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방장이다. 횟집 주방장
매일 칼춤 춘다. 아주 자알~~~
내 나이 이제 겨우 서른
서른살짜리가 그것도 겨우 11년의 경력으로 주방장을 하기엔 우리 가게는 넘 크다.
1층과 2층을 합하면 테이블의 수만 50개가 넘는다.
한번에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게다.
그리고 우리가게는 유난히도 포장손님이 많다.
포장으로만 직원들의 인건비가 빠질 정도다.
그런 큰 가게는 보통 주방장의 나이가 40대 이상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나처럼 젊은 주방장이 있는 가게도 많다.
로바다야끼라든가 신세대식 일식주점이라든가 기타 등등....
주로 젊은층의 손님을 대상으로 한 가게는 거기에 맞게 주방장도 젊고 잘생긴 사람이 많다.
나도 그런 젊은 분위기의 가게에서 일 많이 해봤다.
그때 인기 많았다.
서울에서 로바다야끼 주방장으로 있을때 특히 그랬다.
여대생들이 많이 오는 가게였는데 명문대 근처라서 그런지 과외해서 번 돈이 많이 있는 관계로 자주 와서 비싼 안주에 비싼 술 많이 먹고 갔다.
그런 손님들한테 어찌 주방장의 서비스가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이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겟을 복잡하게 정하지 않는다.
얼굴, 그리고 몸매....
이 두가지가 절대 진리가 되고 만다.
헛!~~ 또 성희롱이니 뭐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건 분명 일기장인데~~~
똑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디스플레이를 하고 데코레이션을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하늘과 땅이 된다.
유치원생과 유명한 화가가 똑같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봐라.
어디 똑같은가...
그렇게 간단하고도 화려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가게문 닫을때까지 붙잡은 다음 퇴근 후 같이 2차를....
어허~ 이거 또 얘기가 딴데로 센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혁명!
우리 가게에 혁명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큰 가게의 주방장으로서 새로운 집권체제를 발동하게 된 것이다.
집권체제라.....
보통 일식집이나 횟집은 사장보다 주방장의 말 한마디가 더 절대적이다.
그래야 가게가 잘 돌아간다.
원래 내가 우리가게에 첨 왔을 때는 나보다 나이도 훨씬 더 많고 경력도 더 오래되어 보이는 주방장이 있었다.
그리고 어린 보조고 있었고 불쇼를 담당하는 안주방에도 두명의 전문가가 있었다.
그 두명의 전문가는 사장의 친척이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오로시였다.
오로시....
자꾸 일본말이 나온다.
굳이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된다고 본다.(내생각)
'분리하기'
살아있는 생선을 신경이 죽기 전에 피를 제거하고 깨끗하고 하얀 살만을 뼈 없이 발라내는 작업
이 과정을 오로시라고 부른다.
칼날이 뼈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살속으로 파고 들어도 안된다.
뼈와 살 사이를 적당한 힘과 각도로 접근하여 깨끗하게 분리해야 한다.
미끄러운 생선살이지만 너무 세게 잡으면 잡은 부위의 육질이 망가지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미끄러진다.
내가 이 가게에 첨 와서 맡은 분야는 바로 이러한 과정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보조가 뜰채를 들고 수족관으로 뛰어가서 생선을 건져온다.
보조가 생선을 가져와서 능숙한 솜씨로 생선의 머리를 몸통과 분리한다.
머리와 몸통사이를 잘 조준해야 한다.
잘못하면 일이 성가셔진다.
몸통쪽으로 찍으면 살의 손실이 커지고 머리쪽으로 찍으면 체내의 피가 다 빠지지 않아 살에 피가 묻는다.
이젠 내 차례
부들부들 떨며 피를 쏟는 생선을 칼판에 눕히고 몇초만에 살을 떠낸다.
뼈 사이에 존재하는 핏줄을 건들면 안된다.
살에 피 묻는다.
껍질을 벗기고 물기를 제거한 깨끗한 생선살을 앞쪽에 있는 주방장에게 넘겨주는 것까지가 나의 작업이었다.
내가 넘겨준 생선살을 무섭게 예리한 사시미칼로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내주는 사람이 주방장이었다.
바로 내 직속상관... 김실장님이라고 불렀다.
나이는 40대 후반
인상도 부드럽게 생겼고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런데 어째서 내가 혁명을 일으키고 그 자리를 빼앗게 되었는가?
