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었다면 죄송합니다.
누구나 다 사춘기 시절 한번쯤 부모님에게 반항해보고 그런기억들이 있으시겠지요...
지금부터 짧지만 23년 동안 나의 삶 회고록을 한마디 적어볼까 합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난건 8살 초등학교 입학날 오후였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고쳐서 어쩔수 없이 태어난 장녀였다.
아버진 내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길 원치 않으셨지만 외할머니가 알게 되는 바람에..
이 부질없는 생명이 빛을 보게 되었다.
내가 8살때까지는 외국에서 노동일을 해서 난 그때까지 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몰랐다.
아버진 나를 처음온날 부터 때렸다.
수도없이 맞았고 초등학교땐 내복만 입고 한겨울에 쫓겨나서 각목으로 맞아보기도 했다.
씨*년, 미*년, 씹어먹어도 모자를 년, 개같은 년 등등 하루에도 수백번 욕설을 해댔다.
나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피해를 봤단다.(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얘기함...)
조금씩 내가 커갈수록 남들과는 다른 가정환경이란걸 깨달았다.
살갑게 손한번 잡아준적없고 딸이라고 불러준적 없다.
이름한번 제대로 불러본적 없고 매일 병*,멍청한년이라고 칭했다.
너무나 끔찍했다.
하나님은 왜 날 이런가정에서 태어나게 했을까?
고등학교땐 수도없이 반항했다.
잦은 부모님의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건 항상 나였다.
평상시엔 나를 제일 싫어하던 어머니도 이상하게 싸움만 하면 자꾸 나를 찾았다.
난 아버지는 너무 끔찍이 싫었지만 어머니에겐 애증같은 마음이 있었다.
싸움에 끼어들어 반항을 하다보면 난 어느새인가 눕혀져서 얼굴을 맞고 있었다.
눈이 정말 드라마에서 나오는것처럼 피멍이 들고 이마엔 엄지손만한 혹이 나고 수없이 그런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대학교땐 맥주병으로 내 머리를 쳐서 머리를 8바늘이나 꼬매기도 했다.
피가 어찌나 많이 나던지 수건 2장이 5분도 안되서 다 젖어버렸다.
그때만큼 아픈적은 없었던것 같다.
나의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구타했다.
죽으라고 목을 발로 밟더라..
차라리 죽고 싶었다.
내가 죽게되면 그만큼의 응징을 받으리라 생각해서.
23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릴적만큼 맞지는 않지만.
여전히 독설어린 말과 맞는다.
어머니는 대학교때 이혼했다.
어린 초등학교의 동생을 두고 나갈 염두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랑 함께 살면 좋았겠지만 어머닌 재혼을 한 상태이다.
동생과 나 그리고 아버지란 자의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상태이다.
아직도 긴 악몽을 꾸고 있는것 같다.
꿈에서 깨고 싶다.
어린 동생마져 아버지란 자가 자긴 아들이라고 편애하는걸 느끼고 나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둘이 함께 소리친다.
너무나 우습고 차라리 죽고 싶다.
나갈까도 생각해봤지만 만만치 않는 월세비가 당장 아쉬운 상황이 싫다.(현재 직장생활 1년차중)
월수입 100만원에 적금 60만원 각종 차비,핸드폰비,보험료 20만원.
나에겐 남는건 고작 20만원.
월세비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나의 인생은 언제쯤이면 해가 뜰건지...
아니, 뜰 해조차 있는건지 너무나 불안하다.
사는게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