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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표이야기.

바랑 |2007.05.08 23:13
조회 471 |추천 0

한 여름 밤의 장마비가 그치고 천둥번개의 여운만이 일렁이는 상쾌한 아침의 여명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라서 일까. 평소와 다르게 승표는 자명종 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긴 장마 중의 화창한 하루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기분을 좋게 한다.

 

약속시간은 오전 10시.

그는 전자렌지에 살짝 데운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있는 모닝빵 두 개와 허니를 넣은 한잔의 우유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벌써 9시군. 오늘은 새로사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티셔츠와 멋스런 진을 입고 기분 좀 내야겠어.' 그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집을 나선다. 가벼운 발걸음에 휘파람까지 불며 커피숍 앞에 다다랐을 쯤.

지금 시간은 9시 50분. 그는 언제나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 참 좋은 버릇이 있다.

 

경쾌하게 딸랑이는 종이 울리는 문을 열고 커피숍에 들어서자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향긋한 헤이즐넛 원두커피 향과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시크릿 가든의 고요한 음악이 커피숍을 감싸고 돈다.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자 깔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보인다. 테이블 위에 다이어리와 보이스레코더가 놓여진 것으로 봐선 신기자임에 틀림이 없다.

 

승표: 신기자님 되세요?

신기자: 아. 네. 승표씨?

승표: 네. 반갑습니다.

신기자: 네. 저도 반갑습니다.

승표: 좋은 아침이죠?

신기자: 그러게요. 지긋지긋한 장마비가 그치니 좀 살 것 같네요.

승표: 사람들 마음에 쌓인 먼지들 몰고가느라 고생한 비님도 휴식 좀 하셔야죠.허허

신기자: 아 그런가요? 하하하.

 

그렇게 그들은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헤이즐넛 커피를 주문했다. 진한 듯 하면서도 투명한 갈색 톤의 헤이즐넛 커피를 받아 들고 승표는 각설탕을 만지작거린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 하면서도 설레는 듯 하다.

 

신기자: 승표씨 설탕이 신기하세요?

승표: 아뇨. 그건 아니고 지금 넣을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신기자: 뭘 그런걸 가지고 고민하세요. 그냥 넣어서 드시면 되죠.

승표: (기분이 좋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넣으면 되는데......

 

그는 설탕을 넣지 않은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신기자: 맛이 어때요?

승표: 생각보다 향긋하네요. 그런데 사실 제겐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가 익숙하지 않아요.

신기자: 설탕을 넣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승표: 글쎄요. 저도 모르게 넣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테이블 위의 담배 각에서 이내 담배 한 대를 꺼내서 입에 문다.

하늘위로 즐겁게 내뿜어지는 연기들은 그 이유를 아는 듯 했다.

 

신기자: 뭔 담배를 그리도 맛있게 핍니까?

승표: 정신의 비타민이니까요. 비타민은 몸에 좋은 거 아닙니까. 허허.

신기자: 하하. 비타민 좋죠. 그런데 각설탕 알러지라도 생겼나요?

승표는 기자답게 집요한 신기자의 질문에 다시 한 번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신기자: 그럼 나중에 말씀해주세요.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승표: (설레는 듯한 목소리에 약간의 미소를 띄며) 네. 그러죠.

신기자는 보이스 레코더의 전원을 켜고 빽빽하게 적혀있는 다이어리를 펼친다. 승표의 얼굴에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은은한 미소가 그려지고 눈에는 설렘이 어린다.

 

신기자: 그날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승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어요. 그 어느 때 보다 더 열심히.

신기자: 의외로군요. 전 당연히 힘들게 지냈을 줄 알았는데.

승표: 아! 물론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곧 마음의 여유를 찾았어요.

신기자: 그녀를 완전히 떠나 보냈다는 얘기인가요?

승표: 아뇨, 그렇지 않아요.

신기자: 그녀를 떠나 보내지 않고도 그렇게 쉽게 여유를 찾을 수가 있던가요?

승표: 네.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아플 이유가 없었어요.

신기자: 아플 이유가 없다......

승표: 지난 모든 날들을 조목조목 따져봤어요. 제가 했던 행동과 제가 했던 말들을 일일이 기억해내고 그 상황에 비춰봤더니 답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아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지금과 같은 여유가 찾아 들었어요.

