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파업 안해봤나...
사실 우리는 뻔히 안다.
다른 누구의 목숨이란 기실 내 손톱 밑에 박힌 작은 가시만도 못하다는 것을.
오로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용환경을 개선해야 하고,
때문에 임금이나 고용형태 등의 문제가 선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 그것은 내 배를 채우기 위한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공익이라는 것에 무지한 나만의 생각인지...
물론 공공성은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히 의무적으로라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투쟁이 이기적인 싸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진심의 한쪽에는 이 싸움이 공익을 위한 싸움이라는 믿음을 갖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공공성이라는 것을 고민했는가에 대해서는,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내일 양성종양으로 뇌수술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환자다.
예정대로라면 7월 15일 일요일에는 입원을 해야 했고, 16일 어제는 추가 MRI를 찍어야 했다.
진단은 6월 14일에 받았고, 그날 그 자리에서 수술일정을 잡았다.
눈도 잘 안보이고 머리가 아파서 회사에는 7월 3일부터 병가를 내었다.
열흘정도 서울을 벗어나서 맑은 공기 마시고 쉬다가 수술할 예정이었다.
병원에서 연락은 받은 것은 7월 10일이다.
연세의료원에는 뇌종양 코디가 따로 있다.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파업으로 인해 수술이 미뤄졌으며,
파업 종료 후 미뤄진 수술에 대해 순차적으로 일정이 잡힐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미뤄질지도 예상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그러면서 영상촬영실에 예약해 놓은 MRI는 그냥 예정대로 찍어두라고 했다.
그러나 7월 13일에 문자한통을 받았다.
-파업으로 인해 MRI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새일정은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그 뇌종양 코디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문자는 일괄전송되는 것이니, 일단 오면 찍을 수 있다며 일단 찍자고 했다.
나는 전화한 김에 다시 물었다.
-파업이 어느정도 길어질지 노조측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나요?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할지 답답해서요.
그러자 짜증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저도 모르죠.
잠시 후 영상촬영실에서 전화가 왔다.
취소되었다는 문자 받았는지, 취소되었으니 오지 말라는 전화였다.
내가 물었다.
-신경외과와 얘기 된 내용인가요?
그쪽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요.
환자를 담보로 공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고결한 분들에게 묻고 싶다.
-평소에도 환자관리가 검사파트와 진료파트의 네트워크 없이 산발적으로 이뤄지는가?
그렇게 후진적인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었는가?
-평소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네트워크가 필요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익운운하며 파업을 할 때에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수는 없었는가?
업무지침에 없더라도,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피해를 줄 것에 대해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서로 전화한통 나누면서 환자에게 가장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상의할 수는 없었는가?
예를 들어 회사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여보세요." 라고도 할 수 있고,
"감사합니다. 00전자입니다" 할 수도 있고,
"감사합니다. 00전자 홍길동입니다."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업무지침에도 없고, 의무도 아니지만,
주인의식, 소명의식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드러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공익을 위해 싸우고 있는 고명한 분들에게 묻고싶은 것이란 말이다.
파업이 언제 끝나냐고 묻는 환자도 많을 것이고,
다 죽여버리겠다고 분노하는 환자도 있을 것이고
(실제 네*버에는 연세노조대상 테러에 동참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할말이 없어지는 심정도 이해하겠다.
그러나 내가 짜증섞인 대답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공익을 위해, 환자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로부터,
연간 천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를 내고 있는 내가,
파업이 언제끝날지 저야 모르죠. 라는 짜증섞인 무책임한 대답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파업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파업. 할 수 있다.
그래. 사람이니까. 당연히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 행복추구에 있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수밖에 없다면,
쌍방의 행복추구에 있어 합의와 조정이 있어야 한다.
피해를 줄수밖에 없었다면, 왜 정성을 다할 수는 없었는가?!
병원노조도 연맹이 있다.
파업은 법적으로 일정기간 전에, 일정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
그렇다면 미리 환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주고,
환자 이송등에 대한 타 병원노조의 협조를 확보하고,
환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주었어야 한다.
그것도 못했다면 최소한 미안하다고는 해야 한다.
노조는 파업을 통해 회사를 향해 실력해사를 해야 하지, 고객에게 손실을 끼쳐서는 안된다.
고객에게 손실을 끼칠수 밖에 없었다면,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은 실제로 노조가 받게될 공적인 지지와 연결된다.
노조원 한사람 한사람의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노조가 받게될 공적인 지지와 연결된다.
최소한 투쟁하고 있는 본인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정성을 다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억지스러운가?
이 말이 억지스럽다면
내 월급을 올려주면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좋아져서
결과적으로 의료공공성이 실현된다는 말도 억지스럽다고 할밖에...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스무살 대학생들이 앞뒤 안보고 투쟁에 나서는 모습과 같다.
왜 그 시절에 그렇게 무식하게 투쟁에 나섰었는지,
왜 학생들이 허무하게 돌아서서 도서관을 거쳐 그저 그런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되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운동세력의 무식함 때문이다.
운동세력의 이론주의 때문이다.
이런 아마추어 같은 전략으로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리드할 수 있겠는가.
이번 투쟁으로 인해 돌아서게 될 소시민들, 노동자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투쟁으로 인해 향후 타 의료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의할 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안게 될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무식한 파업이 끝나고, 나는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산병원으로 옮기려고 연락해서 내일로 예약을 잡았는데,
세브란스에서 병원기록을 7월 30일에 받으러 오란다.
허허...
옮기려는 사람들조차 도와주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환자들의 절망에 대해, 그들은 조금이라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
환자를 위해 노동할 권리를 포기하고 투쟁하는 고귀한 그 분들은 대체 파업전에 뭘 준비한걸까.
병가는 3개월이다.
원래 내규는 1개월 병가 시 월급의 80%를 지급하고, 이후 병가는 무급이며,
1개월 이후 추가 병가는 휴직처리되며, 복귀시기는 사측에서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나마 우리회사는 복지도 좋고, 사람들도 좋아서, 3개월 푹 쉬고 나오라고 응원이라도 해주고 있지만,
어떤 비정규직 환자는 병가가 길어져서 회사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비정규직 저소득 환자는 누워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가족의 생계가 비참해질 수도 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비정규직 환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마음에 천근만근 돌덩이 같은 부담에 눌려 신음하는 노동자 환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세노조원들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싸우는 동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는 동안,
누군가는 죽어갈지 모른다. 죽고싶을지 모른다.
내 목숨이 하찮아져 서럽게 울고 있을지 모른다.
한숨이 길어지는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