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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여고생 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콘크리트' 그 사건..

ㅡ0ㅡ |2006.11.01 10:26
조회 19,660 |추천 0

 

출처는 블로그 > 히키코모리의 방 

저는 이 사건을 우연히 볼만한 비디오를 찾다 어제 알게되었는데요. 89년도.. 제가 4살때 있었던 일이라

이제서야 알게되었네요. 이 사건을 아시는분도 있으시겠지만 내 나이또래나 더 어린친구들은

모를꺼같아 올려봅니다. 어제본후 내내 이사건의 충격이 가시질 않네요.

 

 

17세의 여고생을 40일에 걸쳐 감금한 후,

여러명으로부터의 강간, 때리고 차는 등의 폭행,

라이터의 기름을 묻혀 점화하는 등 격렬하고 집요한

폭력을 가해 사체를 콘크리트에 채워 유기한 사건.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이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후 정신과 통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소년들은 본건의 여고생에 대한 범행 외 2 여성에 대한 부녀 폭행, 후배의 린치, 총액 약 220만엔에 달하는 점포 털기나 소매치기에서도 기소.

덧붙여 주범 A 이외는 이미 출소하여 있다.

 

 

 

이 사건을 충실히 재현한 비디오가 있어, WinMX로 검색하면 입수가능.

화질은 나쁘지만 잘 되어 있다.

 

소년

범행시 연령

학력

범죄이력

가정

A

18

고교 중퇴

상해(심판 불개시)
모교의 중학교 건축물 침입(보호관찰)

맞벌이

B

17

고교 중퇴

방치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님(심판 불개시)

부모님 별거

C

17

고교 중퇴

없음

맞벌이

D

16

고교 중퇴

가출(보호관찰)
나이프소지, 폭력행위, 모교에 투석(불처분)

이혼(부친 사망)

 

구형

1심

2심

A

무기징역

징역 17년

징역 20년

B

징역 13년

징역 5~10년

1심대로

C

징역 5~10년

징역 4~6년

징역 5~9년

D

징역 5~10년

징역 3~4년

징역 5~7년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 하여 공소, 공소심으로 형량이 무거워져 확정(91/7/12일 판결)

 

 

 

사건의 경과

 

평성원년 3월 29일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원년 11월 8일에 강간,절도 등에 의해 소년감별소로 보내진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의 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고 한 말에 다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

담당관은 당초의 목적인 여죄의 절도에 관한 조서를 받는 일 없이, 반신반의인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구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 개만 널려있었다.
드럼통에 채울 수 있었던 콘크리트의 틈새로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돌아갔다.

   





해변공원 정비공장현장 공터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 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가 있었다.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림프액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이 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안면이 함몰 및 변형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은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 등의 조합으로부터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후 귀가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의 소녀(17)인 것이 확인.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서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행방을 찾고 있었다.


 

s63/11월 25일/20:00

자전거로 귀가도중의 소녀를 찾아낸 A가 공범이었던 소년C에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C 도주후 주범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준다'며 말을 걸어 납치.

공범C 소년의 방에 피해자를 데려가 몇사람이 폭행·강간한다.

C의 부친은 이때 소녀가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 주의를 줬지만

아들이 고함쳤으므로 그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희생자에게는 도망쳐 경찰에 신고해도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로 한다고 위협,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11월 30일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모친과 친구에게 '친구의 집에 있으니까 수색원은 내지 마라'고

공중전화로 전화시킨다.

이때,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하고 있다.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으로부터

'오늘 밤은'이라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C의 부친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일주일 후, C의 모친이 화장실을 청소했을 때 생리용품이 있었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갔다.
2층에는 공범소년 D과 피해자 소녀가 있었다. 이때 피해자와 말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주소는 사이타마, 고교 3학년, 취직은 정해져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소년C와 그 모친, 소년D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어 도중에 귀가한 C의 부친은

'걸프렌드인가. 나에게도 소개해다오'하고 C에게 얘기했지만 무시된다.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젼을 보거나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C와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올라 2층의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귀가한 C는 관계없는 일을 하지 말라며 모친을 수시간에 걸쳐 때린다.


63/12월 초

소년A 등 4명이 낮잠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110번에 신고한다.

곧 A에 눈치채여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전화는 A가 나와 속인다. 전원이 린치해 라이터 기름을 발목에 바르고 불붙인다.


12월 19일

C의 집에 A가 와 피해자에게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인다.

재차에 걸치는 화상에 의해 상처가 곪는 이상한 냄새를 낸다.

악취로 C의 부모님이 눈치채는 것을 무서워 해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시키지 않고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이때 이미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가해자 4명중 누가 가장 좋냐는 질문에 대답을 b학생을 지목해 a가 화가나 저런 몹쓸짓을 했다는군요..)


 

 

소년 C의 자택

 

12월 20일

소년 A등 3인외에 여자가 1명 와 '화장'이라며 피해자의 뺨에 매직으로 수염을 그린다.

요즘 소년C는 집에 '재밌는 것이 있다'고 아는 사람에게 공언해 100명정도는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여지며, 재판기록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강간 등에 참가하고 있다.

거듭되는 폭행에 의해 뺨이 코높이를 넘을만큼 부어올라 눈의 위치를 모를만큼 되어 있었다.

감금당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키거나 C가 칫솔 등을 사주거나

하고 있었지만 상처나 화상이 심해지는 것에 따라 식사·목욕에 대해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알 등 집에 있던 것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21일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피해자가 말했기 때문에 '알몸으로 춤춰라' '미치광이 흉내를 내라' 등을 지시.


12월 28일

A와 C, B의 세명이 한밤중에 C의 방에 들어가자 피해자가 배를 누르고 넘어져 있었다.