 

그는 이전의 승표가 아닌 것 같았다. 너무나 무덤덤했고 의아할 정도로 여유로워 보였다.

 

신기자: 전 그날 승표씨의 전화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과연 그녀는 어떤 여인이고, 둘간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많이 궁금했습니다. 얘기해줄 수 있죠?

승표: 물론이죠. 당연히 제가 요청한 인터뷰이니까요.

신기자: 전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다녀요. 인터뷰를 할 때 마다 늘 관심을 갖고 몰입 하게 되죠.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오는 당연함이란 생각도 들고, 또한 당사자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것 같아 보람도 느낀답니다.

승표: 저 같은 사람에게 신기자님은 사랑의 메신저이자 훌륭한 카운셀러죠.

신기자: 하하. 고맙습니다.

 

승표는 테이블 위의 냉수로 목을 적시고 담배를 입에 문다. 잠시 둘간에는 침묵이 흐른다.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연기를 내뿜고서 승표가 입을 연다.

 

승표: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곳은 한 클럽이었어요. 우연히 적은 인원의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 클럽의 시삽이었어요.

신기자: 아 그랬군요.

승표: 클럽 가입을 앞두고 조금은 망설이다가 그녀의 이름에 끌려 가입을 눌렀어요.

신기자: 이름이 독특한가요?

승표: 독특하진 않지만 참 예쁜 이름이죠. 그러다 그녀의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이름만큼이나 귀여운 외모를 가졌더군요.

신기자: 하하. 그럼 처음부터 강한 필을 받은 건가요?

승표: 뭐 꼭 그렇지는 않지만 약간의 호감은 생겼었죠. 당시 삶이 굉장히 무료하고 건조하던 차에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자던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클럽가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신기자: 네.

승표: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클럽이 아니었던 터라 3명의 회원은 클럽의 채널을 통해 가끔씩 대화를 나누곤 했어요. 그러다가 서로 일촌도 맺고 네이트온 친구도 맺었구요.

신기자: 그럼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누셨겠네요?

승표: 아!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서로의 일이 바쁘기도 했었고, 또한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았어요.

신기자: 안타까웠겠네요?

승표: 네. 조금은 아쉬웠어요. 또한 그녀는 미술을 전공했던 터라 저 같은 공학도가 쉽게 다가가기엔 조금은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기자: 그랬군요.

승표: 그렇게 우리는 가끔 미니홈피나 네이트온을 통해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는 친구로 지냈어요. 저도 그 이상의 호감은 만들지 않았어요.

신기자: 네. 좋아요. 계속하시죠.

 

승표: 아주 가끔씩 연락하던 사이이긴 했지만 꼭 한번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만나자는 제의를 했었죠.

신기자: 만남이 이루어 졌나요?

승표: 아뇨. 아쉽게도 서로의 일과 사정 때문에 만남이 쉽게 이루어 지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만나요.’이런 막연한 약속을 했었죠.

신기자: 하하. 재밌군요.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만나요.’ 저도 묘연의 여인에게 써먹어야겠네요.

 

승표: 그러던 중 작년에는 제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신기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승표: 병원에 입원 하신지 한달도 안된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만 했죠.

신기자: 슬프군요.

승표: 그렇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내겐 더 이상의 연애란 없다. 오직 결혼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신기자: 어머니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승표: 그 이유가 제일 컸어요. 그러나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신기자: 그건 뭐죠?

승표: 주위의 도움을 받아 많은 소개팅을 해봤지만 잘 되질 않더라구요. 전 이성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신기자: 왜 그럴까요?

승표: 글쎄요. 제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특히나 이성에겐 편하게 대하질 못하거든요.

신기자: 아. 치명적이군요.

승표: 그런 제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그런 식으로 작용해서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어요.

신기자: 그렇군요.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죠.

승표: 여하튼 그런 저런 이유로 인해 더 이상의 연애 없이 그냥 막연하게나마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어요.

신기자: 그렇군요. 더 이상의 연애란 없다. 한편으론 안타깝군요.

