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랑할 수밖애 없는 사람 -12-

러브콜 |2007.03.05 20:15
조회 302 |추천 0

사랑의 아픔

  영원히 오지 말았으면 했던 이하나의 결혼식이 내일로 다가왔다. 최은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주마등 같이 스쳐 가는 그녀와의 추억들이 장대비가 되어 그의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떠내 보낼 수밖에 없는 그녀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도 그는 그녀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최은수는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걷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헤매이다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앞에 다다라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철 지난 논 가운데 덩그런히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매우 쓸쓸하게 보였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개봉하기 전부터 몰아친 광고 덕분인지 별 신통치 않은 영화 같은데도 피카디리 극장 앞은 표를 사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매표소에서 골목 끝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거의가 남녀 쌍쌍이었다.

  최은수는 문득 이하나와 같이 관람했던 영화를 생각했다. 지금은 띄엄띄엄 몇 장면만 기억날 뿐 제목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졸음이 계속 찾아 왔지만, 그는 재미있어 하는 그녀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써 졸음을 쫓아내며 재미있는 척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그때가 천국이었다.

  최은수는「갤러리」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이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거덕거렸다. 예전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소리였는데, 오늘은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날카롭게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최은수는 이하나를 만날 때 자주 앉았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마침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빈자리였다. 그 빈자리에 그가 앉았다. 하지만 그녀가 앉았던 자리는 여전히 빈자리였다. 그녀의 빈자리는 그의 마음을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머니에서 담배와 검은색 위에 은색의 하트 무늬가 새겨진 가스라이터를 꺼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가스라이터는 지난 발레타인데이에 초콜릿과 함께 이하나가 최은수에게 선물한 거였다. 그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여자 종업원에게 음악을 신청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겨울 나그네」였다.

  최은수는「겨울 나그네」중 1곡인「밤 인사」를 들으며 고개를 들어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바라보았다.「창」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던 곳에「연」이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었다. 예전에「창」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그림을 보고 명함 뒷면에다 적은 시를 보여주자 마치 성탄절날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이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도 그녀의 결혼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최은수는 신청한「겨울 나그네」가 끝날 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서 커피 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피카디리 극장 앞은 매표소에서부터 골목까지 표를 사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는 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레스토랑「아셀」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은수가 레스토랑「아셀」로 들어서자 남자 종업원이 그를 단번에 알아보고「오늘은 혼자 오셨어요?」하고, 무언의 표정으로 물었다. 그 무언의 물음에 그는 씁쓸한 웃음으로 대꾸했다.「아셀」에서도 그는 이하나와 올 때 자주 앉던 창가의 자리를 찾아 앉으며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맥주와 안주는 그녀가 좋아하는「하이트」와「스테이크」였다. 그녀는 이곳 이 자리에서 말했다.

 「나, 오늘까지만 아방궁에 나가고 내일부터 나가지 않기로 했어요.」

  최은수는 이하나가 비록 어머니의 병환이 악화되어 룸살롱「아방궁」을 그만 둔다고 한 것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취직을 할까 해요.」

  최은수는 진실로 이하나를 돕고 싶었다. 동정심이 아니었다.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랑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그녀에게 생기더라도 자신은 그녀의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런데 그녀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핑계와 취직할 것이라는 거짓말로 자신의 결혼을 감추려고 했던 것이다.

  레스토랑「아셀」에서 나온 최은수는 신사동에 있는「꾸뽈」커피숍으로 가기 위해 3호선 지하철을 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하나가 친구 두 명과 같이 자취하던 원룸은 이곳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리버사이드 호텔 뒷골목에 있었다. 이곳에서도 여자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물 묻은 휴지가 깔려 있는 재떨이와 물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문을 받지 않은 채 그냥 돌아서서 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가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는 줄 알고 있는 듯 했다.

 「아가씨, 커피 한 잔 주세요.」

  최은수는 레스토랑「아셀」에서 남자 종업원에게 했던 것처럼 씁쓸한 웃음을 띠며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했다.

 「예?」

 「커피 한 잔 주세요.」

  최은수가 예전처럼 이하나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커피를 주문하자 자신의 틀린 판단에 겸연쩍어 하는 종업원에게 그는 다시 한번 씁쓸한 웃음을 띠며 힘없는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했다.

