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어느날 갑자기 - 독서실(12편이후 전부) (스크롤압박심함)

호호 |2007.07.21 01:07
조회 3,071 |추천 1

하하^^; 역시 이글 인기 많을줄알았어요..

유일한님 공포소설..참 멋졌죠

밑에분이 찾아서 12편까지 올려주셨는데 수정안하구 그대로 올리신거같더라구요..

이 많은분량 수정하기도 힘들것같아 그냥 저도 올리렵니다 -_-; 하하

그래도 정말 재미있으니 금방금방 다읽으실거에요^^

일하며 지루한시간보내시는분들, 이거 천천히 다 읽으시면 어느새 퇴근일겁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그것들은 지금 독서실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먹이를 찾고 있을 것이분명했기 때문이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망치를 한 손에 부여잡고 문 쪽으로 뛰어갔소. 독서실 안은 그 기분 나쁜 아이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소.
나는 아무 것도 안보고 독서실 문으로 질주 했소.
문앞에 도착하자마자, 손잡이를 돌렸소.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독서실 문 손잡이 꼼짝도 안하는 거예요.
안에서 잠그는 문인데, 열수가 없게 되 버린 거예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쳤지만, 꿈쩍도 안하는 거예요.
고동소리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소. 뒤를 돌아보니 복도 여기 저기에서 창백한 얼굴의 아이들이 나를 보고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었소.
나는 정신없이 다시 남자 독서실 쪽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닫았소.
문 손잡이를 꽉 잡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려고 했소.
그런데 등 뒤로 싸늘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소.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소.
거기에는 복도와 마찬가지로 쾡한 눈빛의 아이들 수십명이 내 쪽을 보고 있는 거요.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들의 모습은 다 비슷했소.
마치 몇 아이들의 모습을 복제해서 수십명이 된 것처럼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소.
나는 놀라서 기절할 것 같았소.
다시 문을 열고. 아이들이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 하는 복도로 뛰어나갔소. 어디로 가야 될지 몰랐소.
휴게실, 총무실, 복도, 남자 방, 여자 방 할 것 없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그 섬뜩한 것들이 가득차 있는 것이오.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죽고 싶었소.
그때 저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눈에 띠는 것이오.
바로 주인 아저씨가 창고로 쓴다며 자물쇠로 잠가놓은 그 창고문이었소. 갑자기 그 안은 안전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소.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소.
그냥 뛰어갔소.
하지만, 주인 아저씨가 열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을 열 수가 없었소. 그렇지만, 이 문은 굳게 잠긴 독서실문과 달리 자물쇠가 달려 있어 경첩을 뜯어내면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보였소.
나는 들고 있는 망치로 힘을 다해 내리쳤소.
몇 번을 내리치니까 경첩이 흔들리기 시작했소.
복도쪽을 보니, 이제는 수십명이 된 그것들이 기분 나쁜 웅성거림과 함께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소.
난 필사적으로 경첩을 내려치고, 또 내려쳤소.
그것들이 바로 내 옆에 다가 온 순간, 경첩에 부서져 나갔소.
나는 있는 힘껏 문을 열었소.
문을 여는 순간, 깜깜한 창고 안은 아무 것도 안 보였소.
창고 안으로 발을 한 발자국 들여놓는 순간, 창고 안에 뭔가가 있는 것이 보였소.
그것이 뭔가 자세히 보려는 순간이었소.
갑자기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소.
다리 힘이 풀리고, 눈앞이 깜깜해 졌소.
내 몸의 무너지듯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소.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소.
마지막으로 내 눈에 비친 것은 희미한 사람 형태의 그것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었소.
 
얼마나 기절했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정신이 드는 것이
느껴졌소.
그런데 눈을 뜨려는데, 뒤통수가 아픈 거였소.
몸을 일으키며, 손으로 뒷머리를 만져보니, 끈적한 것이 느껴졌소.
피였소.
고개를 돌려 봤더니, 나는 독서실 복도에 쓰러져 있었던 거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그 창고에 들어가려는 순간 뭔가의 공격을 받아 기절한 것 같았소.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분명히 부셨던 그 창고의 문이 다시 잠겨있는 것이었소. 자물쇠도 달린 채로...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죽음 같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소.
얼마 전에 있었던 그 무시무시한 광경은 상상이 안갈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이었소.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정도였소.
뒤통수를 만져 보니,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소. 그 상처를 만지면서, 생각했소.
이제까지 그 것들은 그냥 환상처럼 내 눈앞 나타나기만 했지만, 실제로 육체적인 공격을 한 것은 처음이었소.
그렇게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이 독서실을 목숨걸고 다닐 수는 없었소. 여기 있다간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었소.
그 날은 운이 좋아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었고.
망설일 것도 없이, 그 길로 독서실을 나왔소.
주인 아저씨에게 얘기도 안 했소.
괜히 이번에는 귀신들이 나를 공격했다간, 정신병자 취급받기 십상이거나 돈 좀 더 받아보려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아예 아무런 얘기도 없이 나왔소.
그리고 다신 이 독서실에는 다신 오지 않으리라 결심했소.
오늘 그 결심을 깨긴 했지만....
그 후 시험을 받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소. 여기서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절에 들어가 공부하기로 결심했소. 오늘도 거기 가져갈 책을 가지러 온 것이오. 그 때 너무 다급하게 나가다 보니 책을 몇 권 그냥 두고 나왔거든...
시험 끝나고 술 한잔 하다 보니, 마침 그날이 보름달이 뜬 날이었소.
혹시 나 같은 사람이 또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술김에 전화한 거요. 여기 멀쩡하게 있는 것을 보니, 당신도 그날 그 전화 받고 독서실에서 나갔나 보군....
이게 내 얘기의 다요...
당신이 내 얘기를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독서실에서 계속 근무하려면 믿어두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요...
아니, 이 독서실을 그만 두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
나는 그 서 경기라는 전 총무의 얘기를 다 믿을 수는 없었다. 물론 얘기 중에 내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얘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의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는 거죠?”
“멀지 않아요? 유명산에 있는 청화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정신 차리고 공부할 생각이오. 여기서 있었던 모든 악몽을 잊고...
당신도 공부할 생각있으면, 이런 독서실 전전하지 말고, 청화암으
로 오시오. 공부하긴 최고니까..
전화는 있는 곳이니까, 혹시 내게 물어볼 것이 있으면 전화하시오.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독서실 총무하게 된 것도 인연이면, 인연이니까....“

그 사람은 무슨 수도승같은 말을 남기고 책을 챙겨 독서실을 나갔다. 그 사람이 나간 다음,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아니면, 공부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정신이 붕괴한 한 정신나간 고시생의 환상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독서실에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본 것 아니면, 그 사람을 미치게 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느라고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느새 시간이 밤이 되고, 주인 아저씨가 보충수업에서 애들을 데리고 독서실로 들어왔다.
나는 서 경기라는 전 총무가 왔다 갔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주인 아저씨는 대뜸 한마디 했다.
"그 정신나간 놈이 여기 왜 왔다는 거야?"
"예... 놓고간 책이 있어서..."

난 주인 아저씨가 전 총무에 대해 그렇게 안 좋은 감정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런 말에 좀 놀랐다.

"미안하다고 안해?
그렇게 개판을 만들어 놓고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놓고선?"
"아니, 자기 나름대로는 심각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유는 무슨 이유
또 귀신 얘기 한 거 아냐?
뭐라고 얘기했거든 믿을 거 하나도 없어.
그 놈이 여길 나간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 놈이 사라진 날은 정말 가관이었어.
내가 애들 태우고 독서실 왔더니, 친구들하고 술 처먹으러 나갔다
는 거야. 거기 까진 내가 꾹 참았지.
그런데 다음 날 독서실에 와 봤더니,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거야.
의자, 책상 부서져 있고, 자판기도 돈을 꺼내려고 했는지 박살나
있고, 창고는 왜 열라고 그랬는지 자물쇠가 반쯤 떨어져 나가
있고.. 바닥에는 술병이 뒹굴고 있고.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술 마시다 친구들을 독서실로 데려와
술 먹고 난리 쳤나 보더라고....
그런데 뭐 귀신이 이 독서실에서 배회한다고...
미친 놈 지랄하고 있네!"

주인 아저씨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전 총무의 얘기들이 전부 믿겨지지 않기 시작했다. 술 먹고 난리 친 다음에 독서실에서 나간 것을 귀신 얘기로 했다니...
난 혹시나 하고, 그 서 경기라는 총무가 보고 경험했던 괴기한 일들을 얘기했다.
 

"...결국 그래서 그 창고문을 여는 순간, 뭔가에 뒤통수를 맞아서
기절했다는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독서실을 떠났다는 거구요..."
"뭐, 그 미친 놈이 그런 뻥을 쳐!
그래서, 창고에서 뭘 봤다는 거야?"
"뭐 제대로 본 것 같지는 않은데.. 여하튼 기분 나쁜 경험이었데요"

그랬더니 그 주인 아저씨는 얼굴이 벌게 지며, 백프로 다 헛소리라고 흥분까지 했다. 그 총무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독서실 기물 파손에 대해 배상을 받아야 겠다며 그 사람의 거처를 물었다. 망설이다가, 주인 아저씨 말이 맞는다면, 그 총무가 잘 못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공부하러 가겠다는 암자를 가르쳐 주었다.

"제길! 멀리도 도망갔네!
돈 청구하긴 글렀잖아! 그 자식들이 그 날밤 부셔놓은 것들이
돈으로 치며 몇 십만원 하는데....
요즘 왜 그렇게 귀신 얘기를 퍼트려서 우리 독서실 망하게 하려는
놈들이 많은 거야!
그건 그렇고, 은혜 개 오늘 독서실 왔나?
한 마디 해 줘야 하는데, 얼굴도 못 보겠어.."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은혜는 독서실에 안 나왔다.
거의 매일 오던 애 였는데, 무슨 일이 있는지 통 독서실에서 볼 수 없었다. 여하튼 주인 아저씨와 대화를 하고 보니, 한편으로는 위안이,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전 총무가 얘기했던 것들이 어쩌면 다 거짓이었다는 것은, 이 독서실에는 별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마 그 모든 것을 꾸며서 얘기했다고 생각하기에도 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저씨는 씩씩 거린채를 독서실을 나섰다.
나는 별일도 없고 해서, 12시에 애들이 나서는 것을 보고 곧장 독서실 문을 닫고 나왔다. 물론 그 여자 독서실의 문은 열어보지도 않고..
그 후 며칠간은 별일 없었다.
나는 간만에 독서에 파 묻혔다. 그 전 총무의 신뢰가 가지 않는 충고지만, 그 충고대로 12시 쯤 애들이 나가면, 망설이지도 않고 독서실을 나서니깐 별 일이 없었다. 그리고 12시 이후에는 그 여자 독서실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했다.
물론 아침에 들어가면 매일 아침 낙서가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그 낙서의 숫자는 '5'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 의미도, 누가 매일 하는지도 밝혀낼 수 없었다.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매일 아침 그 낙서 지우고, 낙서 금지 표시를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주인 아저씨는 거의 매일 은혜를 찾았지만, 왠일인지 그 후로 은혜는 독서실에 나오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무슨 개인적인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던 어느날, 읽던 5권짜리 책을 다 읽고 기지개를 펴다보니, 예전에 읽던 심령과학 책이 구석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윤석이가 추천해준 책으로, 은혜가 이상한 증거라는 것을 들고 오기 전에 읽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읽을 책도 없고 해서, 그 책을 집어들어 예전에 읽던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현상에 대한 부분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한 페이지쯤 읽고 난 때였다.
갑자기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 독서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묻고 본인이 맞는지 확인했다.
나는 기분이 좀 이상해서 물어봤다.