 

승표: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못내 마음에 걸려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고향으로 올라왔어요. 고향에서 직장을 구하면서 근처에 있는 적당한 여자를 만나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골이라서 직장을 구할 데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렇게 적지 않은 고생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회사를 작년 8월에 입사했어요.

신기자: 네. 잘 됐군요. 이젠 여자만 구하면 되는 거였군요?

승표: 하하. 스토리상 그렇군요. 그런데 새로운 직장은 이전의 직장과 성격이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죠.

신기자: 네. 그래도 승표씨는 열심히 잘 했을 것 같아요.

승표: 네. 열심히 했어요. 생각보다 괜찮은 회사였고, 또한 미래가 밝은 회사라 느꼈어요. 그래서 한동안 다른 잡생각들은 접고 열심히 일을 했어요.

 

신기자: 우리 너무 삼천포로 빠졌군요. 다시 포커스를 바로 잡죠.

승표: 네. 그렇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그녀와 작년 12월 30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신기자: 오~ 브라보~~

승표: 그 만남이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던 건조한 일상 속에서 조금은 나를 설레게 했어요.

신기자: 충분히 설렐 만 해요.

승표: 그렇게 우리는 12월 30일 첫 만남을 가졌어요.

신기자: 어땠나요?

승표: 첫 느낌은 괜찮았어요.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치아가 제 마음에 딱 들었어요.

신기자: 치아요?

승표: 네. 치아. 전 이성을 볼 때 치아를 먼저 봐요.

신기자: 하하. 독특한 성격이군요.

승표: 네. 그런 얘기들 많이 들어요. 그렇게 우리는 첫 만남을 가진 뒤 헤어졌어요.

 

신기자: 그녀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빼앗겼을 것 같은데, 급속도로 친해졌겠어요?

승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거리를 두게 되더라구요.

신기자: 이상하군요. 왜 그랬을까요?

 

승표는 종업원을 불러 커피를 한 잔 더 시킨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에 문다.

 

승표: 그녀에게 충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저의 강박관념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이후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었지만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어요.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거지만 그 때 제 마음은 굉장히 차가웠던 것 같아요.

신기자: 그녀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여유롭던 승표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갔다. 아픔을 되짚어 가는 데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를 깨끗하게 잊어서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사람이거나 혹은 열반의 경지에 오른 성인군자뿐일 것이다.

 

승표: 전 하나도 잘 한 것이 없어요. 아무리 제 가슴이 차가웠더라도 예전의 제 모습만 생각하면 지금 그녀 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어요.

 

승표는 옛날 일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의 눈은 조금씩 충혈되고 이슬로 막이 쳐진 그의 눈은 더 밝게 빛났다.

 

승표: 우리의 만남을 회상해보면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제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대했다는 것이 느껴져요. 함께했던 횟집에서도 즐거워했던 것 같고 특히 그날은 어쩌면 행복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만남을 가진뒤 그녀를 내려주고 오던 길에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당시 대화를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서서히 붉어지던 그의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신기자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진정할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통탄을 하듯이 회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이런 일에 익숙해 있는 신기자라지만 이럴 때에는 절대자가 되어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려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승표는 다시 안정을 찾고 있었다.

 

신기자: 이제 좀 괜찮아 졌나요?

승표: 죄송합니다.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신기자: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샘 솟는 눈물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을 쏟아 내는 것이 안정을 취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승표는 안정을 되찾은 후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승표: 그녀는 저를 만나기 전부터 제게 적지 않은 호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온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전 너무나 차가운 가슴으로 대해버렸어요.

신기자: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승표씨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잖아요?

승표: 그렇긴 하지만 지금의 따뜻한 제 가슴을 감안했을 때에는 상황을 되돌릴 수 없기에 그 당시가 제일 후회됩니다.

신기자: 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승표: 세 번째 만남부터는 조금씩 천천히 마음이 따뜻해 졌어요. 그러다 네 번째 만남에서는 저의 마음이 많이 열렸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표현을 하지 못했어요.