A의 얼굴을 보며 피해자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A는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방에서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 버린다. 그 후, 피해자가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회 구타, 상반신을 알몸으로 해 혹한(12월)의 베란다에

서게 해 담배 두가치를 동시에 피우게 하지만 구토.

양 대퇴부·무릎·정강이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점화.

열이 이는 불을 끄려고 하자 손에도 점화, 불이 꺼지면 다시 점화했다.


1월 4일

JR아야세역 근처 마작소에서 내기 마작을 해 10만엔을 진 A는 초조해한다.
가수 코이즈미 교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안의 '예-이!'에 맞추어 피해자의 옆구리에 마음껏

구타한다. 피해자는 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고통을 참아 얼굴을 비뚤어지게 했다.

그 표정을 보며 소년들은 재미있어 했다.

안면·복부를 구타해 넘어뜨리고 안면 등을 발로차고, 넘어지면 일으켜 때린다.

코나 입으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는 얼굴에 양초를 늘어뜨려 두 눈위에 양초를 세우는 등의

폭행에 이르고, 또 팩의 용기에 누게 한 소변을 먹였다.

피해자가 카셋트에 부딪쳐 전신을 경련하며 넘어진 것을 보며 '꾀병이다'며 C가 격노,

A는 6kg의 철아령을 피해자의 배에 떨어뜨리고 대퇴부, 안면을 한층 더 때린다.
구타가 끝난 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였다.

처음은 움직였지만 마지막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폭행은 3시간 가까이에 이르렀다.

(여기서 소녀가 "날죽여,죽여"라고 말을 했답니다. 그래서 A는 화를 내며 3시간가까이 폭행을 했답니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

변호사

그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소년 B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1월 5일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공장에 가 모르타르·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 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A가 빌려온 웨건을 운전해 도쿄만의 매립지에 갔지만 적당한 장소가 없어 도로틈의 풀숲에 버렸다.

 

 

 

부검당시 성기와 항문 대장에서 화상의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항문에 폭죽?을 넣고 터트렷다더군요..

성기엔 들어가지도 않는 패트병을 억지로 넣었으며. 피해자의 소변,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피를 먹이기까지 했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가해자D에게 "나 언제 집에 갈 수 있는거야?"  라고 묻었다더군요.

눈물이 나더군요

 

 

 

범 인

A(주범)
소화 45/04월생
부친 : 증권회사 사원
모친 : 피아노 강사
여동생 한 명.

당시부터 아버지는 애인집에 있어 가정은 붕괴하고 있었고 부부사이에 문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무렵에는 이미 문제행동이 있었다.

말을 잘하고 재미있다고 하는 평판도 있다.
초등5에 펀치파마.
쌍절곤·목검을 가지고 초등학교에 '쳐들어감'을 했던 적이 있다.
'나쁜 것은 근사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6학년때 공부 잘하는 좋은 친구에게

영향을 받고 성실하게 된다.

졸업 문집에는
「소년원의 원장이 되고 싶다. 나, 나쁜일을 많이 했다.
     도둑질, 싸움, 대개 유행했다.
     그래서 나쁜 일을 한 녀석의 기분을 알 수 있다.
     나라면 비행소년이라고 불리고 있는 무리를 회복하게 해줄 수 있다.
    내게 향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학 입학과 동시에 주위사람의 권유로 유도부에 입부, 체형은 작은 몸집(160cm)이었지만

열심히 연습해 3학년때 도대회에서 2위에 입상, 토카이대 부속고에 추천입학.

고등학교 유도부 선배 및 고문에게 체벌을 받는다. 그 내용은 A의 부친이 재판소에 호소했을

정도로 심하고, 살충제에 라이터를 대고 뿌리는 등 도를 넘은 것이었다.

밖에 나와 닥치는대로 싸움을 걸게되고 집에서도 물건을 부수고, 모친에게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힌 적도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 중학무렵부터 교제하고 있던 동급생(D의 누나)과 동거.
18살이 되면 결혼하려고 1년반 타일공으로써 성실히 일하지만 자동차학교의 합숙장에서 알게

된 폭력단원과 알게 되어 긴자의 생화상으로 아르바이트.

그만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현실도피하기 위해 신나를 시작한다.
신나를 들이마시고 있을 때밖에 즐겁다고 느끼지 않는 생활.

폭주족의 특공대장.
폭력단과의 교제, 심부름꾼.

전과 :
재학중에 체벌을 받은 것을 동기로 히가시아야세 중학교에 난입,
유리창을 깨는 등으로 인도, 보호관찰 처분에.

최종판결 징역 20년
외설유괴, 약취, 감금, 강간, 살인, 사체유기, 상해, 절도.

판결 후, A의 부모는 집을 팔아 합계 5,000만엔을 피해자의 부모에게 지불한다.

C(피해자 감금장소의 차남)
소화 47/12월생
부친 : 병원의 사무장(니혼바시 근처 약국의 사장)
모친 : 같은 병원의 간호사.
형 1명

일 외곬의 부친은 엄격한 체벌을 발휘했다. 소년이 결정할 수 있던 가사의 분담을 하지 않는 것등을 모친으로부터 상담받으면, 소년을 흔들어 깨워 꾸짖었다. 울며 도망치는 소년을 뒤쫓아 때리거나 심야에 밖으로 끌어내 공원을 달리게 한 적도 있다.
부친은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소년과 그 형(18)은 '주에 1회는 맞고 있었다.

오싹할만큼 무서웠다'라고 변호사에게 증언. 부친은 '한달에 1번 아니, 일년에 몇차례밖에 때린

기억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부친이 체벌을 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

C소년의 가정내 폭력이 시작되었다.

다니고 있던 공립중학교는 진학 명문교였지만, 여기서도 교사의 체벌이 횡행하고 있었다.

