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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국화 +4

수레국화 |2007.03.02 17:25
조회 374 |추천 0

 

주말 내내 집에서 티비를 벗하고 퍼질러 있었더니 출근길에 머릿속이 윙윙 거리는 것 같았다. 정류장에는 휘진을 비롯해 여남은 명의 직원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따라 버스는 왜 늦어가지고 일일이 다 인사하게 만드는거람. 아무렇지 않게 손흔들며 반가이 인사하는 휘진이 얄미웠다. 휴대폰은 잠시도 멀리하지 않고 화장실 갈때조차 들고 다녔건만 그 흔한 문자 한통 없더니.. 그는 버스에 먼저 올라서는 빈자리를 잡아놓고 자기 옆에 앉으라는 듯 눈빛을 보냈지만 모른척 그를 지나쳐 친하지도 않은 사범대 언니 옆에 앉았다.

하지만 내 귀는 그의 옆자리에 떡하니 가 있다.

“과장님, 요새 연애하시나봐요? 웃음이 떠나질 않네요.”

“그렇게 보입니까?”

“어머어머, 정말 연애하시나 보네. 그 아가씨가 누구래요? 저희도 아는 사람인가?”

“글쎄요....아마 나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아이고 이거 궁금해서 살 수가 있나. 난 우리 조카 이번에 대학 졸업한 애 있어서 과장님 소개시켜 줄랬더니 한 발 늦었네요.”

아줌마들이 더 신나서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어댔다.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 이름이 나올까봐 귀를 쫑긋 세우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지만 그런 말은 없었다.

그는 내려서 가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정선생님, 지난번에 말씀 못 드린게 있어서요. 출입국에 비자 서류 받으러 수요일에 가실거죠? 그럼 우리 중국 애들꺼도 받아야 하니 같이 갑시다. 그럼 수고해요.”

그는 선혜씨가 아니라 정선생님이라고 날 불렀다. 물론 다른 직원들이 우리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단 걸 의식해서 였겠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를 의식하고, 그의 작은 언행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강사채용 일 때문에 월요일부터 야근이다.  혜영언니도 대학원 논문 마감이라 늦게 가야한대서 둘이 저녁까지 시켜먹고 일을 했다. 12시가 되어가자 언니가 그만 가자고 해서 조금 일이 남았지만 가방을 챙겼다.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어학당 입구에 차가 한대 서 있었다. 우리가 나가는 것이 보이자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혜영언니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혜영 언니 대학원 후배인 문혁이다.

“문혁이도 오늘 논문 마지막 작업 때문에 늦게 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했어. 일단 타자.”

언니는 먼저 내릴 것이라며 뒤에 타고, 내게 앞에 타라고 했다. 불편했지만 30분만 가면 되니 그러기로 했다. 언니를 먼저 태워다 주고 그는 우리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리려는데 문혁이 잡았다.

“사실 오늘 제가 기다린 것은 선혜씨였어요. 혜영누나가 워낙 선혜씨를 소개시켜주고 싶어해서 어떤 사람인가 하고 선혜씨 보러 온 적도 있구요. 물론 혜영누나 만나러 온 것처럼 가장해서였죠.”

“네? 언제요?”

“몇일전이니까...아마 진혁인가 하는 학생이 학점 때문에 싸우러 왔을때인 것 같은데...본관에서 직원도 한 분 오셔서 중국 학생들 일 상의했던 날인데.”
휘진이 왔던 그 날인가 보다. 그날 내 사주팔자에 남자가 꼬이는 날이었나보다. 평소에는  파리 날리던 내 연애전선에 갑자기 두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오다니. 필시 길일임에 틀림없었다.

“아~ 총무과 민휘진 과장님 오신 날이군요.”

“아마 그럴겁니다. ”

“오신 줄도 몰랐었는데..”

“그럴거예요. 그 분과 얘기하는데 집중한 것 같았거든요. 우리 이제 그런 지난 일은 그만 얘기해요. 전 일단 선혜씨가 마음에 들어요.”

너무 갑작스러워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제 스타일은 감추고 내숭떠는거 싫어해요. 좋으면 좋다 말하고 싫으면 싫다 말하고, 키스하고 싶으면 키스하고 싶다 말하고, 같이 자고 싶으면 같이 자자고 말하고.”

뭐 그런 못된 스탈이 다 있남.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사람이 동물보다 아름다운 이유가 부끄러움을 알고 절제의 미덕이 있기 때문인데.”