신기자: 마음이 열리게 된 그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승표: 사실 처음 느낌에 그녀는 굉장히 개성이 강하고 화려한 여자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어요.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보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또한 전공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굉장히 수수했어요. 화려하게 치장을 하진 않지만 멋을 아는 그녀였어요. 집안 형편이 나빠 보이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검소한 것 같았고 또한 순수했어요. 그리고 약간의 수줍음을 타는 듯한 그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말이 많지 않은 저 같은 사람 때문에 약간은 어색할 수도 있는 그런 분위기를 낯설어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나면 만날수록 그녀가 너무나 편하게 느껴졌고 이런 마음 때문인지 마음이 쉼 없이 부풀기 시작했어요.

신기자: 와우. 정말 훌륭하군요. 요즘 같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또한 물질적 욕구가 강한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승표씨는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할 것 같은데요?

승표: (므흣한 미소를 지으며) 사실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답니다. 그래서 네 번째 만남 이후 완전히 열린 제 가슴으로 그녀에게 고백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승표: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의 차가웠던 가슴으로 인해 그녀의 가슴도 어느 새 차가워져 있더라구요. 그녀는 저의 고백을 부담스러워 했어요. 이전의 제 모습 때문에 진실하게 받아주기를 꺼려하는 듯 했어요.

신기자: 슬프군요.

승표: 친구가 이런 표현을 하더군요. ‘고등학교 1학년 내내 나를 괴롭히던 애가 있어. 그런데 그 애가 2학년 올라갈 즈음 나에게 화해의 의미로 악수를 청해온다면 그 순간 그 손을 잡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의 진심은 믿을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전 하루빨리 저의 진심이 가식이 아닌, 또한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자 그 어느 때 보다 더 의욕적으로 다가갔어요.

신기자: 이후의 상황 전개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군요.

승표: 네.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런 예측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신기자: 그렇죠. 누구나 눈 먼 사랑 앞에서는 이성을 잃기 마련이니까요.

승표: 그렇게 전 제 가슴에 점점 차오르는 그녀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어요. 받아주지 않는 그녀의 마음 앞에서 늘 조바심을 내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저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어요.

신기자: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승표는 잠시 머뭇거린다. 테이블 위의 생수로 목을 축인뒤 아쉬움이 역역한 표정으로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승표: 그녀가 부담을 느끼는 듯 해서 몇 일간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날은 그녀에게 너무 연락이 하고 싶어서 문자를 보냈어요. 생각보다 빨리 답장이 왔어요. 이후 두 번째 문자를 보냈는데 그녀에게서 연락이 없더군요. 전 속이 타 들어 갔어요. 전 전화를 두고 거실 혹은 화장실에 갔겠지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어요. 하지만 연락이 없었어요. 성급한 마음에 또한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직접 전화를 걸었어요. 하지만 받지를 않았어요. 그렇게 몇 번의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어요.

신기자: 왜 그렇게 연락을 피했을까요?

승표: 저 또한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불안해했던 제 심정에서는 그녀가 의도적으로 피했을 것이라는 위험한 판단을 성급하게 내렸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신기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나요?

승표: 네. 그녀는 전화기를 집에 놓아둔 채 한 시간 가량 산책을 하고 왔더라구요.

신기자: 저런. 그녀가 승표씨의 모습에 당혹스러워 했을 것 같은데?

승표: 네. 맞아요. 그녀는 이미 기분이 많이 상해있었어요. 하지만 당시 조급했던 제 마음은 여유가 없었기에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버린 것이었죠.

신기자: 네. 승표씨의 상황과 그녀의 상황 둘 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승표: 그렇게 트러블이 있은 후 저는 그녀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어요.

신기자: 힘들었겠어요?

 

승표는 식어버린 커피로 목을 축인 뒤 또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그 당시의 상황 때문에 다시금 불안해 지려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듯 했다.

 

승표: 네.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그 때부터 불안함에서 오는 조울증이 심해졌어요. 원사이드 사랑을 몇 번 해봤지만 이만큼 힘든 적은 처음이었어요.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떠오르는 그녀를 생각하면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했어요. 그래서 한 때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렸었어요. 그래서 체중도 많이 줄었고 삶의 의욕도 많이 상실했었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의 왕래도 끊어버리고 퇴근후 그리고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만 지내며 두문불출 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매일 밤 술에 의지해 잠을 청했어요.

신기자: 저런. 진정한 열병이 시작된거군요.

