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0일,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
첼시와의 경기를 앞둔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경기장 한쪽 코너에 위치한 선수 입장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통로 주위에 늘어선 채 누군가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라운드에 채 오르지도 못한 채 무척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던 맨유 선수들은 잠시 후 내키지 않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챔피언' 첼시 선수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그라운드 위로 걸어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즌 도중 우승팀이 확정되는 경우, 영국 축구계의 관례에 따라 확정 직후 우승팀을 홈에서 맞이하는 첫번째 팀 선수들이 '챔피언'의 입장을 박수로 맞이하는 작은 행사였다. 라이벌 팀에게 우승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영접'을 해야하다니 하필이면 그날 맞붙게 된 맨유 입장에서는 매우 잔인한 이벤트인 셈이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낸드 같은 쟁쟁한 선수들의 얼굴은 말그대로 '뭐 씹은' 표정이었지만 박수를 멈추지는 않았다. 주장 램파드를 앞장세워 그라운드에 오르는 첼시 선수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는 아닐지언정) 이렇게 박수를 보내는 일이 패자의 도리요, 승자에 대한 경의라는 인식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역사는 반복된다.
꼭 2년이 지난 5월 9일. 이번에는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똑같은 장면이 재현된다. 물론, 이번에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양쪽으로 도열한 채 박수를 보내던 빨간색 유니폼의 맨유 선수들이 이번에는 푸른색 첼시 선수들과 첼시 홈팬들의 '영접'을 받게 된다.
일부 팬들의 주장처럼 굴욕적일 수 있는 이 행사를 첼시 선수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첼시의 주장 존 테리는 8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무리뉴 감독도 맨유 선수들이 입장할 때 경의를 표하라고 이야기했다. 선수들 표정이 썩 밝지는 않겠지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것"이라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박수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2년전 장면이 이번에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재현될 것이라고 밝히는 심정이 아무래도 편할 리는 없을 것 같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2경기를 남겨놓은 첼시는 9일(한국시간 10일 새벽) 맨유와의 일전을 벌일 예정이지만 이미 승점 차가 7점으로 벌어진 상태라 준우승이 확정됐다. 첼시는 지난 주말 아스날 원정에서 불라루즈의 퇴장으로 10명이 뛰는 악조건 속에 막판 공격 기회를 잡았지만 역전에 실패했다.
이미 우승팀이 확정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기라 맥이 빠지기는 하지만 맨유가 입장할 때 첼시 선수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박수를 보내든 분명 보기 드문 풍경이 될 것이라 많은 팬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또한, 이 경기는 두 팀이 함께 도전하는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FA컵)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열리는 것이어서 내용 면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년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챔피언'이 확정된 원정팀 첼시가 티아구, 구드욘센, 조 콜의 연속골을 묶어 판 니스텔로이가 선제골을 넣은 맨유에 3-1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서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