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슨 글을 써서 보답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초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4일 방송 된 KBS2TV‘낭독의 발견’에 소설가 김훈이 출연, <남한산성>(학고재. 2007)의 돌풍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남한산성>은 출간 2달 여 만에 12만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김훈은 <남한산성>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독자들을 한없이 고문해서, 그 고문에 못 이겨 독자들 스스로 자기 삶의, 역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끔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는데, 약간은 성공한 듯하다”
그는 이어 “소설을 왜 쓰는가”라는 황수경 아나운서의 질문에“밥벌이의 노동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훈은 이날 방송을 통해 평소 보기 힘든 말끔한 양복차림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훈은 “멋지다”는 진행자의 칭찬에 “많은 분들이 저는 타이와 와이셔츠가 없을 줄 아시는데, 저도 이렇게 양복이 있습니다”라고 여유 있게 답했다.
이날, 김훈이 낭독한 대목은 인조의 울음 장면. 김훈은 담담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가 읽은 대목은 이랬다.
“임금이 내행전 마당으로 내려섰다. 버선발이었다. 마당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임금은 젖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임금이 이마로 땅을 찧었다. 구부린 임금의 저고리 위로 등뼈가 드러났다. 비가 등뼈를 적셨다. 임금의 어깨가 흔들렸고, 임금은 오래 울었다. 막히고 갇혔다가 겨우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김훈의 음성에는 깊은 울림과 힘이 실려 있었다. 인조의 절망과 치욕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했다.
이어 김훈은 소설쓰기의 고통을 털어 놨다. 아침부터 밤까지 써도 원고지 서너 장 밖에 안 되고,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책상 위에 내려앉을 때는 슬프고 약이 올라 나가서 술 한 잔 걸치게 된다는 것. 그는 “그렇게 고치고 또 고쳐도 ‘이게 아닌데...’ 하면서 출판사에 가져다주고, 그것이 책이 되어 나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매일매일 불안과 더불어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훈은 좋아하는 작가로 ‘마크 트웨인’을 꼽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소설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는 “자유의 영혼을 가진 반항아인 허크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나를 설레게 한다”고 고백했다.
김훈이 좋아하는 시는 문태준의 시였다. 이날 김훈은 문태준의 <老母>를 낭독했다. 그는 “늙은 어머니와 밥을 먹으면서 그 입가의 주름살 속에 하나의 우주와 하나의 생애와 하나의 자연 전체가 내려오는 그 모습을 시인이 보고 있는 참 아름다운 시”라고 설명했다.
김훈은 이날 방송을 통해 ‘혼자 놀기’의 진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기를 쓰고 논다는 그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강이나 들에 나가 자전거를 타면서 혼자 노는 것을 즐긴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혼자서 놀 땐, 깨가 쏟아지게 재미있게 논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는 가수 양희은이 함께 했다. 양희은은 김훈이 직접 신청한 곡 ‘한계령’을 들려주며 <남한산성>을 읽은 느낌을 전했다. 김훈, 양희은, 황수경 아나운서가 함께 한 낭독 무대도 연출됐다. 세 사람은 각각 김상헌, 사공, 해설 부분을 맡아 낭독하며 소설의 묘미를 한껏 되살렸다.
김훈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역사 소설은 그만 쓰고, 당대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