학생은 매일같이 맞았다. C소년도 바스켓부 고문이었던 여성교사에게 맞고 퇴부(90/11/17, 아침)

A의 중학교 2년 후배,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지만 2학기에 중퇴.
이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다른 건으로 이미 토치기의 소년원에 보내져 있었다.

도쿄에 귀환시켜 체포.

전과 :
오토바이의 무면허 운전으로 인도 → 보호관찰 처분

최종판결 징역 5~9년(소년형무소에서 만기. 벌써 출소)
외설유괴, 약취, 감금, 강간, 살인, 사체유기, 절도.
변호측은 상해치사(살의가 없었다)를 주장.

C의 부모님은 2명모두 공산당원. 경찰이 구속영장을 취득한 단계에서 변호사를 준비해

가택 수색도 변호사 입회의 원으로 행해졌다.
당은 사건직후의 단계에서 C의 부모를 제명, 당과는 일절 관계가 없다고 발표.

그리고 '감금이라고 하는 인식이 없었다' '소녀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등 C모친의

자기변호적 기사를 기관지 '붉은 기'에 5월 20일~27일 연재 칼럼에서 백업.
C의 모친은 매회 빠트리지 않고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재 판

도쿄 고등 법원 판결(확정)
부모는 지금 역시 피고인 측에서의 면회신청 및 성묘 허가를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하고 있다.
손수 돌봐 길러 온 외동딸을 태연하게 주변에서 문제 삼아, 불안 초조로 긴 날들을 보낸 결과,

끔찍하게도 '갑'이 살해되기에 이른 부모 등 피해자 감정은, 지극히 엄하여 피고인에 대해 격렬하게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갑'의 아버지는 당심 증언에 대해서도, 피고인에 대한 원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해 강한 불신감과 불만의 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이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뒤,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덧붙여 주범 A 이외는 이미 출소하고 있다.



= = = 사건의 해설 = = =

이 사건은, 한없이 사형에 가깝다고는 해도, 현재의 일본에서 사형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성인이 사형이 되는 것은 희생자의 수가 2명 이상이라거나, 강도나 강간등이 있어, 악질, 계획적으로 반성이 불충분, 등등의 기준을 채우는 경우다. 본건 살인 이외에도 여러가지 범죄를 저질렀지만, 희생자의 수나 연령을 생각하면 사형 판결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전 사형의 1/3을 집행하고 있는 텍사스주에서도 소년 A 이외는 사형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간 5~10건정도의 사형 판결 밖에 나오지 않고, 집행까지 지극히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사형을 유지하면서 사형 폐지론을 고려한 결과지만, 수를 한정하거나 억울함을 방지하기 위해 판결로부터 집행까지 긴 시간을 들이는 것은 필요 불가결하다.

서구를 중심으로 사형 폐지의 조류는 부풀어 오르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과반수의 국민이 사형에 찬성하고 있다. 다만, 사형의 시비에 관계없이, 무기 징역과 사형의 사이가 너무 넓은 것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현재 무기 징역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10년부터 출옥이 가능하고, 평균은 17년 정도가 되고 있다.

유기형의 상한인 20년을 40년 정도로 확대하거나 가석방 없음의 종신형 등을 마련해 사형과 무기 징역의 사이를 메워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 여학생의 모습... 참으로 단아한 아이였군요

너무나도 순수하고 착했던듯 싶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세상누구보다 사랑받고 행복한 삶을..

 

 

가해자A는 2008년(계산으로는 2009년이나 어떤기사에서)에 석방된다고 합니다. 가해자B,C는 이미 예전에 석방되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답니다(과거 한번나왔었지만 이번엔 상영을 못했죠. 이번에 다시 촬영하고 있다네요). 가해자D는 석방된후로 정신치료를 받았답니다.

저런 악마같은 존재들이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게 정말이지 끔찍하군요.

폭행을 가담했던 나머지 학생들과 이를 묵인했던 C의 부모들은 처벌을 받지않은 듯합니다.

저들중 한명만이라도 신고를 했더라면 소녀는 살수 있었을텐데

일본이 정말 질린느군요. 일본은 이런 잔인한일 몇건더 있나봅니다..

 

2004년도작 콘크리트.. 상영금지된 작품이죠. 당연한 일

피해자측은 생각도 하지 않는지 또 제작하고 있는건 뭔지..

 



 

 

 

 

 

 

평성 원년 3월 31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
여고생을 콘크리트 매장.. 소년 여러명이 죽여. [도쿄·아야세]

부녀 폭행혐의로 경시청 아야세 경찰서에 체포되어 있던 무직 소년 몇 명이 여고생을 난폭하게

죽인 뒤 드럼통에 콘크리트 매장하여 도쿄 고토구내의 매립지에 버렸다고 자백해,

동 경찰서와 경시청 소년 2과는 30일 진술 장소에서 발견한 드럼통 안에서 사체를 확인하여

아다치구내의 무직소년 2명(각 17, 18세)을 살인 및 사체유기혐의로 체포하였다.
범행현장에는 다른 소년이 5명이나 있던 것으로 보여 같은 용의로 조사할 방침.

피해자는 사이타마현 미사토시에 사는 동 현립고교 3학년 A꼬(당시 17세)로 보여 소년들이

납치한 뒤 1개월남짓 실내에 감금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A꼬씨는 작년 11월 가족으로부터 가출인 수색원이 나와있었다.

