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아무튼 하나에서 열까지 다 마음에 안들어.세상에서 사람 싫어하는게 제일 나쁜 짓인지 알지만 그래도 완전 잘난척 대마왕 재수 인간은 싫어 정말 싫어.
이혜숙: 누가
김미경: 엄마야.
이혜숙: 된장찌개을 만드는게 아니라 니 침으로 된장국으로 변형시키는것 아니야. 뭘그리 혼자서 궁시렁거리냐.
김미경; 몰라. 그 인간만 보면 아주 열받아서 죽을 것 같아.
이혜숙: 그 사장.. 오늘은 왜 왔다냐.
김미경: 거기 있는 파좀 줘봐. 두부가 냉장고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혜숙아 한번 봐주라.
이혜숙: 된장찌개에는 두부가 와따지. 하라이트잖아.
혜숙이 냉장고 문을 열때 미경은 한쪽 옆에서 멸치조림을 하느라 분주했다.
김미경: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내 인생은 맨날 왜이리 꼬이기만하는지.
이혜숙: 두부 조금 있다. 우리 점보러 갈래. 기가막히게 잘 보는 점집이 있는데.. 내가 아는 동생이 거기를 물어물어 찾아가서 봤는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잘 맞추는 집이래.
김미경: 거기는 뭐하러가냐.
이혜숙: 글쎄 그 동생한테 두명의 남자가 붙었어. 둘다 지 마음에 드는데 선택을 못하겠다는거야. 그래서 어느 남자가 속궁합이 좋은지 그거 물으러 갔어. 솔직히 결혼 생활에 속궁합이 중요하잖아.
김미경: 그런것도 가르쳐주나. 마음가는대로 가면되지
이혜숙: 얘가 또 모르는 소리하네. 둘다 조건도 좋고, 매너 짱에 얼굴짱에... 게다가 성격도 좋아요. 그럼 고민 안되겠냐.
김미경: 점 같은 소리하지 말고, 니 얼굴에 있는 점이나 빼셔.
이혜숙: 내 얼굴에 점이 어디있다고... 이건 주근깨야,
김미경: 웃기지마. 기미야.
이혜숙: 야 내가 기미는 어디에 있냐. 주근깨라니까? 체육선생이 주근깨도 없으면 그건 완벽한 과학의 승리라고 본다.
김미경: 기미야. 우기지마. 눈밑에 기미봐라.
이혜숙: 야 너..나 삐졌어. 니 집에서 밥 안먹어.
김미경: 먹지마. 일인분밖에 안했거데... 잘됐어.
이혜숙: 치사하다. 진짜 왕 치사.
그날 혜숙은 밥통에 있는 남은 밥은 다 먹고 갔다. 그리고 어찌나 점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는지..귀가 멍할 정도였다. 그리고 솔직히 혜숙의 말에 호기심정도는 가는게 사실이었다. 한번쯤.. 기회가 된다면.. 가고 싶었다.
다음날 미경은 출근 준비로 마음이 바빴다. 어떤 옷을 입고 첫출근해야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까? 옷장에 웃을 전부다 꺼내여보아도 썩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김미경: 입을 만한 옷이 하나도 없네. 남대문이라도 갈걸.
미경은 뒤늦은 후회가 밀러왔다.
김미경: 후회해도 할 수 없지뭐. 하긴 옷걸이가 명품이니까? 뭘 입어도 명품이지.
그런 마음으로 미경은 청바지에 하늘거리는 소재의 흰색 원피스를 입었다.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싣고 핸드백까지.. 완벽해 보였다. 아니 완벽했다 마음은...
사람들로 가득찬 버스안에서 서있기조차 힘든 상황이라도 미경은 행복했다. 아침에 다른 사람들처럼 출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자신의 힘으로 일을하면서 돈을 벌수 있다는 거서에 너무나 감사했다. 매일 어디로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런 풍경을 볼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있어 너무나 기뻤다.
아빠, 엄마 저 지금 보고 있어요. 아빠가 늘 아침마다 일하던 곳으로 저도 일하러가고 있어요. 아빠 이름에 자랑스러운 딸이 될께요.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딸이 될게요. 지켜봐주세요.
