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면 잡류라 하고 말 안하면 어리다 하네
빈한을 남이 웃고 부귀를 새우는데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살 일이 어려웨라
< 주의식 >
말을 하면 잡것이라고 경멸하고, 반대로 말을 하지 아니하면 어리석다고 탓한다. 가난하면 모났다고 비웃고, 부귀한 사람에 대하여서는 시기하고 미워한다. 세상이란 이렇게 말이 많고 까다로워 헤쳐 나가기가 힘드니, 이 하늘 아래에서 살아 나간다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구나!
간단한 풀이를 달아 보았다.
내가 지금 이 옛 시조를 들고 나오는 것은 오늘과 몇일전 참 불쾌한 꼬리글과 게시물을 보고 나서다.
인터넷의 속성상 개인이 많이 결집하면 할수록, 개인적 인자는 더욱 없어지며, 그와 함께 개인의 윤리감과, 불가결한 자유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윤리성도 없어져 가기 때문에 개개인은 인터넷 속에 몸을 닫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개개인은 인터넷상의 짐이 되고 있으며 그만큼 자기의 개인적 책임에서 해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만이 모인 큰 집단이 도덕과 지성의 면에서는 어리석고 난폭한 큰 동물을 닮았을 경우가 있다. 즉 조직이 크면 클수록 그 조직이 부도덕이나 어리석은 상태는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오순도순 이야기 나눌수 있는 작은 40방을 내가 좋아 하는 이유다. 쉽게 말하자면 조직이 크지 않다. 적당한 님들이 게시판에 올린 글과 그림과 음악과 유머들을 찾아 다니며 취향에 맏게 크릭한다. 그 클릭하는 숫자가 기껏 백여명에서 사오백명 수준이기 때문에 번잡하지가 않고 면면이 눈에 익은 닉네임들인지라 정감도 가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작을 수록 성원의 개성이 보장되고 상대적인 자유도 커지며, 그와 함께 의식적인 책임의 가능성도 커진다. 자유없는 윤리성은 있을 수 없다. 그와 함께 의식적인 책임의 가능성도 커진다. 곧 그것은 자유롭게 자기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윤리성은 게시물 올린분의 책임이 되기 때문에 서서로 도덕성을 지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처벌과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칭찬과 비난도 받는다. 비난과 창찬이 단지 말로 그치는 것이긴 하지만 엄청난 효과를 가질 수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무리적인 처벌을 능가한다. 사춘기 동안 어떤 일 때문에 계속 비난받아왔던 아이는 나중에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거나 부모의 권위에 반발하면서 오히려 비난받았던 일을 하고자 한다.
도대체 누군가를 칭찬하고 비난하는 것이 정당해지는 때는 언제인가? 비난과 칭찬이 과거 지향적인 것으로 고려되는지 아니면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고려되는지에 따라 두 가지 주요한 답변이 있다. 공리주의 이론은 미래지향적이고 응분론은 과거지향적이다.
공리주의 이론은 요약하면 극히 간단하다. '푸른바다'가 '란'님이 올린 게시물을 비난했다.(란님 죄송) 그런데 '바이올렛'(거론해서 죄송)님이 란님을 비난한 푸른바다를 비난한다. 우리는 란님을 비난한 푸른바다의 행위를 보자. 푸른바다가 란님의 정당성이 그 행위의 결과 에 의해 판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란님의 행위의 정당성도 엄밀히 말해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판단된다. 란님을 비난하는 행위의 결과가 나쁘다면 푸른바다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비난하는 행위가 하등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종종 우리는 매우 엄중한 말로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어떤 바람직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태도와 목소리에 따라 비난이 오히려 비난받는 사람의 화를 돋우기만 하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비난받은 사람이 그후로는 비난받을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비난하는 행위는 가치있지만, 비난은 보통 그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정신과의사는 환자를 결코 비난하지 않고도 눈만 뜨기만 하면 비난하는 부모나 배우자들보다 사람들의 행위를 교정하는 데 훨씬 더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무리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계속해서 비난을 받을 때면 그같은 비난을 모면하고자 비난을 퍼붓는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낼 궁리를 하게 된다. 잔잔하고 조용한 대화가 계속적인 비난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보통이다. 비난은 비난을 하는 사람에게는 '울분을 푸는' 효과적인 수단이기에 비난을 받는 사람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더라도 비난을 하는 사람에게 떳떳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 적어도 나는 나의 의무를 수행했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말하는 것은 쉽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긴장감을 풀어 주기도 하며 비난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기분을 갖게 한다. 물론 이것은 전체의 공리주의적 효과를 평가를 하는데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효과는 비난을 받는 사람에게 미치는 몹시 불유쾌한 효과에 의해 상쇄되기 일쑤이다.