"누구시죠? 무슨 일인데 저를 찾아오신 것이죠?"
"경찰입니다.
저희와 잠시 얘기 좀 나눴으면 하는데요.."

난 경찰이라는 말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특별히 입대를 앞둔 내게 경찰이 찾아올 이유가 없는데, 좀 이상했다.
 "제가 뭐 잘못했나요?
  무슨 일로 경찰이 저와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는 것이죠?"

내 질문에 경찰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은혜가 예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난 은혜 사진을 보고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경찰의 대답을 듣고 충격으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김 은혜라는 학생 아시죠?
  이 독서실 다녔다는데...
  그 학생이 실종되었습니다.
  벌써 실종 일주일째입니다.."

은혜가 실종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우선 경찰들을 총무실로 들어오게 해서 얘기를 들었다.
경찰 말로는 지난 일요일 친구 만난다고 집에서 나간 후로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공개 수사를 한지는 이틀 되었는데, 그 동안 은혜의 친구란 친구는 다 찾아봤지만, 아무도 은혜와 만나기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던 독서실까지 왔다는 것이다.
경찰은 예의 바르게 은혜에 대해서 몇가지 묻기 시작했다.
은혜가 독서실에서 자주 어울리는 친구는 누구냐?
평소에 독서실에 몇 시에 와서 몇 시에 나갔냐?
이상한 행동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않았느냐?
많은 질문을 해댔지만, 거의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혹시 수사에 도움될 만한 사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얘기했다.
그런데 내가 대답하는 것을 보고 있던 한 경찰이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모든 학생들과 그렇게 친한가요?"
"무슨 얘기죠?"
"아니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은혜 학생에 대해 꽤 많이 알고
계신 것 같아서요.. 그 학생만 특별히 많이 아는지, 아니면 다른 학
생도 모두 그 정도는 아시는 가 해서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난 말문이 막혔다. 잘못하면 내가 용의자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은혜와 내가 어떤 일 때문에 친해졌다는 것은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경찰 앞에서 그런 얘기 했다가는 의심받는 정신병자로 보일 것도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알아챈 경찰은 가차없이 질문을 던졌다.

"독서실 다니는 은혜 친구 말로는, 독서실 총무와 친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둘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도 많이 나누는 것 같고..
실례지만, 은혜 학생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뭐 숨기는 거
없으세요?"

내가 경찰이라도, 이 상황에서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의심할 것이 뻔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줄 몰랐다. 경찰이 나를 보는 눈은 점점 의심하는 눈빛이 되어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믿지도 않을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은혜가 이 독서실에 귀신 또는 악령이 있다고 믿어서, 자꾸 내게 그런 얘기를 하면서 가까워졌지만, 얼마전에 내가 더 이상 그런 얘기 그만 하자고 한 적이 있다고 얘기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경찰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일한씨, 죄송합니다만, 그런 얘기 좀 믿기가 힘드네요.
솔직히 경찰이 그런 얘기 믿고 다니면 오히려 이상하겠죠?
이렇게 이해하죠. 은혜 학생과 비슷한 취미, 그러니까 귀신 잡는
거, 를 가지고 있어 서로 가까워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얼마전 일한씨가 더 이상 그런 이상한 짓 그만 하겠
다니까 은혜 학생이 화내고 나갔다는 것이고...
이게 맞나요?"

언뜻 들어보면, 맞는 얘기였지만 경찰이 말하는 뉘앙스가 나를 의심하는 것은 명백해졌다. 사실 생각해 보니, 나와 은혜가 많은 대화를 나눈 이유를 남에게 납득시키기란 뷸가능해보였다.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좀 더 확실히 아실 것 같은데요..
주인 아저씨는 은혜가 그런 이상한 얘기하고 다니는 것 아시고,
언제 날 잡아서 혼 내겠다고 하셨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인 아저씨를 들먹였지만, 경찰의 대답은 나를 절망으로 밀어넣기 충분했다.

"예. 이미 만나 봤는데, 자기는 솔직히 은혜 학생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아는 것 없다고 하셨서요. 은혜 학생에 관한 얘기는 대부분
일한씨에게 들었다고 하는군요. 자기는 요 근래에 들어 은혜 학생
과 직접 대화한 적도 없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처음에는 주인 아저씨의 무책임한 대답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인 아저씨 말 중에 거짓말은 없었다. 단지 내가 유리하게 말해주지 않은 것 뿐이었고, 주인 아저씨 입장에서는 사실을 자기 유리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주인 아저씨를 다시 불러 따져 봤자, 내가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내가 경찰에게 할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실 줄 모르겠지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내 연락처를 적고 일어서는 경찰은 내 그런 말에 약간의 비웃음을 띠며 한마디 했다.

"이 세상 모든 범인이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죠.
너무 걱정 마세요.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니까요..."

경찰은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필요하면 몇 번 더 찾아올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또 수사상의 이유로 되도록 여행 같은 것을 자제해달라고 은근히 강조하고, 독서실을 나갔다.
황당했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일로 봐서는 나도 은혜 사건과 관련되어 의심받는 것이 확실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딜 갔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은혜가 가출했을 가능성에 관해서 생각해 봤다. 아무도 자기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사춘기로 화가 난 채 그냥 뛰쳐나갔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이 그 쪽보다는 누구의 납치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당장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단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답답했다.
은혜의 귀신 얘기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줄 것을 하고 후회도 해 보았다.
나는 은혜가 사라진 것을 가출과 납치, 이 두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가출이라고 하면, 그 동기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았다. 은혜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 독서실에 얽힌 얘기에 집착하고 있었고, 자기 오빠가 지었냈을지도 모를 얘기를 그대로 믿고 남들에게 자기 얘기를 납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별로 믿지 않았고... 그 결과로 가출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가정은 너무 논리적으로 미약했다. 가출을 했다면, 가정적인 동기나 뭔가 더 강력한 원인이 있을 것이었다. 자기 얘기를 남들이 안 믿어준다고 가출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납치 역시 말이 안되었다. 돈을 노린 유괴라고 해도 고등학생을 유괴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범죄였다. 차라리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다니는 애를 유괴하는 것이 더욱 손 쉽고 위험부담이 없을 텐데 라는 생각까지 들자, 도저히 은혜의 행방불명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라진 은혜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데, 아까 읽으려던 그 심령 과학책이 눈에 띠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그 책이나 마저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은혜의 일을 잊기위해 집어든 책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책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이 독서실에서 일어났던 기괴한 일들 처럼 아이들의 노래나 소리가 들리고, 그네들의 유령이 보였다는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 곳들의 얘기였다. 마치 역사적인 기록처럼 연대기 순으로,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1. 성 패트릭 성당에 남겨진 자들
1944년 2월 17일 오전, 런던 외곽의 성 패트릭 성당에는 공습으로 무너진 학교를 대신해서 국민학교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시간 런던 시가지를 노리고 발사된 독일군의 U2 미사일은 방향타의 이상이 생겨, 원래 목표로 했던 곳보다 10km 서쪽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을 폭격하게 되었다.
그 폭발로 성당 안에 모여있던 60여명의 어린이들과 5명의 선생들이 죽게 되었다. 폭격후 사체를 발굴했으나 무너저 버린 성당의 흙더미에서 7구의 어린이 사체는 발굴되지 않는다.
2차 대전 종전후 성당은 복구된다.

1946년 1차 목격이 기록됨
- 동네 주민에 의해 아무도 없을 성당에서 한밤중의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고 함. 성당에 들어가봤다니 흰옷을 입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가, 허공을 날라서 다가왔다고 함.

1946-1950년 수십건의 목격이 기록됨
- 성당 종지기, 마을 주민 등 수십명에 의해 성당에서
괴가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가 기록됨 (그 당시 목격자중 생존자 인터뷰 통해 확인)
담당 교구 신부는 그런 사실을 부인
하지만 4년동안 5명의 신부가 그 성당을 떠남.
성당을 떠난 이유는 밝혀지지 않음

1951년 7월 13일 성당지기 제임스 필리 투신 자살
- 성당지기가 제임스 필리가 한밤중에 종탑에서 투신 자살
발견된 유서를 통해, 그가 아이들의 유령에 시달리다 못 해
무서워 자살했다는 기록 발견. 신부에 몇 번 그 얘기를 호소했지
만,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교구 신부 교체 조치.
마을 주민의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엑소시즘 관련 신부가
파견되어 몇 번의 의식을 거행했으나 실패.
엑소시즘을 거행한 신부는 의식을 진행하던 도중 정신질환 발생
으로 요양원 입원. 3개월 후 사망...
 

1952년 12월 13일
- 교구 주민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성당 폐쇄
 래리 맥켄지라는 부동산 업자가 사들여 B&B (Breakfast & Bed) 스타일의 여관으로 개조.

1953년 4월 7일
- 여관 투수객 중 첫 번째 사망자 발생 (사인 심장마비)

1953년 7월 9일
- 투수객 중 8 번째 심장마비 사망자 발생

1953년 10월 4일
- 여관 소유자 래리 맥켄지의 10살 짜리 딸 줄리 맥켄지 실종

1953년 10월 6일
- 여관 뒤 헛간에서 줄리 맥켄지 시체 발견 (사인: 심장 쇼크사)

1953년 10월 15일
- 래리 맥켄지의 방화로 인해 여관 전소. 정신 병원에 입원
여관 패쇄

1954년 2월 17일
- 래리 맥켄지 정신병원에서 자살
자살 후에 발표한 담당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래리 맥켄지는 여관에 아이들 모양의 악령이 출몰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 존재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
었다고 결론.
1954 - 1979
- 불타버린 잔해와 폐허가 되었음
주변 마을도 이주하는 바람에 인적이 드믈게 됨.
유령들린 곳(HAUNTING PLACE)으로 알려져, 접근하는 사람
없음

1980년 2월 16일
- 유명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을 포함한 일련의 과학자들이 유령의
정체를 규명을 목적으로 방문
첨단 장비를 준비한 상태로 그 무언가의 출몰을 기다림
밤 2시 30분 이상한 현상과 함께
기괴한 소리의 노래와 함께 아이들의 모습을 한 혼령들이 출현
설치된 장비로 녹음하고, 촬영 성공.
그러나 나중에 촬영한 것을 현상해 보니 빛이 들어간 것처럼
보일 뿐 실체는 찍히지 않음.
적외선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음.
16mm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음.
녹음된 음성을 분석한 결과 7가지의 음색이 구분됨
녹음된 노래는 폭격당시 수업에서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로 판명.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은 모두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일련의 치료
후 회복됨.

1980년 - 현재
- 폐허 그대로 보전됨.
정부에서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개발 참여 업체가 없음.