승표: 그리고 한 10일 정도가 지났을 즈음 약간의 안정을 찾고 용기 내어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했어요. 그녀는 흔쾌히 저의 내민 손을 잡아 줬어요. 전 정말 뛸 듯이 기뻤고 그녀의 그런 마음에 너무나 감사했어요.

신기자: 고진감래, 인생만사세옹지마라. 하하. 정말 잘 됐군요.

 

승표: 그 날 이후부터는 소년의 감성으로 돌아갔어요. 그 어느 때 보다 더 많은 글을 썼어요. 그런 제 모습과 마음을 보여주려 했어요. 그 어느 때 보다 잘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불탔지요. 하지만 한 번 어긋난 감정 곡선은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했어요. 그 때부터 저는 순수하게 시작됐던 사랑에 대한 중심을 잃고 그녀에게 제 감정만을 앞세우기 시작했어요.

신기자: 집착이 시작된 거로군요. 어긋난 사랑을 보면 늘 한쪽은 집착을 하게 되더군요. 자신은 너무나 상대방을 좋아하는데 상대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경우 그 마음은 어느 새 집착으로 변하더군요. 그래서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집착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에요. 사랑이란 감정이 잠시 변모했을 뿐 절대 상대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 거죠. 그러나 주로 많은 남녀들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이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어요. 반면 그 과정을 현명하게 잘 극복했을 경우 그 둘은 평범하게 시작한 사랑보다 더 행복할 수 있더라구요. 서로의 소중함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인거죠. 실제로 저와 인터뷰를 했던 분들 중 그런 남녀들이 많이 있답니다.

 

승표: 그렇군요. 여하튼 지나치게 의욕적이던 제 감정에 사로잡혀 생활하던 어느 날 그녀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먼 거리를 달려갔어요. 정말 그녀의 얼굴을 잠시라도 보고 와야만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았거든요.

신기자: 한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했겠죠.

승표: 네. 손이 떨리고 눈동자가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그녀로 가득찬 가슴이 터질만큼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승표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지금 그가 그렇게라도 기억속 그녀와의 만남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 신기자는 안쓰러워 하는 듯 하다.

 

승표: 연락 없이 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녀임을 알면서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그녀가 가끔 오르던 산에 꼭 오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등산복을 입고 그녀를 만나면 입으려고 새로 샀던 옷은 따로 챙겨서 공휴일 날 아침 일찍 그곳으로 떠났어요. 등산을 마친 뒤 사우나에 들러 샤워를 하고 준비해간 옷으로 갈아입고 산에서 찍었던 사진을 그녀에게 전송하고 이곳에 왔음을 알렸어요.

신기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나요?

 

승표: 아뇨.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녀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어요.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그날 제 연락을 피했어요. 전 그 다음날까지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려고 했었어요. 그러다 근처의 한 피씨방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그녀의 미니홈피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신기자: 어떤 식으로 이상했나요?

승표: 저라는 사람의 감정을 한여름 날의 지나가는 대낮 소나기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녀가 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갔지만 미니홈피를 보고 난 뒤 저도 화가 많이 났어요.

신기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승표: 정말이지 너무나 서럽더군요. 그래서 제 미니홈피에 제 느낌을 솔직하게 드러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전해주려고 샀던 선물은 그냥 그녀의 집 앞에 내려놓고 와버렸어요.

신기자: 그녀가 승표씨의 마음을 너무 몰라줬군요.

승표: 네. 당시에는 그 때문에 너무나 화가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다 제가 자처했던 일이죠. 연락 없이 찾아갔던 것 자체도 무모한 일이었구요. 더 큰 맥락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죠.  어차피 세상사는 인과응보의 반복이니까요.

신기자: 네. 인과응보. 동감합니다.

 

승표: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에게서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신기자: 아 그래요?

승표: 전 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락을 피하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두려움에 그녀의 연락에 응한 뒤 이내 어린아이처럼 화를 풀게 되었죠.

신기자: 하하. 그녀를 정말 많이 좋아하긴 했군요.

승표: 당연하죠. 전 언제부터인가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지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그사람이 제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 어린애처럼 굴기도 했죠.

신기자: 네. 대부분 상대에 대한 감정이 부풀어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상대가 미운 짓을 해도 절대로 미워할 수가 없더라구요.