조사에서는 금년 1월 3일 A꼬씨가 체포된 소년 2명과 아다치구 아야세의 동료 집에 감금되고

있었을 때 이불에 물을 흘렸다 하여 소년들이 화를 내 A꼬씨의 손발에 라이타의 불을 지지거나

얼굴, 배 등을 때리고 차는 등 폭행을 4일 새벽까지 계속하여 살해하였다.
소년들은 A꼬씨를 방치한 채로 놀러 나왔지만 5일 새벽에 방으로 A꼬씨가 죽어있는 것을 알았고

시체의 처리가 곤란한 소년들은 집 가까이의 공사현장에서 훔쳐온 드럼통에 시체를 넣은 뒤

콘크리트를 부어 고토구 와카스의 매립지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소년들은 도내의 다른 사립고를 중퇴하여 비행 동료와 함께 아다치구를 근거지로 하는 폭력단의

청년부 조직 '극청회'를 만들어 조직의 지시로 음식점에 꽃을 강매하는 등 폭력조직적 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룹은 알려진 것만으로 10명정도 있어, 차로 여성을 꼬셔 억지로 호텔에

데려가는 등을 반복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 두명은 작년 12월에 일어난 부녀 폭행사건의 용의자로써 금년 1월 23일에 체포되어 있었지만 그와 별도의 부녀폭행 1건과 20건의 소매치기도 자백해

재 체포되고 있었다.

소년 감별소에서의 여죄 조사중 이번달 29일 2명이 살인을 자백, 동 경찰서는 같은날 저녁 매립지에서 드럼통을 찾아내 30일 오후 콘크리트를 분쇄해 시체를 확인했다. 사체는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가족도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 이 때문에 사체의 지문을 A꼬씨의 소지품에 묻은 지문과 조합하는 등의 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A꼬씨는 작년 11월 25일 저녁 미사토 시내에서 소년들에게 속아 납치된 뒤 아야세의 소년 동료 집에 감금되었다. 항상 감시당해 도망치려 하면 린치당하고 있었다고 하며, 납치할 때 속은 수법은 소년중 한명이 오토바이로 스쳐지나가는 A꼬씨의 자전거를 넘어뜨리고 또 한명이 친절하게 돕는 척 하여 믿게 만들어 오토바이의 뒤에 태우는 방식이었다.
또, A꼬씨의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12월중 몇차례 미사토시의 자택에 전화를 걸어 '걱정하지 마라' '왜 수색원을 냈어'라고 말하게 했다.
A꼬씨는 사이타마현 야시오 시내의 현립고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작년 11월 하순 부모님이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 하러 간 뒤로 귀가하지 않는다'라고 요시카와서에 신고하고 있었다.

평성 원년 3월 31일자 아사히 신문 석간
소년 총 7명이 관여.. 사이타마의 여고생 살인

도쿄도 아다치 구내의 무직소년(18) 등이 포함된 비행그룹이 여고생을 난폭하게 죽여 드럼통에 콘크리트 매장 뒤 매립지에 버린 사건으로, 경시청 소년 2과와 아야세 서는 31일 사체의 지문조합을 통해 살해당한 것은 사이타마현 미사토시 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 F자씨(당시 17)로 단정했다. 또 범행현장이 되었던 아다치구 아야세의 회사원 집을 현장검증함과 동시에 살인 및 사체유기 용의로 체포한 소년 2명외에 현장의 집에 사는 형제 등 3명이 살해에 관여, 그밖에 2명의 소년이 감금과 납치에 관계되고 있다고 봐 이 5명도 가까운 시일내에 조사할 예정.

조사에 의하면 F자씨의 사체는 여름용 이불 두장에 뒤집어 씌워져 더 큰 대형가방에 넣어진 채 콘크리트에 매장되어 있었다. 옷은 소년들이 감금중에 준 것같고 실종 당시와는 차이가 났기 때문에 가족이 봐도 F자씨의 옷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F자씨가 매장된 드럼통은 발견되었을 때의 무게가 305kg이었고 2~3명이서는 운반할 수 없어 웨건 혹은 트럭 등의 차를 사용해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살해현장이 된 소년들의 동료의 집은 아다치구 아야세의 조용한 주택가안에 있는 자그마한 2층건물로 소화 48년쯤에 부모와 남자아이 2명의 일가족이 입주했다.
인근 주민의 말로는 작년말쯤까지 한밤중에 오토바이 소리가 나거나 2층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거나 했다, 현관 옆의 전봇대를 타고올라 2층의 방에 출입하는 소년을 밖에서 본 사람도 있다. 가까운 곳의 주부는 '베란다에 접는 사다리가 놓여 있던 적도 있다. 현관을 통하지 않고 출입하고 있어 부모님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성 원년 4월 1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
「고민을 털어놔 시원해졌다..」여고생 살인 소년들. [도쿄]

도쿄 아다치구의 무직소년(18)등의 그룹이 여고생을 난폭하게 죽여 드럼통에 콘크리트 매장한 뒤 매립지에 버린 사건으로, 경시청 소년 2과와 아야세 경찰서는 31일, 살해당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 타카스 1번지 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 F자씨(당시 17)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사'로 밝혀졌다. 1일, 살인 및 사체유기 용의로 체포한 소년 2명을 송검함과 동시에 범행현장에 있던 다른 소년 3명을 조사해 용의가 밝혀지는 대로 체포할 방침.

소년 2명은 조사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해 잘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해 후련해졌다'라고 반성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평성 원년 4월 1일자 아사히 신문 석간
한번만 주의, 감금된 집의 아버지... 여고생 살인 또 1명 체포

사이타마현의 여고생이 소년들에게 장기 감금끝에 살해당해 콘크리트 매장된 뒤 버려진 사건으로, 경시청 소년2과와 아야세 경찰서는 1일, 살인 및 사체유기 용의로 체포한 주범 도쿄 아다치구의 무직소년(18) 등 2명을 도쿄지검에 송검했다. 또, 절도 등의 용의로 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는 같은 구의 무직소년(17) 등 3명이 범행에 참가하고 있었다 보고 구속영장을 준비해 조사, 1명을 체포했다.

