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방장이다. 횟집 주방장
하루종일 가게 안에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서서 일한다.
간혹 주방장이라고 하면 월급도 많이 받고 아주 멋있게 보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서서 일한다.
집에 가면 가끔 허리쪽이 시큰거릴 때도 있다.
그리고 12시간 이상 철창 없는 감옥이다.
한달에 두번 있는 휴일이 아니면 은행에 갔다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이 직업에서 가장 맘에 안드는 것은....
남들이 놀러 다녀야 내가 산다는 것...
사람들이 일 끝나면 모두 착실하게 컴백홈 한다고 보자.
그럼 나같은 놈 굶어 죽는다.
날씨 쥑이는 날은 햇빛 찬란한 거리의 풍경이 내 가슴을 물에 젖은 김처럼 만든다.
매주 일요일 쉬는 사람들은 그 마음 절대 모를거다.
그리고 서비스업의 가장 안좋은 점이 있다.
사람을 못만난다는 것.
밤 10시 넘어서 퇴근하는데 누굴 만난단 말인가?
내가 아는 주방장들 보면 거의 대부분이 홀에서 일하는 아가씨랑 눈이 맞아서 살림차린다.
난 그것도 못하는 놈이다. 우쒸....
그러니 여자 팬티 보고 정신을 잃지..
사실 남들이 말하는대로 내 나이에 비해 월급도 괜찮은 편이고 주방장이기에 누리는 특권도 있고 좋은 점도 많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게 어디 만족을 쉽게 하는가?
그래도 내가 칼을 굳세게 잡고 있는 이유는 있다.
바로 사람들의 만족스런 표정
싱싱하고 넉넉한 회맛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서 나에게 아는체 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웃는 얼굴이 좋다.(서비스 바라며 웃는 거지만)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음식들이 사람들의 입속으로 들어가서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뿌듯하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하다.
12시간 가게에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정말 멋진 매너의 손님들도 있고 "저새끼 회에다 약발러?"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싹아지 회 떠먹은 손님도 있다.
"야! 주방장! 오늘 뭐가 싱싱하냐?"
이렇게 반말하는 손님은 그래도 양반이다.
"얌마! 우리 막 밥먹고 왔는데 소주 한잔 하러 왔다. 회 조그만거 주는데 많이 줘라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조그만거 주문하면서 많이 달라니
광어한테 억지로 물먹이고 불려서 잡아야 하나?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술취한 아줌마들이 젤 무섭다.
그냥~ 무섭다 (아~ 기억나려고 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중에 손님 아닌 손님이 오는 경우도 많다.
손님은 손님인데 회먹으러 오는 손님이 아니라 회를 먹고 있는 손님을 보러 오는 손님이 있다.
껌파는 할머니
아마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위기 조오케 술 먹고 있는데 조글조글하게 주름진 손에 껌 두어통 들고 말없이 내미는 할머니
안사요~ 라고 말하면 아주 나쁜 놈이 되어버릴 것 같은 묘한 분위기
여럿이 있을땐 누가 좀 사라~ 하며 서로 미루는 중에 할머니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게는 제법 큰 횟집이다.
깔끔함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대중음식점인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 피난민 패션의 자그마한 할머니가 손님들 있는 테이블로 이동한다.
한손엔 낡은 비닐봉다리
허리엔 생선가게 아줌마들이 애용하는 돈주머니 착용
몇번 본 적이 있는 할머니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왕성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는 껌파는 할머니.
아마 오늘 저 할머니의 방문이 다섯번째 같다.
전에 올때는 사장이 없어서 할머니 마음대로 홀을 누비다가 가셨는데 오늘은 사장이 카운터에 턱 버티고 앉아있다.
할머니는 영업의 베테랑....
사장의 눈빛이 할머니의 모습을 훑어보더니 나지막히 한마디 하지만 할머니는 갑자기 귀가 어두워진다.
"할머니~ 그냥 가세요."
"........"
"할머니, 여기서 파심 안되요."
"........."
"할머니."
"........."
"하알머어니이~~~!"
"............"
사장이 계속 부르지만 할머니는 홀을 가로질러 손님들이 있는 테이블로 이동한다.
내가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순간 할머니의 발걸음 폭이 상당히 커졌다가 작아진 것 같다.
그걸 축지법이라고 하나?
사장이 계속 불러도 할머니의 무시를 이겨낼 순 없었다.
날 쳐다본다.
"야, 주방장! 니 어떻게 좀 해라."
"뭘요?"
"저런 사람 오면 손님 싫어한다아이가. 니 책임 아이가?"
젠장 꼭 날 시켜야 하나?
아니.... 내가 꼭 직접 해야 하나? 아니다.
난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근엄하며 험악하고 잔인한 표정으로 보조를 째려보았다.
물론 초밥통뚜껑에 오른손을 올려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
"에?"
"음..........!"
"아, 알았어요, 알았어."
호홋 작전 성공
그래도 명색이 주방장인데 껌팔아서 밥먹고 사는 불쌍한 할머니를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내쫒는 일을 내가 직접 할 순 없잖은가?
