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악에 받혔다...

시댁안티 |2007.05.24 04:23
조회 2,294 |추천 0

내가 19살에 만난 내 남편.나보다 11살이나 많은 사람.

3년을 사귀고서야 이혼남에 전처와 사이에 초등학생 아이도 있고 B형간염에 걸린 사람이란걸

털어놓은 사람.

내 나이 고작 22살. 사랑했고 없으면 죽을거 같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로 했다.

 

23살 봄 결혼하고자 하였는데

남편은 자기 집에 결혼한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고 상견례하자는 우리 엄마아빠에게

자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상견례가 조금 힘들다며 일단 날짜를 잡자 해서

결혼 날짜 잡고 불과 결혼을 1주일 앞두고 시댁에 인사하러 갔는데...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에 눈이 찢어질듯 나를 째려보던 시어머니...

결혼반대하셨다. 나는 이혼남에 건강도 안좋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그 사람 집에서

반대할지 상상도 못했고 또 결혼식 올리는걸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남편이 일방적으로 1주일뒤 결혼할거라 통보를 했단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에게 물으셨다.

"다 알고 있느냐"고. 남편이 이혼남이고 애딸리고 아픈걸 아냐고 묻는것.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이야기 했고

"아들 나이에 4짜가 끼었으니 결혼하지 말라"는 어머님 말에 결혼 안하겠다고 울며 대답했다.

이 무슨 개같은 상황인가.... 아무리 어리다지만 나도 참 멍청한 년이었다.

 

남편은 빈털털이였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해야겠다 결심한건 남편이 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사회 초년생인 내가 만든 카드로 그의 여관비를 1달정도

긁어주니 한도액이 다 차버렸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보증금 50만원에 월 12만원 짜리 방도 아닌

광같은 벽도 우글쭈글한 이상한 주택방에 살게 됐다.

욕실도 없었고 수도꼭지 달랑 하나 있는 시멘트 바른 입구에서 부르스타 갔다놓고 밥도

하고 찌개도 끓였다. 쥐가 올라왔고 화장실은 방 밖에 공용화장실을 썼다.

불과 몇년 전 이야기다. 몇십년전 이야기가 아닌....

그때 난 머저리 처럼 행복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끔직하고 경악스럽다.

 

나는 결혼식도 못올리게 한 그 집에 며느리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결혼반지를 사주셨고 우린 혼인신고만 했다.

아무도 결혼한 형제(사촌까지 통틀어)가 없던 우리 친정...그리고 우리 부모님에게 첫딸인

내가 결혼이란걸 식도 못올리고 혼인신고만 하고 시작한....

엄마아빠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죽을만큼 후회할지... 그땐 몰랐다.

남편이랑 사는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했던 미친년이었다.

친정아빠가 결혼반지를 사주셨다. 그리고 제주도로 여행도 보내주셨다.

그렇게 나는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댁에도 며느리 노릇을 시작했다.

 

시어머니 환갑이 다가왔다. 50만원씩 내라는 시누의 통보전화가 남편에게 걸려왔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시아버지 환갑에는 롯데월드 가서 자장면 사드렸던 우리 시댁...

내가 들어오니 뭔가 집안의 뼈대를 세워야 했나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못한거 어머니께는 잘해야겠다 뒤늦게 정신차렸는지...

없는 살림에 50만원이란 거금을 힘들게 만들어 입금했다. 하지만 안낸사람은 안냈다.

장남인 아주버님은 이래서 못냈고 큰시누는 저래서 못내고 어떤시누는 그래서 못냈는데

나는 냈다. 병원비도 냈고 용돈도 냈고... 내 사정이야어쨌던 굶던 말던 내라 명령에 냈다.

 

임신을 했다.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멍청한 년이라 아들까지 불쌍하게 만들어서.

임신을 했는데도 내 아이에게 미안하게도 얘길 못했다.

 

나보다 1달반 먼저 임신한 셋째 시누는 시댁모임에 임신이라고 대접받고

편히 쉴때 난 말 못하고 서서 설겆이 하고 일했다. 서럽더라....

입덧도 할때였는데 꾹 참았다. 입덧이 참아지더라... 배가 아팠는데도 참았다...바보같은것...