미경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했다. 내일 미경의 부모님잉 돌아가신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미경은 회사앞에 당당하게 서서 높게 뻗은 건물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서재준: 건물 안무너져
헉~~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김미경: 반갑다는 인사도 아님 안녕이라는 단어는 혹시 아세요. 아님 인사법도 모르는 그런 싸가지 없는 사람은 아니겠죠.
서재준: 출근할 줄 알았어.
김미경: 회사에서는 아는척 안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침부터 사장님 얼굴 보는게 좀 거북하거든요.
서재준: 그쪽도 아침에 볼 얼굴은 아니지. 집에 거울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
사람 어이없게 기분 팍상하게 만들어 놓고 그냥 또 갔다. 아직 못다한 말도 많은데..정말 이런 말 하고 싶었는데..
김미경: 세상에서 제일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침에 보면 안될 인간중에서 베스트 1위에 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구.
최지영: 혼자서 말하는 버릇도 있어.
깜짝이야... 언제 와 있었는지 지영이 옆에 서 있었다. 베스트 2위다.
김미경: 놀랬잖아.
최지영: 니가 여기는 왜 있어.
김미경: 이 회사 직원이니까 있지.
최지영: 너 면접에서 떨어진거 아니였어.
김미경;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최지영: 몰랐니? 우리 아빠가 이 회사 주식 40%나 갖고 있는 대표라는 걸.. 그래서 재준오빠가 아빠 대신으로 그 자리에 있는거야. 아빠가 좀 다른 일로 요즘에 바빠서말이야.
김미경: 그래
최지영: 몰랐는가봐. 난 그런 사실도 알면서 여기에 면접보러 온줄 알았지. 그래서 내가 힘좀썼어.
지영의 충격적인 말에 미경은 온몸의 세포세포 하나나가 다 일어서는 것 같았다.
김미경: 뭐 지금은 상관없어. 지금은 난 너랑 잘 지내고 싶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넌 너무 명품에 대한 예의가 없어. 니가 코디하는건 아니지. 돈도 있는데 니 밑에 코디하나 써라.
최지영: 뭐 너 지금 말 다했어.
김미경: 난 너랑 잘 지내보고 싶어 지영아.
자존심 때문에 지영이 앞에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미경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뭐때문에 이렇게 화가나고 마음이 아픈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 회사가 이제 지영의 회사가 되었다는것에 화가 나는건지 서재준 그 남자때문에 열받은건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상대도 안해주던 지영이 이젠 대표주주의 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부모님 다음으로 아끼는 이 회사가 이젠 지영의 소유주가 되어 있었다.
미경은 자신의 사무실로 가지 않았다. 대신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영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현실은 항상 이런거였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항상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미경은 눈물이 났다. 예전에 다 버린 줄 알았는데.. 허영심. 자존심. 이기심.거만함까지.... 다 버린줄 알았는데 아직도 멀었다. 아직도 더 버려야할거야. 그래야 이 세상 살아갈 수 있으니까?
서재준: 일할 시간에 여기서 뭐하나
너는 여기서 뭐하냐라고 건방지게 말하고 싶었다.
김미경: 한가지만 묻죠. 지영이 싫어했을건데 왜 날 기획팀으로 넣은거죠.
서재준: 난 사적인 감정으로 일하지 않아. 난 미경씨의 능력을 보고 뽑은거야. 만약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바로 해고야.
김미경: 믿어도 되나요.
서재준: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군.
미경은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믿고 싶었다. 다 알면서 지영과 나의 관계를 다 알면서 그저 날 골탕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보고 뽑은거라고 믿고 싶었다.
김미경: 뜬구름 없는 얘기지만 제가 얘기하나 해볼까요.
서재준: 마음대로..
김미경: 잘 들으세요.
김미경: 옛날 아주 옛날에 아주 큰 성이 있었어요. 그 성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소녀만 살고 있었어요. 왜냐면 그 성은 얼음으로 만들어져서 아주 추운 곳이라서 사람들은 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그 성에는 얼음소녀만 살고 있었어요. 얼음소녀는 심장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어요.
서재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가?
김미경: 끝까지 들어봐요. 그 소녀는 하루 종일 사람들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늘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어요. 사람들을 늘 바라보면서도 소녀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그 성안에만 있어요. 모든게 자기 마음 먹은대로 다 이루어지는 성이거든요. 얼음소녀는 그 성안에서 나름대로 생활을 잘 했어요. 그걸 행복하다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얼음소녀는 성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가끔 성안에 사람들이 들어오고는 했지만 얼마가지 못해 성을 떠났어요.
