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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의 러브스토리]해피투게더... 아... 장국영...

이원영 |2003.05.30 21:40
조회 1,615 |추천 0

<지난 줄거리>

열일곱의 서지우와 일곱살의 유채린은 소나기 오는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채린이가 너무 예쁜 지우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중에 결혼하자고 보채고

 

꼬마답지 않게 속이 깊은 채린은 진심으로 청혼을 받아들인다

 

 

시간은 흘러흘러 지우는 군에 입대하게 되고, 그가 군에 입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

 

아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나 지우의 가족 모두가 사망하게 되고 지우

 

는 돌연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그로부터 오년 뒤...

 

여고생이 된 채린의 학교에 서지우는 선생님으로 돌아오게 된다...

 

 

 


<제 10화 해피 투게더... 아... 장국영>


<1>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지우가 첫 수업을 마치고 교실문을 나서는 순간, 이제껏 숨죽이던 학생들은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면서 책상에 엎어졌다

 

"아이구 억울해! 어무이~~~~!"

 

"저런 킹카를 놓치다니! 억울해서 어떻게 살라구!"

 

그녀들은 진실로 애통해하고 있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사립 여고답게 베

 

테랑 선생들(그녀들 말로는 노친네들)로 이뤄진 이놈의 학교에서 정말 간만에 보는

 

초대형급 슈퍼킹카를 자기네 담탱으로 독차지할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그 기회가

 

무참하게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은 그녀들을 절망으로 몰아 넣었다 

 

"이게 다 승표 때문이야!"

 

"승표가 담팅 되면서 내 인생에 먹구름이 꼈어!"

 

"우리 지우 오빠를 돌려 줘!"

 

18세 소녀들의 감성이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오늘 처음, 그것도 고작 40여분 남

 

짓 본 사내에게 꺼리낌 없이 '지우오빠' 라고 부르는 모습도 그러려니와 (게다가

 

그는 선생이지 않는가!) 불과 몇시간 전까지 열렬히 환영하던 강승표를 '먹구름'으

 

로 표현하는 저 '순발력'은 차라리 재기발랄하다고 표현함이 나으리라...

 

 

 

 

 

"왜 마음 아프냐?"

 

지현이 싱긋 웃으며 소심을 바라본다

 

"국사 완전히 역적되는 거 보니까 가슴 한 켠이 아려와?"

 

소심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이 매력 없는 게 어디 하루이틀이었니. 그이 매력은 나나 정확히 알지 다른 사

 

  람들은 몰라"

 

그녀는 지현을 정색하며 쳐다보았다

 

"너 그리고 호칭 좀 정리해 줘. 국사가 뭐니. 이젠 담임이니까 담팅으로 불러 줘"

 

"내가 할 소리네요. 징그럽게 그이가 뭐냐 그이가"

 

지현은 닭살처럼 오돌오돌 일어난 팔을 마구 비벼댔다

 

"그런데 새로 온 국어 말이야... 산골 지방대 출신에다가 낙하산이라고 해서 별로

 

  일 줄 알았는데 제법 괜찮더라? 위트도 제법 있고 핵심 짚어내는 솜씨도 괜찮고.

 

  얼굴만 반반한 게 아닌가 봐"

 

서지우에 대한 평가를 내린 지현은 소심을 쳐다보았다

 

"소설가 언니가 보기엔 어떤가요?"

 

소심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긴 틀림없는데... 호흡도 좋고 몰입도 좋고...

 

  근데 글쎄... 어딘가 그늘이 있는 거 같지 않아?"

 

"그늘?"

 

"어...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블루한 느낌이 배어져 있어..."

 

"블루라..."

 

"그 기운이 화이트톤과 묘하게 섞여 있다는 느낌이야. 근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해는 안 가"

 

소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지현은 채린을 쳐다보고 물었다

 

"전국 십 등의 눈엔 어떻게 보였니?"

 

지현과 소심은 채린이 뭐라 말할까 싶어 그녀를 주시하였다

 

"......"

 

"채린...아...?"

 

초점없는 눈동자를 허공에 올려 놓던 채린은 자신을 흔드는 지현을 없는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왜 그래 채린아?"

 

지현이 몇 차례 흔들고 나서야 초점을 서서히 잡아가는 채린...

 

"으, 응?"

 

"어디 아퍼?"

 

"아, 아니... 근데 뭐 물어봤어?"

 

"새로 온 국어 어떠냐구"

 

"국, 국어...?"