보조가 투덜거리며 홀로 나간다.
그리고 제법 씩씩하게 큰 소리로 말한다.
"할머니, 여기서 파시면 안돼요. 딴데 가세요."
"........."
할머니는 녀석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 나가시라니깐요."
보조녀석이 계속 모른체하는 할머니가 미워지기 시작하는지 하는 수 없이 할머니의 봉다리 쥔 손을 살며시 잡아 끌었다.
순간!
휘이익~ 퍽!
할머니의 봉다리 든 반대쪽 손이 큰 원을 그리며 밑에서 위로 올려지더니 보조녀석의 머리에서 강하게 멈추었다.
"아! 이씨~~~"
제법 아픈 모양인지 잡았던 할머니의 손을 놓고 머리를 비비며 뒤로 물러서는 보조
자세히 보니 할머니의 손에 큼지막한 파란색 옥반지가 끼워져 있다.
보조녀석이 화가 났는지 할머니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소리를 지른다.
"이 할머니가, 왜 때려요?"
"나 당뇨있어."
"그래서요?"
"나 끔 팔아야 도ㅑ"
"글쎄, 안된다니깐요. 손님들이 싫어한단 말예요."
"금방 나갈껴어."
"아 글쎄 안돼요. 딴데 가주세요 네에?"
"넌 애미도 음냐?"
"어이구~~~"
할머니는 다시 천천히 손님들 쪽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개김대왕 보조도 약이 오르는지 할머니의 앞길을 계속 막았다.
왼쪽 오른쪽 자알 막더니.....
할머니가 한손으로 녀석을 투욱 밀친다.
철퍽!
보조가 뒤로 넘어졌다.
뒤로 조금 밀리더니 옆의 의자에 걸리면서 힘없이 넘어졌다.
그러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직원들을 쭈욱 둘러본다.
"에이씨~ 나도 몰라!"
녀석은 포기했다.
하긴 뭘 어쩌겠는가? 매맞고 넘어졌지만 상대는 껌을 조금 비싸게 파는 작은 할머닌데
근데 좀 이상하다.
내 보조는 덩치가 좋다.
나하고 맞장뜨면 내가 조금 불리할 정도다
나한테 가끔 맞으면서도 대들지 않는 것은 녀석의 근본이 착하기 때문이지 절대 약해서가 아니다.
그런 녀석이 고사리같은 손에 밀려 넘너지다니...
검림돌이 제거되자 할머니의 왕성하고도 집요한 영업활동이 전개되었다.
젤 가까이 있는 테이블로 가더니 손을 앞으로 천천히 내밀어 정확히 회접시 위에서 멈춘다.
젊은 여자손님이 잽싸게 천원짜리를 건네며 껌을 한통 집는다.
할머니는 영업의 베테랑. 인사를 잊지 않는다.
"아이구~ 섹시 참 예쁘네. 많이 들고 가우~"
꼭 우리 사장의 엄마라도 되는 듯 가게 안을 누비기 시작하는 할머니
내가 숫자를 세고 있었는데 5분만에 11통을 팔았다.
그것도 손님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판다.
껌 내밀면 다들 알아서 지갑 연다.
그냥 그렇게 팔다가 가겠지... 빨리 가세요.... 하며 조용히 지켜보는데 일이 생겼다.
다음 테이블에서 할머니가 껌을 내미는데 아무도 사지 않는 것이다.
남자손님 두분에 여자손님 한분
전부 40대로 보이는 손님들이다
아줌마 손님은 내숭이란 이건거야~ 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중
약 5초쯤 흘렀을까?
할머니가 껌을 다시 검은 봉다리에 집어 넣었다.
오호, 저 할머니가 포기?
이런 생가을 하는데 껌을 집어 넣었던 할머니의 손에 다른 물건이 들려나온다.
노란색 조그만 비닐팩처럼 생겼다. 겔포스였다.
역시 베테랑...
소비자에게 직접 필요성을 호소하기 위한 앞선 전략
술먹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물건을 보여줌으로서 소비욕구를 일으키고 소비자로 하여금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다는 확신을 줌으로서 2차적인 만족감까지 제공하는 할머니
남자 손님이 지갑을 연다.
"두개 주시죠."
할머니는 말없이 검은 봉다리에서 하나를 더 꺼내 손님께 건낸다.
남자손님은 이천원을 할머니께 건낸다.
근데 할머니의 표정이 약간 굳어질뿐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아 할머니, 돈 안받아요?"
"사천원인디....."
"에? 뭐요? 사천원?"
".........."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다.
"안사요, 가지고 가쇼."
나라도 안산다.
겔포스 한갑에 4개 든것도 2천원 조금 넘는데 겨우 달랑 두개에 사천원을 달라니...
할머니의 영업전략중 가격책정에 있어서 다소 무리가 있어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 법
"어이, 사장 이리 좀 와보쇼!"
카운터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할머니를 주시하던 사장이 바로 뛰어간다.
