐서 섭섭했어요.
- Y -'
그리고 이런 것이 있었다.
'Mdlv(63), 21(44/44.96), 31(68/69.9), 32(72/72.6) 기도'
'이게 뭐야? 장난하는건가?' 강성이가 투덜대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Mdlv와 그 숫자들...잘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어디있는지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쉽게 나타나려면 이렇게
쪽지로는 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내심 오기가 생겼다. 나는 숫자들을 놓고 인수분해도 해보았고,
영어사전을 갖다놓고 Mdlv를 찾아도 보았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가 화학공학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1학년이라 전공도 많이 들어가지 않았을텐데...
나는 화학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21, 31, 32는 왠지 원소기호와 관련이 있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는 다시 대출실로 들어갔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21은 Sc라는 스칸듐이고 44.96은 그 원자량이었다.
31은 Ga가 원소기호인 갈륨이고 69.9는 그 원자량이다.
32는 Ge가 원소기호인 게르마늄이었고 72.6이 그 원자량이었다.
그러나 다음을 풀지 못하였다.
오랫동안 책을 봐서인지 눈이 아파왔다.
나는 숫자들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앞의 것이나 뒤에 것이나 대략 값이 비슷하다.
그래도 감이 오지 않았다.
이 애는 어디서 이런 걸 쓰나....
그 때... 그녀가 1학년이므로 화공과
1학년의 전공책에서 참조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이며 화공과에 다니는 친구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전공책 이름과 출판사를 알아냈다.
다행히 도서관에 그 책이 있었다.
나는 1쪽부터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100여 쪽을 읽고나니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다른 전공일 뿐더러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식힐 겸 책을 훑어보니 뒤쪽에 화학과 관련된 에피소드 같은 것을
실어놓은 부분이 있었다.
아보가드로의 어릴 적 시절과 배수비례의 법칙의 실례,
벤젠이 중요한 이유등...
아니 이건...? 갑자기 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바로 이것이다. 나는 그간의 피곤함도 잊고 천천히 읽어나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 1869년에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에프는
옥타이브의 법칙보다 훨씬 더 완전한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중략)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었을 때에는
겨우 63종의 원소만이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 주기율표에는 빈칸이 많이 들어 있었으며, 대단히 불안전한 것이었다.
그는 이 빈칸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 때문이라 주장하고
빈 칸의 위치를 주시함으로써 발견되지 않은 원소의 많은 성질을
예언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예카알루미늄, 에카 붕소 및 에카규소라는
3원소의 존재를 예언하였다.'
바로 에카 붕소가 스칸듐, 에카 알루미늄이 갈륨, 에카 규소가 게르마늄이다.
그리고 (72/72.6)에서 앞의 72은 멘델레예프가 예언한 게르마늄의 원자량이고
72.6은 발견된 게르마늄의 원소값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래서 이번 암호도 풀어낼 수 있었다.
Mdlv는 멘델레예프(Mendeleev)의 약자이고
나머지 원소는 멘델레예프가 에언한원소들이며 이것과 '기도'를 따진다면
그녀는 멘델레예프가 원소를 예언했듯이 자신과 나와의 관계를 예언하며
발견된 원소가 빈칸을 채우듯 그냐와 나 사이의 빈 칸을 이 암호가 채워준다고
믿고 있고 그녀의 예언이 적중되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피곤한 하루였다. 누구에겐가 연락이 왔다 혜주였다.
혜주 : 어디야? 도서관이야?
나 : 응...
혜주는 근처의 호프집에 있었다.
나는 가방을 싸고 혜주가 기다리고 있는 호프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