수사진은 피해자 미사토시 타카스 1번지 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 F자씨의 감금 및 살해현장이었던 아다치구 아야세의 소년 집을 31일 심야까지 검증하여 증거물품 10점을 압수하였으며 1일 아침에는 소년의 부모님이 감금이나 폭행을 알아차리지 않았는지의 사정을 들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대해 소년들은 '감금한지 얼마 안된 작년 12월초, 1층의 부친으로부터 「시끄럽다」라고 주의받았던 적이 있을 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고. 소년들은 가족의 부재중을 노리거나 전봇대를 타고 2층 동료의 방에 출입해 가족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했다고 수사진은 보고있다.

평성 원년 4월 2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
부친, 감금된 소녀와 만나고 있었다.. 소년들의 여고생 살인

시아타마현 미사토시 타카스 1번지 현립 야시오南고 3학년 F자씨(당시 17)가 아다치구 아야세의 소년 집에 장기감금후 살해당해 콘크리트 매장으로 버려진 사건에, 소년의 부친이 감금되어 있던 F자씨와 얼굴을 맞대고 있었던 것이 경시청 소년 2과와 아야세 서의 1일까지의 조사로 밝혀졌다. 수사진은 그때의 상황에 부자연스러운 점도 있었기 때문에, 1일에 새롭게 체포한 소년을 포함해 체포된 소년 3명의 진술과 맞추어 보아 아버지가 감금을 알아차리고 있었는데 간과했는지 혹은 전혀 몰랐던 것인지를 상세히 조사한다.

수사진은 소년의 부친으로부터 들은 사정은, 부친은 12월초 둘째의 방에서 '기성'이 들려 주의주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시끄러워'라고 말하기 위해 방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안에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그때 여자목소리가 났기 때문에 '여자애가 놀러와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12월말인 어느날 F자씨로 보이는 여자가 혼자 1층의 식당에 내려왔기 때문에 식사를 주었다. 그때 '집에 돌아가라'고 주의주었다고 한다. 부친은 항상 아들의 방에 들여보내지지 못했던 것 같다.

평성 원년 4월 3일자 아사히 신문 석간
귀가를 설득하려 식사에 불렀다 - 여고생 살인, 감금소년의 아버지

시아타마현 미사토시 타카스 1번지 현립 야시오南고 3학년 F자씨(당시 17)가 도쿄 아다치구 아야세 무직소년집에서 살해당하고 콘크리트 매장뒤 버려진 사건에, 소년의 아버지가 F자씨에게 식사를 시키고 있던 것은 소년(17)의 방에 여성이 묵고 있던 것을 안 소년의 부모님이 여성에게 집에 돌아가도록 설득하기 위해 저녁식사에 불렀던 것이 경시청 소년2과와 아야세 경찰서의 그후의 조사로 밝혀졌다.

저녁식사에는 소년도 동석했지만 F자씨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소년들의 새로운 진술에서는 F자씨를 때리거나 차거나 하는 난폭행위는 수십회에 이르고 소년들도 정확한 횟수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빈번한걸로 보인다. 방에서는 핏자국도 다수 발견되고 있어 소년들은 「짜증스러울 때도 마구잡이로 때렸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수사진은 소년들은 스스로의 폭행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F자씨를 집에 돌려보낼 수도 없고 점차 '방해자'취급을 받아 난폭행위를 거듭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평성 원년 4월 4일자 아사히 신문 석간
여고생 살인에 수많은 의문, 감금된 경위는?

졸업을 앞둔 여고생이 40일간의 감금끝에 살해당한 사건은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수많은 의문점이 떠오르고 있다. 피해자 사이타마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 F자씨(당시 17)가 어째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소년의 집까지 따라갔는가, 또, 어느 시점에 무엇을 계기로 폭행이 시작되었는지.
경시청 소년2과와 아야세 경찰서는 체포된 3명의 소년 이외에 범행과 관계되었다고 보여지는 4명의 소년의 취조를 서두르고, 살해에 도달할 때 까지의 상황을 상세하게 재현할 방침이다.

납치된 것은 작년 11월 25일 오후 8시경. F자씨는 방과후 야시오시의 포장자재회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이날 아르바이트처의 친구와 헤어져 자전거로 집에 돌아가는 도중 자취를 감추었다.
자전거는 자취를 감춘 뒤 머지 않아 야시오시와 미사토시의 경계인 나카강의 시오도메 다리옆 상점앞에서 발견되었다. 제대로 스탠드를 세워 열쇠도 걸려있었다. 이 상황으로부터 경찰은, F자씨는 다시 자전거를 둔 장소에 돌아올 의사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F자씨는 가족몰래 외박하는 일도 있었지만 작년 9월 도내의 대기업 슈퍼의 취직시험에 합격해 의욕에 넘쳐 있었던 시기로, 자의로 소년들의 집에 묵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한다.

소년들의 진술에 의하면 주범격의 소년(18)과 감금된 집에 사는 소년(17)의 두명이 우연히 지나간 F자씨를 찾아내 '헌팅하자'고 상의, 한명이 일부러 얽히고 다른 한명이 도와주는 연극을 했다고 한다. 소년 2과는 F자씨가 '친절맨'을 신용했다기 보다는 '그남자의 패거리가 복수하러 올지도 모른다'라고 협박당해 무서워서 말하는대로 따른 것은 아닌지 보고있다.
소년들은 당초 '방에 들어간 날은 비위를 맞춰줘 난폭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F자씨가 그날은 안심하고 묵은 것을 비췄다. 하지만 체포자가 증가함에 따라 '방에 들어가자마자 때리고 차는 등의 난폭행위가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진술도 나와있다.
또, 감금한 소년의 부모는 적어도 12월 하순에 1번 F자씨와 소년과 함께 식사할 때 '돌아가라'고 설득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때에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일까.
3일까지 송검된 3명의 소년은 모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경시청의 조사에서는 소년들의 중학졸업생중에 폭력단원이 된 선배가 있어 그 선배와 사귀기 시작한 뒤 소행이 나빠졌지만 소매치기나 부녀폭행의 비행력은 있어도 이번처럼 처참한 사건을 예고할 수법은 없었다고 한다. 소년들의 깊은 심리도 아직 해명되어 있지 않다.

