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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한 한풀이

무신론자 |2007.07.18 13:02
조회 205 |추천 0

얼마 전, 교황의 기독교마저 부정하는 식의 발언이 논란이 됐었다.

 

기독교의 배타적 태도를 천주교마저 보이다니...실망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기독교에 대해 생각하던 바를 써보려 한다.

 

나는 무신론자이다.

 

그래서 종교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내에서 일부 - 아주 일부 - 의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행태는 썩 보기 좋지 않다.

 

특히나 기독교의 배타성...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내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부분이 기독교의 배타성인 만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떠 올려 봐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독교의 배타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럴듯해 보이는 어떠한 제도적 개선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를 절망의 구렁텅이 - 적어도 내 생각에는 - 로 밀어 넣는 데 있어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도, 마음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나쁜 의도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신실한 종교인들 중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무서운 것이고, 문제되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신앙과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행동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보시오. 당신들,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소.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걸 바라셨던 게 아니오.

이건 너무하잖소.’

 

라고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이걸 어쩌란 말이오?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 했던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썩어버린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

 

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바로 그 뿌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용, 희생 그리고 봉사를 중시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선행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어찌 그토록 자신들의 편에 서서만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Bible)이라는 같은 종교 서적을 보는 천주교는 타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지 않은가?

천주교라는 큰 강의 지류가 기독교이고, 종교라는 큰 강의 지류가 천주교이며, 인간존중이란

큰 강의 지류가 종교이다. 이 모두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결국에는 이러네 저러네 하는 것도

다 조금이라도 우리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는 것일 텐데 말이다.

 

 일단은 실세를 행사하고 있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의식구조부터 개혁시켜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믿음을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하면 그 누가 좋아하며 동의할 있겠는가.

하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유학이 필요하다면, 유학을 보내서라도 관용의 정신을 깨닫게 해야 한다.

기독교 배타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때문에 쓰여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쓰여질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액수일 것이다.

 

또한, 우리 기독교인 개개인도 달라져야 한다. 예전의 나와 같이 두 손 두 발 다 놓은 체,

강 건너 불구경 하면 안 된다. 다른 종교인에게 한 걸음만 더, 한 뺨만 더 양보하도록 해보자.

이해하도록 해보자.

 

‘불휘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새’라 했던가.

자신의 신앙이 진실로 굳건하다면, 다른 종교가 그 무엇을 하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을 터이다.

내 믿음을 져 버리지는 않되, 다른 종교들의 개성도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만

기독교가 해결해야 할 배타주의 문제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중심적 포용주의’란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앞으로는, 초등학교에 멀쩡히 세워져 있는 단군 할아버지 동상 참수(?)시킬 힘으로,

기독교 중심적 포용주의를 익히고, 널리 전파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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