 

4개월 넘어서야 겨우 얘길 꺼냈지만... 

시어머님께 살짝 임신했다 말했다. 시어머님은 가족들 모두 모인 그 자리에서

"얘가 임신했단다"라고 선포하셨고... 그말에 시댁가족 누구도 축하한단말 한마디 안했다.

묵묵부답...적막한 그 시간....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

누군 생긴 그 자체가 축하할 일이라 꽹과리 불고 나팔부는데...우리 아이는

축하한단 말한마디 못들었다니...

내가 죽일년이다... 내가 미친년이다.... 아이에게 미안해 한이 맺힌다...마음이 아프다.

 

아기를 낳았다... 한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아기가 7개월이나 됐을까. 남편이 실직을 했다.

그 이후로 기약없이 놀기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떨어졌고...

분유 기저귀도 떨어졌다...

분유 기저귀가 떨어져...발을 동동 구를때... 친정엄마가 친정아버지한테 살짝 귀띔을 했다...

아버지가... 분유 한박스..기저귀 한박스를... 사들고 오셨다..... 눈물이 났다....

 

내 남편에겐 형이 있다.

노가다를 어쩌다 하고 동거녀한테 얹혀 살고.. 맨날 술먹고 막말하고 지앞가림 못하고...

시누이들 시엄마 애인들에게 전전하며 얹혀 사는... 장남 대접은 받으면서 장남노릇은 안하는

형이 한명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허황되고 뜬구름이었고 그러니 한방만 잡으려 하니 착실한 일같은건

하지 않았다. 다단계를 네트워크라 우기고 인생 한방만을 찾고 로또만 사는 사람...

내 남편은 차남인데... 장남노릇을 시누들은 바랬다.

장남이 저 모양이니 그들에겐 차남이 장남노릇 하는게 최선이었을테니.

나는 덕분에 맏며늘(장남이 결혼을 마흔되도록 못하는 바람에 외며늘이었다)노릇 하길 원했다.

아주버님은 정말 막말 함부로 하고... 내가 입에서 거품물도록 욕할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러던 중..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정말 좋은 분이었다. 나에게..따뜻하셨고 예뻐하셨고 상처한번 준일이 없으셨던 좋은분이다.

정말 많이 울었다.

 

그런데...

장례식 내내 아주버님은 날 하녀부리듯 했다.

막 뭐라 하고 이거해라 저거해라... 상주 주제에 술이나 쳐먹고 곡도 안하는 인간이....

장례식을 마치고 시댁으로 갔는데 또 막말을 했다.너무 열이 받아서 밖에 나가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며칠후....

우리 아버지를 욕했다. 아버지는 이단이고(장로교 목사님이신데..) 우리아버지 나온 대학은

자신이 좀 아는데 뭣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면서 비아냥 거렸다....

묻고 싶다... 아무리 설령 이단일지라도. 설령 사돈어른이 나온 대학,대학원이 별게 아닐지라도

그렇제 아는척 잘난척 하면서 비아냥거리고 모욕해도 되는건지.

그게 별일 아닌건지....

 

시어머님은 내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결론을 냈고 시누는 자기엄마 불쌍하다고 울고불고 했다.

시어머니는 "친정 부모 욕을 해도 참아야지 출가외인인 니가 어찌 이럴수 있냐"라는 말로

결정적인 발언을 날리셨다. 몇년지난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시댁사람들은 그게 다 별게 아니라 했다. 남편은 시댁식구들에게 막 뭐라 했고 싸워줬고

난 울고만 있었던....그 밤에 남편과 나는 올라왔다.

 

그 이후로 몇달 시댁과 연락을 안했는데....

그 몇달...

남편은 계속 기약없이 실직상태로 집에서 놀았고

나는 갈비집, 마트등등 잡일을 했다. 태어나서 힘든일을 처음해봐서 오래 하진 못했지만...

어쨌던 닥치는대로 일했다...

시댁은 실직을 해서 시아버지 장례식에 손님 하나 안오게 만든 당신 아들 부부를 욕했지만....