 「갤러리」커피숍 벽면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이곳「꾸뽈」커피숍에는 테이블마다 A4 용지에 컴퓨터 글씨로 쓰여진 시구가 유리 밑에 깔려 있었다. 그가 앉은 테이블에는 원태연의 시집「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중에서 골라낸「누군가 다시 만나야 한다면」이라는 제목의 시가 깔려 있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허나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두 번 죽어도 너와는……


  하필이면 원태연의「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는 시집은 그가 이하나를 룸살롱「아방궁」이 아닌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처음 만난 작년 구월 십오 일에 레스토랑「아셀」에서 맥주를 마시고 헤어질 때 선물한 시집이었다.

  어쩌면 이하나는 천사와 요녀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여자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은수의 가슴이 여기저기 널린 깨진 병조각에 상처 입은 듯 쓰리고 아파 왔다.

 「만약 그 날 내가 룸살롱 아방궁에 가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날 내 옆에 그녀가 앉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나중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되씹어 보며 후회해 봐도 아무 소용없는 생각들이 계속 최은수의 마음을 괴롭혔다.

  「아셀」에서 나온 최은수는 혼자 술집에 앉아 소주를 목구멍 속으로 들이킬 때마다 타오르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쁜 년, 죽일 년, 잘 먹고 잘 살아라…….」

  이하나는 철저하게 최은수를 배반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 못 만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저…… 결혼…… 해요.」

 「결혼한다고?」

 「미안해요. 결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최은수는 왜 이하나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없이 선택한 그 남자는 그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을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일 거라고, 그녀의 결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전개였다고, 그렇게 그는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와 나이가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는 서른네 살 먹은 그 남자는 겨우 돈 많은 어머니가 하는 시장 옷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타서 쓰는, 한 마디로 백수건달이었다. 그녀는 오직 하나, 돈 때문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은수는 이하나에게 묻고 싶었다.

 「그 남자가 너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니? 모르고 있겠지. 네가 이놈 저놈한테 몸을 팔았던 호스티스였다는 것을……. 그런데도 넌 결혼할 남자에게 아무런 죄책감도 없니?」

  이하나의 결혼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축복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최은수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최은수는 결혼하는 날 베토벤의「비창(悲愴)」과 슈베르트의「겨울 나그네」CD를 선물하기로 한 그녀와의 마지막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이하나와의 약속을 꼭 지키려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룸살롱「아방궁」이 영업을 시작할 시각에 술집을 나온 최은수는 종로의 한 레코드 가게에서 CD를 세 장 구입하고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가 정지영 마담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유진이가 다른 룸에 들어가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CD를 그녀에게 전해 주려면 유진이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유진이를 보는 순간 최은수는 이하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녀에게 그렁그렁해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그녀가 눈치 챈 상태였다.

  그런 최은수를 보고 유진이가 핸드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가 건네준 핸드폰을 손에 들고 망설였다.

 「하나와 통화해서 뭐하려고? 그래서 어쩌려고? 이젠 다 필요 없는 짓인데…….」

  그러나 최은수는 이하나의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어졌다. 아니, 그는 그녀에게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확인하지 못했던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진정으로 날 사랑했었냐고…….

  최은수는 유진이가 건네준 핸드폰으로 이하나가 전화를 받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고, 뜻밖에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듣기 원했던 그녀의 목소리였던가.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야…….」

  최은수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이하나는 금방 대꾸를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고민하기보다는 말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결혼식 전날 밤에 그가 전화를 하리라고는 예상 못했던 것이다.

 「잘 있었어?」

 「예…….」

 「…….」

  이번엔 최은수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게 잠겨 있었다.

 「결혼 축하해…….」

  최은수는 이하나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원망과 배신감으로 얼룩진 마음속에 담겨 있는「진정으로 날 사랑했었니?」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던 말이 아니라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이하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또 침묵이 흘렀다. 얼마 있지 않아 일방적으로 그녀의 핸드폰 덮개가 덮이는 소리가 들렸다. 최은수는 단절음만 들려오는 핸드폰을 한동안 귀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가, 핸드폰 덮개를 덮고 유진이에게 건네주었다. 핸드폰을 건네주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쉴 때마다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참기 위해 독한 양주를 그녀가 따라 주는 대로 쉬지 않고 마셔 댔다.