평성 원년 4월 5일자 아사히 신문 석간
4명째 소년을 체포. 여고생 살인 [사이타마]

사이타마 현립 야시오南고 3학년 F자씨(당시 17)가 도쿄 아다치구의 무직소년 그룹에게 살해당해 콘크리트 매장뒤 버려진 사건에, 경시청 소년 2과와 아야세경찰서는 5일 오후, 살해현장이 된 아야세의 소년집에서 범행에 가담한 같은 구의 무직소년(17)을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했다. 이 사건에서의 체포자는 4명째, 무직소년은 작년 12월에 일어난 부녀 폭행사건으로 소년원에 수용중.

평성 원년 4월 21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
F자씨를 「불」로도...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사건, 3소년을 가정재판소 송치

도쿄 아다치구의 소년그룹이 여고생을 감금, 살해후 콘크리트 매장한 사건에, 도쿄지검은 20일 최초로 체포된 3명(18~16세)의 신병을 살인, 외설목적 유괴, 약취, 감금, 부녀폭행, 사체유기의 죄로 도쿄 가정재판소에 보냈다. 20일남짓에 걸친 조사결과 범행이 지극히 악질이라고 봐 '형사 처분이 당연'이란 의견서를 덧붙였다. 구치되고 있는 남은 1명(17)에 대해서도 조만간 신병을 가정재판소에 보낼 방침. 가정재판소에서 감별되겠지만 연령과 범행이 악질이라고 보고 지검에 역송되어 성인의 형사건과 같게 기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의 조사에서는 사이타마 현립 야시오南고 3학년 F자씨(당시 17)를 때리고 차는 등의 폭행을 가해 저항을 막고, 40일간의 감금끝에 금년 1월 4일 오전 7시경 이불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F자씨를 때리고 차다가 급기야 라이터의 불을 손발의 등에 지져 폭행해 죽였다.
소년들의 선배에는 아다치구를 근거지로 하고 있는 폭력단원이 있어 그 조직의 청년부 조직을 만들어 '극청회'를 자칭하고 있었다. 폭력단의 꽃장사를 하거나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반복하고, F자씨의 감금중에도 수십건의 소매치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감금중에 다른 부녀폭행사건을 일으킨 것도 자백하고 있다.

평성 원년 4월 5일자 아사히 신문 석간
파문퍼지는 여고생 살인, 소년법 개정 논의가 활발

도쿄 아다치구 무직소년 그룹이 여고생을 감금,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의 재평가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사히 신문사에서도 '소년법의 대상연령을 낮춰야 한다' 등의 투서가 잇따르고 있다. 소년법의 개정논의는 법제 심의회가 중간답변을 정리한 소화 52년 6월 이후, 눈에띄는 활동을 삼가고 있었다.
법무성은 '이번 사건으로 개정작업이 가속화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개정에 반대입장을 취하는 일본 변호사 연합회는 '감정론이 너무 앞질렀다'고 봐 이번 사건과 개정론에 대한 견해를 독자적으로 정리하기로 하였다.
현행의 소년법에서는 16세 이상의 소년이 형사사건을 일으켰을 경우 가정재판소가 검찰청에 돌려보내는 '역송'조치에 의해 성인과 같이 형사책임이 거론되게 되어있다. 성인과 다른점은 18세 미만은 형이 완화되어 사형 상당의 죄가 무기형에, 무기형 상당의 죄가 10~15년이 되는 구조다. 또, 가출옥의 규정에는 무기형의 경우 성인이 10년 경과하면 용서되지만 20세 미만에서는 7년 경과후부터 용서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게다가 소년법 61조는 죄를 범한 소년에 대해 이름이나 얼굴 등 '본인인 것이 밝혀질 수 있는 기사 또는 사진'의 게제를 금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 개정을 둘러싼 투서가 20통 가깝게 아사히 신문사에 밀려왔지만 그 대부분은 '귀축만도 못한 범행이며, 보호할 필요는 없다' 등과 소년 4명의 이름 공표 또는 보호해야 할 연령의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시청에도 '소년의 이름을 발표해라' '극형에 처해라' 등의 투서나 전화가 잇따랐다.
대부분의 보도기관은 소년을 가명으로 보도했지만 '주간 文春'만은 체포된 4명과 부모의 실명을 게제했다. 花田紀凱 편집장은 '게제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소년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를 펼치기 위한 문제제기로써 굳이 단행했다'고 말한다. 이 실명기사에 대해 약 20건 있던 반응중 9할이 [지지]의 목소리였다고 한다. 동 잡지의 이름 게제에 대해 법무성 인권옹호국 조사과는 '관심은 있지만 현단계에서는 코멘트를 피하고 싶다'는 태도다.

