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 페르츠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외경(外經)으로 전해져 오는 인물로서 기독교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구두장이였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그의 집 문 앞에서 쓰러졌을 때, 잠깐 쉬게 해 달라는 예수의 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 저주로 예수 재림 때까지 죽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악마적 인물이다.
이에 반하는 성경속 인물은 ,,,^^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제자는 죽지 않으리라는 소문이 퍼졌다.-----------------요한 21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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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 세인트 저메인
1600년대 영국의 왕실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저메인 백작은 1780년이 되어도 왕실을 떠나지않고 왕들의 옆에서 조언을 하고 보석을 만들다1774년 프랑스로 거처를 옮겨 루이 15세를 도와주었다고 하며, 1784년 독일을 방문한 그는, 자신이 불노장생을 할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왕이 '지금죽지 않으면 처형을 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놓자, 왕 앞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1784년 저메인 백작이 영원히 죽은줄만 알았던독일의 왕은 1831년 스페인을 방문했다가저메인 백작이 스페인의 국왕옆에서 조언을 하고 있던것을 발견한뒤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1785년 영국의 프리메이슨 그룹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던 저메인 백작은 1821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열렸던 유럽정상의모임에 전혀 늙지 않은 모습으로 참석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하며, 1930년 신지학 협회(Theoso-phical Society)의 멤버인 애니 베산트씨는 미국의플로리다를 항해하던 여객선의 갑판에서 자신을 저메인 백작이라고 소개하며 작은 다이아몬드를 준 정체불명의 청년을 만났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1972년 프랑스에서는 자신을 저메인 백작이라고소개한 청년이 TV에서 연금술 시범을 보인뒤 사람들의 관심을 사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나, 실제 이름이 리차드 샨프레이로 밝혀진 그는 가짜였음이 판명났다고 합니다.
13000년전 고대 아틀란티스에서 전수된 연금술법으로 세계를 돌며 왕이나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접근하여 쇠를 금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저메인 백작은 현재 영국과 프랑스, 터키,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네델란드, 노르웨이등의 중세시대 역사에 약 250년간 동일 이름으로 등장을 한다고 합니다.
1670년대 그의 재능을 지켜본 독일의 국왕에 의해 백작 작위를 수여받은 그는 왕에게서 하사받은 땅에 성을 지어 살았다고 하며, 그가 흡혈귀였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이유는 그와 함께 살던 여인이 어디서 가져온것인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피로 밤마다 목욕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다고합니다.
1700년대초 스페인을 방문한 중국 왕실의 사절단과의 통역, 스페인 사절단의 인도 방문시 통역,그리고 터키인들과의 물물 교류시 유창한 터키어를 구사한 저메인 백작은 세계에 있는 모든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하며,1989년 영화 인디아나존스 3을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성배에 담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이야기'의 구성을저메인 백작에게 맞추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왕들의 패션감각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등을 전수한 저메인 백작은 지금도 지구상의 어딘가에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고 하며, 실제로 전세계에서는 자신을 저메인 백작이라고 사칭하며 사이비종교 활동을 벌이는사람들이 종종 나타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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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제르맹 백작(이것이 그의 본명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 이름으로 통했다)은 동시대를 초월하는 사상과 재능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의혹과 반감, 불신 등을 불러 일으키는 타입의 인물이었다. 18세기의 유럽을 무대로 활약한 이 인물은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윌폴의 말을 빌리면 기벽의 소유자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 볼테르에 따르면 '결코 죽는 일 없는, 모든 것을 다 아는' 남자로 평가됐다.
