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로우냐?
‘어쩌지?’ 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첫 마디는 늘 그렇게 서두를 뗍니다. 하지만 참 무모하게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스스로 답을 내고는 두서없이 일을 진행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겠지만, 가까스로 일은 늘 별 허물없이 마무리 되곤 합니다. 일 자체가 지닌 생명력이라는 것이겠지요.
금요일 오전, 이틀째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의욕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일주일 전부터 가장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잡거나 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독거노인 분들께도 그저 식사 한 끼만을 대접할 수만도 없고 뭐라도 들려 보내 드려야 할 텐데... 게다가 노인들을 위한 잔치인데 손자손녀 손을 잡고 오시거나 누군가가 모시고 온다면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마음이 묵직합니다.
서식지 근방의도살장에서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샀습니다. 82Kg, 근으로는 백 근이 넘는 양이니까,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앞집 형님과 함께 라면 박스 3개 분량의 고기를 끙끙거리며 운반하고 열어보니, 부위별로 덩어리가 되어 있습니다. 외로운님께 연락을 드리고 외로운 님의 레스토랑으로 가서 직원 분들의 도움으로 고기를 자르고, 양념을 하였습니다. 주 메뉴는 그렇게 보쌈으로 삶은 고기, 갈비 양념구이, 생고기 숯불구이로 정해집니다. 밤이 늦도록 야채를 손질하고 양념을 따로 모아 봉지에 쌉니다. ‘이건 여기에 넣고... 아이고’ 자꾸만 헷갈립니다.
저녁 늦게 고려대학에 다니는 동건이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이별직후인 동건이의 친구 서울대 물리학과의 오승운이 왔습니다. “너희들 노가다 좀 해라.” 부탁을 하고 밤늦게 서식지로 돌아 왔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과 모호한 대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밤은 아마 새로 3시30분쯤에야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첫 닭소리와 함께 잠이 깨었습니다. 마을 회관에 가보니 이장님께서 벌써 나와 계십니다. 차에 실려 있던 재료들을 내려놓고 “기상기상!” 학생들의 단꿈을 깨울 적에 마을 회관에선 현철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알려 드립니다. 금일 정오부터 마을 회관에서 독거노인들과...”, “야야 늦었다. 빨리 움직이자.”
고기를 가스 솥에 넣고 양념을 찾아서 넣습니다. “이거 타지 않도록 잘 보라구.” 상추와 오이를 씻고 자르고, 창고에 들어 있던 그릇과 상을 꺼내어 닦습니다. “군대가면 매일 해야 하는 일인데, 미리 연습 좀 해봐.” 동건이와 서연이를 엄청난 그릇더미 사이에 놓고 승운이와 함께 팔당으로 넘어 갑니다. 목암 형수님께서 아욱국 재료를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만 붓고 끓이면 되요.” 돌아오면서 마을 떡집에서 떡을 사고, 숯도 사고 불판과 철망을 닦습니다. “이따가 여기서 소금 뿌려가면서 구워내. 알겠지? 이거 잘하면 노후대책은 문제 없다구... 식당 하나 내.” 집게를 든 승운이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립니다.
마을 회관에 돌아와 보니 몇몇 아주머니들이 먼저 오셔서 식사 준비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 놀라운 손놀림이라니, 역시... 일이 척척 진행됩니다. 하수빈님께서 잡채를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아 오시고, 곧이어 릭과 외로운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깨끗이 닦인 그릇들이 준비된 6개의 상에 올려지고 반찬을 조그만 그릇에 덜어 상을 차립니다. 수빈님도 감기기운으로 힘들어하시고 외로운님의 건강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두 분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주방에서는 저와 수빈님 외로운님께서 돼지 갈비를 커다란 프라이팬에 연신 구워내고 문밖에선 승운이가 땀을 흘려가며 생고기를 굽습니다. 호오 제법 양념이잘 밴 보쌈 고기가 부드러운 갈색으로 상에 놓여집니다. 야채와 맛있는 김치 방금 지은 쌀밥, 아욱국은 조금 짜서 찌개처럼 먹기로 합니다. 여러 종류의 떡들도 상에 오르고 이제 시작을 합니다. 어허? 남자 노인 분들은 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시고 여자 노인 분들이 대청마루를 차지합니다. 흠, 시대는 여성상위시대(?).
