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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칩거소인의 백수탈출 이야기..(그 2년후)

안산칩거소인 |2007.05.31 12:20
조회 458 |추천 0

실로 약 2년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40대후반으로 4인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가족으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금년에 제대한 아들 그리고 대학2학년인 딸아이

이렇게 넷이서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4년 7월 31일 ....25년여의 직장생활을 어쩔수 없이 종료하고 실직한지 1년여째인 지난 2005년 8월13일 여기에서 "안산칩거소인의 백수 1년차 소회 한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글 몇자를 올린후 많은 분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제가 글에서 피력했던대로 세부 실천사항을 하나 하나씩 실행에 옮긴 다음 두달후인 2005년 10월 20일에 또 다시 "안산칩거 소인의 백수 탈출이야기"를 짤막하게나마 게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바쁜 일상생활을 하느라 컴퓨터에서 장시간 정리할 시간이 없던 차에 다시금 제2부 인생계획을 실천에 옮긴바  그 내용을 간추려 보았습니다.

 

저는 퇴직후 1년여를 백수 아닌 백수로 지내면서( 사실은 취업공부하느라  시립도서관과 고시원등에서 공부한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년여의 공부끝에 저는 20여회의 이력서 제출과 10여회의 면접결과 결국 취업이 실패하여 차선의 방법으로 영업용 택시기사로 취업을 하여 1년 6개월간 일하였습니다.

택시기사로서의 애환은 이루 표현할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저는 택시기사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동시에 유사한 직업군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리기사와 콜벤기사 그리고 버스, 화물차량을 운행하는 모든 분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전에 직장생활만 하던 시절에 몰랐던 또 다른 인생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물론 야간영업을 하면서(영업용 택시는 일일 24시간 2교대근무로 월평균 주간13일 야간 13일을 일해야 26일 만근입니다) 심야시간대까지 근무하므로 밤근무하는 많은 직업군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편의점,포장마차, 청소하시는분, 24시 영업식당, 주점 및 유흥업소, 노점상등등..에 종사하는 수 많은 직업과 그에 따른 애환등을 피부로 접하면서 택시기사만이 이시대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안산은 비교적 택시 기사 수입이 괜찮다고는 하지만 개인의 노하우와 노력정도에 따라 그 차이는 천차만별입니다만 저의 경우는 회사 급여(회사와 경력에 따라 약간은 다르지만 월 26일 만근시

40-50여만원정도)를 포함하여 월 평균 150만원-200만원정도였습니다.

결국 순수하게 제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100만원- 150만원인셈이지요.

물론 저보다 50만원정도 더 수입을 올리는 분이 많은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4인가족 기준으로

월 200여만으로는 현실적인 생활이 어려운게 사실이다보니 대개의 택시기사분들은 (타 운전직 및 대개의 다른 직업을 가진 요즘 추세의 젊은 분들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만) 부인과 맞벌이들을 하는 실정입니다.

제가 매일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결과 1년 6개월간 벌어들인 총수입이 2,175만원이었습니다.

 

또한 2005년 9월 중순부터 2007년 3월 중순까지 1년 6개월간 영업용 택시기사를 하면서 접촉사고 3회, 대인사고 1회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접촉사고는 물론 특히 대인사고 발생 당시 피해가 경미하였으며 피해자분이 선처해주신 덕택으로 큰 어려움 없이 일부 부분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사고처리가 원만하게 처리되었습니다.

모든 사고는 보조기사시절인 택시초보시절에 겪다보니 많은 갈등을 경험해야 했고, 경제적 부담 및 정신적 충격 또한 적지는 않았습니다.

 

밤운전을 할때면 취객들의 황당한 시비조의 봉변을 수 차례 감수해야했고..특히 지극히 일부 젊은 손님들로부터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할때면 많은 회의가 드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제가 택시기사를 하면서 확신할 수 있는게 있다면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겸손하고 예의바른 청년이요 처녀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 확률적으로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100명중 97명은 가정교육이 잘 이루어졌거나 후천적으로 건실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본인 스스로 노력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타인을 배려하고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문화 모범 사회인이라고 할때 나머지 2명은 다소 부족하지만 충분이 설득한다면 훌륭한 사회인의 자질을 갖춘걸로 볼 수 있고..문제는 100명 중의 1명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류라고 생각됩니다.

국가는 문제의 1%에 해당하는 인원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와 계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이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적 부담은 물론 보다 큰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리라는 염려도 감히 해봅니다.

 

저는 현재 금년 3월 중순경 27번째 이력서제출과 16번째 면접결과 재취업에 성공하여 예전에

저의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간 택시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취업싸이트를 방문하여 재취업의 길을 찾았습니다..물론 확률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져 간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희망의 끈은 놓치 않았습니다.

물론 재취업이 안될 경우를 가정하여  대안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습니다.

대안은 이미 지난번에 밝힌바와 같이 3년간 경력을 쌓아 개인택시를 사는 일이었습니다.

(자금은 부족하니 아파트를 매각하여 전세나 월세로 바꾸고 아이들 대학 졸업하는 4년 후부터 다시 내집마련계획을 실천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회사택시를 하면서 가장 부러운 대상이 바로 개인택시였습니다.

안산은 전국에서 특이하게 부제가 없는 곳이라 일하는데 부담이 비교적 적은 곳이어서 개인택시를 운용하는데 타지역에 비해 훨씬 융통성과 여유가 있는 지역입니다.

차후 저는 현재 하는 일에서 10년간 더 일하고 퇴직한다면 안산보다 더 한산한 농촌으로 들어가

제가 받았던 은혜를 되 갚으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아니 제가 받은 은혜를 되갚으며 사는것은 당장 빠른 시일내로 실천할 생각입니다.

제 육신으로 봉사할 일과 제가 가진 빵을 나누는 일을 구분하여 모두 하고 싶습니다.

 

제가 글을 쓰게된 이유는 결코 저의 개인적 자랑을 위한것이 아니라 이땅에 저와 유사한 30-50대 가장들이 많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분들에게 자그나마 희망의 끈이 되어드린다는 소박한 열망에서 입니다. 

지금도 동네 인근의 야산과 공원에서..도서관과 고시원에서..그리고 각자의 임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탈출하기 힘든 현재의 열악한 직업군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장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글을 마칠까합니다.

 

저의 부족한 악필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리면서

 

마지막으로 부디 이나라의 위정자들에게 부탁하노니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조잡하고도 역겨운 정쟁과 당파싸움 일랑 이젠 제발 그만들 두시고 지금부터라도 대국적인 안목에서 이땅에서 어렵고 피눈물 나도록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수의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발전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만 노력해달라는 말씀을 피 맺힌 절규에 담아 목청이 다하도록 외치면서 부르짖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5월 30일   안산 소인 올림


(출처 : '안산 40대의 긴 이야기 (그로부터 2년후)' - Pa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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