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안녕하세요..
맨날 눈으로만 보다가 톡을 올리게 됬습니다.
가슴속에 담기만 해서 힘겨워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됬네요.
때는 제가 아직 어렸던 초등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제 갓 입학식을 치루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이때 만큼은 다른 집의 아이들과 비슷한 상황이었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놀때 가치관이 너무나 틀렸습니다.
저는 어릴적 산과 강을 놀러 다녔고 덕분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죠.
유치원에서 있던 일이나 아는 친구와 어떤 분야에 대해 말할때 저는 아무 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유치원은 커닝 전 그 기간 산이나 강을 다녔으니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할 뿐이었죠.
결국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조용히 듣는 쪽이 되었고
친구라는 것이 적어졌습니다. 물론 그만큼의 오해도 저를 따라왔습니다.
저 아인 친구가 없으니 성격이 나쁘다 혹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어느새 아이들의 장난 상대가 되었고 지각한 순간 이미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이었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애들의 편견속에 저는 여기저기 맞고 살았네요.
생각해 보면 4학년 1학기와 2학기 중반까지 저는 피멍이 들도록 맞곤 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도 네 언니가 그린거 들고왔잖아! 하고 안 믿는 아이들의 투박까지 받으며..
집에 하소연 했지만 강하게 자라길 바랬던건지 부모님은 학교에 전화 1통도 학교에도 가시질 않았죠.
그 이후로 따의 꼬리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저는 제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미안하다는 말이 버릇이 되었고
성적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물론 친구 역시 없었고 저는 애들의 장난상대가 되었네요.
절 보며 비웃는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성적 관리도 안되는 마당에 외모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사진속 내 모습은 안경이 비틀려져 있는걸 끼고 잔머리가 듬성듬성 나서는
꼴이 엉망인 지저분한 아이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사회 생활에 나오고서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고 어떻게 상대할지 몰라 말을 더듬을 정도로
따의 꼬리표는 너무 저에게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그 따 꼬리표는 고등학교까지 와서 제가 하지도 않은 행동을 제가 뒤집어 쓰기까지 했네요.
매번 항상 학비나 급식비 문제로 선생님에게 불려 가기도 했습니다.
학비나 급식문제로 불려가는건 창피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나요 집안이 엉망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를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어머닌 외할아버지 때문에 강제로 결혼하셨습니다.
결혼식 당일 도망도 갔지만 잡혀서 강제 결혼을 하셨죠.
그래서 정이 없다는건 알았지만 아버지는 정말..
정네미 툭 떨어질 일만 저지르고 다니셨습니다.
어머니가 젊을적 준 돈으로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분 말은 철썩 믿으면서도 어머님의 말씀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덕분에 사기와 더불어 주변에서 돈을 빌려 빚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아예 집까지 잃었다고 합니다. 그땐 저도 어렸고 동생은 갓난 아기 상태였죠.
그때도 아버지가 집을 말아 드셨다고 합니다. 왜 였는진 저도 잘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다 커서 알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님의 말을 계속 믿지 않고 다른분의 말만 믿었습니다.
거기다가 오히려 집에 집세나 장을 볼 돈도 주지 않고 오히려 집에서 찾아가시는 신세였습니다.
그런 일이 몇년이 저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쭉 이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뀌길 바랬고 아버지는 바뀔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 집에 몰려와 빨간 딱지가 붙은걸 몇번이나 보아왔던지..
그런 힘든 집안 사정을 알기에 방학때도 놀러가지 못하고 부모님 일을 도우러 나갔습니다.
방학마다 시즌인냥 일을 해야했죠. 사람 불러 쓰자니 1명당 10만의 인건비가 들었고
간판업이기에 힘을 쓸 일도 많고 사람도 많이 써야 했죠.
그래서 저희는 어릴적부터 가게에서 일을 해야했습니다.
덕분에 부모님의 달콤한 거짓말에 잘 속아 넘어갔죠.
다음해엔 꼭 놀러가자는 거짓말.. 다음해면 또 할 그 거짓말..
그리고 또 일만 해야한다는것..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저희집은 항상 빚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이었지요.
항상 돈을 벌면 집에 가져오는게 아니라 경마장이나 복권을 긁어 대셨죠.
덕분에 저희는 일요일이나 토요일이면 공원에 감시차 찾아 다니기도 했고
그때마다 걸려 온 아버지는 어머니와 크게 싸우셨습니다.
일주일에 4번은 싸우셨고 아직 어렸던 우리는 말리고 싸우지 않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몇년이 흐르고 저희가 성인이 되어도 아버진 바뀌지 않았고
싸울때마다 우린 달라지지 않는다는걸 알고 그걸 귀찮아 했습니다.
싸울때마다 집 밖으로 나가 버리곤 했습니다. 왜 우리집은 이 모양인거지? 하고..
학창시절 식사시간 남들 다 하는 급식을 급식비 없어서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고
아이들은 그런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무척 속상했지만 집안 사정이 이런걸 어쩌겠습니까?
슬프고 쪽팔렸지만 달라지지 않는 아버지를 붙잡고 뭐라해도 바뀌지 않으니..
지금도 저희 집은 아버지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엄마가 몇칠전 집을 팔아 빚을 다 갚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팔고 남은 돈 600만을 아버지가 복권으로 말아먹고
몇칠전 어머님께 돈 200만을 또 가게세 낸다고 하고 또 복권에 말아드셨습니다.
몇년전부터 이혼서류에 뭐에 문제도 많았지만 이번엔 정말 심각했죠.
어머닌 참다참다 못해 친척 언니에게 전화해서 큰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친척언니께 말했죠.
" 니 작은 아버지 내가 칼로 찔러 죽였다. "
어머닌 전화 번호를 받고나서 끊고 아버지가 들어오자마자 아버질 잡고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서는 아버지 목을 졸랐죠
" 니가 인간이냐?! 니가 인간이냐고!! 내가 몇년간 당신 바뀌길 바랬어.
그런데 당신은 남 말만 믿고 내 말은 항상 안 믿고 속여왔어!
당신 친가도 날 미워했고 난 무슨 죄인거야? 당신때문에 자식들이 번 돈으로
겨우 집 유지하고 있는데 이젠 집도 말아먹겠다고?
당신때문에 아이들 못 사는꼴 난 더이상 못 보겠어.
너 죽고 나 죽자.. 더이상 이 꼴론 못살아!!"
어머닌 곧 칼을 들었고 아버지를 찌르려고 했고 동생은 그걸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안 바뀌는 아버지..
이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고 우린 아버지를 무시하고 삽니다.
바뀌지 않는 아버지를 어찌 고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정신병원에 처 넣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는 저대로 방치되어 힘들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1번째 직장은 방학마다 어디 못 놀러 다녔다는 질문에 서울 촌녀라고 하고 수급기간 3개월만
딱 죽어라 써먹고 절 짤랐고 2번째 직장은 사장 허락 없이 돈을 못 주는 상황인데 사장 형이라는
이사 양반이 돈 안 준다고 저보고 너같은 경리 필요없다 나가라 해서 관두고..
인생이 참 더럽고 살기가 싫어집니다.
지금도 이어지는 악순환..
이젠 벗어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