여기서는 커다란 그릇에 밥을 푸고 한꺼번에 나누어 먹습니다. 역시 농촌만의 풍경이네요, “아차차 소주, 소주!” 동건이가 나가서 돈 되는 대로 몽땅 소주를 사옵니다. 드디어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손님이 오셨는데요?” 아하 풍경 소리님과 친구 분이 오셨습니다. 곧이어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소진님이 도착을 하여 사진을 찍어 주고 릭도 간간히 사진을 찍습니다. 너무 정다운 정경이라고 합니다.
전화가 옵니다. “관음 3리의 노인 분들이 차량이 없어서...” 릭과 함께 모시러 나가보니 두 분이 아니라 네 분이십니다. 비좁게 타고 와서 식사를 대접합니다. 돌아가실 때엔 고기와 떡을 들려 드렸습니다. 한 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솔바람님이 가족과 함께 오셨습니다. 곧이어 큰곰꼬리님도 오아시스님, 오아시스님의 딸아이와 함께 도착을 하셨구요. “이리 좀 오시오.” 이장님과 마을 어른 들이 주시는 술잔을 받다보니 어이구 벌써 어질 어질 합니다.
“식사만 대접하면 뭘 해 노래 한곡 해야지.” 노인 분들의 요청에 이때 우리의 히든카드 릭을 내세웁니다. “전 세계 순회공연을 하고 돌아온...” 과장된 소개에 연예인 식 과장된 인사를 하고 릭이 기타를 칩니다. 역시 멋진 솜씨입니다. “아 이런 노래는 좋은데 우리 하고는 잘 안 맞네. 춤이 안나오잖아.”, “헤이 릭 빠른 곡 좀... 노인 분들이 춤을 추고 싶으시대...” 흥이 많으신 한 아주머니가 먼저 춤을 추시고 망설이시는 할머님들을 제가 손을 끌어 세웁니다. 잠깐 동안 세상을 잊은 댄스파티가 벌어집니다.
“잘 먹었어요.”, “좋은 일 하셨네요.”, “수고 했어...” 마을 노인들의 인사에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릅니다. 그저 작은 성의인 것을요. 남은 고기와 음식을 바로 곁의 통나무집으로 옮기고 있을 때, 작은 그릇들은 이미 치워지고 있습니다. 역시 재빠른 아주머니들이 솜씨 때문이지요. “제가 하지요! 저 그런 것 잘합니다.” 풍경소리님의 커다란 솥과 냄비를 닦는 솜씨는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의 노인잔치를 마무리 짓고 난 후, 통나무집의 주인이신 홍사장님, 풍경소리님의 일행이신 서경희님, 이의경님, 그리고 의경님의 친구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지석님이 도착을 하셨습니다. 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참석해 주시는 의경님과 지석님께도 따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통나무집을 선뜻 빌려주신 홍사장님께도요.
이때부터 감자탕을 끓이기 위하여 가마솥에 불을 붙였습니다. 승운이가 너무나 수고를 했지만, 역시 풍경소리님의 불 때는 솜씨와 친구 분의 나물 캐는 솜씨가 돋보였습니다. 아아 봄의 향기가 가득한 달래에 숯불 돼지갈비 고기를 싸서 한입 가득 넣는 그 맛! 다들 감탄에 감탄을 하며 바쁘게 일하느라고 부실한 점심을 채웁니다. 여기엔 솔바람님의 부군도 정말 단단히 한 몫을 하셨지요.
개울물 소리가 푸른 들녘을 채우는 통나무집에서 작은 보람으로 뻐근해진 몸을 느끼며 감자탕과 남은 고기로 우리들만의 파티를 합니다. 릭이 기타를 꺼내들고 멋진 솜씨로 노래를 합니다.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웁니다. 타닥타닥 반으로 자른 통나무 속에서 숯이 튀어 오르고 사람사이의정이 부드럽게 피어오릅니다.