2. 도쿄 다까다노바바의 양로원

1960년 5월 13일 도쿄 다카다노바바의 한 유치원에 원인 모를 화재 발생하다. 그 화재로 유치원생 27명과 2명의 선생 사망하게 된다.
사체 발굴 도중, 가스 폭발로 사체 5구 발굴 할 수 없게 된다. 부모의 강력한 요청으로 3주간의 발굴을 더 했지만, 그 5명의 시체는 흔적도 없었다.
1960년 9월 10일 도쿄도청에서 그 자리에 작은 위령비를 세우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세우기로 결정한다.
1961년 3월 13일
- 무위탁 노인을 위한 시립 양로원 개원
127명의 노인들 생활 시작

1962년 3월 17일
- 71세 노인 이짜하라 고이찌 사망.
사인 심근 경색. 첫 번째 사망자

1961년 4월 30일
- 양로원에서 1달반동안 심장마비 및 원인 불명으로 사망한 노인의
수가 21명이 됨. 시 보건 부서에서 조사 시작

1961년 5월 14일
- 보건 부서 조사 결과 나옴
조사결과에 의하면, 양로원 시설 및 모든 보건 시설물에는 아무런
이상 없음이 밝혀짐. 노인들의 연쇄적인 사망에 대해서는 아무 것
도 밝혀내지 못함

1961년 6월 15일
- 양로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보조원 마사오 다까히로 정신병원
수감. 담당 의사에 의하면, 밤마다 아이들의 유령이 보였다고 함

1962년 2월 3일
- 1년간 127명의 노인 중 62명이 사망
시 당국 양로원 폐쇄를 결정
1년동안 양로원에서 근무하던 직원중 12명이 신경쇠약 및 정신병
발병. 그 중 3명은 자살.
아이들에 관한 환각과 환청 증상을 호소하던 직원들은 양로원 폐
쇄 후 자신들이 목격했다는 유령의 존재에 대해 부정함

1963년 1월 5일
- 양로원을 철거하고, 도심 공원으로 개조

1963년 2월 7일
- 공원에서 기거하던 부랑자들의 시체 발견
사인이 쇼크사로 밝혀짐

1963년 - 현재
-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에 인적없는 공원으로 남겨져 있음
 
3. 러시아 백색 악마가 남긴 흔적들...

1980년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농가에서,
소련 경찰은 러시아 백색 악마라고 불리는 미하일 코로모포를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마하일 코로모프가 기거하던 농가 지하에서, 경찰은 형체를 알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 당한 3구의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농가
주변에서 심하게 부패한 17구의 어린이 시체를 발굴한다.
모든 시체들은 각각 신체 부위가 하나씩 없어진 채 발견된다. 부엌
에서 발견된 흔적으로 경찰은 그 부위들은 미하일 코로모포가 먹어
치웠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범인 미하일 코로모프는 호송도중 자살
한다. 경찰은 범인의 일기장을 통해, 좀 더 많은 어린아이들이 살해
되었으리라 확신을 했지만, 소련의 대외 선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수사가 종결된다. 1년후 그 농가 근처에서 온천이 발견된다...

1981년 2월 17일
- 소련 공산당 당국은 코로모포의 은신처 근처에서 발견된 온천에
고위급 당원전용 온천 휴양지로 개발하기로 결정

1981년 12월 5일
- 공산당 당원 전용 온천 개발 완료

1982년 2월 10일
- 온천 관리인 실리오프 카즐로바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 입원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카즐로바는 환각과 환청 증세와 과대 망상증을 보임

1982년 3월 8일
- 주말을 보내던 정치국원 코스코 스바브다 사망.
사인 원인불명. 정치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심장마비로 발표.
13명의 온천 관리인 숙청 당함
1982년 6월 21일

- 온천 관리인 중 3명이 이유 없이 근무를 거부
당국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된 이들 3명은 비앙카 감옥에 투옥된
후, 고문받았지만, 명확한 근무 거부 이유를 밝히지 못함.
단지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실토함

1982년 12월 29일

- 연말 휴가를 보내던 공산당 고문 마쥬르 루진 심장마비 사망
당국에서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휴양지 폐쇄 결정
숙청된 관리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휴양지에서 아이들의
유령들이 출몰한다고 함.

1985년 12월 7일
- 모스크바 경비 사단의 동계 기갑 훈련중 3명의 낙오병이 추위를
피해 폐쇄된 온천 휴양지에 들어왔다가, 모두 시체로 발견된 사건
발생. 두명은 심장마비로, 나머지 한 사람은 총기 자살로 사인이
추정됨

1989년 8월 17일
-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영향으로,
영국 개발업체 테일러 인더스트리에서 이 온천 휴양지를
관광객을 위한 위락시설로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냄

1989년 9월 15일
- 철거 공사를 담당한 소련 공사 인부들이 파업.
유령들이 출몰을 이유를 들어 야간 작업 거부

1989년 9월 30일
- 기초 공사를 하던 중, 아이들의 사체로 추정되는 유골 5구 발굴
유골들의 신체 부위 일부가 없어진 것으로 보아, 러시아의 하얀
백정 코로모프의 희생자로 추정

1989년 10월 2일
- 근처에서 러시아의 하얀 백정 코로모프의 희생자로 보이는
유골 18구 더 발굴됨.

1990년 5월 2일
- 최신식 온천 휴양지 'The Spa' 오픈

1990년 5월 3일 - 현재
- 모스크바 근교의 주요 관광지로 아직까지 각광받고 있음.
특별한 사건 또는 유령 목격에 대한 보고 없음
소련의 몇 개 안되는 서방 기업 진출의 성공사례로 남아 있음
 

* 위 3 사건을 비롯한, 여러 건의 兒童幽靈出沒 사건을 종합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아동유령(兒童幽靈)은 희생 장소 근처에서 출몰
2) 피해자들의 모습으로 봐서, 인간에 대한 물리적 영향력
  미비. 다만 목격자에게 강한 심리적 충격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추정됨
3) 출몰시 노래 소리나 특징적인 소리를 발생
4) 퇴치 방법 및 해결 방법 입증된 것 없음.........>

이 것을 다 일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연 치곤 독서실에서 생겼던 괴기한 일들과 유사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그 기분 나쁜 소리하며, 아이들의 유령, 그리고 만약 주인 아저씨
말대로 이 근처에 묘지가 있었다면 나름대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의 결론 중에 아이들의 유령들은 '물리적인 영향력'
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독서실에 일어나는 기괴한 일
들의 원인이 아이들의 유령 때문이라면, 그리고 윤석이가 준 책에
쓰여진 글이 사실이라면, 그 유령들은 사람들을 때릴 수도 건들일
수도 없다는 얘기였다.
사실 내가 경험한 것들이나, 은혜가 주었던 테잎을 들어봐도 그것들이
사람의 몸을 직접 공격한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
단...
어디선가 그것들에게 직접 공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것을 생각해 내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바로 서경기라는 전 총무가 얘기해 준 것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유령을 피해 창고문을 여는 순간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고 기절했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뒤통수에 피가
흐를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였다.
이상하게도 그 부분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정말 이 독서실에 아이들의 유령이 있다면, 나는 어째서 그런 공격
을 받지 않은 것일까...
그 사람이 정말 지어낸 거짓말이란 얘기인가...
한참을 생각해 봐도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 사람이 공부하런 간 곳의 전화번호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까짓 것 가지고 공부하러 절에 들어간 사람에게 전화한다는 것이
너무한 것 같아서 망설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통화하면 뭔가 더 많은 것을 알아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은혜도 실종되고, 내가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에 마음 쓸 여유가 없었다.
수화기를 들고 그 전화번호를 눌렀다.
늙그수래한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아마 그 절에 기거하는 스님같았다.
서경기라는 학생을 바꿔달라는 말에 전화 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온화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갑자기 긴장된 것처럼 바뀌는 것이었다.

"서 경기 학생과 전화받으시는 분은 어떤 관계신데요?"
"아니... 그냥 친구데요.."
"그 학생 여기 없어요."

나는 잠시 자리를 비웠나라는 생각에 물어봤다.

"어디 갔나요? 집에 내려갔나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굳은 목소리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충격으 로 머리가 윙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그 학생 사흘 전에 실종되었소.
안 그래도 오늘 경찰에 신고해서, 조사중이란 말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얘기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서 경기마저 실종되다니...
난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이번에는 죽을 각오를 했는지, 눈빛부터 달랐어요.
아니, 풍기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지요.
뭐랄까... 사지에서 빠져 나온 사람처럼 보였죠.
내가 무슨 번뇌가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몇 번 권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대답을 안 했소.
내 생각 같아서는 그 학생 뭔가에 괴롭힘당하는 것 같았지만, 본인
이 도움을 청해야지...
여하튼 그 학생이 암자에 올라와서 한 일이라곤 공부와 밥 먹는
일이 전부였소.
자기 방에 틀여 박혀 식사할 때만 얼굴 볼 수 있는 정도 였으니까.
내 경험상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꼭 시험에 붙길래, 그 학생도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밤에 어쩌다 그 학생이 묵고 있는 방을 지나다 보면, 방안
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들려 놀라 뛰어가 보면, 학생이 먼저 방안
에서 나오며, 달려간 우리들에게 악몽을 꿨다며 걱정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학생의 그 때 모습은 악몽을 꿨다보다는 지옥을
목격한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우리는 좀 걱정을 했지만, 시험의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가 넘어갔죠.
어느날 밤은 방안에서 뭔가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불경을 읽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슨 주문을 외우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밤 늦게까지 그 이상한 소리는 들려올때도 있었어요.
다음 날 물어보니, 법전을 소리내서 외웠다고 대답하더군요.
좀 이상하긴 했어요. 내가 대충 들은 그 소리는 의미 있는 소리
라기 보다는 무슨 주문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공부하는 비법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일도 가볍게 흘러보냈죠..
그 학생은 그런 식으로 생활했죠.
그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사흘 전이었소.
저녁 식사 때부터 그 학생이 안절부절 해 보였어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기 기다리는 사람 같아 보였어요.
그러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식사 후에는 반드시 하던 경내 산책도
안하고 곧장 자기 방안으로 들어가는 거요.
난 그 모습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공부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어요.
밤 11시 쯤 되었을 때였을까...
달도 밝길래 암자 근처를 산책하게 되었어요.
그 학생은 그때까지도 공부하고 있는지, 방안에 불은 켜져 있었어요.
잠깐 말동무가 되 줄 생각으로 방 밖에 서서 그 학생을 불렀소.
몇번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는 거였소.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봤지만, 책상에 책은 펴놓은 채로 없어진
거요. 쓰고 있던 싸이펜의 뚜껑이 열려진 채로 있는 걸로 봐서는
화장실이나 잠 깨려고 가까운 곳에 산책 간 걸로 생각했어요.
잠시 기다릴 생각으로 방에 들어가 앉아있었어요.
한참을 기다려도 멀리 갔는지 오지 않는 거예요.
좀 멀리 산책갔으려니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 학생이 공부하던
책들이 눈이 띠었어요.
법전이나 참고서 같은 것이 아니라, 이상한 기호와 문자들이 뒤죽
박죽되어 있는 책들이었어요.
남의 물건을 허락없이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책을 들어보았지요.
그런데, 그 책은 무슨 일본책 같은데, 한문제목을 읽어보니 심령학
관련 책이었어요. 혹시나 하고 그 학생이 가져온 책들을 살펴보니.
전부 유령, 살인, 악마, 등등 불경한 내용의 책들이었어요.
학생의 눈이 그렇게 불안해 보이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돌아오면, 당장 주지 스님께 설법을 들어보라고 얘기할 생각으로
그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다음 날 아침이 밝어도, 그 학생은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주지 스님께 곧장 그 학생이 없어진 것에 대해 보고 드렸죠.
스님께서는 그 학생이 답답한 마음에 마을로 내려가 술 한잔했을
지도 모른다며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셨죠.
하루를 더 기다리고 아무 소식이 없기에, 오늘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 말로는 그 학생이 어디로 갔는지는 가족도 모른다는 거예요.
덕분에, 조용하던 우리 절이 경찰들로 북적거리게 되었지만...
그런데, 그 일에 대해 꼬치 꼬치 캐묻는 분은 누구시죠?"
 

한참을 수다스럽게 얘기하고 난 그 스님은 갑자기 내가 의심스러운지, 친구라고 밝힌 내게 다시 정체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군데요..
이 친구 요즘 공부 잘 하고 있나해서 전화해봤어요..."

