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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국화 +18

수레국화 |2007.03.09 00:54
조회 402 |추천 0

 

휘진‘s

낮에 어머니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이모한테서 자초지종을 다 들으셨을테니 어찌 되었나 궁금하셨을 것이다. 퇴근하는데 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아버지 목소리가 대문밖까지 들렸다.

“그동안 선혜가 집에 안온다고 물을땐 잘도 둘러대더니 이제와서 뭐 이혼을 해?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왜 당신이 주제넘게 아들 일에 간섭을 하냐고?”

집에 오셨을때 어머닌 식탁에 던져놓은 이혼서류를 보셨나 보다.

“엄마니까 간섭하는건 당연하죠. 당신은 내 얘기도 끝까지 안들어보고 선혜 편만 드시는건 또 뭐래요? 그만큼 오해받을 짓을 했다니깐요.”

“시끄러. 오해받을 짓이 어디 있어. 가족끼리는 무조건 믿어주고 남이 욕하더라도 감싸줘야 할 사람들이... 당신 그러고도 선혜한테 나중에 제사상 받아먹을거야?”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그렇게 소리치는건 처음 봤다. 어머니는 여장부로 항상 큰소리치는 역할이고 아버지는 늘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던 분이다.

“너 무슨 낯으로 여기 들어오는거야? 지 여자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놈이.. 못난 놈.”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할거 없어. 너희들 이혼하는 순간 너와 나도 부자관계 정리되는 줄 알아. 당장 선혜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해.”

그녀는 신호가 울리고 자동응답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가라앉아있다.

“목동 집으로 좀 와야겠어.”

그녀는 대답이 없다. 전화를 끊은 걸까...아니다 그녀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곤란해요.”

아버지는 전화기를 빼앗아 가셨다.

“선혜야, 아버지다. 바쁘니? .... 그래... 그럼 마치고 오렴.”

아버지는 그녀가 온다고 해서인지 조금 누그러 지셨다.

“선혜 곧 온다니까 저녁 먹을 준비해요. 오랜만에 며느리가 온다는데 뭐하고 있는거야.”

어머니는 아버지 화가 조금 풀리신걸 알고 얼른 주방으로 가셨다.

선혜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만쥬세트를 사들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저녁이나 먹자며 식탁에 앉으셨다. 선혜 역시 별 말이 없이 어머니가 상차리는 것을 도왔다.

“곧 1월도 되고 하니 날을 잡아 식을 올려야지. 휘진이는 이번 주말에라도 단양 가서 사돈 뵙고 날짜 한번 맞춰보고. ”

“네. 아버지.”

밥을 먹던 선혜가 잠시 주춤하는 듯 하더니 다시 태연해졌다. 뭐라도 말할 줄 알았던 그녀가 가만히 잠자코 밥만 먹고 있으니 더 불안했다.

“당신은 내일이라도 선혜 데리고 한의원가서 약이라도 한 재 지어 먹이고. 시어머니가 있다는 애가 몸이 저게 뭔가. 이런 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좀 알아서 할 일이지. ”

선혜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살면서 잘못도 하고 오해도 하는거야. 그런데 가족이란 말이지 그런 것들을 다 감싸안아줄 의무가 있는 법이야. 휘진이가 어떻게 하든 간에 우리는 너를 감싸고 보듬었어야 했는데 우리가 그렇게 못했다. 선혜야, 그동안 마음에 쌓인 거 다 풀어버리고 예전처럼 우리 딸로 다시 시작하자. 철없는 휘진이 니가 살면서 좀 가르치고.”

선혜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내가 선택한 정선혜란 여자는 그런 여자다. 요즘 여자들처럼 자기 생각이 다르다고 어른 말씀하시는데 넙죽넙죽 ‘아니오.’를 외치는 당돌한 여자도 아니고, 자기를 냉대한 어머니가 미울텐데 아무 표시 없이 어머니옆에서 일을 돕는 그런 여자다.  

아버지 집을 나와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선혜는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불러서 화가 난 것일까. 주차하고 나니 그녀는 생각에 빠졌는지 내리지도 않고 창 밖만 바라보고 있다.

“왜 말 안했어요?”

“.........”

“왜 자기가 도서관 그 고학생이라고 말 안했냐구요, 왜 자기가 선우 취직시킨거, 등록금 내준거 말 안했냐구요,  무료라고 거짓말하고 아버지 다달이 정기검진 받게 한거 왜 말하지 않았냐구요?”

“그런 거 다 말했으면 당신은 더 펄펄뛰고 화를 냈겠지. 약값대는 것만도 힘든 당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그렇게 몰래몰래 하는거 뿐이더군. 내가 주는 돈은 안받을테니. 안그런가?”

“저를 그렇게 믿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아무에게나  몸을 주는 그런 여자로 알았어요?”

“아니란 걸 알면서도 ....문혁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정신이 아니었어. 변명이란거 알아.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임신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었어.”

“임신5주였어요. 저도 확실하지 않을 때였다구요.”

“그만하자. 다 내 잘못이야. 이제 그만하자. ”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이대로 보내면 그녀와는 다시 멀어지게 된다.

선혜는 가지 못하도록 잡는 내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하지만 잡고 또 잡았다.

선혜가 돌아섰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금 저를 놓아주지 않으면 전 평생 당신을 미워할 것이고, 당신은 그런 저에게 질리게 될 거예요. 그런걸 원하세요? 그렇게 해서라도 저를 잡고 싶으세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그녀가 이렇게나 힘들어하고 있는데 내 욕심만 챙기려 그녀를 잡아둘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진실을 안다면 돌아오겠지. . . 그녀는 돌아서서 종종 걸음으로 아파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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