서재준: 왜? 얼음소녀가 협박이라도 했나.
김미경: 한마디만 더 하면 저 얘기 안해요. 아무튼 사람들은 성이 너무 추워서 그리고 얼음소녀의 차가운 마음을 견딜 수 없어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그 성을 떠날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어느날 한 소년이 들어와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뀌어 놓았어요. 그 얼음소녀은 그 소년가 무서웠어요. 소년은 우선 성안에 있는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바꾸어 놓았어요. 그리고 심지어 얼음소녀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려고 했어요. 얼음소녀는 자신의 성을 파괴하고 자신까지 성안에서 데리고 나갈려고 하는 소년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얼음소녀는 소년을 차가운 방에 영원히 나가지 못하게 할 계획을 세웠어요. 그 방에 들어가게 되면 소년는 어쩜 죽을지도 몰라요. 그걸 얼음소녀는 알고 있으면서도 소년을 그 방에 가둘 생각을해요. 그리고 소년는 그걸 다 알면서도 얼음소녀의 손을 놓지 않고 따라가고 있어요. 심장이 없기에 얼음소녀는 소년의 마음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서재준: 무서운 여자걸.
김미경: 소녀라니까요?
서재준: 소녀는 여자아니야
김미경: 자꾸 딴지걸래요. 끝까지 귀담아 들어요. 얼음 소녀를 따라 그 방에 들어간 소년는 슬픈 눈으로 얼음 소녀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뛰는 심장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그저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바라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차가운 방의 기운때문에 서서히 소년는 죽어갔어요. 손으로 전해져오는 그 소년의 심장의 기운이 서서히 차가운 얼음소녀의 몸속으로 들어와 조금씩 조금씩 심장이 없던 소녀의 심장이 뛰고 있었어요. 소녀는 그 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면 죽어가는 소년을 겁에 질린 얼굴로 바라보았어요. 소년은 죽어가면서도 소녀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행복해했어요. 결국 그 소년는 죽었지만 그 소년의 사랑으로 소녀는 사람이 됐어요. 그리고 그 성을 떠나 소녀는 소년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면 살았어요.
서재준: 결말이 왜그래.
김미경: 마음에 안드는 얘기였어요.
서재준: 가시가 있는 얘기 같은데.. 얼음소녀는 누굴 말하는거야. 나인가?
김미경: 사장님이 얼음소녀라면 난 결코 내 심장을 주지 않을거에요.
서재준: 내가 심장이 없다고 생각해.
미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높은 빌딩에서 보이는 광경에 시선을 두었다. 그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이 남자한테 이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옛날에 그 얼음소녀가 자신이었고, 그 얼음소녀를 많이 닮은 사람이 이 남자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재준: 잘 들었어. 그만 내려가지
김미경: 한가지 더 묻고 싶은게 있어요. 최지영이와 어떤 사이죠.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결혼할 사이.
서재준: 내가 대답할 이유를 모르겠군.
김미경: 이 바닥을 좀 안다고 생각해요. 아마 지영이와 결혼하면 얻는게 많을거에요. 이 바닥은 결혼을 다 그렇게 하니까? 동화같은 아름다운 결혼은 없어요. 필요에 의한 결혼만 있지... 사랑은 없어요.
서재준: 왜 그런 말을하지.
김미경: 나도 모르겠어요. 더 이상 사장님과 우연이라도 연결되고 싶지 않아요. 날 무슨 이유로 옆에 두는지 모르지만 아니 알고 싶지 않지만 더이상은 싫어요. 감정적으로 누굴 미워하고 싶지 않아요. 편안하게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서재준: 그게 김미경씨가 원하는 삶인가?
김미경: 한번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어요. 그건 현실과 다르니까? 부모님과 같이 있는 내 인생을 원했지만 부모님은 내 곁에 없어요. 예전처럼 살고 싶지만 지금은 옥탑방에 가난하게 살고 있어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해요. 내가 원하는 삶요.그건 배부른 소리에요.
미경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도망치듯 그렇게 내려왔다. 비상 계단에서 미경은 감정을 추스리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는 기획실로 갔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