갑자기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아무 소리가 안 들렸지만, 그 스님이 이제 나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스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잠깐! 당신 누구요?
서경기 학생이 우리 암자에 올라왔을 때, 자기가 여기 온 것은 가족도 모른다고 얘기했소. 한 동안 속세를 끊고 살고 싶다며...
그런데, 친구인 당신이 그 학생이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말이요?"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뭔가 대답할 말을 생각해내려했다.

"그...저...저는..요....친구가.. 아니라...."

하지만, 그럴듯한 거짓말을 생각해낼 수 없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스님은 분명히 나와의 통화 내용을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가뜩이나 은혜 실종 사건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로써는 나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걱정도 잠시뿐, 서 경기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단지 이 독서실에 대해 뭔가 의심하고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실종되거나 죽는 것 같았다. 슬슬 겁이 나기도 했다.
잠시 담배를 꺼내 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가능성이 생각났다.
만약에 그 서 경기라는 전 총무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면....
그 사람이 한 얘기가 지어낸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은혜는 납치당한 것인가, 그냥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그 애 역시 스스로 어딘가 숨어버린 것인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복잡해 졌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독서실에서 일어나는 괴기하고 무시무시한 일들과 사람들의 실종과는 분명히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나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무서워졌다.
그러다 단 한사람, 독서실에서 끔직한 경험을 하고 아직도 이상없는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군대 가 있다는 은혜의 오빠였다.
하지만, 어느 부대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연락할 길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은혜네 집에 전화를 걸어 알아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의심받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독서실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들 중에 은혜 오빠와 같은 고등학교 나오고, 같은 나이에 재수하는 애들을 찾아봤다. 혹시 은혜 오빠, 은철이의 연락처를 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중 한 아이가 은철이와 꽤 친했는지, 부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의정부 지역 부대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 부대 이름이 낮이 익었다.
바로 친한 선배가 ROTC 장교로 가있는 그 부대였다. 술 얻어 먹으로 나도 그 부대에 몇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허겁지겁 수첩을 꺼내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저 일한이예요."
"어, 네가 왠 일이야? 너 군대 간다고 전화한거야?"
"그건 아니고요. 형은 어때요? 이제 1년정도 남았죠?"

의례적인 질문이었지만, 선배는 힘든 일을 겪었는지 한숨을 내쉬더니 얘기했다.

"요즘 말도 마라.. 우리 부대에 사고가 터져 며칠 밤새고 난리 났었다."
"사고라뇨? 무슨 일 있었어요?"
"야, 야, 이런 건 보안 사항이야. 전화로 말해줄 수 없어.
그건 그렇고, 너 정말 무슨 일로 전화했니?"
"다른 게 아니라.. 형이 혹시 알까 해서요...
김은철이라고 혹시 아세요. 성남 출신이고.. 지금쯤이면 일병정도 일텐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배의 놀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니. 니가 왜 김은철이를 찾냐?
너 뭐 아는거 있냐?"

오히려 선배가 내게 반문하는 것을 듣고,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는거라뇨?
무슨 일 있어요?"
"너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니?
그렇다면 그 자식은 왜 찾아?"
"요즘 제가 총무로 있는 독서실에 한 여자애가 실종된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혹시 그 애 오빠인 김은철이 뭔가 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마침 형이 같은 부대에 있다기에 한 번 전화해봤는데..."
"뭐라고?
네가 김은철 동생이 다니던 독서실 총무로 있다고?
휴... 세상 참 좁긴 좁아...."

선배의 목소리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형도 그 김은철이라는 사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가능하다면
내게 전화해 달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독서실과 동생 문제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텐데..."

내 부탁을 들은 선배는 약간 망설이다가, 뭔가 결심한 듯 김은철에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또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휴... 어떡하나....
하긴 여기서 아무리 쉬쉬 해봤자, 며칠 후면 다들 알테니까...
그 김은철 일병은 사실 내 소대원이야.
그런데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게 되었어.
그저께 밤, 그 자식이 부대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어...
탈영을 했는지, 월북을 했는지..
여하튼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은 정말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는 거야...."
 

은혜의 오빠가 부대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수화기 를 들고만 있었다. 선배는 김은철의 실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틀전 밤이었어. 그날 내가 일직 사관이었지.
병영주변을 순찰하는데, 초소에 서 있는 은철이를 봤지.
평소에도 말이 없는 녀석이었지만, 그 날밤은 표정이 좀 달랐어.
일이 발생한 후 생각해보니, 뭐랄까.. 그 녀석은 뭔가 겁에 질려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 하는 것 같았어.
사실 나는 그 녀석이 원래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1년이 넘게 군대생활을 했지만, 내무반에서 친한 사람이 없이 외토 리로 생활하고 있었지. 그렇다고 뺀질거리거나 성격이 나뻐 왕따를 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단지 자기 스스로가 남과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어. 한번은 포상휴가를 받았는데 반납하기도 해서 좀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을 받던 놈이야. 공휴일날 특별한 업무나 훈련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축구하고 운동하는데, 그 녀석은 내부반에 멍하니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앉아 있곤 했지.
사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좀 주위깊게 살펴봤지.. 아니나 다를까 결국 사고를 쳤지만... 그런데, 그렇게 혼자 지내길 좋아하는 녀석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일이 하나 있었어. 바로 밤에 혼자 보초를 서는 것이지. 왜 있잖아? 초소에서 보초 설 때, 고참은 초소에 들어가 졸고 있고 쫄따구가 혼자 보초서다가 장교가 오나 감시하곤 하잖아.
그런데 그 녀석은 이병때 부터도 그렇게 죽어도 못 하겠다고 해서, 고참들에게 한참 얻어터진 것 같아. 그런데도 배째라는 식이 었나봐. 결국 그 놈과 보초 서게 되면, 아무리 짬밥이 높아도 같이 졸지도 못하고 같이 섰지. 당연히 그 놈과 보초 서기를 모두 꺼려 했지. 내가 한번 불러 그 이유를 물어봤어.
그랬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니?

'아무도 없는 어둠 속이 두렵습니다...'

황당한 대답이었지. 군인이 그런 거 무서워해서 어떻하냐고 나도 다그치고 군기 교육대까지 보냈지만, 소용없었어. 하긴 원칙대로 하면 그 자식 원하는대로 같이 보초 서는 것이 맞는 것이니 나도 더 이상 터치는 않했지..
그리고 생각해 보니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어.
 

내가 이 부대로 온지 며칠 안되서의 일이었지. 그 녀석도 이 부대 에 배속되자마자의 일이었어.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데, 그 녀석 내무반장이 속옷바람으로 허겁 지겁 사무실로 달려오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보고하는 거야. 새로 들어온 신병이 자다가 발작을 했다는 거야. 무슨 일인가 들어보니, 바로 그 녀석이 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거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난 아냐!!! 날 그만 나줘!!!!'

그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라 깨어나서, 그 녀석을 때리고 난리를 쳤다는 거야. 그런데 평범한 잠꼬대 같지가 않았다는 거야. 마치 간질병 환자처럼 몸을 바르르 떨고 난리가 났다는 거지 뭐.. 내가 내무반으로 가보니, 그 녀석은 어찌나 맞었는지, 온 몸에 멍 투성이에 얼굴도 부어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마라톤을 뛴 사람처럼 온 몸이 땀 투성이었고,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 처럼 겁에 질린 눈빛이었어.

나는 처음에 그 녀석이 무슨 정신병 흉내내서 군대에서 의가사 제대 하려는 놈으로 의심했어. 그런 놈들이 간혹 있거든..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어서, 육군 병원으로 보내서 정신 감정을 의뢰했지. 문제가 없다는 거야. 그리고 본인도 설사 이상이 있더라도 군대에 계속 있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어보니 적어도 군대에서 나가려는 놈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병원에 갔다온 이유로 그런 발작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거야. 오히려 너무 죽은 듯이 잠을 자서, 밤에 보초 설 때 깨우기가 너무 힘들 정도였다고들 했으니까.

갑자기 그런 잠꼬대인지 발작인지 그 이상한 증상이 없어진 이유 에 대한 해답은 그 녀석이 없어진 후에 사물을 조사하다가 밝혀졌 지. 그 녀석은 어디서 구했는지, 매일 밤 수면제를 먹고 잔 거였어. 그래서 그렇게 깨우기 힘들었던 거고... 어쨌든 그 녀석은 군대 오기 전에 뭔가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끔직한 일을 겪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어.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없어지기 전에 어떤 조치를 내렸어야 하는 데... 사람이란 것이 간사해서 처음엔 불편하고 이상하더라도 시간 이 지나면 그러려니 하고 적응이 되잖아. 그 녀석도 그런 셈이였어. 처음에는 참 괴상한 놈이다라고 생각하고 요주의 인물로 생각 했지만, 오히려 일할때는 성실하고 특별한 말썽을 피우는 일이 없으니 좀 괴팍한 놈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 녀석이 없어진 그 날도 그냥 넘어간 거야.
 

그 놈이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를 지나는데, 왠일인지 그 녀석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상기되어 있는 거야. 항상 침울해 있던 놈이 었는데, 그 때는 좀 흥분된 모습이었어. 뭔가를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 같아 보였지. 하지만 그 때 나는, 그 녀석도 초소에서 몰래 포르노 사진 같은 것 보고 흥분한 걸로 쉽게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반 농담조로 그 녀석에게 말을 했지.

'김상병 보초 똑바로 서!
초소안에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런데 그 녀석은 내 얘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다그치니까 그제서야 내 얘기를 들 었는지, 알았다고 대답하는 거야.
좀 짜증이 났지만, 그럴수도 있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돌아 섰어. 그때 통 말이 없던 그 놈이 내게 괴상한 말을 지껄이는 거야.

'중대장님, 이 세상에 악마가 정말 있을까요?'

황당하더구나. 무슨 얘기냐 물었더니, 더 황당한 말을 하는거야.

'우리는 군인인데, 이 총으로 그 악마를 잡을 수 있을까요?'

기가막혔지만, 이 놈 역시 한창 부대에서 유행하는 공포소설 나부 랭이 읽고 쓸데없는 상상하는가 싶어 한 마디 주위주고 돌아섰어.

'야, 새끼야, 너는 군인이야. 빨갱이 때려잡는.
악마나 귀신 나부랑이가 네 상대가 아니라는 거야!
정신차리고 근무나 잘해!'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려야 했어.
한 마디로 내 실수였지. 치명적인....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꺼야.
 

교대조가 그 초소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주위를 살펴보니, 그 놈과 같이 근무를 하고 있던 놈은 개머리판으 로 머리를 얻어맞아 기절한 상태였고, 그 새끼는 기절한 동료의 실 탄까지 챙겨 사라진 거야.

전 부대에 비상이 걸렸지. 탈영도 실탄 소지 탈영이니까.. 월북 가능성과 탈영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것이 헌병대의 의견이야. 군대 생활에는 적응을 잘하고, 좋아했지만, 부대 동료들과의 생활 에는 적응못했기 때문에, 북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야. 그런데, 오늘 아침 탈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 되었어. 한국통신의 협조를 구해, 영내 공중전화의 통화기록을 조 사해 봤어. 우선 그 놈의 집이나 근처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해봤 지. 그랬더니 통화기록에 그 놈의 집이 나왔고, 그리고... 그 놈 집 근처의 무슨 독서실인가가 나왔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걸었던 곳을 확인시키고 나니, 남은 곳은 그 두군데 뿐이었어.
아마 그 놈이 자기 집에 일어난 일 때문에 탈영했을 수도 있는 거 야...."

