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내숭쟁이 시어머니^^

막내며느리 |2003.05.29 12:32
조회 22,224 |추천 0

제가 나이는 서른 둘이라 적은 나이가 아닌데, 결혼을 늦게 해서 이제 겨우 한 달 반 된 초보 주부에요. 

친정에는 일곱살 된 여동생(터울이 엄청나져?) 하나가 전부라서 이십몇년을 무남독녀로 편하게 살아왔었어요.  친정에는 엄마도 젊으시고 외할머니도 계셔서 정말 제가 손에 물 묻힐 일이 하나도 없었죠.

또 두 분이 워낙에 음식하고 집안 가꾸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저는 중고교때 도시락 하나를 싸가도 기본으로 반찬이 일곱가지 이상은 됐었구, 어떨 땐 더운 밥 먹으라고 일부러 점심시간에 맞춰서 도시락을 직접 가져다 주시기도 했어요.  그 때는 창피스럽고 유난스러워서 심술도 부리고 그랬는데...지금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제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컸는지 알겠더라구여.  그래서 앞으로 예전보다 더 잘 해드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하튼간에...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이 나이 서른이 넘어서 시집을 가니..할머니,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걱정도 많으시고, 덩달아 설레시기도 하고..뭐 그러셨는데여^^   저한테 항상 변함없이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그 말씀이야 뭐..지금도 얼굴만 보면 하시지만^^  " 시부모님한테 항상 지극정성으로 잘하고, 몸 힘든 게 마음 힘든 거 보다 백배 나으니까.. 요령부리지 말고 몸 빨리 빨리 움직이고,  효도가 별 게 아니다.  얼굴 자주 보여드리는 게 효도다.  그러니깐 힘들어도 자주 자주 찾아뵙고..   그래서 항상 이쁨받아라."   귀에 딱지가 붙게 듣고 있는 말씀이에요^^    우리끼리 얘기 중이라두..단 한번도 요령껏 하라거나 하는 말씀은 절대 안하시죠.    결혼한 지 얼마 안되고 사는 곳도 가까우니..시부모님이 우리를 보고싶으셔서 자주 찾으셔도..  딸 힘들겠다는 말씀이나 걱정보다는..너 이뻐서 찾으시니 얼마나 좋으냐구^^(저두 그렇게 생각해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어머님 생신이셨어요.        친정엄마가, 어이쿠 잘됐다..하시면서 시어머님 생신상을 어머니가 봐주시겠다는 거에요.   엄마 힘들까봐..내가 하면 되니깐 엄마는 됐다구..한사코 말려도 우리 엄마 극성이 보통 아니거든여.     신혼집에서 집들이 겸해서..시어른들이랑 형제들, 삼촌 숙모님 모시고 생신잔치를 하기로 했죠.   시어머님이 너무 미안하시다구, 며느리 여럿봐두 이런 경우 없었다구.. 사양하시면서도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제가 세째 며느리거든여.    그 날이 평일이었는데.. 저녁상은 친정엄마가 이모들이랑 같이 준비하기루 했구.. 그래도 원래 생일 미역국은 아침에 먹는 거잖아요.   출근길에 (저도 맞벌이 주부거든여)  미역국 끓여다가  여태 주무시던 시부모님 깨워서 넣어드리구..( 시어머니가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퇴근하고 집에 부랴 부랴 가봤더니... 엄마랑 이모랑 두 분이서..정말이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한 상을 봐놓고 계시더라구여.    너무 너무 고맙고 미안스럽고 그렇대요.  딸 키워서 시집보낸 것도 섭섭할텐데..그 시어른 생신상까지 엄마가 차리다니.. 약간, 아주 약간 억울한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에요^^   좋고 고마우면서두^^

 

근데여..