내가 빼앗은 거 아니다.
그가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는 중독자였다.
술? 아니다.
차라리 그런 문제라면 옛날 내 사부생각 하면서 이해라도 할텐데......
내가 근무를 시작한지 한 두달쯤 지나기 시작하자 주방장은 나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기 시작했다.
어떤 횟집이든지 그 가게만의 회뜨는 방식이 있게 마련인데 난 우리가게의 방식을 완전히 소화하는데 두달이 걸렸다.
내가 회를 뜨기 시작하자 주방장은 나에게 하루 손님 중 절반 이상을 나에게 떠 넘겼다.
그때부터 난 무척 바빠지기 시작했다.
세명이 하던 일을 두명이 하게 되니 당연히 바쁠수밖에...
아직 보조는 오로시도 못하는 단계..
내가 전부 하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난 내 연습량이 많으니 그만큼 속도가 빠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방장의 출근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침 10시 전에는 모두 나와서 일들을 하는데 주방장은 12시가 다 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상관이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출근해서 혼자 밥을 먹고는 몸이 좋지 않다며 창고에 짱박혀서 낮잠을 잤다.
평소에는 세시간 정도 자다 나오더니 어떤 날은 오후 7시에 나오기도 했다.
12시에 출근해서 밥먹고 6시간 낮잠자고 두시간 일하고 퇴근.....
무슨 대기업 회장님도 아니고 ....
난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 두달뜸 진행되고 있을때 사장이 날 조용히 불렀다.
"정군아.... 니 요즘 힘들제?"
".........."
"내 다 안다. 저사람 김씨.... 일 안하제?"
"조금......요."
"괘안타. 내 다 안다. 오래전부터 일에 관심이 엄는가부다."
"몸이 좀 안좋다고 하시던데요."
"니는 잘 모르제? 김씨 저사람이 저리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무슨 이유 말입니까?"
"뭐.... 그거는 나중에 얘기하고 이 상태로는 나도 힘들데이....... 내가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이고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이고 내는 더 이상 못보겠다."
"........."
"니는 그렇게만 알고 있그라. 내 다 알아서 할테니."
김실장님은 근무태만 말고도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대장으로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무 불평 없이 내가 묵묵히 일을 다 해서 그런지 내 말을 더 잘 듣기 시작했다.
특히 보조녀석은 주방장의 말을 거의 무시하고 있었다.
"야. 우럭 두마리 더 건져와라."
"그거면 충분한데요."
"가져오라면 가져와."
"지금 뭐 하고 있잖습니까?"
"너 이 새끼...."
"어따대고 욕합니까?"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를 가진 두사람 사이에서 많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내가 뭐 시키면 말없이 잘 따랐다.
안주방의 직원들도 내가 시키는 일만 할 뿐 아직은 최고대장인 주방장의 명령은 아예 무시하였고 심할때는 거세게 반박하며 쓸데없는 일을 시킨다는 식의 항변도 많이 발생했다.
하긴 지금 생각해봐도 주방장에겐 많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잘 씻지 않는 듯 했다.
출근해서 보면 뒷머리에 헬기가 창륙했었던 자국이 있다.
머리를 안감고 나오는 주방장......
어떨때는 눈가에 웃을때 보이는 자국처럼 땟자국이 보일때도 있다.
세수도 안하고 점심때 출근하는 나의 상관....... 미친다. 미쳐
손님이 그 모습을 보고 무슨 회맛이 나겠는가?
사장이 그 불같은 성격에 참으로 오랫동안 봐준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사장하고는 같은 고향사람이라고 한다.
사장이 이곳에 횟집을 차린다고 하자 친한 친구가 능력있는 사람이라며 소개해준 사람이였단다.
그래서 맘에 안들어도 뭐라 말도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다.
주방에는 라면 박스크기만한 네모난 깡통이 몇개 있다.
일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잠시 앉아서 다리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내가 갖다 놓은 것이다.
주방장 것도 하나 갖다 놓았는데 거기 앉기만 하면 졸았다.
한참 바쁜 시간대에 그것도 홀에 손님이 가득한데 주방장이라는 사람이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누가 존경하고 따르겠는가?
그러다 사장이 볼까봐 내가 살짝 흔들어서 깨운적도 많았다.
어쨌든 미우나 고우나 상관은 상관이므로 반항 한 번 안하고 따라주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고 있는데....
사장이 날 불러서 뉘앙스를 풍겼다.