나는 선배의 말을 듣고 있다가, 깜짝 놀라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독서실이라뇨? 무슨 독서실이요?"
"글세. 이름이 뭐더라... 잠깐만... 여깄다. 독서실 이름은..."

선배가 말해준 독서실 이름을 듣고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내가 있는 독서실이었던 것이다. 전화를 건 시간을 물어 보니, 새벽 3시라는 것이었다. 아마 야간 근무하기 위해 밤에 나왔다가 전화를 건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이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아! 이거 안 말해 줬구나.
몇시간 전에 발견된 흔적인데, 그게 좀 이상해..
 

우리 부대 북쪽 산을 면하고 있는 철조망 한 군데가 파손되 있는 것이 발견되었어. 철조망이 잘려나간 면이 하나도 녹이 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최근에 잘려나간 것 같은데, 헌병 조사관들은 그 녀 석이 그곳을 통해 부대 밖으로 나갔다고 추측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 부대 경험 많은 고참 원사 하나가 그 잘려나간 철조 망을 자세히 살피더니, 내게 슬그머니 놀라운 사실을 얘기해 주었 어. 확실치는 않지만, 잘려나간 모습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철조망을 훼손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그 원사 말로는 그 철조망 흔적은 그 녀석이 만든 것이 아닐 확률 이 높고, 다른 누군가가 부대에 몰래 들어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출입구일수도 있다는 거야.
물론 그 원사의 지적은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수사대에게 묵살되었 지만, 나는 좀 이상한 생각도 들었어.
만약에 탈영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면, 길하고 반대편쪽인 북쪽을 통해 나갔을 리가 없거든..
여하튼 그 놈이 잡히기 전에는 모를 일이야.
물론 살아서 잡힌다는 가정하에서지만.."

선배는 이제는 자기 차례라며, 내게 질문을 했다.
나는 독서실을 둘러싼 괴기한 사건들을 곧이곧대로 얘기했다가는 미친놈 취급 받을까봐, 대충 둘러댔다.
독서실에서 날 잘 따르던 은혜라는 여자애가 실종되었는데, 혹시 몰라서 군대갔다는 그 애 오빠가 혹시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전화해 봤다고 얘기했다.

선배는 약간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그냥 알았다며 이 사건 마무리되면 한번 만나자면 전화를 끊었다. 물론 끊기전에 은혜나 탈영한 은혜의 오빠에 대해 뭔가 알게되면 전화해 달라는 부탁은 서로 잊지 않았다.
은혜 오빠 은철의 탈영, 아니 실종일지도 모르는 사건에 대해 듣고 나자, 내 머리속은 다시 혼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 독서실을 둘러싼 기괴한 사건들은 무엇들이며, 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독서실과 특별히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슨 일을 당하고 있고, 이제 얼마 안 가서 내 차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은혜의 실종사건으로 경찰에게 의심마저 받고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독서실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총무실에 멍하니 앉아 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만 보고 있었다
 

내가 제 정신을 차린 것은 주인 아저씨로부터의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 독서실에 들리지 못하니까, 알아서 있다가 퇴근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은혜가 실종된 것 때문에 경찰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주인 아저씨 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주인 아저씨는 경찰이 왔었다는 얘기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고, 관심이 없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단지 실종된 은혜에 대해서 경찰이 무슨 새로운 정보를 알고 있냐고 물어본 것이 다였다.

주인 아저씨의 의외의 태도에 좀 놀랐지만,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경영하는 독서실에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고 사방에 떠들고 다니는 애가 있었다면, 내가 주인이라도 미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는데,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겨 자신은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속으로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별 쓸데없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이 으시시시한 독서실에 밤 늦게 남기 싫어서, 마지막 아이가 나가자 마자 독서실의 문을 닫고 나섰다.
시계를 보니 12시 이전이었다.
시간이 12시가 되지 않은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집에 오는 길 내내 모든 괴기한 사건들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지고 알 수가 없었다.

신체적으로 한 일은 없지만, 정신적인 피로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니까 온 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방에 들어오자 마자, 녹초가 된 몸을 침대로 던졌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 내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하나가 눈에 띠었다.
평범한 황토색 포장지로 쌓인 소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소포를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온 몸에 느끼고 있던 피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책상 위의 소포를 집어 들었다. 소포는 방송국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방송국에서 내게 보내올 것이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포를 뜯어봤다. 비디오 테이프 하나가 들어있었다. 테이프에 써 있는 제목을 보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이프에는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가?' 라고 써 있었다. 바로 내가 며칠 전에 방송국에 주문한 것이었다. 은혜가 얘기해 주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던 차에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 가?' 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간 적이 있었대요. 거기서 한달 전에 실종된 애를 하나 보여주는데, 바로 독서실에 들었던 도둑이었데 요....'

나는 잠자기를 포기하고, 테이프를 비디오에 넣고 틀었다. 처음 시작은 전형적인 고발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실종 실태에 대해서 취재된 것을 보여주었다. 서울 일대에 많은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 중 일부분은 가출해서 유흥가로 흘러가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의 몇몇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실종이 유괴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유괴를 저지르기에는 실종된 아이들이 너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통상 유괴 범죄는 다루기 쉬운 초등학생 정도로 집중되어 있고, 또 실제로 없어진 아이들에 대하여 몸값을 요구하는 등의 연락이 없었다는 등의 얘기가 프로그램의 전반부에 나왔다.

담배를 하나 빼어물고 그 프로그램을 계속 보던 나는, 그 유명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해서 나오는 것을 보고 어느새 나도 잊어버린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을 생각났다.
 

프로그램 속의 기자는 메마른 목소리로 그 사건을 요약했다.

'...김영규, 김종식, 박찬인, 우철원, 조호연, 대구 성서초등학교 개구쟁이들(3~6년). 메뚜기 잠자리를 쫓아 들판으로 달리며 마냥 천진난만했던 아이들..' 26일로 벌써 실종된 지 몇년째를 맞은 '개구리 소년들'의 당시 모습이다. 성서초등학교 6년에 다니던 우군을 비롯한 5명이 대구 달서구 이곡동 집뒤편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은 1991년 3월26일. 이후 개구리 소년들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는 세인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습니다.

기자는 이들의 '실종'이 못내 안타깝고 '혹시나'하는 생각에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젠 찾는 일은 포기했어요. 제발 조용히 잊도록 전화도 하지 마세요..' 일부 부모들은 잊으려 하지만결코 잊을 수 없는 자식 생각에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습니다.

'개구리 소년들'은 이제 세월의 흐름속에 잔상조차 찾기 어렵지만 이들의 실종사건은 한때 전국을 들쑤셔 놓았습니다.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찾아 헤맸고, 이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까지 제작됐다. 대통령의 특별지시, 현상금 4,200만원, 전단지 2억여장 등, 이들을 찾기 위한 국민적인 노력도 전개되었습다.

그러나 이미 대구 달서경찰서에 설치됐던 수사본부는 '개점휴업'에 들어갔고, 이들이 살던 농촌은 고층아파트 숲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실종에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구 멸망의 징조, 휴거의 게시, 납북설, 소록도에 입원설, UFO 납치설 등 황당무계한 추측과 가설이 난무했지만, 아무도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잊혀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전에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한달 전 경기도 성남시의 살던 모범적인 중학생 최종현 군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독서실로 공부하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이에 취재진은 최정현 군의 최후 행적을 정밀 조사해 봤습니다...'
 

긴장된 상태로 TV를 주시하고 있던 나는 최종현이라는 실종된 학생의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어디서 그 아이를 봤는지는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내가 이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은혜가 들려준 얘기가 전부였다.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왔다 뭔가에 놀라 기절하고, 은혜 오빠 친구 일행에게 붙잡혔던 아이라는 것 밖에 몰랐다. 당연히 얘기만 들었기 때문에 이 아이의 얼굴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웬일인지 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나는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TV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실종 당일 최종현 군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1시간동안 TV를 시청하고 있다가, 어머니 김모씨의 꾸중을 듣고 책가방을 챙겨 평소 다니던 독서실로 나갔습니다.
이 때가 밤 8시 반, 늦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 김모씨는 꾸중이라기 보다는 종현군에게 독서실에서 가 공부하라고 타이른 정도였다며, 그때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을 나간 종현군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종현군의 독서실에서는 그날 밤 종현군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현이라는 아이가 다니던 독서실은 내가 총무로 있는 독서실은 아니었다. 거기서 한 7,8Km 떨어진 옆동네 독서실 같았다.
음산한 톤의 화면은 그날 밤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 종현군은 바로 독서실과 집에서 10분간의 거리, 2Km 남짓한 거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취재진은 주변의 증언에 따라 종현군이 평소 독서실에 갈 때 지나가는 길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길 주변 상가 상인들에게 종현군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거의 모두가 종현 군의 모습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사람 종현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표와 음료수를 팔고 있는 신모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은 종현군의 모습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맞수다. 이 학생..그 날밤 똑똑히 기억하고 있수다.

손님도 뜸해지고, 문 닫을 시간도 되서, 가게 밖에 있는 물건을 안으로 들이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수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하나가 나를 부딪히며 황급하게 지나가는 거였수다. 넘어질뻔한 나는 그 애를 보고 소리를 쳤수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수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겁에 질려있는 것였수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획 돌아서 저쪽으로 뛰어가는 거였수다. 하도 이상해서 나는 그 애를 계속 쳐다봤수. 그 애는 저쪽으로 뛰어가면서도, 뭔가에 쫓기듯이 자꾸 뒤를 돌아다 보는 거였수. 나도 뭔가 하고 그 애가 뒤돌아 보는 쪽을 쳐다보 았지만, 아무 것도 안보이고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수. 지금도 그 애의 겁에 질린 표정을 생각하면... 휴...'

할머니의 진술이 확실하다면, 종현군은 그 무엇, 아니 그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종현군의 갔던 길가 주변에 위치한 상점들이나 은행에 설치되어 있던 CC-TV 화면을 확인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CC-TV들은 주로 상점 안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길가에 종현군의 모습이 찍혔을 확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CC-TV를 가지고 있는 주변의 모든 상가에 협조를 구해 그 시간대의 테잎을 입수해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대부분의 테잎은 상점안의 모습만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부분이지만, 길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거리의 모습이라는 것도 행인들의 다리 정도만 찍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은 실종 당시 종현군이 입었던 바지와 신었던 운동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단서로 테잎들을 판독했습니다.

길고 지루한 작업 끝에 우리는 종현군의 실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는 화면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자 보시죠.
이 화면은 은행 현금 인출기에서 찍힌 것입니다.
저희가 확대시킨 부분은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카메라의 각도상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정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은 8시 34분, 그러니까 종현군이 집에서 나온지 4분 남짓 지났을 때의 시간입니다. 이때 종현군은 이 카메라 앞을 지났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 동그라미 친 부분에 나오는 나이키 신발과 청바지가 그날 종현군이 착용하고 있던 것입니다.

여기 찍힌 다리의 주인공이 종현군이 맞다면, 걸음걸이의 상태를 봐서 종현군은 그때까지 그 누군가에 쫓기지 않고 있는 상태로 파악됩니다. 전혀 다급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면바지와 흰색 운동화 차림의 다리가 보입니다. 여기 붉은 동그라미를 주시해 주십시오.
이 사람의 다리가 종현군과 엇갈려 지나갑니다.
그리고 몇초 후, 무슨 일이지 오던 방향을 반대로 해서, 종현군의 뒤를 따르는 것이 보입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이 다리의 주인공이 종현군의 실종과 관계되어 있는 이 자료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을 확대하던 우리 방송국 기술진이 또 하나의 괴기하고 충격적인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그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시청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지 저희가 주장하는 것이 감히 사실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것은 현대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심령세계와도 연관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송국 기술자가 발견한 문제의 장면은 바로 여기입니다.
 