"네, 손님."
"이거 여기 이런 잡상인 막 들어옵니까?"
"아, 아닙니다."
"근데 이게 뭡니까. 술맛 떨어지게.... 사장님을 위해서 하는 얘긴데 이런 잡상인 자꾸 들어오면 손님 떨어져요."
"네, 죄송합니다. 할머니 이리 쪼매 오소."
사장이 손님 테이블에 놓은 겔포스 두개를 집으며 할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근데 할머니의 반응이 터프하다.
사장이 손을 세게 잡지 않아서인지 할머니의 뿌리치는 힘이 너무 세기 때문이었는지 사장의 손에서 쉽게 빠져나온 할머니의 옷소매가 테이블 위의 소주병 주둥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슬담았다고 주장하는 소주병이 탁 쓰러지며 구른다.
소주를 실컷 쏟아내더니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어~"
내 입에서 나는 소리다
"......."
할머니는 말이 없다.
그저 빈손을 쫙 펴고는 회접시 위에서 멈출 뿐이다.
"사천원이여~"
일이 이렇게 되면 사장은 성격상 정상인이 아니게 된다.
"이 할마이가 미쳤능교?"
손님들은 깨진 소주병을 몇번 바라보더니 사장만 쳐다본다.
사장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졌지만 그래도 손님 앞이기 때문인지 상대가 할머니이기 때문인지 다시 조용히 말한다.
"이리 오소, 내 그거 다 사 줄테니까"
하지만 할머니도 오기가 있는가보다. 안움직인다.
"사천원이여~"
사장이 주머니에서 오천원짜리를 꺼내 할머니 손에 신경질적으로 쥐어 주었다.
그리고 아주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빨리 가소 마! 다신 오지마소!"
목적을 달성한 할머니...
허리에 찬 주머니의 지퍼를 아주 쪼금 열더니 오천원짜리 지폐를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른 지퍼를 열어 천원짜리를 한장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놓는다.
"우와 저 할머니 계산 정확하네~"
내 보조. 눈치 없는 보조
한마디 했는데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 만다.
"야! 니 할일 없나? 수족관 청소 좀 해라! 내 이따 확인 할 끼라 마!"
가끔씩 고생을 사서 하는 보조..... 뭐라 할 말이 없다.
근데 여기서 할머니가 조용히 영업활동을 마치고 나가면 좋은데 그럴 생각이 아닌가보다.
다른 테이블로 이동한다.
사장 열받았다.
이번엔 아예 할머니 앞을 턱 막아서며 큰 소리로 말한다.
"할머이! 제발 가소. 제발 딴데 가소마!"
사장의 덩치가 커서 그런지 할머니 쉽게 지나가질 못한다.
사장이 할머니의 어깨를 슬쩍 밀며 현관쪽으로 몸을 밀려 하자 할머니가 발끈했다.
"아 금방 간다니께~"
할머니의 고사리같은 손이 사장의 가슴을 밀었다.
일이 크게 터졌다.
사장이 뒤로 밀리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옆의 테이블 모서리를 잡았는데 그만 테이블까지 1미터 정도 끌려가면서 그 옆손님의 의자를 친 것이다.
사장은 얼른 중심을 잡으며 그 손님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몇번이나 하더니 할머니 쪽으로 몸을 날렸다.
옛날에 한가닥 했다던 우리 사장.
난 순간적으로 저 양반이 설마 할머니한테~ 라는 생각을 하며 걱정하는 찰나!
비호처럼 할머니 옆을 스치며 할머니의 뒤에서 멈추는 사장의 손에 검은 봉다리가 들려있다.
눈이 커진 할머니
잽싸게 봉다리를 회수하기 위한 동작을 취했지만 사장은 이미 현관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쫒아가는 할머니....
우리 사장 밑에서 일한지 일년이 거의 다 되어가지만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첨 본다.
한손으로 현관문을 밀치며 방금 탈취한 할머니의 장사밑천을 밖으로 휙 던져버린다.
아주 맑은 날씨.....
봄이라고 하기엔 햇볕에게 미안한 날씨.... 봉다리가 날아간다.
검은색 구겨진 봉다리가 쭈욱 펴지며 길 건너 슈퍼 앞까지 날아간다.
발을 멈춘 할머니....
조용하다... 불안하다......
우리사장은........ 씩씩거리고 있느데 웃고 있는 것인지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간다.
할머니는 무언가 조금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아까 겔포스 넘긴 테일블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거스름돈으로 내놓았던 천원짜리를 잽싸게 집더니 허리에 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서 가게를 나가버렸다.
떠나는 할머니를 보니 봉다리가 날아간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 듯 했다.
아마 그 봉다리에 든 물건이 오천원어치 가까이 되는가보다.
난 씩씩거리는 사장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고 보조는 또 멋있게 한마디 한다.
"저, 사장님.... 수족관 청소 안해도 되겠는데요... 깨끗한데요...."
저자식... 너무 착해서 좀 맞아야 한다.
오늘은 사장이 대신 해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