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모든 매스컴에서 빠지지 않는 이슈가 “한나라당 경선룰”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매번 이 기사를 접할 때마다 항상 처음 들었던 생각이 “과연 합의가 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물론 누구에게 유리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방금 뉴스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여론조사 반영비율에 대해 양보의 뜻을 밝힘으로써 물 건너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경선룰 합의’가 새로운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보도를 지켜보기 전에는 결코 ‘합의’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합의는 생각만큼이나 쉬운 과정은 아니다. 때문에 ‘합의’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내와 이해가 필요하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응해야 할 때도 있고, 반드시 고수해야 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까지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이유는 어려운 대가를 감수한다하더라도 합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를 이루기 위한 기본자세는 무엇일까? 주관적인 생각으로 합의의 출발은 “내가 상대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가 아닌 “내가 상대에게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서로 자기 것만 취하려고 하다보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평행선에 꼭지점을 찍고, 상대방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아량이 필요할 것이다.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과연 누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그 어려운 과정이 결국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결단을 통해 해결국면으로 가고 있다.
모든 걸 떠나서 이제 “한나라당 분열”이네, “갈등”이네 하는 식상하고, 짜증났던 기사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다행이다.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이번 결정은 정말 어렵고도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혹여 훗날 경선결과에 따라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일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오늘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결단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범여권에서도 누군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서로가 자기 잘났다고 눈치보는 것은 올바른 문제해결의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무쪼록 능력있고, 훌륭한 후보가 하루빨리 많은 국민들 앞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2월 대선에서 무턱대고 누구를 찍는 선거가 아닌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한참 고민해야 하는 행복한 기로에 설 수 있기를 꿈꾼다면 그것은 나만의 허황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