그리고 얼마 지나서  우리 시어머니..아주 그냥 지나가시는 말씀으로 "니네 친정 식구들.. 저녁을 내가 한끼 해드려야 되는데... 아이구.. 요새 머리도 계속 아프고..몸도 무겁고.  .  마 딱 그냥 국하고 밥만 해갖고 이번 토요일에 식구들 함 불러야겠다.   요리가 많으니깐 밥이 안 먹히더라.  그래서 요리는 안할라고.  국하고 밥만 할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대요.     그 날..엄마가 요리를 이것저것 많이 하셔가지구.. 미역국이랑 밥이 그대로 남았더랬거든여.      그래서..제가 어머니~ 괜찮다구~~ 신경 안 쓰셔두 된다구~~계속 사양해도..우리 시어머니도 추진력 꽤 있으신 분이거든여.  그래서 떠밀려서 친정에 연락을 했죠.     시어머니께.. 정말 국이랑 밥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을 그래서..여러번 드리고 다짐을 받은 끝에... 드뎌..초대한 토요일이 왔어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부모님, 이모들, 사촌들.... 많이들 모이셨는데... 제가 미리 말씀을 드렸었거든여.. 시어머니가  저녁상을 아주 간소하게 보신다 그랬다구..   엄마두, 그래 그러시라구.. 차려서 일부러 불러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연세도 많으신 분이 음식하시기 힘들다구..(우리 시어머님이 예순 일곱이세요^^)

우리 식구들.. 상 쳐다보고 너무 놀랬어요.

엄마말씀이.."야...내가 저번에 차려드렸던 상이 부끄럽더라.."

우리 시어머니...  갈비찜에, 해산물들깨찜에, 새우.버섯.고기전에, 팔색냉채에, 가리비구이에(이건..어머님이 깜빡 하셔서 다 만들어놓으시곤..상에는 안 올리셨더랬어요.ㅋㅋ) ,  삼색 나물에,  국에, 밥에...생선회까지..    그걸..우리 큰시누랑 두 분이서 하루종일 만드셨더라구여.  요즘 건강도 별로 안 좋으신데...      너무 너무 감사하고.. 기분 좋았어요.   친정 식구들 보기에도 너무 우쭐했구여.

그렇게 차려놓으시고는..우리 친정식구들 불편하실까봐..아버님이랑 두 분..저녁 모임이 갑자기 생기셨다구 뻥치시구^^  도망가시듯이 피해주셨어요.  친정식구들은 붙들고.. 두 분은 나가시고.ㅋㅋ   근데..나가시면서 시어머님이 우리 신랑한테 살짝...할머니 가실 때 차비 챙겨드리는 거라구..봉투도 하나 맡기셨나봐여.    정말..감동했어요.    사실..그 며칠전에  어머님..경주에 친구분들이랑 놀러가신대서.. 전날 저녁에 들러  절대로 안 받으신다구.. 거절하시는 데..억지로 오만원을 봉투에 넣어 드리고..도망치다시피 왔었거든여.  어머니랑 옥신각신하면서도 둘 다 얼마나 웃고 그랬는데...    뿌리치고 그러셨으면서두..그게 이뻐서 이렇게 상을 잘 차려주시고..할머님 차비까지 따로 챙겨주셨나...싶기두 하고.     앞으로 정말 더 잘해드려야지..하는 생각이  막 들었어요.       우리 친정 식구들..식사 하시면서 너무 만족해하시구... 저더러 시집 잘 갔다구.. 어른들께 잘 하라구..

먼저 시집간 선배 언니들이랑 친구들..  항상 그러더라구여.   첨부터 너무 잘하지 말라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잘해주면 당연한 줄 안다구.  너무 자주도 가지 말라구.    근데..우리 엄마는 항상 그 반대로 말씀하셨거든여.   잘하면 잘할수록 더 잘하고 싶어지고.. 그래야 서로 정도 쌓이고..편할라고 안하다 보면...나중에 가서도 안되는 거라구..     하도 잔소리를 하셔서..가끔은 짜증도 내고 그랬는데.. 그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물론.. 저희 시부모님이 좋으신 분들이니깐..이런 공식도 성립된다는 거. 저두 잘 알죠.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구여.       지극정성으로 해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시댁식구들도 여기서 보니깐 많은 거 같기두 하구여.   근데..내가 먼저 조금 더 잘해야지..그런 생각을 항상 갖고 서로 대하면..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여?  

 

 

 

 

 

 

☞ 클릭, 두번째 오늘의 톡!, 어느 사형수 아내의 글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