그는 유럽의 어디에선가 홀연히 모습을 나타냈으며,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볼 때 그 주위에는 항상 음모와 마력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의 애인인 마담 퐁파드르에게 시대의 바람을 짧게 요약해서 들려준 적이 있다. "마담, 세상 모든 귀분인들의 소망은 '불로의 묘약'이며 또한 세상 모든 신사들의 소망은 '현자의 돌'이지요. 전자는 즉 영원한 아름다움, 후자는 영원한 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제르맹 백작은 그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야말로 이 두 가지 비밀을 발견한 사람이며, 그것을 스스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를 18세기 최고의 신비주의자로 간주하며 숭배하는 사람들이 적지않게 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고대의 지혜'로부터 진실의 힘을 이끌어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 보기 드문 인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두뇌 회전이 빠르고 입담 좋은 사기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순전히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귀족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의 생애를 주의 깊게 분석해 나가다 보면 전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그가 범상치 않았던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그의 수명을 둘러싼 이야기를 살펴보자.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는 1710년에 45살이나 50살쯤으로 보였던 듯 하다. 한편 1829년에는 마담 다데마르가 그와 만났던 날의 일기를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150살까지는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두가지 보고에 대해 뒷받침이 없다거나 나이든 여자의 불확실한 기억으로 제외하더라도, 1723년에 그가 성인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존재한다. 그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활약했으므로 적어도 90살까지는 살았던 것만은 분명할 듯하다. 하지만 혁명 당시의 다른 모든 대부분의 보고에는 그가 40대로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그가 이룬 업적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다. 그는 언제나 그 시대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부자로 간주되고 있었으며, 그뿐 아니라 어학의 천재(유럽 각국어에 능통했으며 아라비어어, 동양과 고대언어에도 능통했다)였고, 재능있는 피아니스트 겸 바이올리니스토였으며, 의복의 염색이나 가죽의 무두질과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의 선구적 발명가였고, 무엇보다 대화의 달인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그라프 칼 코벤체르는 "전 생애를 통해서 만나 본 인물 가운데 가장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그들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다른 측면을 시사하고 있다. 즉,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잃어버린 지식을 찾고자 계속해서 노력했으며, 오컬트계의 명성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생활은 매우 소박한 편이었는데(그는 채식주의자의자 금주주의자이며, 자신이 먹은 음식값은 반드시 자신이 치렀다), 부의 원천은 다이아몬드 수집이었던 듯하다. 그는 평소 '현자의 돌'의 비밀을 손에 넣었기에 자신은 다이아몬드의 질을 향상시키거나 크게 만들 수가 잇노라고 공언했었다. 또한 그는 히말라야를 여행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남자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18세기의 3대 신비주의자인 생 마르탱, 메스테르, 칼리오스트로는 그의 제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별로 여행을 하기도 했었다(요즘은 체외유리라 불리는 것)고 했다. "나는 긴 시간 동안 우주를 날아다녔다. 첸체들은 내 주위에서 회전했으며, 지구는 내 발 밑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또 어느때인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육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동안에 시간을 빠져나왔다"고도 말하고 있다.
만일 정말로 고대의 지혜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생제르맹 백작은 그것을 계승하거나 혹은 재발견한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쓴 원고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라 트레 상테 트리노조피>라는 제목의 글 뿐이며, 현재는 프랑스의 트로와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온통 수수께끼와 같은 문장들로 가득 차 있어서 아직도 해독되지 않고 있다. 또한 그의 생애 역시 우리들에게 풀지 못한 수수께끼인 채로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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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제르맹 이야기
생 제르맹(St. Germain) 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은 1711년 독일의 콜로니아(Collonia) - 오늘날에는 콜린(Kolin)으로알려져 있는 - 에서 라코크찌(Rakoczi)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별자리는 백양궁 자리이다. 그는 생 제르맹 백작(Count)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장미십자가(Rosicrucian 로지크루션) 라고 하는 세력 있는 그룹과 가깝게 되었는데, 그는 왕들과 귀족들과 같은 권력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 데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에게는 도덕 관념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통제력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장미십자가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환각과 기만술을 활용하여, 그는 추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위대한 마술사라는 거짓을 쉽게 믿도록 만들었다. 미술과 연금술에 특히 재능이 있었던 관계로 당시 사람들의 단순한 마음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생 제르맹은 결코 장미십자가의 회원이 되지 못했다. 비록 그 자신은 회원으로서 세븐쓰 비임(Seventh Beam) 이라고 하는 - 조직내에서 두령이 될 수 있는 '이니시에이티드 완(Initiated One, 전수받은 자라는 뜻)' 이 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 고위직까지 차지했다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사실상 그는 화학에 뛰어난 미술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던 화학 지식은 그로 하여금 금속에 어떤 화학 약품들을 입혀 금으로 보이게 하는 (현대식으로 말하면 도금 기술을 가진) 것을 가능케 해주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귀부인들에게 최면을 걸어 그들의 비밀을 설토하게 만든 다음, 그들을 깨운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척하고 있는 능력들에 대해 놀라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최면에 빠지고 있으며 그토록 쉽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음을 확신시키려고 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의식에 미치는 최면의 힘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높이기 위해, 그는 중국을 여행했었다고 주장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장미십자가에 보고하는 일 때문에 베를린에 갔을 뿐이었다. 그가 갔던 곳은 장미십자가의 분리된 소그룹이었다. 왜냐하면 다수파의 본부는 비엔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미십자가는 연금술을 사용하여 그를 젊어 보이게 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정말로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73세의 나이에 죽고 나자, 장미십자가는 그와 비슷하게 생긴 사랍들을 찾아서 그들의 얼굴을 고쳐서 이 신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그의 영혼을 추적하였는데, 생 제르맹으로 알려졌던 존재는 현재 이 세상으로 환생하여 독일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