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출생 : 1977년 9월 28일
출생지 : 대전 광역시
신체사항 : 키 170cm / 체중 67kg / 혈액형 O형
취미 : 전자오락, 음악감상, 쇼핑
특기 : 드라이브샷 (평균 250야드)
비고 : 세계 최연소 LPGA 메이저 4승
세계 최연소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수상 내역 :
1997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프로테스트 1위
1998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우승
1998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신인상
1999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 우승
1999 대한골프협회 1998년도 최우수선수(MVP)
2001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대상
2001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개막전 우승
2001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롱스드럭스챌린지 우승
2002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오피스디포챔피언십 우승
2003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 우승
2003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배어 트로피
2004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제이미 파 오웬스코닝클래식 공동준우승
2004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미켈럽울트라오픈 우승
2004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대상, 공로상, 특별상
2006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맥도널드 챔피언십 우승
2006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헤더 파 어워드
▶몇 년 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박세리가 미국 동부의 LPGA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개막 전날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퍼팅 연습을 하다 말고 박세리가 펑펑 울었죠. 놀란 아버지에게 박세리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골프만 가르쳐 줬지, 쉬는 법은 알려 주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딸을 골퍼로 길러낸 대표적 ‘골프 대디’ 박준철씨는 “세리에게 즐기며 골프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게 후회됐다”고 말했죠.
▶국내 골프대회들은 대회 내내 코스 입구에 우승 트로피를 전시해 둡니다. 아버지 박준철씨는 10대 소녀 세리가 출전할 때마다 트로피를 만져보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트로피는 네 것이다. 갖고 가야 한다”고 다짐을 주면서 말이죠. 담력을 키워 주려고 여중생 세리를 한밤 공동묘지에 데려간 얘기는 유명하죠. 1998년 US오픈 우승은 오랜 세월 모진 단련이 화려하게 피워낸 꽃이었습니다.
▶연장전 마지막 홀, 박세리의 티샷이 연못가 비탈진 러프에 걸렸습니. 제대로 서기도 힘든 자리라 1벌타를 감수하고 공을 옮겨야 했습니다.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스물한 살 박세리는 대신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연못으로 들어갔습니다. 새카맣게 탄 종아리와 눈부시게 하얀 발, 그 강렬한 대비가 소녀의 꿈과 눈물을 말했습니다. 샷은 제대로 날아갔고 추가 연장전에서 박세리는 닷새 92홀 혈투를 끝냈습니다.
▶US오픈 제패는 IMF 그늘에 사위어 가던 국민에게 용기를 줬습니다. ‘맨발 샷’은 애국가 화면에 들어갔습니다. 9년이 흘러 LPGA 자동출전권을 지닌 세계 여자골퍼의 25%, 34명이 한국 선수입니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비결이 ‘박세리’라고 했습니다. US오픈 우승을 보고 골프의 꿈을 키운 초등학생들이 벌써 ‘2세대’ 한국 낭자군으로 컸습니다. 작년 한일전에서 박세리와 함께 뛴 10대 막내는 그녀가 “신과 같다”고 했습니다.
▶박세리는 2005년 랭킹 102위까지 추락했습니다. “티그라운드에 서면 머리가 하얗게 빈다. 1번부터 18번 홀까지 너무 길다”고 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한순간 삶을 뒤돌아보고 탈진해버리는, 때늦은 성장통이었습니다. 기량을 되찾고 있는 박세리가 7일 LPGA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미국 갈 때부터 품어 온 ‘꿈의 목표’였죠. “실수를 용인하지 못하는 게 결점”이라던 그녀도 이젠 “실수해도 당장 죽는 것 아니다. 즐기며 치겠다”고 합니다.
▶골프여제 애니카 소렌스탐의 슬럼프는 5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슬럼프는 2년이었습니다. 하물며 고작 2,3년여 슬럼프를 겪고 있는 박세리를, 국민의 희망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딸이었던 박세리를 어느 누가 욕할 수 있겠습니까. 박세리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