○ 소년법 개정파 '대상연령 내려라' ×일본 변호사 연합 '감정론이 앞질러'
법무성이 소년법 개정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소화 41년, 당시의 구상의 핵심은 대상연령을 낮추는 것에 있어 18~19세를 '청년'으로서 모든 사건을 성인과 똑같이 형사절차로 실시하도록 제안했다. 또 현재와 같이 소년사건의 전부를 가정재판소에 보낸다는 것은 아니고 검찰관이 송치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일도 겨냥했다.
45년에 법제 심의회에 자문해 움직임은 본격화했으나 일본 변호사 연합과 정신의학회 등에서
(1)개개인의 성장이 다른 소년을 일률적으로 18세에 단락짓는 것은 의미가 없다
(2) 검찰관의 권한이 강해진다
(3)보호·교육 우선에서 형벌 우선주의로 법의 이념이 바뀌게 되어 세계의 변화에 역행한다
등의 반대론이 들고 일어났다.
7년넘는 심의결과 52년에 중간답변이 나왔지만, 반대론을 고려해 당초의 구상보다 약해지고 18~19세는 '특별취급 한다'는 것에 머물렀다.
법무성의 바바 토시유키 청소년 과장은 '답변은 여러 가지 의견의 최대공약수적인 형태로 정리되었다. 현재는 관계기관의 의견일치를 얻으며 신속하게 개선하기 위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한다.
개정론을 주창하는 오다 스스무 츠쿠바대 교수(정신위생학)는 '소년들의 성숙도가 앞당겨져 있다. 소년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대사건에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번사건은 부모도 포함해 모두 실명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일본의 변호사 연합의 소년법 '개정' 대책본부는 월 1회정도 정례회의를 열고 있지만, 금월 11일의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개정론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큰 의제가 되었다.'소년법 개정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류한 채로 극형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강해지고 있는 것은 위험한 징조'로써, 내월 16일 전체회의에서 토의해 견해를 정리하기로 했다. 개개의 사건에 대해 일본 변호사 연합이 견해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대책본부장 아베 사부로 변호사는 '지금의 제도로 소년들은 충분히 형사책임을 묻게된다. 소년법은 소년의 범죄에는 교육이나 가정 등 사회적 배경이 있다고 하고, 교정과 보호를 목적으로 해서 태어난 경위가 있다. 안이하게 '법이 가볍다' '그러니까 흉악범죄가 일어난다'라고하며 모든 것을 법의 탓으로 돌려 감정론이 혼자 걸어다니는 것이 걱정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소화 63년 8월 1일자 아사히 신문 조간
마작 진 울분에 죽음의 린치... 여고생 살해사건에 검찰 주장

도쿄 아다치구의 소년 그룹이 여고생을 감금해 살해, 콘크리트 매장후 버린 사건에 외설목적 유괴, 약취, 감금, 부녀폭행, 살인 등의 죄가 거론된 소년 4명(19~16세)에 대한 첫 공판이 31일 오후 도쿄 지방법원 형사 4부(마츠모토 미츠오 재판장)으로 열렸다. 검찰측은 살해에 이르는 린치의 동기에 대해 리더격의 소년이 내기마작으로 10만엔을 잃자 그 울분을 못이겨 행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 인정여부로 소년측은, 리더격의 1명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하고 다른 3명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고 상해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계속된 진술에서 검찰측은 소년들이 감금 1개월반정도가 된 작년 12월 하순경부터 여고생의 취급이 곤란해지자 '콘크리트에 묻어 바다에 버리자'라고 서로 의논한 것을 지적, 1명이 '드럼통안에 여고생이 좋아하는 비디오나 꽃다발정도 넣어줄까'라고 한 것에 대해 다른 2명이 '그런짓하면 드럼통이 발견되었을 때 누군지 알게되는 단서가 된다'라고 '주의했다고 말했다.
여고생이 사망하기에 이른 린치를 한 것은 금년 1월 4일 JR아야세역 근처의 마작 하우스에서 3일밤부터 4일 아침까지 내기마작으로 10만엔을 잃은 리더격 소년이 다른 소년의 집에서 '진 것은 여고생의 탓이다. 지금부터 괴롭히러 갈까'라고 말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여고생은 벌써 전신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소년들은 스스로의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해 비닐봉투로 손을 싸고 때리거나 돌려치기를 가하거나 했다고 한다.
소년들은 여고생에 대한 범행 외 여성 2명에 대한 부녀 폭행 및 후배에게의 린치, 총액 약 220만엔에 달하는 점포털기나 소매치기에도 기소되어 있다.
이날 소년들의 죄상인정여부는 모두 변호인이 대변했다. 폐정과 동시에 한사람이 정신을 잃고 넘어졌다.

 

1989년 3월, 도쿄 아다치 구내에서 일어난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 사건」은 전 일본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소년들이 여고생(당시 17세)을 납치해, 41일간에 걸쳐서 감금, 폭행의 한계를 다해 살해한 사건입니다. 범행의 중심이 된 4명의 소년들은 성인과 동급의 형사 재판이 타당히 여겨져 실형 판결을 받고 소년 형무소에 송치되었습니다. 판결은, 주범격 소년A(동18세)는 징역 20년, 부 리더격의 소년B(동17세)는 징역 5년 이상 10년 이하. 또 소년C(동16세)는 징역 5년 이상 9년 이하, 소년D(동17세)은 5년 이상 7년 이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벌써 11년이 지났습니다.그 후를 조사해 나가면, 여러가지 문제가 남겨진 채로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유족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에 쓰러져 범죄 피해자를 구제하는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것을 드러냈습니다. 또 일부의 소년은 벌써 소년 형무소나 소년원을 나왔지만, 어느 소년은 그곳에서 정신병에 걸려 갱생이나 사회복귀는 먼 일이 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반성조차 하고 있지 않는 소년도 있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은, 2년전 소년들의 그 후를 취재한 있는 주간지의 기자입니다. 주범의 4명 이외에도 범행에 참가해 소년원에 간 소년들이 있습니다. 그 소년의 한 명이 「잡힌 것은 운이 나빴던 것 뿐」이라며 기자에게 모르는 체 했다고 합니다.

 과연 범인의 교정 프로그램이나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적 정비는 믿을만 한 것일까요. 사건 당시 , 일부의 보도 기관이 「야수에게 인권은 없다」며 그들의 실명을 공표해 파문을 던졌습니다. 지극히 잔학한 사건을 기회로 소년법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이유입니다만, 그때부터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요. 죄를 범한 소년들의 그 후, 범죄를 낳는 가정의 문제, 피해자의 구제, 그리고 소년법의 개정 문제 등. 이번 'NEWS WEB JAPAN'은 소년 범죄를 다각적으로 검증해 보았습니다. 여러입장의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과 동시에 비행 소년의 회복을 돕는 유효한 수단은 없을까. 왜 소년들은 폭주하는지를 해명해 갈 것입니다.