나는 당장 남편이 실직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친정에서 도움도 받고... 해서 겨우 살았다...

그리고 몇달후 내가 전화를 했고(그땐 그래도 착한 며느리였다...) 다시 시댁과 왕래를 했다.

아주버님의 발언도 용서할수 없지만... 시댁의 뒷 대응이 더 상처였다.

당신의 아들은 그런 말 할수 있고... 며느리인 나는 다 참아야 하는거라는.... 그 팔굽힘...

 

그이후로 또 벨도 없고 속도 없던 나는 또 착하게 헤헤거리며 며느리 노릇 했고

완벽하진 않지만 열심히 며느리 노릇을 했다.

아이가 어느정도 크자(2돌) 나는 아이를 놀이방 친정엄마 친정할머니 이곳저곳 등등에

전전하며 맡겨가며 맞벌이를 했다. 지금 5살인 내 아이는 손톱발톱을 물어뜯고

분리불안장애를 느끼며 나랑 헤어지기 싫어한다.

 

그러던 차에....

아주버님이 결혼을 한단다.

나이 40살에.. 시이모님의 며느리의 소개로 선을 봤는데 2달만에 결혼하기로 했다나...

아주버님은 고졸에 백수에 노가다에 돈한푼 없이 엄마 등쳐먹고 사는 남자가...

성균관대 졸업에 사업가에 호탕한 사람에 돈많은 사람에 집있는 사람이 되어 장가를 갔다.

선이란게 과장되었다지만 아주버님은 완전 사기쳐 가더라... 보는 나는 너무 불안했다.

저 사기가 안들킬수 있는게 아니잖은가... 그런데도 시댁식구들은 잘살기를 기대하며 보내더라.

어머님에겐 아버님이 돌아가실때 나온 산재보상금이 있었다. 얼마 안되는 몇천쯤...

그돈.. 연애하면서 아주버님한테 주고 결혼시키고....

 

나같으면 내 아버지가 큰병원도 못가시고

(큰병원에서 진료해 병명이 바뀌면 산재처리가 취소될수 있었다.그래서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신후 어머님의 삶을 위해 아버지가 작은병원에서 참고 돌아가셔서 나온 산재보상금

이라면 나는 내가 딸이라면 목숨걸고 지키겠다.. 엄마한테 욕을 해서라도 지켜주겠다..

하지만 우리 시누들은 욕을 좀 하면서도 걍 내비뒀고 울 어머니는 올인하셨다.

뭐 자기돈 그러시는데 둘째며늘...아무 권한도 없는 이집 하녀가 무슨 발언권이 있었겠나...

 

그 돈으로 큰며느리 예물해 주고... 결혼사진 찍게 해주고.. 뭐 해주고 뭐해주고....

바쁘셨던 우리 어머니....

내 목에 걸린 목걸이 보시고는..

(내가 맞벌이 할때 귀금속 하나 없는게 쪽팔려 큰맘먹고 산 10만원짜리 14K목걸이였다...)

됐다...라고 하셨던 우리 어머니...

그거 있으니 됐다라는 소리지... 넌 됐다는 소리지..안사준단 소리지...넌 안해줘도 된단 소리지...

둘째 며느리는 가락지 하나 안해주시고 면사포 한번 안씌워주셨던 우리 어머니...

결혼은 내 후년에 니가 벌어서 하랬던.... 우리 어머니..

큰며늘 들이시면서 행복했던 우리 어머니....

안부 전화 드리면 뭐가 그리 바쁘신지 결혼식날 한복 입고 오란 소리만 하고 딱 끊으셨던

우리 어머니...

 

결혼식 가니까 정말... 판타스틱 했다.

아주버님은 호남에 맏며늘 형님은 화려한 흰 웨딩드레스...

로비에 걸려있는 두분의 멋진 웨딩촬영사진... 하객들..친지들.....

내 눈앞에 펼쳐있는.. 멋있는 결혼식인.... 날 지옥으로 보낸 그 풍경들...

 

나는 그날까지도

우리 어머니는 우리 시어머니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끼시는데(날 딸이라 하셨다)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마음은 굴뚝같은데 결혼식도 못시켜 주시는거고

가락지 하나 못! 사주시는거라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거다...