종현군을 뒤따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람의 다리를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종현군쪽으로 걸어오다가, 종현군과 지나치고 잠시 후 돌아서서 종현군을 따라갑니다. 그 사람이 돌아서는 부분을 확대하고 천천히 다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돌아서는 부분, 그 부분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봐와 같이 이 사람이 돌아설 때 다리는 일반 사람이 걷다가 돌아서는 모습과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걷다가 돌아서기 위해서는 한 발을 축으로 해서 회전을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축이 되는 발의 발꿈치는 땅에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다리는 보시는 바와 같이 두발이 동시에 180도 돌아섭니다. 그것도 양 발을 땅에 붙힌채로 회전을 합니다. 미세한 차이라 언뜻 발견하기 힘든 장면이었지만, 확대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게 들어섭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발 밑에 바퀴가 달려있는 것처럼 양발이 동시에 180도 회전을 해서 돌아섰습니다.

전문가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지구상에서 이렇게 몸을 회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물론 CC-TV가 정밀한 화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필림에 끊임이나 이상이 있어 이런 식의 기괴한 모습이 찍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찍힌 것을 가지고만 분석할 때는 분명 이것은 현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름끼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다리가 돌 때를 다시 한번 주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기 지면을 잘 살펴 보세요.
종현군을 뛰따르던 사람의 다리는 걷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땅에서 약간 떠 있습니다.

다시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은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뜬 상태로 종현군의 뒤를 따라간 것입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마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은 방송국이 시청률을 위해 또 헛소리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을테지만, 그 동안 이상한 것들을 직접 목격했던 나로서는 그것이 진짜같이 믿겨졌다. 그렇다면 종현을 쫓아갔다는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기자의 진지한 목소리가 TV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여기서 저희는 여러분께 다시 한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보여드린 화면은 결코 조작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화면이 정말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찍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필림상의 문제로 잘못 찍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종현군을 쫓아갔단 사람의 다리가 정말 허공에 떠 있는 상 태라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다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과학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심령체라는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진은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 인들을 찾아가 화면을 보여주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무속인 A씨는 그 화면을 보자.

'이럴수가... 이 다리의 주인은 악귀여..
여기 뻗치는 살기를 보라니까....
사람이 아녀... 사람을 죽여뻔지는 악귀라니까...'

무속인 A는 마름 침을 삼키며, 몸까지 떨면서 화면안의 모습을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운명철학자 B씨는 이 화면을 보자 화부터 냈습니다.

'너희 방송국, 또 조작된 테잎을 가지고 와서 무슨 장난이여!!
이거 다 가짜여!! 특별한 기란 하나도 느낄 수 없어!
썩 꺼져!!!'

B씨는 A씨와 상반대 의견을 보였습니다. 뒤이어 찾아간 6명의 전 문가들도 각기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거기에 어떤 사진 전문가는 이 화면이 기능이 떨어지는 CC-TV에서 촬영된 것이기 때문에 이 필름에 찍힌 것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이 의견이 분분한 것에 대해 저희는 여러분에게 판단의 몫 을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최종현군 실종 사건으로 돌아가서, 우리 취재진은 실종된 종 현군이 어떤 학생이었고, 실종 직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학교 친구 들과 선생님을 만나봤습니다.
종현군의 담임 선생님은 눈에 띠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증언 했습니다.

'종현군은 어떻게 보면, 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없어도 별로 눈에 띠지 않는 학생이라 고 할 수 있었죠. 그래도 왠일인지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것 같았어요. 수업시간에 한 마디도 안하고, 특별히 튀거나 말썽을 피 우지도 않았지만, 쉬는 시간되면 다른 학생들이 항상 종현군 책상 에 몰려와 떠들곤 했으니까요..

아,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례시간를 마치고, 반장이 일어나 선생님께 인사하려는데, 종현군 만 고개를 빳빳히 세우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저는 이 친구가 제게 무슨 불만이 있어 반항하는줄 알고, 종현군의 이름을 불렸죠.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반 학생 들이 다 돌아보고, 제가 여러분 불러도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고 있 는 것이예요. 솔직히 좀 화가 났죠.

종현군의 자리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무슨 일이야라고 소리치니 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는듯이 시선을 돌렸어요. 이상했던 것은 그 때 종현군의 눈빛은 겁에 질린 그 자체였어요.
교무실로 불러가 좀 야단쳤지만, 아무 말 없이 잘못했다고 얘기하 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더군요.
그 때 좀 이상한 점을 느꼈지만, 그 학생이 실종되리라는 정말 상 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죠.
이 일만 빼고는 정말 평범 그 자체, 선생님으로서는 참 편한 학생 이었어요..'
 

최근의 있었던 종현군의 변화에 대해서는 반 친구들의 증언도 많 습니다. 그 중에는 엇갈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종현이가 그렇게 될지 몰랐어요.
최근까지 별 이상한 조짐도 안 보였는데요.. 그 애 아빠가 일본 출장을 자주 가서 그런지, 워크맨을 많이 가지 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것들을 싼 값에 팔았죠. 그 외에는 그리 사교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는 애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좀 이상하긴 이상했어요.
어디든 혼자 가기 싫어하는 거 였어요. 체육도구 있는 창고에 배구공 가질려 신부름 갈 일이 있었는데요. 종현이는 죽어도 혼자는 안 가겠다고 난리쳐서 제가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남자 놈이 뭐가 무섭냐고 핀잔 주었는데,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화를 내는 거예요. 너도 한 번 당해보라고.. 무슨 얘기인줄 잘 몰랐지만, 나도 걔한테 워크맨 싸게 사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갔아요. 아직도 그 떄 창고 혼자 가기 무서워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 XX 사기꾼이예요. 자기가 쓰던 워크맨이라고 해서 샀는데, 완전 고장난 거예요.
그리고 안에 있던 테잎을 들어보니, 기분 나쁜 쉭쉭 소리만 나고 여하튼 다 이상했어요.
그 기분나쁘고 음산한 소리가 나는 테잎을 그 XX에게 들어보라며 돌려주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그 테잎을 뚫어지게 보며 벌벌 떠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테잎을 낚아채서 발로 짓이기고 미친 듯이 지랄했어 요. 마치 그 테잎에 귀신이라도 씌운 것처럼 무서워했어요.
나는 고장난 워크맨이나 다른 워크맨으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항상 다른 것으로 바꿔주던 그 놈이 이제 더 이상 워크맨이 생길 일이 없을테니, 그냥 돈으로 줬어요. 여하튼 이상한 XX였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종현군이 다니던 독서실의 총무에게 종현군의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글쎄요..
항상 밤늦게 까지 공부하던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규칙적인 생활을 했어요.항상 문닫기 1시간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독서실을 나갔어요.‘

여기서 우리는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의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종현군이 독서실 갔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2시 30분 경이었답니다. 그런데 독서실 총무의 증언에 의하면, 종현군은 새벽 1시경에 독서실을 항상 떠났다고 합니다.
그럼 매일 밤 1시간 반 동안 종현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종현군과 놀았다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봤습니다.
우선 종현군의 가족들에 따르면, 종현군이 친구들 말처럼 워크맨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종현군 주위에서 워크맨을 잊어버린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띠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취재진중에 한 사람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이 다니던 학교나 독서실에서는 워크맨을 도난당한 사례가 없었지만, 좀 떨어진 학교나 독서실에는 몇 주전부터 워크맨을 도난당한 사례가 빈번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이 친구들에게 워크맨을 팔기 시작했다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만을 가지고 종현군과 워크맨 도난 사실을 연계시킬 수 없습니다. 단지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실종된 종현군과 없어진 워크맨과 뭔가 연관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종현 군을 찾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종현군의 집에서 독서실로 가는 길을 샅샅히 조사했습니다.
일주일간 30명이 넘는 인원이 그 짧은 길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수사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유일한 단서입니다.
너덜너덜해진 운동화 한짝입니다.
종현군을 마지막으로 촬영한 CC-TV에서 한 3분거리에 있는 하수구에서 발견했습니다. 부모님의 확인을 거쳐 이 한짝의 운동화가 종현군이 신었던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감히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종현군은 가출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 납치나 유괴를 당한 것입니다. 만약 가출을 하려고 했다면, 신발 한짝을, 그것도 길거리에 버리고 사라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 종현군이 납치당할 때 반항하다가 이 운동화가 벗겨졌을 거라는 것입니다.
종현군의 사진을 잘 봐 주십시오.
여러분 주위에 이 얼굴을 발견하시면, 아래의 경찰서 전화로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우리는 명확한 진실에 접근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얻은 수확은 지금도 어떤 이유에 의해서 우리들의 아이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있다가는 제2, 제3의 종현군과 개구리 소년들의 비극이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어디선가 천진난만하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떤 아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죄자에게 납치될 지도 모릅니다... 내일 밤에도....“

프로그램은 없어진 종현이란 아이의 사진을 클로즈 업 상태로 끝났다. 어느새 나는 담배를 네 가치나 피웠다.
섬뜩한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종현이란 아이의 얼굴이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봤고 눈에 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실 그 종현이란 애에 대해 아는 것은 은혜가 들려준 얘기가 전부였다.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왔다가 은혜 오빠 일행에게 잡혔는데, 여자 독서실에서 무슨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기절한 상태였다는...
그러니 내가 그 종현이란 애의 얼굴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독서실에 드나드는 애들 중에 비슷한 얼굴이 있어서 그랬나 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봤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종현이란 애의 사진을 정지화면으로 두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알 듯 말 듯 그 애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귀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끔직한 소리와 겁에 질려 크게 뜬 눈동자가 떠 올랐다.
화면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비명 소리, 거친 숨소리, 두려움에 떠는 모습들, 뭔가 어둠속에 다가오는 것들이 연상되었다.
나도 모르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끼쳐왔다.
이런 공포스런 연상속에 종현군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하던 그 소름끼치던 영상이 갑자기 멈추고, 종현군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기억해 낸 충격적인 사실 때문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종현군의 얼굴이 왜 낯이 익었는지, 드디어 생각해낼 수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100% 확신 할 순 없었지만, 종현군은 내가 예전에 은혜가 가져온 사진에서 본 것 같았다.
바로 은혜의 오빠 은철이 일행들이 독서실에서 밤 세우면서 끔찍한 경험을 당할 때 찍은 사진에서 본 것 같았다.
은철이 친구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은혜 말로는 은철이 친구들이 독서실에서 잡은 좀도둑이 종현이었다고들 했는데, 사진과 방송 프로그램을 보니 또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실종된 종현이가 은혜 오빠 패거리의 친구였다고 한다면, 모든 사실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이다. 흑이였던 것이 백이고, 백이였던 것이 흑이고...
생각을 정리해 봤다.
종현과 은철등 독서실에 다니던 애들이 친구였고, 종현은 은철들과 짜고 독서실에서 워크맨을 훔쳤다. 그런데... 은혜 말에 의하면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온 종현을 잡은 것은 은철 패거리였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처음부터 내가 사실로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았다. 내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은 은혜가 해준 얘기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만약, 은혜 말이 지어낸 거짓말이었다면... 독서실에서 도둑질하던 종현을 잡은 것은 은혜 오빠들이 아니고, 독서실 주인 아저씨 였고.. 은혜 오빠들이 그날 밤 독서실에서 몰래 밤을 세운 것은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도둑질하러 들어갔다면....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부정해 나가니까, 그럴 듯한 진실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사실 역시 전혀 증명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추측인 것이다.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감을 잠을 수 없고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사진을 보고, 내가 본 인물이 사진 속의 종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며칠 전에 본 사진이라 정확하게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누워서 잠을 청해봤지만, 답을 알지 못한 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담배를 집어들고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사진을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방안을 다 뒤졌지만, 사진은 없었다. 분명히 은혜가 내게 보라고 줬는데..
좀 더 생각해 보니, 독서실 주인 아저씨가 은혜를 야단치겠다면 사진들 가져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짜피 오늘 밤에는 사진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약간의 좌절감이 느껴졌다. 다시 누웠지만, 역시 잠이 안 왔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났다.
그때 독서실 주인에게 사진을 건네줄 때, 몇 장은 독서실 총무실 책에 껴 놨던 것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빨리 가면 2시 반까지는 독서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내일 아침에 가서 볼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오늘 당장 가서 확인해 보라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더 이상 그냥 누워서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킨 나는 옷을 집어들다가 다시 멈칫했다.
지금처럼 밤늦게 독서실에 갔다가 또 괴기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독서실로 찾아왔던 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형사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가만히 있다가 엉뚱한 증언이나 증거라도 나오면 내가 꼼짝없이 납치범으로 몰릴 판이었다. 괜히 불안해졌다. 사실 잘못한 것도 없지만, 형사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가 스스로 누명을 벗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방 사진만 들고 나오자 라고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집을 나섰다.
봉고를 몰고 독서실로 향하는데, 창밖으로 음산하게 보이는 만월이 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기분나쁜 빛을 발하는 보름달을 보자 왠일인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예전에 독서실에 혼자 남았을 때 이전 독서실 총무였던 서 경기로부터 받았던 전화가 생각났다.
 