 

"그래. 방금 수업 하고 나간 서지우 말이야"

 

지현의 입에서 '서지우'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채린은 현기증이 느껴지는 듯 몸이

 

살짝 주저앉았다

 

"어머! 너 어디 아픈거니?"

 

소심은 채린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잠시 이마를 만지던 채린은 비

 

틀거리면서 일어섰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지현과 소심이 따라 일어섰다

 

"나 혼자 갈게... 수업 시작하면 화장실에 갔다고 얘기해 줘"

 

"정말 괜찮은 거야?"

 

채린은 힘없이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문을 나온 채린은 부들부들 떨리는 허벅지를 잠시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

 

곤 발목에 힘을 주며 화장실로 한걸음씩 걸어갔다

 

"쏴아!"

 

세면대의 물을 틀어 놓은 채린은 물줄기에 손을 넣고 멍하게 서 있었다. 물줄기가

 

손등을 맞고 사방으로 튀었다. 세면대 거울 앞에 서 있던 다른 여학생들이 힐끔힐

 

끔 쳐다본다. 그러나, 채린은 아무것도 의식 못하고 멍하게 서 있는다

 

"쏴아!!"

 

다음 수업종이 울리고 모든 아이들이 빠져나간 뒤...

 

"쏴아!!"

 

크게 틀어 놓은 물 소리 속에서...

 

입을 틀어막고 오열을 터트리고 있는...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그녀의 뒷 모습이 애절하게 오버랩 되고 있었다...

 

 

 

 

 

<2>

 

"첫 수업 어땠어?"

 

승표가 내미는 커피잔을 받아든 지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정신 하나도 없더라. 학생들 얼굴도 하나도 안 보이고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나"

 

"처음엔 다 그래. 난 수업시간 내내 다리가 후들거려서 혼났다니까"

 

승표는 지우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 반 애들이 내 얘기 하지 않던?"

 

"응?"

 

"아니 뭐... 새로 담임 맡은 강승표 선생님이 사랑스럽다느니 자랑스럽다느니..."

 

"글쎄..."

 

"애들이 날 쫌 많이 좋아하거든. 하하"

 

승표는 양복 안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가르마를 다듬었다

 

"이게 다 네 덕이다. 그 때 이 헤어스타일을 발견한 게 천우신조였어"

 

지우는 승표에게서 빗을 받아서는 가르마 비율을 5대 5로 조절해 주었다

 

"이젠 이렇게 바꿔라"

 

승표는 품 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머리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나즈막히 (그러나

 

강한) 신음을 토했다

 

"이건... 너무 멋지잖아..."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까 좀 더 젊게 보이는 오대오가 나을 거다"

 

승표는 정말 모르겠다는 눈으로 지우를 쳐다보았다

 

"너같이 위대한 헤어스타일리스트가 왜 국어 선생이 되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잠깐 하는 거야. 교장 선생님이 하도 성화라서 전임 선생님 복직하기 전까지만"

 

"다음엔 미용실계로 진출하는 거냐?"

 

"글쎄... 생각 좀 해 보고"

 

"그럼 지금부터 연습해야지. 우리집으로 들어와서 살아라. 와서 내 머리도 좀

 

  만져 주고"

 

"니 머리 만질 게 뭐 있냐. 한 오년 뒤에나 한번 만져주면 될 텐데"

 

"원룸 불편하잖아. 너랑 같이 좀 살아보자"

 

"학교에서 매일 볼 텐데 뭐. 그리고 혼자가 편해. 익숙하고..."

 

"짜아식"

 

승표는 지우의 갈비뼈가 바스라지도록 강하게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다"

 

지우는 승표를 얼르듯 다정하게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3>

 

"우어어어어억!! 지우오빠하구 승표랑 사귄다더라아아악!!!"

 

지영이가 교실문을 박차고 교탁으로 날아 들어왔다

 

"뻥 아님!! 완전 실화!! 둘이서 껴안고 있는 거 딱 걸렸슴!!"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어!!"

 

"지우 오빠는 절대 그럴 일이 없어!!"

 

그러나, 역시 이 재기발랄한 18세 소녀들은 이 사실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모든 것을 받아 들였고 한발짝 더 나아가 영화를 찍고 있었다

 

"지우 오빠가 장국영이야"

 

"아냐, 승표가 장국영이야. 지우 오빠는 양조위 쪽에 더 가까워"

 

동성연애를 다룬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과 비교하던 여학생들은 이렇게 결론을 냈다

 

"승표가 양조위고 장국영이 지우 오빠야"

 

"왜"

 

"분위기 때문이야. 장국영 봐. 뭔가 애절하고... 꼭 자살이라도 할 거 같은 분위기잖아"

 

"맞어맞어. 진짜 낭만적이야..."

