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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는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갔을까?

돈키호테 |2003.06.02 20:24
조회 2,290 |추천 0

야옹이는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갔을까? [속보, 정치] 2003년 06월 02일 (월)

두 달 전쯤에 집을 나간 우리 집 고양이, ‘야옹이’가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 막 젖을 뗀 새끼 야옹이가 입양되어 왔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던 우리 집 아이들은 요즘 문득문득 야옹이가 보고 싶은가 봅니다.

 

ⓒ2003 송성영 사랑방 문지방에 걸터앉아 할 일없이 발장난을 하고 있다가도 불연듯 “아빠 야옹이 보고 싶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가 생각난 듯 “야옹이는 어디로 갔을까?” 듣는 아빠 가슴 아프게 한마디 툭 던져 놓곤 했습니다.

 

야옹이가 집을 나간 이유에는 ‘믿거나 말거나’한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야옹이가 집을 나가기 몇 주 전, 딱새 한 쌍이 집 주변을 오락가락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야옹이에게 심히 위협을 당했는데도 올해도 어김없이 날아와 준 딱새가 고마웠습니다(작년에 날아왔던 그 딱새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딱새라고 믿고 있습니다). 야옹이의 앙칼진 살기 때문에 이번에는 알은 고사하고 둥지조차 구경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딱새가 오락가락 하던 그 무렵부터 나는 야옹이에게 주술(?) 비슷한 것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무당 공수하듯 야옹이만 보면 중얼거렸습니다.

 

“저 놈의 야옹이 새끼만 없으면 예전처럼 딱새들이 알을 낳을 텐데 말여. 저 걸 어쩐다지. 쫓아낸다고 집 나갈 놈도 아니고. 지가 알아서 나가 버리면 될텐데. 고양이 새끼들이야 뭐, 집 나간다고 굶어죽을 염려도 없고. 저 놈의 야옹이 새끼를 어쩐다.”

야옹이만 보면 귀찮다는 듯이 발로 툭툭 치며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야, 임마. 넌 저리 가! 너 이번에도 딱새 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면 가만 안 둔다!”

헌데 야옹이가 집을 나가면 문제는 쥐새끼들이었습니다.

 

야옹이가 오기 전에 우리 집 천장은 그야말로 쥐새끼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천장은 ‘쥐새끼 운동회장’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우당탕 우당탕 달음박질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마당을 가로질러 다니며 집사람을 화들짝 놀래키는 간 큰 놈들도 있었습니다.

 

야옹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는 찍 소리 조차 들을 수 없었는데 만약 야옹이가 집을 나가게 되면 쥐새끼들이 다시 득세할 것이 뻔했습니다. 야옹이를 쫓아 내고 딱새를 들어 앉혀 지난 3년 동안 기록해 온 캠코더 촬영을 계속 이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딱새를 포기하고 고양이를 상주시켜 쥐새끼들이 근접도 못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나는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도 야옹이를 향한 악의에 찬 주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병아리들을 입양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당에 풀어놓고 병아리를 먹이려면 야옹이 놈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병아리 입양 문제로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야옹이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의에 찬 주술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2003 송성영

야옹이에게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야옹이를 학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나름대로 변명도 늘어놓았습니다.

 

 부엌 앞에서 야옹이가 ‘야옹, 야옹, 배고파 죽겠네, 밥 좀 줘요 야옹! 야옹!’ 거릴 때마다 그랬습니다.

 

“넌 이놈아, 쥐는 물론이고 메뚜기에, 도마뱀에, 작은 새 뿐만 아니라 산비둘기도 잘 잡아먹으니까, 집 나가도 걱정 없잖니, 이제 다 컸으니까 제발 집 나가 자립해서 살아라.”

 

그러던 어느 날, 매일같이 찬밥 취급을 당하던 야옹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 외박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아무리 늦어도 이틀이면 돌아오곤 했는데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바람이 난 나 싶었는데 딱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 달이 넘게 지나도 야옹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주변에서 야옹이를 목격했는데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도망쳐 버렸습니다. 새끼 때에는 스스럼없이 우리집 아이들의 어깨를 타고 올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곤 했던 그 야옹이가 분명했습니다.

 

야옹이가 집을 나간 뒤, 예상했던 대로 쥐새끼들이 다시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헌데 야옹이가 사라지면 우체통에 둥지를 틀 것이라 생각했던 딱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탐색전을 벌이던 딱새가 더 이상 우체통에 둥지를 틀지 않았던 것은 집사람에게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들로 인해 집 안팎이 어수선해 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쥐새끼만 늘어났던 것입니다. 내 욕심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였습니다.

 

야옹이가 집 떠나고 얻은 게 있다면 병아리들이었습니다. 야옹이가 집을 나가 준 덕분으로 열 여덟 마리의 병아리들이 마당 한복판은 물론이고 집 구석구석을 싸돌아다니며 무럭무럭 잘 커서 이제 중닭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야옹이만 생각하면 왠지 가슴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사실 야옹이 한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야옹이가 내 딱한 심정을 이해하고 집을 나갔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악의에 찬 주술에 못 이겨 집을 나갔는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야옹이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악의에 찬 주술을 접어두고 어딘가에서 제 짝을 만나 저 닮은 새끼 낳고 아웅다웅 잘 살기를 바랬습니다.

 

ⓒ2003 송성영 며칠 전 이었습니다. 붉은 해가 서쪽 산 아래로 기우러져 갈 무렵, 인상이와 함께 산책을 나서다가 누구네 집 담장 아래에서 야옹이를 보았습니다.

 

“야옹아! 야옹아!”

 

인상이가 예의 그, 강아지 부르듯이 혀를 깔딱거리며 야옹이를 뒤좇아 가 보았지만 야옹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누구네 집 담장 너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인상이조차 거부하는 걸 보면 이제 야옹이는 우리 식구와 이러 저런 정을 다 뗐나 봅니다.

 

“아빠 야옹이는 왜 집에 안 돌아 와?”

 

“아빠도 있잖아, 할머니하고 떨어져 살고 있지, 다 크게 되면 그렇게 살게 돼. 너도 아빠만큼 크면 아빠하고 엄마하고 떨어져서 살게 된다.”

 

“왜 그래야만 되는데.”

 

“개나 고양이나 사람이나 살아 있는 것은 한번 만나면 언젠가는 다 헤어지게 되어 있어.”

 

“왜 헤어져야 하는데.”

 

“아빠도 그게 궁금해. 그건 니가 커가면서 좀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상이는 더는 아무 말 없이 야옹이가 사라져 버린 돌담 저만치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는 그렇게 또 다른 이별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옹이와 보냈던 지난 1년의 세월을 가슴에 품고 아프고도 따뜻한 이별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2003 송성영

/송성영 기자 (sosuy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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