서경기는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했다.

  '이봐요!
  오늘 보름달 뜨는 날이니까, 빨리 독서실에서 나가요!'
  '예? 뭐라고요?'
  '전화로 길게 얘기할 수 없으니, 내 말 들어!
  당장 나가라니까!'
  '누구시죠? 무슨 말씀 하시는 것이죠?'
  '이봐! 내 술김에 당신 구해주려고 전화하는 것이니까 잔말말고
  거기서 당장 나와!
  멍청히 있다가 인생 종치지 말고!'

그 생각이 나자, 나는 잠시 봉고를 길가에 세웠다.
보름달이라...
서경기 말로는 보름달이 뜨는 날 독서실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사실 나 자신도 이 독서실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많이 목격했지만, 서경기나 은혜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점차 시간이 감에 따라 나도 이상한 일들을 목격하는 바람에 좀 믿게 되었다. 하지만, 사건이 여기까지 번지자,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차를 세우고 망설이던 나는, 그 따위 미신이나 헛소리는 믿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다 잡으며 차 시동을 다시 걸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길은 글자 그대로 아무런 차가 없는 적막함 그 자체였다. 보기는 싫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자동차 창 밖에 푸르스름하게 떠 있는 보름달로 갔다.
그 보름달은 기분 나쁘게 나를 뒤쫓는 느낌마저 들었다.
애써 왜면하고, 차의 속도를 높였다.
성남에 가까이 올수록, 이상할정도로 나의 맥박이 빨리지기 시작했다. 겁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얼굴마저 상기되기 시작했다.
성남에 진입하자, 생각없이 지나던 길거리가 왠지 눈에 익어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하나도 없고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드믄드믄 간판에 들어온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데, 왠일인지 눈에 익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바로 이 거리가 바로 거기서 본 거리였다.
종현이가 실종되기 전에 집에서 독서실 갔던 그 거리였다.
그 고발 프로그램에서 봤던 것이 기억이 났다.
바로 저기서 종현이가 걷다가 뭔가에 쫓기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눈 앞에 아무도 없는 거리에 황급히 쫓기는 종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종현이라는 학생을 쫓는 다리가 찍힌 은행앞을 지나면서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종현이가 은혜 오빠들의 친구였다면, 누가 종현이를 납치한 걸까? 혹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두 개의 사건을 내가 괜히 겁에 질려 엉뚱한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모든 것을 잊겠다며 절에 들어갔던 서경기는 왜 없어졌을까? 혼자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또 납치한 것인가? 은혜의 오빠 은철은 왜 없어졌을까? 그 애 역시 스스로 탈영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없어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은혜가 없어진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은혜 혼자 없어졌다면, 흔한 유괴사건이나 가출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관련된 사람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그 다음은 나 차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좀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일인지, 자꾸 봉고의 뒷자리에 누군가가 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백 미러를 쳐다보니, 어두운 차안에 덩그러니 빈 좌석만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음산한 기분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다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 뒷덜미가 썬득해지며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다시 백 미러를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독서실이 가까워지자,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독서실에는 단지 사진 속의 종현을 확인하러 간다기 보다는 뭔가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나방이 불빛에 끌려 가듯이, 나도 독서실에 끌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힘과 거절할 수 없는 호기심이 두려움을 몰아내고 점점 나를 독서실로 향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독서실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였다.
천천히 차를 회전시켜서 그 골목으로 돌렸다.
원래 어둑어둑한 길이었지만, 오늘 따라 유난히 암흑 그 자체였다.
헤트라이트를 킨 상태였지만, 그 골목의 암흑의 차의 불빛을 다 집어 삼키는 것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저 앞에 어둡지만, 기괴할 정도로 또렷히 보이는 음산한 모습의 독서실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내가 여기 왜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후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다시한번 다잡고 차를 세우고, 내렸다.
차의 헤트라이트가 꺼지자, 독서실 건물안은 더 어두워 보였다.
골목 안은 저기 떨어진 가로등 불빛과 음산한 색깔의 보름달이 비춰주는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빛은 그림자가 진 곳을 더욱 어두워 보이게 했다.
차에서 손전등을 꺼내 켜고, 건물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독서실이 있는 층을 올려다 봤다.
예전에 봤던 창백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어두운 창문을 통해 무표정한 얼굴을 나를 내려다보는 그 파리한 얼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건물 정문 자물쇠를 열었다.
문을 열자, 건물안에서 기분 나쁜 한기가 밀려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손전등을 켜서 여기저기를 비추어 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더 무섭게 느껴진 것은 손전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마치 뭔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전등을 미친 듯이 이리저리 비추어 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문 앞에서 서서 건물 안을 비춰보고, 나는 잠수할 때 하는 것처럼 심호흡을 잠시 하고, 건물안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건물 안의 암흑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음산한 분위기로 나를 맞아주는 것 같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는 천천히 계단으로 향했다. 손전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둠속에서 나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나의 발자국 소리가 울려서인지, 어디선가 나를 따라오는 듯한 발자국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건물 안의 전등은 모두 꺼져있었고, 비상구를 나타내는 파란 불빛만이 음산하게 빛나고 있었다.
독서실 문까지 걸어가는데 불과 1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시간이었지만, 자꾸 뒤돌아봐서 인지 한 10분을 걸려서 올라간 듯한 기분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았지만,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하면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간신히 독서실 정문앞까지 온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때였다.
독서실 안쪽에서 뭔가 애들이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음산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보려고 했지만, 소리가 나는 건지, 그냥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열쇠를 들고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안에서 애들이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열쇠를 잡은 나의 손이 나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 하지만, 뭔가에 이끌리듯이 나는 열쇠를 자물쇠에 집어넣고 돌렸다.
'철컥'하는 소리가 이날만큼 크게 들린 적은 없었다.
그 순간 또렸히 들리던 아이들의 소리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손전등을 안으로 비추었다.
손전등에 비친 독서실 안은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기함이 느껴졌다.
나는 애라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서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뼈속까지 스미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어 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총무실 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켰다.
하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불이 켜지지 않았다.
몇번 스위치를 올렸다 내려봤지만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이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갑자기 뒷덜미에 사늘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이 소름이 쫙 끼쳤다…
 

손전등을 비추어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독서실 안의 비상구 등만 푸르스름하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불빛이 섬뜩해 보였다.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잠시 고민했다.
이 무시무시한 곳, 그것도 불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속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늘 그냥 갔다 내일 해가 밝으면 오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지금 그냥가면 이제까지 나를 괴롭혀 왔던 이 독서실에 얽힌 진실을 영원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여기서 조그만 두려움을 참으면 뭔가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로 그 호기심이 내가 독서실에서 도망가는 것을 허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그때까지 아무일이 없었다는 것에 작은 용기도 생겼다. 독서실 오는 봉고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독서실의 문을 열자마자 파리한 얼굴을 기괴한 아이들의 귀신이라도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정전만 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멀쩡한 것에 용기도 좀 얻은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총무실 안으로 손전등을 비추고 들어갔다.
어둠 구석구석에서 뭔가가 나를 음산한 표정을 하고 지켜보는 생각이 자꾸들어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특히 어디선가 읽은, 귀신은 천정과 벽이 만나는 귀퉁이에서 사람을 내려보기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무서웠다. 그 쪽에서 자꾸 나를 보는 것 같아 손전등을 휘두르듯이 비추어 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빨리 그 사진을 찾아보고 나갈 생각으로 총무실에 있는 책장쪽으로 갔다.
기억을 더듬어 사진을 끼어놨던 책을 펼쳐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손전등을 들고 여기저기 뒤져 봤지만, 분명히 책 사이에 껴놨던 사진이 없는 것이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책장에 있는 몇권안되는 책들을 한권 한권 꺼내 털어봤지만, 아무런 것도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여 할 사진이 없으니까 갑자기 더욱 겁이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게 얘기도 하지도 않고 사진을 가졌갔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더욱 났다.
아무런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겁에 질린 아이들의 얼굴이 찍힌 사진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인데, 누군가 몰래 이것을 가져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일련의 불가사이한 사건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고, 그 사실을 내가 알아내길 바라지 않다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더욱더 사진을 찾고 싶어졌다.
혹시 사진이 다른 책장 밑에 떨어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전등을 바닥에 비쳐봤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수확도 없이 돌아가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책장 뒤가 벽에서 좀 벌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는 한치의 틈없이 벽과 붙어있던 책장이 왠일인지 벽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손전등을 입에 물고 책장을 약간 옮기면서, 먼지 가득한 책장뒤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뭔가가 보이는 것이었다.
있는 힘껏 책장을 밀어내고 손을 뻗어서 거기 있는 것을 꺼냈다.
그것은 요즘은 보기 힘든 검은 판지가 앞뒤 커버로 뒤어있고, 안에 문서를 철해놓은 옛날식 파일이었다. 쌓여있는 먼지가 닦아내보니 예전 독서실 일지 였다. 일지의 연도를 보니 불과 2년전 것이었다.
나는 지금 정전이 되있는 음산한 독서실에 혼자 와있다는 것도 잠시 잊고, 그 일지를 펼쳐봤다.
하지만, 나의 희망과는 달리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는 백지였다.
혹시나 하고 한장한장 넘겨봤지만, 역시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몇장을 더 넘기다 보니, 한 두문장씩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쓰여있었다.
너무 휘갈겨써서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오랫동안 들여다 봐야할 지경이었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그 문장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껴졌다.
 

<…..못 참겠다….
….왜 나지?....

…해 볼까?... 하지만….

…도저히 견딜수 없어!...
…피가 필요해….

…오늘 했다…. 너무 황홀했다….
어떤 것보다도 달콤했다…
그 갸날픈 목, 새하얀 살결,
맑은 눈동자, 그리고 예쁜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고통의 소리.. 히히…

…또 하고 싶다….

…그런데 저들이 알까?….

…나는 뭘까? 악마? 신? 정신병자? 여하튼 나는 행동한다!...

