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러시아와 몽고까지
앞으로 천년 뒤 세계지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을까?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을까? 어쩌면 중국이 쪼개지고 그 일부를 흡수해 한국은 지금보다 더 큰 나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이 비록 쪼개지고 더해지기를 여러 차례 해왔지만 더해질 때마다 이전보다 더 커져왔지 않은가? 이 이상한 나라의 등쌀에 한국과 일본이 배겨날 수 있을까?
미국은 그 자체로도 큰 시장이지만 캐나다까지 포함하여 북미라는 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중남미에 속한 나라들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고, 중국과 인도는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과 인구, 국토를 가진 나라이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아세안으로 묶여지고, 유럽과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도 각자 지역 공동체 속에서 이웃 나라들과 보조를 같이 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은 어디에 붙어야 하나?
물론 중국에 붙어버리면 더 이상 생각할 문제가 없겠지만 한국과 일본이 이를 원할까?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하나의 시장,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면 그것은 중국이 더 커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거 중국에 흡수되었던 그 많은 나라와 종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결국 이들 두 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있기에는 뭔가 불안하지 않은가? 한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도 그 자체로는 시장이 작지 않은가?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군사적이나 외교적으로도 혼자로는 국제사회에서 위축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다. 인구가 줄어든다면 국력은 쇠퇴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두 나라는 지금과 같은 역할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어떻겠는가? 사실 역사적으로, 또 인종적으로 두 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그러나 임진왜란은 좀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백여년전 일본의 한국침략이 이들 두 나라에 깊은 골을 파 놓았다. 일본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인들은 일본을 가해자로 인식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또 근래에도 독도니, 신사참배니, 교과서니 하는 문제로 이들 두 나라의 국민들은 서로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만큼 두 나라, 두 민족은 가까운 사이이고, 또 앞으로 더 가까이 지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두 나라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두 나라가 대등하고 평등하게 합쳐진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완전한 통합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인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런 식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 지구상에 서로 다른 종족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낫지 모두가 섞여서 하나로 되는 것이 좋을 게 무엇인가? 지구상에 하나의 큰 보석이 반짝이는 것보다는 수백 개의 작은 보석들이 각기 다른 빛을 발하며 반짝이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중국과 같은 하나가 싫으면 유럽과 같은 느슨한 형태는 어떨까? 그것을 통합이라고 하든, 연합이라고 하든, 그냥 공동체라고 하든. 시장의 크기나 인구나 면적으로 보아 중국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국과 일본을 더한 정도면 중국에 쉬이 흡수당하지는 않을 게 아닌가?
두 나라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면 어디까지, 어느 정도로 되어야 할까? 먼저 확실히 해 둘 것은 두 나라가 각자 분명한 주권을 갖는 독립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나라가 이루는 공동체는 언제든지 한 나라에서 이를 파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면서도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최종적인 결정과 행동은 각 나라가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민족과 일본민족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어야 하고 한국말과 일본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중국에 흡수되었던 그 숱한 민족의 언어가 살아 있었다면 비록 하나의 나라가 되기는 했지만 그 민족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하면 우선 시장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 돈이 한국에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유럽처럼 단일 화폐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기업활동에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며, 두 나라 경제구조가 서로 도움이 되도록 긴밀하게 협의되고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시장통합은 어디까지나 두 나라 모두에게 득이 되는 범위 내에서 되어야지 어느 한 나라에 손해가 된다면 그러한 통합을 왜 하겠는가?
두 나라간의 인구 이동이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국적변경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이 한국으로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고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몇 년간 살다가 일본사람이 되고 싶으면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한 나라에 일방적으로 기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두 나라는 군사적으로 독자적인 주권을 가져야 하겠지만 서로 돕는 관계가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가 침공을 받을 경우 자동적으로 개입하여 도와줄 수 있을 것이나, 먼저 다른 나라를 침공한 경우에는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두 나라가 문화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가지게 되겠지만 고유문화는 충분히 구별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향후의 문화는 서로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하더라도 문화가 똑같을 필요가 없으며 특히 옛 전통문화는 분명히 구별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두 나라 국민이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껴야 하고 이 친밀감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두 나라 국민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공동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공동체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같이 사는 것은 서로 떨어져 따로 사는 것보다 못하다.
앞으로 이 지구상의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가 서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하더라도 너무 성급히 딱딱한 공동체를 이룰 필요는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유기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부드럽고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두 나라 사이의 성급한 제도적인 관계보다 두 나라 국민들이 마음 속에서 느끼는 친밀감이 더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시도해서는 안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또 시도해 봄직한 일이라 하더라도 수십년, 수백년 뒤에나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가능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얼마든지 두 나라에 유익하기만 하다.
일본만큼 긴밀한 공동체는 어렵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를 포함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과 일본은 기차를 달려 유럽에 닿을 수 있게 된다. 러시아 또한 유럽과 아시아를 양쪽에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로서도 매혹적인 일이 아닌가? 전쟁과 침략이 아니라 국가간의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로 많은 부분에서 삶을 공유할 수 있다면, 서로 가까운 이웃으로 인식한다면, 나라가 커진 것과 다를 바 무엇인가?
만약 몽고가 원한다면 몽고까지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몽고는 내륙 깊이 고립된 나라가 아닌가? 다른 세 나라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몽고도 해양국가가 되는 셈이다. 몽고의 시장은 얼마든지 넓어질 것이고 한국과 일본 국민은 몽고의 초원을 마음껏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간 왕래가 활발하면 문화는 물론 피까지 섞이게 될 것이지만, 어느 정도로 그러할 일이다.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와 인종이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각 나라, 각 민족의 주권과 정통성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러하도록 적절한 제도적인 장치와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왕래의 결과로 몽고에서 사는 한국사람이 몽고 국민의 절반을 초과한다면, 또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몽고 국부의 절반을 한국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면, 이미 몽고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며, 몽고가 이러한 공동체에서 탈퇴하려고 해도 그마저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통합한다면 작은 나라가 일방적으로 흡수될 수 밖에 없다. 둘 다 살아있는 통합이 되려면 그것은 느슨한 형태의 통합이어야 할 것이다. 이들 네 나라의 통합이 유럽보다 더 강한 형태의 통합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몽고와 러시아의 경우 다른 두 나라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로 통합되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그러므로 이들 네 나라의 공동체는 시장 확대와 인적 및 문화적 교류를 넓히는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이러한 공동체 구성은 점진적으로 그리고 어디까지 가능한지 확인해 가면서 부드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각국의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또 세계사의 흐름에 맞추어 사려깊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구성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국제정세와 각 나라가 주변국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비추어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지면 그러한 공동체는 먼 미래의 일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이들 나라는 좀더 가까운 사이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