곧이어 김치 G.I. 이신 변원사 형님, 지산선생님과 사모님이 직접 빚은 술을 걸러 오시고, 큰곰꼬리님께서 황기 오리와 닭을 준비하셔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야아 이건 진짜 한약이네... 오오 이 술맛! 마음이 듬뿍 들어간 요리로 저 역시 긴장이 풀리며 취해 버렸습니다. 예술은 꼭 그림이나 조각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정말 예술적인 요리가 분명합니다. 개구리 소리가 들에 가득한 오솔길을 걸어 지산 선생의 댁으로 가서 향기로운 차를 대접 받습니다. 흙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찻잔에 담아 마시고 승운이를 제외한 학생들은 수빈님의 차에 타고 돌아갔습니다. 오늘 일이 그들의 인생에 남을 향기로운 사람들의 밤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통나무집으로 돌아가서 몇 잔술을 기울이다,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러셀과 그의 부인 현진님, 레셀의 부친 밥, 외로운님의 레스토랑 가족이 오시는 것을 채 못 기다리고 깊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마 개구리 소리가 유난하다고 느낀 것이 마지막 기억인 것 같습니다. 밤이 마개를 열어 버린 것처럼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일요일 아침 통나무집의 아침은 완전히 밤을 새운 몇 분과 방금 잠이 든 몇 몇 사람들로 몽롱한 분위기입니다. 아침 식사로 완전 진국이 되어버린 감자탕에 밥을 말아 먹고 서식지로 갔습니다. 먼저 말을 목욕시키고 쑥 등의 나물을 캡니다. 복실이를 목욕 시키다가 그만 비누를 묻히고 도망을 치는 바람에 씻기지를 못했습니다. 저녁 까지도 복실이는 제 곁에 얼씬도 안합니다. 아마 비라도 내리면 이제 거품이 부글 부글한 개 한 마리가 서식지 근처를 배회할 것 같습니다. 보시면 복실이로 짐작하시면 맞을 것입니다.
다시 어제 저녁 지산선생님의 댁에 못 들른 분들과 정성스런 차를 대접받고, 늦은 잠에서 깨어난 러셀등과 마무리 정리를 합니다. 점심은 동치미 국수 어때요? 좋지요! 점심을 마치고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우리 서울에서 만납시다. 러셀의 일행만 남고 모두 돌아가신 서식지는 다시 한가로움을 밀려듭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어깨에 받으며 러셀 일행과 승마를 하는데, 동네 꼬맹이들이 몰려옵니다. 함께 말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테라스에서 말을 타러온 동네 꼬맹이들을 모시고(?) 러셀의 생일잔치를 합니다. 동네 꼬맹이들의 조그만 입들이 “생일 축하 합니다아~” 예쁘게도 합창을 합니다. 아이들의 미소가 민들레처럼 서식지 여기저기에 피어납니다. 케이크를 입에 잔뜩 바른 미소 말입니다.
맥주 몇 잔을 기울이다가, 이런! 그만 서식지의 모닥불 자리에서 다시 소주잔이 오고갑니다. 가운데 조그만 무쇠 솥을 걸고 누룽지에 방금 캔 쑥, 계란, 간장 등을 붓고 '누룽지 쑥 김치 계란 스튜‘(즉석 이름) 를 끓입니다. 하아 맛이 제법입니다. 밤이 깊어지고 모닥불의 불꽃은 오렌지색으로 춤을 춥니다. 알루미늄 호일에 감자와 고구마를 구우며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이국인들끼리의 우정이 깊어 갑니다. 저녁 늦게 러셀 일행도 돌아가고 이제 서식지는 다시 개구리들의 왕국입니다.
‘너 외로우냐?’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물론 외롭지. 그래도 견딜 만큼만 외롭네.’ 라고 스스로에게 답을 합니다. 어제 밤에는 음악을 들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피곤하지만 분명히 미소를 지은 채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정성을 기울이고 시간을 나누어 주시는 모든 올바리안 분들께 이 아침 다시 한번 깊이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저 뭐뭐를 하자고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미욱한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더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서 주시는 여러분들의 덕분에 그간 꿈과 별의 캠프, 작은 안나의 집, 은혜의 집, 그리고 독거노인 분들을 위한 잔치까지 순조롭게 진행 되어 왔습니다. 오늘 새벽은 정말 아름다운 꿈으로 깨어났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PS: 이곳은 농협밖에 없어서 조흥은행 통장으로 정성을 모아주신 분들의 성함을 아직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금주 중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를 하는 대로 이 따듯한 분들의 명단도 함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돈 남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