승표: 그 날 이후 우리 사이는 많이 좋아졌어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편안한 문자를 주고 받기도 했구요.

신기자: 장족의 발전이군요.

 

승표: 네. 하지만 그런 편안함 속에서도 늘 불안했어요.

신기자: 안타깝네요. 후회스런 과거로 인해 현실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겠군요.

승표: 네. 늘 감정이 앞서게 되는 제 모습이 감당이 되질 않았어요. 그렇게 일희일비 같은 나날을 보냈어요. 그러던 와중에 또다시 그녀를 그리워하게 되고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에 만나자고 용기 내서 얘기를 했어요.

신기자: 그래서 만남이 이루어 졌나요?

승표: 아뇨. 그녀는 쉽게 허락해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전 서러움에 또 한번 그녀에게 애처럼 굴었죠.

신기자: 하하. 자주 애처럼 그러시는군요.

승표: 그런데 효과가 있었어요. 다음날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전 정말 그렇게 기뻐서 죽을 것 같은 날은 처음이었죠. 또한 그 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그녀를 향한 저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에 너무나 설레고 있었어요.

신기자: 하하. 우리 민족이 간절히 바라는 통일처럼 승표씨가 원하던 그녀와의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 지는 거군요. 저도 그런 절실한 만남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부러워요.

승표: 그러게요. 저도 그런 만남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신기자: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승표: 예정에 없던 비극이 찾아 들었거든요.

 

신기자는 그의 비극 얘기에 너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신기자: 저런. 정말 하늘이 너무도 무심하군요.

승표: 하늘을 탓할 일은 아녔어요. 제가 잘 못했으니.

신기자: 엇!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승표: 만남을 약속한 다음 날 대화를 하던 중 또다시 약간의 트러블이 생겼어요. 그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기분 좋게 대화를 했어요. 여느 때 와는 틀리게 그녀가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해줘서 전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어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던 중 제 얘기를 한참 늘어놓았어요.

신기자: 어떤 얘기였나요?

승표: 저의 집안 얘기였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여 많은 얘기를 정신 없이 늘어놓았죠. 그러던 중 갑자기 그녀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녀는 대화를 종료했어요. 전 당황스러웠어요.

신기자: 뭐가 못마땅했던 걸까요?

승표: 사실 제가 다른 날 보다 훨씬 더 들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제 얘기를 너무 일방적으로 늘어 놓았던 것이 화근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너무 좋은 것도 자제할 줄 알아야 하는 데라는 생각을 하며 미안해하며 내일은 괜찮아 지겠지 라는 믿음을 가졌어요.

 

신기자: 조금 전에 비극이라고 했으니 다음날도 결과가 좋지는 않았겠군요?

승표: 네. 그랬어요. 그녀가 쉽게 풀어질지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 이유로는 제가 늘 일방적이었대요.

신기자: 승표씨가 일방적 이었다구요?

승표: 그녀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나봐요.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녀를 이해하기 보단 그녀의 그런 말이 제겐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리고 그 한마디에 전 너무나 감정적으로 응대했어요.

신기자: 어떻게 했길래요?

승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곧 후회하게 될 일을 저질러 버렸어요. 당시에는 그녀의 그 말이 제겐 비수처럼 느껴졌어요. 도저히 앞으로 그런 감정을 이끌고 생활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녀를 잊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글을 남겼어요. 그리고 유치하지만 더 이상 제 자신이 그녀를 떠올리지 못하도록 제 일상에서 그녀의 모든 흔적들을 지워버렸어요.

 

승표의 기운없는 얼굴엔 후회의 표정이 드러난다. 신기자가 무언가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신기자: 음. 제가 한 마디 해도 될까요?

승표: 네.

신기자: 제 느낌에는 그날 그녀의 말은 승표씨에 대한 느낌을 그냥 솔직히 표현한 것 같아요. 뭔가 꼬여 있는 것을 풀기 위한 그녀의 시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승표씨가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을 한 것 같군요. 물론 승표씨의 상황도 이해를 하지만 그 날은 그녀를 이해해 줬어야 했던 것 같아요.