 

흉악사건의 무거운 손톱자국

경시청 아야세경찰서는 도쿄 코토구 와카스의 매립지에서 1989년 3월 29일에 콘크리트 매장된 드럼통을 발견했다. 드럼통을 해체하자, 안에서 이불에 싸여진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콘크리트로 밀봉되었기 때문에 사체는 부패하고 있지 않기는 했지만 사체의 상황은 너무나도 비참한 것이었다.

여성의 안면은 변형과 함몰이 심해 외관상의 판별은 완전히 불가능. 또, 전신이 구타에 의해 부어있었고 라이터로 구워진 자국도 다수 있었다. 그리고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3분의 2밖에 없는 심한 영양 실조 상태였다.

이것이 세상을 뒤흔든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 사건」이다.

피해자의 여고생은 41일간에 걸쳐 감금되어 쇠약사 했던 것이다. 귀축과 같은 지독한 폭행과 능욕의 범행 상황은 당시 보도되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재차 접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는 모두 7명의 소년이 체포되었다. 그 중에서 A(당시 18세), B(동 17세), C(동16세), D(동17세)는 징역형을 받아 소년 형무소에 복역했다. 나머지의 3명은 소년원에 수용되었다.

변호사 이토 요시오씨는, 공판으로 소년 B를 담당한 한 명이다.

「처음으로 접견 했을 때, B는 「그녀가 불쌍하기는 했지만, 놀아줬으니까 괜찮지 않나?」하고 정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들은 나는 패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4명의 변호사가 접견을 반복하는 동안에 B는 피해자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도 눈물짓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불만이 쌓인 끝에 마음이 거칠어져 이런 사건을 일으켜 버렸다고 하는 비행의 메카니즘을 그 자신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성하기까지 된 소년 B였지만, 그는 형무소 안에서 정신적인 병에 시달려 버렸다.

「죄의식에 너무 시달렸습니다.자신의 죄의 무게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을 받아 들일 소지가 없다. 그러니까, 자신의 죄에 눌려져 버렸습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수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소년 D도 정신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한사람이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해 「소년의 거리」를 쓴 르포라이터 후지이 세이지씨는, 출소후 D의 집에 다니며 모친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원래 D는 왕따로, A의 폭력적 지배에 의해 그 사건에 끌려들어왔다. 출소후는 모친과 조용히 살며 집에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후지이씨는 가정재판소에서 중등소년원 송치처분을 받은 F(당시 16세)라고 하는 소년도 사건으로부터 7년 후에 만나고 있다. F는 부모님과 절연 상태가 되었고 친구들과의 접촉도 끊고 있었다. 그 후는 신문 배달로 생계를 세워 적막하게 살고 있었다.

「F는 사건의 전모마저 모른 채 출소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F에게 형사 재판의 전기록을 읽게 하여 그와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사건과 마주쳐, 왜 A에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일까? 왜 소녀를 도와 줄 수 없었던 것일까를 반성했습니다

감금중, 폭행당한 후 멍해진 상태가 된 피해자는, F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 ...나는 언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이 때의 표정을 아직껏 F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F는 이 때의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피해자의 공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후지이씨)

죄를 인식하고 있지 않은 [가해자]

4명의 소년들의 가족은 사건 후, 곧바로 살고 있던 집을 떠났다. 아직 형기중인 주범 A는, 공판중 「灰谷健次郎의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자신이 나쁜 일을 했다고 느껴 눈물을 흘렸다」라고 하는 취지의 상신서를 제출했다. 지금도 A가 정말로 반성하고 있다면 나머지 몇년으로 그는 소년 형무소로부터 가출옥이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3명의 소년이 출소 후의 사회 생활로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A의 사회복귀는 어렵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세상의 눈도 어렵고, 제대로 한 취직처에 앉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후지이씨는 또하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형사 재판을 받은 것은 4명 뿐입니다만, 감금되어 있는 소녀를 구경가거나 강간에 관련된 무리는 그 밖에도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감금의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구해 내지 않았던 무리의 존재가 사건을 지지해 버렸습니다.」

범죄에 가담하면서도 사회적 제재를 받는 것이 없었던 소년들도 여럿 있다.그들은 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서두에도 쓴 것처럼, 형사 재판을 받지 않았던 다른 3명의 체포자중에는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소년은 「결혼하려고 했는데 상대의 부모에게 사건이 발각되어 결혼할 수 없게 되었다. 벌써 끝난 것인데.」라고 취재한 기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소년원에서 죄의 무게를 인식한 것일까. 그렇다면 「벌써 끝난 것」 등의 말은 나올리가 없지만.

 

 

세상 어떠한 곳에서도 다신 이와같은 이와 비슷한 일이 인류가 멸망할때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네요.. 하루종일 불쌍한 소녀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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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ㅡㅡ|2006.11.01 12:15
정말 이해가 안되는건 사람을 죽였는데. 왜 사형이 안되냐는거다. 아무리 어려도 말이다. 세상이 이상해. 내가 그여자 아버지였음 다 죽여서 복수하고 싶었을것 같은데
베플ㅡㅡ;;|2006.11.01 22:26
저런 영화 보지 마세요. 기분만 나빠지고 님의 정신세계와 눈만 오염됩니다. 저런 쓰레기같은 일본정신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줄까 그래서 제2의 모방범죄가 나올까 심히 우려됩니다.
베플일본원숭이들|2006.11.01 14:36
더러워 더럽고 역겹다 여학생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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