 

그녀들은 점심을 먹고 난 나머지 삼십 분의 시간을 그들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

 

를 하는 데 다 바쳤다. 그리고 저녁 휴식 시간엔...

 

"우어어어어억!! 정정 뉴스!! 정정뉴스!!"

 

지영이가 다시 날아와서는 둘의 관계가 그저 막역한 친구 사이일 뿐 동성연애는 아

 

니라고 정정보도를 냈고 그녀들은 남은 저녁 휴식 시간 내내 둘의 우정에 대한 이

 

야기를 하는 데 다 바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고생이란 실로 놀라운 종족들이

 

다...)

 

 

 

 

 

"이번 수학 여행 때 서지우가 우리 반 인솔 맡는다더라"

 

교무실에 다녀 온 현소심이 가져 온 소식이다

 

"그이가 제안했다나 봐. 자기랑 같이 애들 인솔하자구"

 

지현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주의를 둘러본다

 

"쉿! 애들 들으면 또 한바탕 난리날라. 암말 말고 있자구"

 

그러면서 그녀는 걱정스레 채린을 쳐다보았다

 

"채린아, 너 어제 오늘 왜 그래?"

 

"어, 어?"

 

채린은 흠칫 놀라며 지현을 쳐다본다

 

"너 이상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그래 채린아. 나 요즘처럼 불안해 보이는 너는 처음 봐"

 

소심도 걱정스러운 듯 거들고 나선다

 

"무슨 일 있는 거니? 왜 그래?"

 

"또 1학년 여자애가 스토커 붙었니? 사랑한대? 해피 투게더 찍재?"

 

그녀들의 질문공세에 채린은 예의 보조개가 들어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새삼스레 무슨 일 있을리가 없잖아.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데"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너무 불안해..."

 

채린은 찡긋 윙크를 해 보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소심이가 일어서자 채린이 만류한다

 

"금방 올 거야. 갔다올게"

 

 

 

 

 

교실문을 나선 채린은 화장실이 아닌 교무실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희망과 절망과 흥분과 차분이 교차하는 그녀의 얼굴표정은 누

 

가 보더라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

 

어느 덧 교무실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채린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

 

다. 그리고 다시 교실 쪽으로 걸어가는 채린... 그러다, 다시 교무실 앞으로 걸어

 

오는 채린... 이제껏 채린의 모습에서 이런 면을 발견할 수 있었던가...

 

"채린이 아니냐?"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곳엔 강승표가 서 있었다

 

"아... 선생님..."

 

"왜 교무실에 볼 일 있니?"

 

"아... 네..."

 

채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채린의 말에 승표는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대수롭지 않은 듯 채린의 어깨를 툭 다독거렸다

 

"그럼 볼 일 보고 들어와라. 선생님 먼저 교실 가 있으마"

 

"네"

 

승표는 교실로 걸어가고 채린은 어찌할 바를 몰라 교무실 앞에 서 있었다. 그 때,

 

저만치 가던 승표가 채린을 향해 돌아보았다

 

"아차! 채린아. 선생님 책상 위에 상담기록부 있거든. 올 때 그것 좀 가져와라"

 

당혹한 표정이 스치는 채린을 놔 두고 강승표는 복도 모퉁이로 사라졌다. 갑자기

 

멍한 표정이 된 채린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레 교무실 문 앞으로 다가섰다

 

"드르륵!"

 

채린은 조심스레 교무실 문을 열었다

 

"채린이구나"

 

학년주임이 채린이에게 아는 척을 한다

 

"안녕하세요"

 

채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승표의 책상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영원처럼 오랜 시간

 

이 지나는 듯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채린은 승표 책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승표

 

책상 옆에 있는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엔 서지우라는 이름이 써 있는 수첩이

 

올려져 있었다. 채린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상담수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

 

도 모르게 지우의 수첩에 손을 뻗쳤다. 자신도 모르게...

 


 

그 때였다

 

"무슨 볼 일 있니?"

 

너무나 낯선 톤의 다정한...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음색의...

 

채린은 목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 보았다

 

그 곳엔 다정한 얼굴의 서지우가 채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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