형님 몇세트 해주고도 나한테 쉬쉬하고... 해외로 신혼여행도 보내주고...

사람들 불러다 결혼시켜 줄줄 알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해줄줄 알면서...

나에겐 못해준게 아니라 안해준거란걸... 그날 알았다.

차에 가서 혼자 대성통곡을 했다... 예식장에선 나도 환하게 웃었지만... 끝내 차에가서

혼자 대성통곡을 했다...

 

그 날 이후로... 난 병이 생겼다. 홧병이 생겼다.

집에서 빨래를 개다가도.. 18x새끼 등등...막 나도 모르게 쌍욕을 하고 있었고

창밖을 바라보며 막 통곡해 울었다.설겆이 하면서도 막 쌍욕을 했다.

나는 그날까지도 자라면서 욕 한마디 안했던 사람이었다...

 

마음엔 분노가 가득했다. 나에 대한 환멸...

철이 없어도 유분수도 아무리 어리다 한들이지 미친년이고 내가 멍청한년이고

머저리 등신 바보같은년 하면서 죽음을 자주 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난 어떻게 하면 죽을까... 자주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쉽게 죽을까 어떻게 하면 안아프게 죽을까...고민했다.

 

하지만 죽는건 정말 쉽지 않았다. 나에겐 그 모든것을 초월하고도 남는 소중한 아이가 있었고

시댁 일만 아니라면 나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나를 너무나 아껴 주었기에 남편의 과거나 남편의 행동들을 욕할수 없었다

 

그동안 착한 며느리 컴플렉스에 빠져 종종거리던 그 버릇이..한순간에 고쳐지는건 아니었다.

차츰차츰... 마음은 냉담해져 갔지만... 시댁식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채...

여전히 상전노릇을 하셨고 난여전히 하녀였다.... 뭐 일은 많이 하진 않았지만 순종했었다.

 

그러다 1년도 안되어 그 큰며느리는 이혼한다며 아주버님 짐을 다 싸서 시댁으로 보냈고

사기결혼 시킨 시댁식구들은 뒤에서만 욕할줄 알았지(뭐 그년이 몸굴린년이라는둥...-_-;;)

자기들도 꿀리는게 있으니 성질대로 가서 그 여자 엎어놓지도 않더라...

하긴 큰며느리 그 여자는 인사오는날부터 VIP셨다...맏며늘 노릇 한번 하지 않았고

그 여자 핸드폰 번호나 집주소도 몰랐던 시댁인간들....

그렇게 쩔쩔 매시는 분들이 나에겐....그러니...

 

큰며느리 있을때 내가 생신상 차렸다. 맨날 월세 단칸방 사니 뭐 나도 생신상 차려 드릴

공간이나 여력이 없었는데 그 해에는 18평 오래된 아파트를 월세를 얻게 되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는데... 곱게 와서 밥쳐먹었던 큰며느님과 시누들...은 설겆이도 안하더라.

차리고 정리하고 설겆이까지.. 밥도 못먹은 내가 그날 다 했다...ㅠㅠ

 

올해 생신때는 갈비집에 가서 먹었는데(시누가 애들 데리고 밤에 놀러나갔다가

오토바이에 어린 딸내미가 치어서 병원에 입원했던 터라 어머님이 그집 살림해주고 있었다)

큰아들은 전화한통 없고 오지도 않았다... 이혼하고 걍 데이트만 즐기기고 계신 큰며느님도안오고.

그런 집구석... 시어머니는 당신 자식들에게는 대접도 못받으면서...

시댁식구들은 나에게 오로지 대접을 떠넘겼지...

 

깡이 생기더라... 뭐 아쉬울게 없었다. 지금껏 굶어 죽으나 마나 관심도 없던 그들이기에

생각해 보니 아쉬운건 내가 아니라... 대접받으시려는 그들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월급이 밀려 시어머님한테 처음으로 어렵단 얘길 했고 입에 달려 노력했다.

어렵단 소릴 안하니까 잘사는줄 알길래...당신아들 잘난지 아시길래...