저사람 잘린다......
그리고 내가 다음 주방장이 된다.
이미 주방장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는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때 엄청 갈등했다.
이 사실을 주방장에게 알려서 정신차리게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모른척 하고 있다가 주방장 자리를 차지하고 월급도 올려받고 그래야 하나..
결국 난 후자를 선택했다.
내가 후자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하루는 일 끝난 후 손님이 권해서 억지로 마신 술을 깨기 위해 근처 겜방에 갔었다.
이것 저것 머리 굴리는 겜 조금 하면 술이 깨곤 한다.
근데 거기서 우리 주방장을 보았다.
몸이 아프다며 조금 일찍 들어간다고 저녁 9시쯤 퇴근했는데 지금 내 건너 줄에 앉아서 묘한 자세로 입에 담배 물고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다.
살금 가서 모니터를 보니 온라인 겜을 하고 있었다.
재떨이엔 더이상 꽁초를 박을 공간조차 없어 보이고 옆의 종이컵엔 침을 반절이나 채워놓았다.
우리 주방장은 겜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장이 나중에 말해 준 것인데 일찍 나가는 것을 몰래 따라가 보았더니 겜방에 가더란다.
그래서 그 겜방에 나중에 다시 가서 물어보니 매일 오는 단골이고 회원카드도 있다고 하더란다.
사정해서 이용한 기록을 보니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아침 8시까지 겜을 하더란다.
난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이해가 갔다.
그렇게 겜을 많이 하니 낮에 졸릴수 밖에....
더군다나 나이도 적지 않은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는가?
사장은 주방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혼자 고민 많이 했단다.
그리고 경력도 겨우 5년.....
난 모든 사실을 알고 너무 기가 막혔다.
내가 가끔 일본말로 된 요리이름을 대면 그냥 씨익 웃기만 하고 아무 말 하지 않던 이유도 해명이 된다.
그리고 일주일 후 대장이 해고되었다.
그날도 변함 없이 눈이 충열된 체 지저분한 모습으로 가게에 나오는데 사장이 쉽게 얘기했다.
"어이, 김씨. 뭐할라꼬 나오노? 내가 봉이가? 나가라 당장!"
대장이 멀뚱한 눈으로 들어오다 말고 서있자 사장이 쐐기를 박았다.
"여기 당신 그동안 일한거 다 있다. 뭐 일도 안했지만 날짜 꼬박 챙겨서 넣었으니까 빨리 들고 가라."
사장이 카운터 서랍을 열더니 하얀 봉투를 꺼냈다.
그날 주방장이 바뀌는 공식 선언이 있었다.
주방장이 하얀 봉투를 받고 나가자 바로 사장이 전 직원을 모아세웠다.
"이제부터 여기 정군이 실장이다."
다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전부 정실장 말 잘 듣고 지시 잘 따라라. 어이 정실장."
"네에...."
"너무 갑작스레 말해서 미안타. 하지만 잘 하리라 본다. 손님들도 널 더 기억하드라."
".........."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왜 이리도 미안한 마음이 들까....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한번 따버린 생선의 목은 다시 붙일 수 없다.
난 가게의 모든 체제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안주방에서 일하던 두명의 직원을 교체했다.
사장의 친척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명령이 잘 통하지 않았고 음식솜씨가 없었다.
홀에서 일하던 나이 많은 아줌마도 내보냈다.
대신 젊지는 않지만 젊어보이는 직원을 채용했다.
그대로 남은 직원은 내 보조뿐......
내 마음대로 직원을 교체하는 대신 사장에게 내세운 조건은 인원감축..
8명이던 직원을 6명으로 줄였다.
사장은 아무 말 없이 내 의견대로 따라주었다.
주방장이 교체되고 보름정도 지나자 가게는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고 음식도 달라졌다.
그리고 손님도 많이 바뀌었다.
그때보다 나아졌다는 확신은 없다.
그냥 달라진 것이라 본다.
가끔 핸드폰의 연락처를 쭈욱 확인해 볼때가 있다.
김실장님의 연락처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마 나가면서 날 많이 원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사장에게 조금 다르게 말하고 아주 조금만 노력했다면 그사람은 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 더 많은 연봉과 더 나은 자리에 대한 욕심이 컸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던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겨우 겜이라니....
겨우 겜때문에 자신의 직장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책임을 그렇게 저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뭐하고 있을라나...... 그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