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하고 11년째,
여전히 봄은 왔고 나는 마음이 바쁘다.
그 동안 목 끝까지 차고 오르는 삶의 애착탓에,욕심탓에 돌아보지 못한 산야는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고 봄은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움직인다고 움직인다.
새벽에는 오로지 운동을 위해서라며 아르바이트로 네 시간을 달리고
주업을 위해서는 한달에 십여일은 걸어야 하는데도 부족한 운동량은 인간은 환경의 동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굳이 걸어야 한다며 차도 두고 먼 거리를 걸으면서 괜히 화도 나고 힘도 들어 마지막 코스에서 길 대신 산을 택했다.
길도 없는 산 그 자체.
얼마를 가자 철조망에는 통제구역이라 적혀있지만 그게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하는 것은 내가 10여년 살아 온 불문율이다.
절대 우회하거나 원점으로 되돌아감이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박진력하나로 살아왔다.
손으로 한 철조망 위로 올리고 발로 한 철조망 아래로 내리니 내 몸하나 빠져 나가는건 시간문제.
근데, 이게 무슨 횡재냐,
그토록 눈에 삼삼거리던 나무 두릅의 군락이 거기 있었다.
이미 초벌은 누군가가 수확하였지만 먹기 좋을만큼 연하고 도톰한 그놈들을 하나 하나 따면서 품에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밖의 일이라 담을 도구가 내게는 없었다. 까짓것 날씨라도 화장하다면 점퍼라도 벗어 담겠으나 오락가락하는 봄장마에 점퍼 벗을 엄두는 못내고 따서 품에 담다 담다 더 못담을 지경에 그곳을 벗어났다.
(오늘만 날인가?)
다음날 느즈막히 움직였다.
부족한 잠 때문에 잠깐 눈도 붙이고 조간신문도 빠짐없이 읽고 마지막 일거리도 정리하고 커다란 시장바구니들고 그곳으로 숨어 들었으나 벌써 바지런한 아줌씨들은 베낭 가득 가득 두릅을 따서는 나오고 있었다.
걱정했는데...
(저 두릅을 다 따서 어떻게 다 먹을까?) 궁리했는데...
한 개도 만져보지 못한 체 그 곳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내가 아니다. 빈 손으로 돌아갈 수 는 없다.
아무도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는 없으나 내 기대를 내가 무참히 깰 수는 없는 거다.
언젠가 산행길에 보아 둔 고사리밭으로 향했다.
항상 캐주얼이 좋아 편하게 입고 다니는 내 복장이니 여타의 산행객과는 다를바 없으나 높이 6-7cm는 되는 단화는 솔직히 힘에 겹고 열심히 걸으며 힐끔거리는 이방인의 눈길이 자꾸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다.
(언제 그들이 내게 쓴 소주 한 잔 사줬던가)
스스로 위로하며 구비 구비 능선을 타고 올랐으나 그곳의 고사리는 늦게 피는 늦고사리니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너무 힘이 들어 임도로 빠졌으나 아직 가시지 않은 페인트냄새 코를 찌르고 아스콘냄새 역시 머리가 아프고 가마득한 임도 끝, 내 목적지까지 갈일이 걱정이다보니 골치부터 지끈거린다.
얼마를 걸었을까? 다시 발견한 두릅군락지!
굽 높은 단화가 대수랴, 거의 80도에 가까운 급경사를 타고 내려 오동통한 두릅을 따며 생각한다.
내 어찌 이 자유을 포기하랴,
내 어찌 이 여유를 남 주랴,
십여년을 살면서 다행인것은 아직 어떤 인연에라도 엮이지 않았음이고
사십여년 살면서 후회인것은 너무 살아갈 일이 걱정이라 겁도 없이 자행한 인공유산이다.
다 제 밥그릇 타고나거늘 내 살자고 저지른 일! 저승까지 멍으로 안고 살아야 겠으나
분명한 것은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내 자유, 내 마음의 평화만큼은 뺏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