승표: 맞아요. 이미 그날 신기자님의 말씀처럼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스스로 엄청난 후회를 했어요. 늘 불안했던 자신을 진정시키려 마시던 술이 그날은 오히려 독이 됐던 것 같아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에게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늘 참회하듯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랜 대화가 잠시 멈추고 승표는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신다. 신기자 또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문다.

 

신기자: (승표에게 담배를 건네며) 담배 한 대 태우시죠?

승표: 네. 감사합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신기자가 입을 뗀다.

 

신기자: 승표씨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 같아요. 그녀 때문에 적지 않은 눈물을 흘렸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승표: 네. 저라는 사람 눈물이 적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녀로 인한 눈물은 딱 두 번 흘렸습니다. 한 번은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그녀의 사진첩을 보는데 너무나 환하게 미소 짖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저를 울렸어요. 정말 그녀의 미소에 대한 간절함이 절실했습니다.

신기자: 그렇군요. 그리고 또 한 번은요?

승표: 최근에 대화를 나눌 때였어요.

신기자: 아. 그 날 이후 또 대화를 나눴었나요?

승표: 네. 염치없이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요. 예상대로 그녀는 너무나 차갑더군요. 저로 인해 화가 많이 난 듯 했어요. 그런데 또 일방적으로 제 얘기만 해버린 것 같아요.

신기자: 그렇군요. 그게 마지막인가요?

승표: 네. 그 날 그녀에게 연락한 이후 더이상 연락을 않고 있는, 아니 못하는 상황이죠.

 

승표는 눈을 감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신기자는 그 사이 보이스레코더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다이어리를 이리저리 훑어 본다.

 

신기자: 인터뷰 처음에 잘 지내신다고 했잖아요? 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승표: (고개를 끄덕이며) 네. 무척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기자: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회복을 한 거죠?

승표: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그녀를 잊어서 제가 편한 것이 아니에요. 신기자님과의 대화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봤어요. 그녀는 제게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고 또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조울증에 시달려 그녀를 힘들게 했던 승표는 저의 본 모습이 아닙니다.

신기자: 결과론 적인 얘기가 아닐까요?

승표: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다행히도 신은 인간들에게 학습하는 능력을 주셨어요. 사랑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과정 속에서 오점을 발견하면 그것들을 바로잡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면 되는거죠. 제 생각이 잘 못 됐나요?

신기자: 그럼 다음에 만날 여자에겐 지금과 같은 과오는 되풀이 하지 않겠군요?

승표: (살며시 미소 지으며) 신기자님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히 부정적이시군요. 그런 뜻이 아니죠.

신기자: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승표씨의 말에 저 또한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승표씨가 얻게 된 그런 여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승표: 이런, 제가 속은 건가요?

신기자: 생각보다 순진하시네요. 하하. 승표씨가 바라는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가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대화인거죠. 이는 그 누구 보다도 지금의 승표씨가 잘 알거란 생각이 듭니다.

승표: 네. 맞아요.

승표: 사실 지금도 늘 그녀를 생각합니다. 퇴근길 집으로 오는 구간 중에 휴대폰 중계기의 전계강도가 약해서 통화 중에 전화가 끊어지는 구간이 있어요. 예전에 그구간을 지나오며 통화를 하다보면 전화가 끊어졌어요. 그러면 이내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그러면서 이런말을 했죠. '사고라도 났는 줄 알고 놀랬자나요.' 그래서 그 구간을 지날 때 마다 매일 그녀 생각을 하게 되죠.

신기자: 하하. 그녀도 적지않게 승표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군요.

 

승표: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문세 아저씨가 아침 출근길에 ‘사랑해...(feat 알렉스) - 지선’의 노래를 틀어주는데 또 그녀가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그녀에게 예쁜 휴대폰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예쁜 휴대폰을 봐도 그녀가 먼저 떠올라요. 또 한가지, 그녀를 만나러 가기위해 퇴근후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후진을 하다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어요. 그때 생긴 뒤쪽 범퍼 왼쪽에 생긴 흔적을 볼 때에도 그녀가 생각나지요.

 

승표는 설레는 듯 편안한 미소를 띄며 말을 계속 이어간다.

