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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나쁜 공무원, 파렴치한 아버지!!!

딸기공주 |2007.06.15 11:08
조회 693 |추천 1

너무도 억울하고 슬픈 현실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가족들에게 20년이 넘도록  상처를 주고도 모잘라

이제는 피를 말리려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경남 의령군 모면사무소에 민원계장이십니다!!
저희 집은 요즘 자주 나오는 가정폭력!!

그 가정폭력으로 20년이 넘도록 씨달리며 살아온 피해자들입니다!!
저희들이 아주 어렸을때는 술먹음 어쩌다 한번씩이였는데...저희들이 초등학생이되고 부터는 그횟수가 조금 정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굵직한것만 적겠습니다

 

1987년 2월에는 심한 구타를 참지 못하시고, 엄마는 가출하셨습니다.
왠만하시면 끝까지 참으시는데 그때는 죽여버린다면서 때리셨어

진짜 이대로 죽나 싶어 겁이 나 집을 나가셨던 겁니다.
 
1987년 5월
그때 구타의 기억은 저에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느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아버지랑 병문안을 간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엄마에게 병문안을 가는 것이며 엄마가 왜 저렇게 눈에 햐얀붕대를 감고 나를 보지도 못하는지...

세월이 지나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때 아빠의 행실이란걸 알았습니다.
엄마께서 병원에 입원하신 경이는  그 날 저녁에 술을 드시고 엄마을 때리셨는데 주먹으로 두눈을 힘껏 때리셨답니다.
오른쪽은 많이 심하지 않았는데 왼쪽은 망막이 손상되었는지 한달동안 핏물이 자꾸 흘러 부산 백병원에 갔더니 실명할 수 있다하여 입원하였습니다. (저희 집이 시골이다보니 큰 병원에 한번가기는 좀 힘든상황이라 한달동안 불편한 상태로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두 눈다 보이지 않게 되어 일년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셨습니다. 

 그 때는 저와 동생이  어렸기 때문에 외할머니께서 저희집에 오셨어 저희들이 돌봐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그렇게 만들고도 저희들에게는 신경조차도 쓰지 않았으며, 저희 외할머니에게도 미얀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1988년 6월 학교를 가기 위해 세수를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는 상황이였어 맨 정신으로 폭행하셨습니다.
폭행하신 이유는 아버지께서 무엇인가 물어 보셨는데 엄마께서 모른다고 하여 무시하는 말투로 툴툴하다 자기 화에 자기가 못이겨 엄마의 목을 조르셨는데 5분정도 조르고는 손을 놓으셨는데 엄마는 기절을 하신건지 그대로 잃어 나지 못하시고 쓰러져 버리셨습니다.
그걸 제 두눈으로 목격하였기에 그 충격은 너무도 컸으며, 저는 엄마가 죽은줄 알았습니다.
너무도 무서워 아무말도 할 수 없었으며, 부동자세로 서 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엄마쪽으로 가서 조용히 앉아 "엄마" 너무도 겁이 나서 아주 조그마케 불러보았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무서웠기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으며 ..

'이대로 엄마가 죽는건가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두려움에 너무도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10살밖에 안된 어린꼬마로써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아버지가 너무도 미웠고 증오만

쌓이 더군요!!!

엄마가 쓰러져 있는데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고, 5분정도가 지난 후 엄마는 다행이 깨어 나셨습니다.

그때의 기쁨이란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상황이였으며...

엄마와 저는 부둥껴 안고 마구~ 마구~ 울었습니다!!

너무도 아프고 분하고 억울해서 그렇게 막~~ 울었습니다.

그 공포와 충격은 아직도 너무나도 큽니다.

지금에 와서도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저절로 고이고 가슴이 저려 옵니다.
 
1988년 12월 그날밤에도 술을 잔뜩드시고 아무런 이유없이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의 귀를 힘껏 밟아 버리셨습니다.
놀라서 일어나셨는데 양쪽 귀가 들리지 않으신다면서 멍하니 계셨고, 그 뒷날 마산 박현수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양쪽고막이 터졌다하여 인공고막으로 대처하는 수술하였음. 근데 또 한번의 구타로 오른쪽 인공고막이 터졌는데 그때는 돈을 주지 않은 상황이였어 안들리는 상태로 2004년까지 계시다 부산동아대병원에서 순수한 엄마의 자금으로 인공고막 이식수술 받으시고 5일 입원해 계셨습니다.(그때 병원비 250만원이였습니다, 이걸 왜 적냐면 이 돈은 아버지께서 당연히 주셔야 하는건데 엄마의 자금으로 하셨기에 너무도 화가나서 적는겁니다.)
 