  유진이는 침착성을 잃고 불안해 보이는 최은수를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를 난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이하나의 목소리라도 들으면 그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는 너무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염려했던 것보다 잘 살 거야. 행복할 거야. 아니야. 하나는 며칠을 못 견디고 도망 나올 거야. 그년, 그년 결혼 잘못한 거야. 하필이면 그런 놈하고 결혼을 해. 말도 안 돼. 하지만 부잣집으로 시집갔으니까 잘 살겠지?」

  술에 취한 최은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진이 앞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는 가련한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유진이가「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비록 그녀의 말이 사실일지라도 그런 상투적인 말로는 최은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다.

 「하나가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 확 죽여 버리고 싶었어. 그 동안 날 속였던 거야. 결국 그년도 별 수 없었던 계집애였어. 난 그것도 모르고……. 나는 참 바보 같은 놈이야…….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년 혼자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최 부장님은 정말 하나가 불행해지길 바라세요?」

  유진이는 최은수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자신을 배신한 여자의 행복을 바라겠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최 부장님의 속마음은 하나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을 거예요.」

 「천만에, 진이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난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면서 하나에게 줄 선물을 왜 가져 오셨어요?」

  유진이는 설마 하는, 최은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단지 하나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게 그거죠.」

 「아니야. 이제 난 절대 하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니에요. 최 부장님은 아직도 하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가 행복해지도록 마음속으로 빌어주세요.」

 「그럴까?」

 「그렇게 하세요.」

 「솔직히 말해 하나가 떠나 야속하고 슬퍼. 그리고 하나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런데 한쪽 마음에서는 하나가 불행해져서 다시 나를 찾아오기 바라고 있어.」

  자신이 아직까지 이하나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최은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처럼 어지러움증을 느꼈다.

 「그게 다 하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때 정지영 마담이 룸으로 들어와 최은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찼다. 비웃는 것은 아니지만, 한심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참담해지면서 수치심이 치솟았다.

 「정 마담, 나 바보 같지? 바보 같을 거야.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더하겠지. 그렇지?」

 「아니에요. 우리는 최 부장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혼하는 여자는 그만 잊어버려요. 여기 하나만큼 예쁜 여자 많아요.」

 「여기에 하나만큼 예쁜 여자가 많다고? 좋아, 그러면 오늘 하나만큼 예쁜 여자와 자고 갈까?」

 「그렇게 하세요. 그럼 기분이 한결 좋아질 거예요.」

 「그런데 다른 여자는 싫어. 유진이와 자고 싶어.」

  최은수의 갑작스러운 말에 유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 어중간한 표정이었다.

 「왜 싫어?」

 「그럴 수는 없어요.」

  유진이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그냥 해본 소리야.」

  최은수의 목소리엔 괴로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양주를 한 병이나 마신 최은수는 모든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정 마담이 다른 아가씨와 자고 가라고 달콤한 말로 유혹했지만, 최은수는 정 마담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갈기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신용카드로 계산을 끝내고 벌떡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갔다. 앞으로 영영 찾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걸음걸이였다.

  유진이가 급히 최은수의 뒤를 따라 나갔지만 이미 계단을 내려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 난간에 기대서서 그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에 도착한 최은수는 초인종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또 아내와 딸아이가 집에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다. 오늘도 아내는 딸아이 함께 친정집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에 어떤 남자와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부터는 가끔 이러한 일이 발생되는 지금까지의 아내 행동을 믿지 않게 되었다. 딸아이를 친정집에 맡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내는 그곳에 없을 것이다. 그는 아내의 외도를 확신하고 있었다.

  최은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구멍 속에 넣고 돌린 후 자물쇠가 풀린 현관문의 손잡이를 천천히 비틀었다. 그러나 그는 현관 입구에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한동안 망설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텅 빈 집 안에 발을 늘여 놓았다.

  이제 최은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