특히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비난하는 행위는 백해무익하다. 노인들은 기억력이 없어서 비난받기 쉽다. "세 번이나 말했는데 그걸 여전히 기억 못하다니!" 하는 식의 비난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비난 받는 사람의 행위가 비난에 의해서 교정될 수 없는 경우의 비난은 분명히 아무 효과도 없다. 노령으로 접어드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망각증세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하다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는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놓고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비난하는 사람에게는 치료적 효과가 있더라도 부도덕한 행위가 된다. 물론 약간만 노력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행태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단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경우에 따라 비난함으로써 그들은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고 심지어 성공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죄책감, 분노, 분개, 자괴감 등과 같은 부정적 효과는 분명히 생기지만 비난받는 사람의 행태를 교정한다는 긍정적 효과는 미약하기만 하다. 그래도 계속 비난한다면 쌔디스트적인 정신분열증이 깊은 치유될 수 없는 환자이다.
같은 내용이 칭찬에도 적용된다. 칭찬은 사람의 자기 이미지를 제고시켜 주는데, 칭찬을 결코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좌절감을 느낄 수 있으며 엄청난 자괴감을 가질 수도 있다. 어린아이가 해낸 일이 아무리 볼품 없어도 칭찬하는 것은 설령 과장된 것이라도 바람직하며, 특히 칭찬함으로써 어린아이는 자신이 해낸 일을 과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을 아는 사람은 별일 아닌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을 것이다. 칭찬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기대감은 아픔과 실망을 야기할 수도 있다.
과연 비난과 칭찬을 받을 만하느냐의 문제를 빠뜨리고 모든 것이 논의되어 왔다고 반박할 것이다.누군가를 비난하고 칭찬하려면 칭찬과 비난이 내려지는 과거 행위를 일종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나는 라이코스 시절부터 네이트 까지 수백편의 글을 게시물로 올렸지만 원천적으로 말썽이 될수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고 자연을 이야기 하거나 내 주변의 일상적인 글 만 써왔다.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려고 과장되게 칭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먼저 그 아이가 칭찬받을 만한 행위를 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아무일도 한 것이 없거나 그른 일을 했는데도 칭찬하는 것이 때로는 좋은 효과를 볼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칭찬받을 만하지 않기 때문에 칭찬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그가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좋은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받는다든지 자기 잘못도 아니데 비난받는 것은 언제나 부당하다.
분명히 'A를 비난하는 것은 옳을 수 있다"라는 말은 "A를 비난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 정당한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그 사람이 응분의 비난을 받을 만한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자면 이방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저질의 동영상이 올라온다거나. 저질의 꼬리글이 달린다거나. 남을 폄하하기 위한 모욕적인 언사의 글이 게시물로 올라온다면 그것은 분명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속된 말로 하자면 방 봐가며 똥 싸야 한다. 그것은 이 방에서의 기준이 무었인가 하는 것이 관습적으로 고착화 되어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한 게시물이 동일인으로 부터 악의적으로 올라온다면 그 사람은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는 환자인 것이다. 게시물을 올린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여가 생활의 일부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을 사귀며 오프라인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낄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글을 안쓰기가 쓰기보다 어렵기 때문에 짬 나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이방 출입한지 벌써 일년이다.
이러한 과정중에 절대로 망각되어서 안될것이 있다. 비난을 즐기기 위한 비난 그것은 구제될수 없는 인격 파탄자이다. 누군가를 그가 하지도 않은 일로 부당하게 비난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못하다. 설령 그것이 요행히도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 해도 그렇다. 어쨌든 이것은 칭찬과 비난의 근거를 단순히 공리가 아닌 응분에서 찾고자 하는 소수의 그릇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병든 행위인 것만은 틀림없다. 즉 의식이 유아수준이거나 의식의 자라남이 정지된 소아병적인 극소수의 정신분열적인 삐뚤어진 사고를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03, 05, 30
많은 고민을 하며 글을 썻습니다. 푸 른 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