승표: 사실 이건 좀 엉뚱하긴 하지만 식사 중에 멸치대가리 혹은 생선만 봐도 그녀가 떠올라요. 그녀가 생선 초밥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회사에서 업무일지를 쓸때 고객란이 있어요. 그때 치과를 찾기위해 원장이름으로 검색을 하죠. 그럼 원장이름에 해당되는 전국의 모든 치과가 나타나요. '홍길동'으로 검색하면 5개 정도의 치과가 뜨는데, 그중 한 치과를 보면 또 그녀생각이 나죠.

신기자: 그녀가 사는 곳에 있는 치과인가요?

승표: 네. 베스트치과라고 그녀가 자주 나가는 읍내에 있는 치과인데 그 주소를 보면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래요.

신기자: 하하. 승표씨의 가슴은 여전히 뛰고있군요. 좋은 현상입니다.

 

승표: 그래서 요즘도 하루에 그녀를 몇 번씩 생각합니다. 감정을 앞세우던 때에는 그녀를 생각하면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힘들지가 않아요.

승표: 무엇보다 그녀가 최근 나눈 대화에서 혼자 있게 해달랬어요. 그렇게 그녀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진정한 배려이자 최선의 노력인것 같아요.

신기자: 아. 따뜻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느껴지는 군요.

 

승표: 그녀와 전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환하게 미소 짓기, 나란히 여유롭게 걷기, 초밥이랑 해삼 먹기, 그리고 그녀와 똑같이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 마시기 등 너무나 많습니다.

신기자: 하하. 그래서 설탕을 넣지 않았군요. 재밌네요. 제가 다 설렙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된 것 같은데 혹시 지금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마디 하시죠?

 

승표: 내가 너무 긴 시간을 어리석게도 바보처럼 보냈던 것 같아. 지금의 나, 너로 인해 나를 반성하는 법을 배웠고, 너로 인해 진정한 배려를 알게 되었고, 너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찾았어. 너와의 일을 되돌아 보며 조급해하고 불안해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허물을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반성하며 참회하듯 열심히 살고 있어. 나 늘 기도해. 나로 인한 너의 노여움이 하루 빨리 풀리기를 말이야.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절에 가서 부처님께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올 까봐. 오늘은 해가 떴지만 내일부터 또 비가 올지 몰라.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비 맞지 않게 큰 우산 쓰고다녀. 올해가 다하기전까지 늘 건강하게 잘 지내고있어.

 

승표: 그리고......

승표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설렘으로 가득찬 한 마디를 남긴다.

 

승표: 보고싶다.

승표: 많이......

 

'보고싶다. 많이'라는 여운섞인 그 한마디 말에 승표의 떨림이 묻어 있었다. 그 한 마디에서 진정 그녀를 향한 그리움과 깊어진 그의 마음이 녹아있는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신기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지자 이내 승표의 얼굴도 따라서 밝아진다.

신기자: 네. 좋습니다. 승표씨와의 인터뷰 기사는 다가오는 08월 06일자 재회일보 ‘희망 찾기’ 코너에 특집으로 실을까 합니다. 재회일보의 명성에 걸 맞는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다른 때와 틀리게 훨씬 더 기대가 큽니다.

신기자: 참, 희망 찾기 코너를 통해 관계가 호전된 남녀에겐 본사에서 준비한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승표: 네. 신현기자님. 인터뷰의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 얘기 들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신기자: 하하. 무슨 말씀을요.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제 직업인걸요. 오늘 안정된 장승표씨의 모습도 너무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파이팅 입니다.

승표: 네. 파이팅!~~

 

사람들은 위기에 처해있거나 난처한 상황에서 그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사랑 앞에서 힘들어 하는 경우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온갖 재주를 불사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 그림을 그릴테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서 들려주거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그리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선물을 직접 만들어서 진심을 표현한다. 그러나 승표는 그와 같은 촉매 역할을 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한 신문사의 기자를 통해 인터뷰 기사에 정성스런 그의 마음을 실어 보내는 것이 그가 그녀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믿고 있다. 오늘 밤에는 승표의 마음속 울림이 반드시 그녀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고 잠을 청할까 한다.

 

"승표씨! 다시 웃으면서 꼭 그녀앞에서 그녀의 예쁜 이름 부를 수 있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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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얘기를 승표에 빗대어 만들어 봤습니다.

승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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