(사실 그동안 아이 키우고 살면서 남편 벌다 말다 정말 안정되지 못하고 무능했다)

관리비가 밀려서 관리실에서 쫓아와 개망신을 당했다고 얘길 드렸다.

그랬더니 관리비를 어머님이 조금이라도 빌려보겠단다...

어른이 빌리겠다는데 그럼 빌리세요 할수 없어서 됐다고 빌려도 내가 빌리겠다 했더니

아니란다... 알아보시겠단다... 그러더니 며칠후에...

아주버님 차세금이 나와서 그거 내느라 못부친단다...

뭐 그럴줄 알았다... 아주버님 차 벌금에 세금에 차값에 용돈에 생활비에 뒤치닥거리 하느라

조선없이 귀한 유일한 친손주인 내 아이 굶어 죽으나 말거나 상관없던 분 아니셨나.

나랑 남편은 말해 뭐하랴.. 말로만 귀한 아들이고 귀한 손주인 것을...

 

어머님까지 넘어져 다치게 되셨다...

그리고 내가 임신을 했다.... 제길... 없는 살림에 둘째는 꿈도 못꾸는데 애가 생기다니..

피임도 하는데... 사실 난 자연유산이 2번이나 되었다. 첫애까지는 잘 낳았는데

두번째 생긴 애부터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일을 힘들게 해... 유산이 되 버리더라...

이번에도 유산이 될거 같았는데 아기가 용하게 3개월이나 버텨주니까...

나도 마음이 약해져 굶어 죽긴 하겠냐고... 마음을 잡고... 낳기로 했다.

그런데 임신했다 하니 이번에도 셋째매재 혼자 축하한다 해주고 다른 사람은 또 티비보기

못들은척...

아니...내가 내 자식 키워달랬어 밥달랬어...진짜 웃긴 인간들...

결국 유산됐다. 그리고 1주일 있다가 수술날짜를 잡았는데...

수술날짜 잡은거 아닌 시누가....

수술 날 전날에 전화를 했다.

돈 빌려 달라고....

남편 돈 착착 벌어오고 자기 시댁에서 땅 유산받고 집있고 차있고 먹고 살만한 시누가..

나한테 돈도 잘 빌려달란다... 떼어먹은적도 있다. 그래봐야 뭐 일이십만원 빌려달라는거지만.

내일 수술해야 하는 나인데 나도 수술비가 좀 모잘랐다.

10만원밖에 없어서 한 10만원은 더 있어야 해서 빌려야 할 판이다 했더니

그 10만원 있는걸 빌려달란다.........ㅠㅠ

완전.... 할말을 잃었다....

거절했더니 삐졌는지 시어머니 병원비 얘길 꺼낸다. 엄마(시모)를 다 자기한테만 떠맡겨 놓고

아무도 안들여다 본다나... 나 유산되도록 뻔질나게 시모 병원 드나들었고

병원비도 이미 20만원 이나 냈는데 내 사정 다 아는 사람이... 또 병원비 얘기 꺼낸다.

시어머니 병원비 50만원도 안나왔다.... 안낸 사람 내라 해버리고 끊었다.

 

그 이후로 전화 안했다.

시댁에 고운정 이미 다 떨어졌고 미운정도 떨어졌다. 나쁜 인간들...

수술 할 며느리 몸 걱정보다 시누 이자때문에 그 수술할돈을 빌려달라니....

 

그러고는 2달이 지나

어버이 날이 됐다.

낮 12시부터 전화가 오는데...

스토커가 따로없다.

어버이날인데 전화도 안한다고 꼬투리 잡는다 이거지..

전화 하거나 말거나 전화 안받았다.

앞으로 명절이고 생일이고 전화도 안하고 가지도 않을건데....

어버이날 그까짓거...

 

이날이때껏 병신처럼 살았음 됐지...

그러게 잘할때 좀 잘할것이지...

사람 이렇게 한맺히게 해 놓으니..아쉬운건 당신들이지 내가 아니잖아

확 전화해서 욕하고 싶지만... 내가 남편 데리고 아이 데리고 살거라 참는줄이나 알아......

이혼하면 그만이지 내가 무서울게 뭐있는줄 아니...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