“끌리는 사람에게 키스하고 싶은건 본능입니다. 왜 그런 마음을 꼭꼭 숨겨야 합니까. 지금도 저는 선혜씨한테 키스하고 싶은걸 선혜씨가 놀랄까봐 참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동물보다는 좀 진화한 단계가 맞는 것이죠?”

그의 농담스런 말에 웃었다.

“그런 스타일이 부담스럽다면 천천히 가죠뭐. 일단 매일 퇴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퇴근하는길에 데이트도 좀 하고.”

“괜찮아요. 저의 애마 셔틀버스가 있는걸요.”

“저는 함께 퇴근해서 저녁먹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하는게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봐요. ”

그가 키스하려고 다가와서 얼른 내려버렸다. 그의 웃음 소리가 차문을 닫았는데도 아주 커다랗게 들렸다.

주희가 자다가 열쇠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나왔다.

“이제와? 많이 늦었네.”

“응...그런데 주희야,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이니?”

“뭐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 니가 닳고 닳은 애라서 남자들을 가지고 노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람들 말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믿어 버리니 순순한 면도 있고. 야야, 그런건 남자들한테 물어봐라. 여자가 여자를 보면 아냐.”

“그렇구나.. 내가 그렇게 쉬워 보여서 그랬구나..”

“그건 또 뭔 말이래? 너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오늘 혜영언니 후배가 왔는데 내가 마음에 든다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 내릴때 키스하려고 하더라.”

“그 사람 너무 여자한테 굶주린거 아니니? 하하하 아니면 선수거나.”

주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휘진씨도 내가 쉬워보일거야. 그지? 먼저 좋아하는 티를 그렇게 팍팍 냈으니..휴~잘자라..”

그가 주말에 전화를 안한 것은 지난 주말까지 내게 전화를 안했듯이 당연한 일인데 난 그와 저녁 한번 먹고 술한잔 했다고 해서 마치 애인이라도 된 양 당연히 전화해서 데이트하자고 할 줄 알았다. 오버다. 오버 걸 정선혜. 그러니 남자가 함부로 키스하려고 하지.



# 문혁's

혜영 누나가 워낙 매치 메이커로 여러 커플들을 이어줘서 내게도 그냥 해 본 말이려니 했다. 누나 사무실에 가면 사람들이 너무 들끓어서 짜증이 나는데, 기어이 선혜를 보러 오라는 것이다. 미국 가기 전에 애인 만들어서 결혼하고 같이 가면 좋지 않겠냐고.

점심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3잔 사들고 갔더니 선혜는 웬 키 큰 학생과 얘기 중이었다. 누나 옆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다가 인사나 하려고 했더니 나보다 먼저 와 있던 본관 직원이 선수쳤다. 행정실장이 굽신거리는 걸로 봐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가보다.

커피가 다 식어도, 누나의 졸업논문을 도와줘도 선혜는 쉬는 시간이 없어 보였다. 외국에서 전화가 왔다고 다른 직원이 선혜를 바꿔준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대화를 하며, 메모를 해나간다. 외국인 입국 날짜가 늦어지는 모양이다. 선혜는 조금 짜증난 듯 비행기표를 더 알아보라고 하고 끊었다.

“거봐, 선혜 영어 특기생 맞지?”

혜영누나는 남들이 들을까봐 속삭였다. 혜영누나가 선혜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똑같이 임용된 동기들을 제치고 어학당으로 발령이 나서 사람들이 영어특기생이라고 한다고 알려줬다.  그 정도 영어실력이면 미국가서 바로 대학원 코스를 밟는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선혜를 내 사람으로 만들 준비를 해야겠다.


대학원 수업중인데 혜영누나가 문자를 보냈다. 선혜와 야근한다고 마치고 가는 길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키가 175나 되는 혜영누나 옆에 자그마한 체구의 선혜가 같이 나왔다. 혜영누나가 워낙 크니 선혜도 그다지 작은 키가 아님에도 상대적으로 더 작게 느껴진 것인가보다. 혜영누나를 내려주고 선혜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얼른 내리려고 한다. 이제 대학원이 일년 남아서 내 마음은 급한데 선혜는 내게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이라도 하면 내 마음이 더 잘 전해질까 해서 다가갔더니 기겁을 하고 내려버린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만난 지 하루만에도 모텔로 같이 간다는데.. 분명 몇 년 동안 애인이 없다고 했는데, 그럼 연애 경험이 없어서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까.  내성적인 아가씨가 귀여운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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