1989년 5월 아버지께서 무슨말을 하시는데 거기에 대꾸하신다고 일명 반항했다면서 엄마의 입을 주먹으로 힘껏때리셨는데 앞니가 그대로 부러지면서 피가 줄~ 하고 흘렀습니다. 제 두눈으로 똑똑이 보았으며 절대 잊을수없는 일들중에 두번째입니다.
그렇게 피가 나는데도 전혀 미얀해 하지도 않았고 피를 닦아 주지도 않았으며..병원에 가라고도 하지 않았기에 엄마는 앞니에 대한 치료를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다른사람을 만날때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때며 식사를 하실때도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하셨으며 이야기를 나눌실때는 꼭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씀하셨으며 저희들 앞에서 조차도 크게 웃을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셨습니다.

10년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도 아버지는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지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미얀하다 말한디 없고 치과를 가보라고 권하지도 않았으며 돈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틀니를 장만하셨습니다.
왜 자기가 한 폭행인데도  항시 저희 엄마는 귀죽어가며 엄마의 알뜰살뜰함으로 그렇게 하셨는지..
 
2001년 6월 7일 목요일 새벽4시 이혼하기 두달전쯤이지요!!
이때는 저희들이 다 성장한후라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새벽2시에 술에 만취된 상태에 들어오셨어 소리지르며 문을 열어달라하셨는데

엄마께서는 그날 화도 나고 해서 열어주지 않자, 화가 난다면서  큰돌을 집어 들어

현관창문으로 던지셨는데 거기에 엄마가 서 계셨던 것입니다.
얼마가 술에 취해있었는지 사람이 서 있는 곳 조차 보지도 못한건지 아니면

고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돌은 엄마의 머리쪽으로 날아왔고 그대로 맞아 엄마는 쓰러지셨고 잠시 정신을 잃은 후 깨어나보니 거실바닥에는 피바다가 되어 있었으며 너무도 겁이 난 상태라 119가 아닌 112로 신고하셨고 그때 아버지는 어디로 가신건지 도망을 가고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경찰이 집으로 출동하여 엄마는 동네병원으로 갔는데 아무래도 큰병원으로 가야한다

하여 마산삼성병원으로 가셨고 저는 새벽4시에 경찰에게 전화를 받고 삼성병원응급실로 갔으며 도망가신 아버지를 잡기위해 경찰이 저에게 아빠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셨습니다.
엄마의 상태는 참혹 그 자체였습니다.
 창백한 얼굴, 피기없는 피부들!!
모르는 저희들이 봤을때는 곧 죽을것만 같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같이 간 외할머니, 외삼촌 어의없어 아무말 못하고...

동생은 말없이 울고, 저는 너무도 황당해 아무말도 나오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동생이랑 저랑 둘다 분노만 끊어 오를 뿐이였습니다.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았는지 아침에 해뜰때쯤에 나타나신 아버지는 그때까지 술이 들깨신상태로 복도 의자에서 아무렇지 않게 앉아 졸고계셨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그렇게 하고 싶은지 자기 처 죽일뻔하고도 그리 태연할수가 있는건지, 참 이해하기 힘든 분이십니다.
엄마에 대한 굵지한 폭행은 제가 기억나는건 이 정도고입니다.
 
아버지의 형제분들도 엄마에게 행패와 협박을 하셨습니다.
특히나 세번째큰아버지(아버지의 바로 손위 형님)와 작은아버지(바로아래)가 심하셨으며 큰아버지는(옆집에 사셧음) 엄마를 때리시기도 하셨고 술마시고 오셨어 행패며 심한욕설은 기본이셨습니다.

작은아버지는 경찰이신데 아버지가 엄마에게 행패를 부린날이면 작은아버지에게 꼭 전화를 하셧어 상황을 이야기해주기고 하셨기에 엄마에게 행패와 심한욕설을 하셨습니다.(울산에 계시기에 찾아는 못오고 집전화로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신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입에 담기 힘든 10원짜리 욕설과 자기가 경찰이니 "총으로 쏴 죽이로 온다" 고하면서 수시로 협박하였음.
고모들또한 엄마에게 심한욕설과 행패또한 똑같았습니다.
왜 아버지는 엄마와 일어난 상황을 형제들에게 이야기 하셨어 안그래도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만드신건지...
꼭 그렇게 저희집에 무슨일이 있으며 형제들에게 항시 이야기를 하셨어 엄마를 나쁜사람으로 만드는게 취미이신듯하였습니다.
형제들이 휴가철이면 저희집에 꼭 오는데 10일정도 머뭅니다.

그때는 저희들 모두 초긴장 상태로 없는 눈치 있는 눈치 다보면서 우리집인데도 너머집인 마냥 지냈으며 고기며 먹을꺼면 있는 돈 없는 돈 제다 못줘서 안달이였습니다.
집에 방이 세개인데  친척들이 오면 잘때 없다고 친구집에 자고 오라고 싫다 그럼 뺨때리는건 기본이고 온갖 욕설이면 행패란 행패는 다 부렸습니다.
그러다 우리들 주기 아까우니까 자기네들끼리 식당가서는 옹기종기 먹고 오곤 했습니다.
파렴치한 쓰레기들 입니다.
 
 
심한 폭행으로 엄마는 가출도 하셨습니다.
1987년 7월 가출
1987년 12월 가출(20일만에 집으로 복귀)
 
저희 남매들은 다른 가정처럼 대우 받으면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도 아니였는데 돈으 돈대로 받지도 못했고

인정은 인정대로 받지 못햇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공부를 못하고 잘하고를 떠나 자기 자식이면 그걸로만으로 이뻐야 하지 않은건지..
동생이고 저고 수학여행을 갈때면 항시 5천원,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생일날에는 선물하나 케익하나도 사주지 않으셨으며 옷한벌 사주지 않은 아버지이셨고 이쁘다 사랑한다 말한번 없으시고 그대신 화나면 때리고 욕설하는 아버지이셨습니다.
중하교때까지는 안그러셨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부터는 저도 사춘기라 반항을 조금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때 반항을 한다하여 골프채로 팔을 때리셨고, 뺨때리는건 기본이였고 머리통 지어박기는 애교였습니다.
24네살때 화장실에서 늦게 나온다고 욕설을 하기에 저도 화가나서 이야기를 했더니 말대꾸한다고 머리통을 지어박길래 주먹으로 대항하였는데 오른쪽 세번째손가락에 뼈에 금이 가서 4주동안 깁스하였음.
동생에게는 폭력은 가하지 않았지만 10원짜리 욕설을 자주하였고...
공부못하니 4년대 갈필요 없다고  2년대가라면서  첫번째등록금만 주었으며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하라하셨고 용돈이면 일절없었습니다.
동생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습니다.(살면서 제일 서런운부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고 갈필요 없다고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으며 2년 후 엄마의 도움으로 2년뒤에 대학을 갈수 있었고 아버지에게서는 자금쪽으로 한번의 도움도 주신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저희들에게 자린고비셧는지..
 
1999년 12월부터 수상한 행동들이 보여 확인해본결과 다른여자가 생긴 상태였음.
2000년 4월부터 본격적인 외박과 외도가 시작되었으며, 차안에 여자의 검정팬티며 스카프, 장갑등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보란듯이 차안에 그렇게 정리도 하지도 않은체 두곤 하셨습니다.
아버지도 엄마에게 이혼을 하자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른 여자와의 바람이였던 거지요.
(아버지의 결정적 이혼사유는 다른여자와의 외도였고, 엄마는 폭행으로 인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두분의 이유사유 조금 달랐습니다)
그 여자는 애가 3명인 과부였습니다.
그 여자의 애들에게는 잘보이고 싶어서인지 과자며 음료수, 고기등을 사주곤 하였습니다.
저희들에게는 과자하나 사준적 없으면서 피한방울 썩이지 않은 그여자의 애들은 무진장 예뻤는지 그렇게 사다 주시더라고요.
사주는건 좋은데 왜 그런행동들을 저희들의 눈에 보이게 하는건지...
 
2001년 7월 29일 이혼하자고 아버지의 직장으로 유인!!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2층 강당으로 데리고 가서는 커튼을 치시고는 마구자비로 폭행!!!
밟고 주먹질에 목조르고 이러다 엄마는 정말 죽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의 도움이였는지  아버지의 전화가 오는 틈을 타서 도망나와 의령경찰서에 신고!!!

폭행으로 바로 구속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구속으로 저희들은 처음으로 TV에서 봐오던 형사들에게 진술이란걸 해봤습니다.

어의도 없고 부끄럽기도 했고 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의 상처로 엄마는 온몸에 타박상과 갈비뼈 두개가 부러졌습니다. 

그렇게 2001년 8월 6일 이혼하였으며,

한달뒤인 9월 29일 상의도 없이 아버지께서 다시 허위로 혼인신고 하셨고..

공직에 있다보니 허위로 하기란 더더욱 쉬웠겟지요!!
그 사실은 동생이 군대를 가기위해 호적등본을 떼어보고 알게되었습니다.
법적으로만 부부라 피해보는 것도 없고 같이 살지도 않았기에  법적으로 부부인상태로만 지내고 있었는데(그 사이에 제가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낳아 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7일 등기로 이혼소장을 받게 되었는데 허위로 작성한 글들이였습니다.
그러자 모가 그리 애가 달았는지 저의 외삼촌들에게 셋째큰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이혼 좀 해달라고 하라고 그러고...
저희 동생에게도 큰아버지께서 전화해서 세번이나 그러고..
아버지께서 둘째외삼촌에게 전화를 해서는 지금 사는 여자의 애들이 어려서 의료보험혜택도 받아야하고 학자금 지원도 받아야 하는데 누나에게 이혼좀해달고 하라고..
이러시면서 형제분들도 아버지도 또 이렇게 쇼를 하십니다.

우리들의 학자금은 한번도 신경안쓰고 학교때 용돈한번 안주신분이, 그 여자의 자녀들의 그렇게 소중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이제와서는 자기가 폭력의 피해자라면서 엄마를 이혼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허위로 사진들이며 글을 만들어 내고 병원에서 사기로 진단서도 끊어 증거로 제출하니...

어찌나 황당한지...

저희 엄마는 아버지만큼 영악한 분이 아닙니다!!

한달이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잠도 못주무시고 지내다 우연히 모신문을 보았는데 거기서 여성전문변호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그 변호사를 찾아가게 되었고 변호사를 인해 희망을 가지고 공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6월 8일 금요일날 첫번째 공판이 있었습니다.

그 날 결과가 또렷이 나지 않아 2차 공판으로 이어 졌으며..

얼마있지 않아 엄마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와서는 아버지쪽 변호사 사무실에서 합의를 보자는 전화가 왔더라고 합의를 해드릴겁니까?!라고요!!

그때 알았지요, 아버지도 안되겠는지 변호사를 선임했다는걸...

근데 저희 엄마는 절대 합의 볼 생각 없으시거든요, 합의를 볼꺼였음

변호사를 선임 한것도 아니고..

엄마는  아버지가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시기 위해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자질 나쁘고 가정에는 등한시 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혼 후 7년 동안 엄마는 폭행 및 폭력으로 상처만 남은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날이 흐린날에는 온 몸이 쑤셔 하루 종일 아파 하셨습니다.

근데 아버지는 국민의 세금으로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때도 노치지 않고 월급나오는 공무원이다 보니 몇백이 되는 돈으로 이여자 저여자 바꿔가면서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었더라고요!!

엄마에게 우리들에게 가슴에 피멍을 남기고 아버지는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셨더군요!!

그러곤 이제 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합의하자고요!!!

혼인신고도 아버지가 허위로 엄마의 동의도 없이 몰래 하고선 왜 엄마에게 가해자라고 아버지가 피해자라고 고소를 합니까!!!

이제와서 그 여자랑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 여자를 아버지의 호적에 올리고 싶으신것입니까!!

그 여자랑 행복하게 사십시요, 근데 제발 저희들과 엄마는 그만 좀 괴롭임 안될까요?!!

한번의 대못이 모잘라 두번의 못질하는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들이 너무 억울해서 도홈피고 군홈피에 글을 올린다하자 아버지가 아닌 큰아버지가 전화오시고 십원짜리 욕하고 날리도 아니십니다.

자기 가정사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가정도 없이 떠돌이 생활하시면서 저희 가정사에 끼여 드셨어는 큰아버지가 십원짜리 욕하고 더 설치십니다.

이제는 저에게 협박문자도 보냅니다!!

"집앞에서 기다린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러시면서요!!

겁이 나서 밖에도 못나가고 밥도 먹지도 못합니다.

저는 네살짜리 아들이 있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혹여나 어린이집에서 오는 저의 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에 더 겁이 납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더 심한 또라이시라, 정말 두렵습니다!!!

 

왜 20년을 그렇게 상처받다 이혼 했음 끝났을 일을, 허위로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음

이런일도 없었을 것을...

그러고선 피해자와 가해자를 오인하게 만들고...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려는 파렴치한 아버지!!!

나이 오십넘어 저희들에게 아직도 그렇게 상처주고 싶으신가요??!!

증오를 다시 끊어 오리게 하고 싶으신가요??

정말이 이런 현실이 넘 싫습니다!!

신랑보기도 넘 부끄럽고 미얀하고 제 아이에게도 넘 미얀합니다.

제 아이가 더 커서 자기 외할아버지는 파렴치하고 자질도 나쁘고 가정폭력의 주범이고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상처받아오면서 자란온 사실을 알기전에 이 인연을 끝내고 싶습니다!!

신이 계시다면 저희들을 도와 주십시요!!

"아버지로써 자격도 공무원의 자질도 없는 저의 아버지 파멸"시켜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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