…오늘 또 했다. 이제는 떨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달콤함은 더해진다…

..이제 내가 필요 없다. 없는 것이 편하다…
이제 자유롭다.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한다. 이젠……>

무슨 얘기인지 언뜻 이해할 수 없지만, 어떤 정신병자가 자기 느낌을 닥치는 대로 적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이며, 이런 미친 생각을 적어놓은 것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싶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욕구를 참지 못해 뭔가 폭력적인 일을 저지렀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유혹을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그 휘갈긴 글씨체가 눈에 익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분명히 본 글씨체인게 확실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글씨체가 눈에 익는다는 것은 이걸 쓴 싸이코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총무실 밖에 하얀 것이 휙 지나가는 것이 언뜻 눈에 띠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갔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본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두운 곳에 혼자있던 내가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것에는 충분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손전등을 들고 잠시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손전등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당장이라도 이 독서실을 뛰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여기서 모든 의문을 풀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욱 더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보고싶지 않은 공포영화를 결말을 알기 위해 끝까지 보게 되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쿵쾅거리는 나의 박동소리만 더욱 크게 들렸다.
총무실 밖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손전등을 돌려 총무실 밖으로 비추어 봤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을 쓸어 내리고, 다시 그 서류철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더 이상 써 놓은 것은 없었다. 꺼림직한 것은 맨 마지막 부분에 마치 피가 묻어서 굳어진 것처럼 검붉은 흔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쓴 사람이 이 모든 사건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글씨체는 눈에 익지만, 누구의 글씨체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을 들여봤지만, 누군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눈에는 익지만, 너무 휘갈겨 써서 남자 글씨인지, 여자 글씨인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자, 허탈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무서움을 참고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은 어디 갔는지 없어졌고, 그나마 새로 발견한 서류철에는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들만 휘갈겨 써져 있고,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돌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느껴졌고, 또 한편으로는 오늘도 진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더욱 복잡해지는 것을 보고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몸을 돌려 총무실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방으로부터 희미하고 음산하게 괴기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헛것을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 보니, 그 소리는 진짜로 들려오는 것이었고, 서서히 조금씩 소리가 커지는 것 같았다. 뭔가 쥐어짜는 듯한 소리도 같았고, 뭔가를 가는 듯한 소리도 같았고, 여하튼 불쾌하고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은 기괴한 소리였다.
소름이 쫙 끼치고, 나도 모르게 다시 총무실 안으로 뒷걸음질쳤다.
처음에는 어떤 소리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소리는 마치 저 어둠속에서 한발짝씩 나에게 다가오듯이 점점 커져 왔다.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알아 차리는 순간, 나는 두려움으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소리는 바로 애들의 쥐어짜는 듯한 비명소리였다.
여러명의 아이들이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는 듯한 듣기 불쾌한 소리였다.
점점 또렸해질수록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가까워지는 것은 확실했지만,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둠속으로 부터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손전등을 비춰볼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나는 총무실로 뒷걸음질쳐서 들어와 사방을 비추어봤다.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우선 책상 위에 놓여진 커터 칼을 집었다. 하지만, 너무 작고 믿음직스럽지 않아 급히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른 것을 찾아보았다. 소리는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서, 무기를 찾는 나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책상 밑에 연장통이 보여, 황급히 손을 뻗어 망치를 쥐어들었다.
소리는 이제 바로 총무실 근처까지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다.
손에 든 망치의 묵직한 촉감이 그래도 약간의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쉼호흡을 하고 천천히 다시 총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망치를 치켜들고, 왼손에 든 손전등으로 저 어둠속을 비춰봤다.
그때였다.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던 소리가 딱 그쳤다.
독서실 안은 어색할 정도의 적막이 갑자기 감돌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멈찟하고, 내가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었나라는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그것은 환청이 아닌 진짜 소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죽음같은 적막이 흐르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 보다는 더 불안하고 무서움이 느껴졌다. 총무실에서 나와서, 나는 천천히 치켜들던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 복도를 비추어봤다.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복도쪽으로 끌려가듯이 걸어가게 되었다. 너무 적막한 탓에 삐걱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분명히 들렸던 소리였는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런 것도 없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온 신경이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팽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욱 기분 나쁜 것은 저 어둠 너머로 뭔가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독서실에 들어올 때부터 느껴졌지만, 괴 비명소리가 갑자기 멈추어진 지금 그 시선은 더욱 강력하게 느껴졌다.
몇 발자국을 더 걸어갔지만, 손전등 불빛 앞에 비치는 공간에는 특이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쪽에서 뭔가 서늘한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천천히 손전등을 들어서 비추어 보았다. 손전등을 내 얼굴 높이까지 올려서 비추는데, 순간 무언가가 눈에 띠었다.
그 높이에 있기에는 너무 이상한 것이어서 순간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손전등에 비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온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발이었다.
너무 놀라 '아악!'이라는 비명을 지르고 뒷걸음쳤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손전등을 더 높이 비추었다.
거기에는 10살 남짓한 여자애가 허공에 떠서 나를 쾡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파리한 얼굴로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너무 무섭고 놀라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발이 바닥에 묶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을 뒤틀다가 손전등이 그 아이 옆 천장쪽을 비추게 되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아이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손전등으로 천장을 비추니까 몇 명이 아이들이 허공에 뜬 채로 사방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도 무작정 앞으로 뛰어갔다.
10미터 정도 앞에 남학생 방이 있어 거기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문 앞에 서서 돌아보니, 그 아이들이 바닥으로 내려와 천천히 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고 했는데,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려고 했지만, 잠겨있는지 꼼짝도 안 했다. 그 순간 주인 아저씨가 이제부터는 모든 문을 잠그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열쇠는 총무실 책상에 놓고 온 것 같았다.
문은 안 열리고 그것들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문 여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면서 돌아봤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아이, 옷이 찟겨 나가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아이, 손에 뭔가를 들고 기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등,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를 향해 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너희들 뭐야! 물러가!! 저리 가란 말야!!!"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그냥 천천히 다가오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 너머로 <비상구>라는 푸르스름한 전등이 보였다. 이 독서실에서 빠져 나가려면, 문은 아이들 뒤쪽에 있는 정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망치를 든 손에 힘을 주고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망치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다가오는 아이들로 향했다.
머리와 가슴은 두려움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극한의 공포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들 사이를 지날 때,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고 있는 힘을 다하여 망치를 휘둘렀지만, 망치 끝에는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볼 틈도 없이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뭔가가 내 발목을 잡아채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앞으로 고꾸러졌고,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과 망치가 저기 나가 떨어졌다.
어둠이 엄습해왔고, 내 발을 축축한 손들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손전등이 저기 떨어져있는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 발을 잡아당기는 기분 나쁜 촉감만이 느껴졌다.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본능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내 발을 잡고 있는 손들을 차면서 떨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슨 강철 고리인 것처럼 내 발목을 꽉 잡고 잡아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발차기를 해대었지만, 그 손은 점점 위로 올라와 내 무릎과 허벅지까지 더듬거리며 나를 끌어당겼다.
앞을 보니, 망치가 손에 닿을 듯 한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온갖 힘을 다해 망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망치는 손끝에만 닿을 뿐, 잡을 수가 없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더욱 세지는 것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앞으로 던지듯이 해서 간신히 망치를 쥐었다.
망치를 손에 쥐자 마자, 나는 미친 듯이 나를 잡고 있는 손들을 향해 내려쳤다.
'퍽퍽!'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찢어지고 부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가 뭔가 기분 나쁜 액체가 얼굴로 튀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사정없이 그것들을 내려쳤다. 얼굴이 그 액체로 뒤범벅이 되고, 숨이 가빠왔지만, 이를 악물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망치질을 해댔다.
몇 번을 갈기고 나니, 발이 어느 정도 자유스러워졌고, 숨을 헐떡거리며 앞으로 기어 나와 손전등을 잡았다.
손전등을 잡자마자, 나를 잡았던 것이 무엇인지 비추어보았다.
그걸 보자 마자,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하고 공포에 질렸다.
 

그것들은 바로 아이들의 푸르스름한 손이 였다.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엎드려서 서로 내 발을 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망치질에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져 보이는데 아무런 것을 못 느끼는 것처럼 내 발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것들의 상처 받은 손을 보고, 내 스스로의 잔인함에 놀랐지만, 그 죄책감보다는 여기서 벋어나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강했다.
나는 덜덜 떨고 있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것들의 손은 뭉개지고 피가 흐르는 데도 불구하고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고 휘졌고 있었다.
5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내 몸은 돌덩이를 끌고 있는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괴기하고 기분 나쁜 비명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고 등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주춤거리면, 그 손들이 뻗어서 내 뒷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았다.
있는 힘을 향해 정문 앞에 다다랐다. 손전등을 든 손으로 문 손잡이를 돌렸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들어올 때 내가 열고 들어왔는데, 육중한 철문이 미동도 않고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자물쇠를 열어봤지만, 문은 벽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망치로 두들기고 아무리 돌려봐도, 문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전등을 돌려 뒤를 비추어봤더니, 그것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더욱 끔찍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 보았다. 머리가 멍해지고 아무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암흑 속에서 이상하게도 뭔가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는 그것만이 지금 그것들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복도 옆에 닫혀있는 문 하나였다.
주인 아저씨가 열쇠를 주지 않았던 창고라고 얘기하던, 그 문이었다.
자물쇠를 보니 역시 잠겨있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 자물쇠를 향해 망치로 내리쳤다.
그런데 주인 아저씨가 신경 써서 잠가놓은 그 육중한 자물통이 망치의 타격에 약간 부스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물통을 향해 망치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역시 뭔가가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자물통이 부서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칩이 문에서 뜯겨지고 있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괴성을 질러대며 다가오던 그것들은 거의 손을 뻗으면 내 몸에 닿을 정도까지 다가왔다.
나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망치질을 해댔고, 이윽고 경칩은 부셔지고, 자물통은 커다란 소리를 내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그것들의 손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것들의 손을 뿌리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그 방에 들어가자 마자 문을 쾅 하고 닫고 등으로 기대었다.
지친 숨을 헉헉거리며 문에 등을 기대고 발로 버티고 있는데, 밖에서는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나고 문을 밀려는 시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서야 내가 이제까지 한번도 들어오지 못했던 그 방에 들어온 것을 느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왠지 모르게 다시 한번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쳐졌다.
사방은 암흑 그 자체 였으며,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온 몸에 기분 나쁜 한기가 느껴져 더 으스스 했다.
방안에는 내 거친 숨소리만 들리고, 죽음 같은 적막이 흐리고 있었다.
언제 또 그것들이 밀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등을 문에 세게 기댄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손전등을 천천히 들어 방을 향해 비추어 보았다….
 

손전등을 들어 비추어진 것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불빛에 비추어진 것은 바로 정면에 설치된 전면 거울에 반사된 나의 모습이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 였고, 한 손에 망치를 들고 겁에 질린 표정이 이제 막 살인을 저지르고 겁에 질려 있는 범인의 모습 같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손전등을 옆으로 비추어봤다. 주인 아저씨 말대로 창고 였는지 부서진 독서실 책상, 의자, 집기들이 여기 저기 쌓여있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가 그 동안 무슨 이유였는지 이 방에 대해 뭔가를 감추고 있는 느낌이어서 호기심마저 느껴졌다. 여기저기 비추어 봤지만, 사방에는 그런 것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그런 빈 의자와 책상에 사람이 앉아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상하게도 문 밖에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내가 헛것을 봤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피투성이가 된 나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것은 환각은 아닌 것 같다. 감히 문을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치 그것들이 문 밖 어둠 속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문을 열고 나서기만 하면, 손을 뻗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 같았다.
그런 공포심과 함께, 문득 그것들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제일 쉬운 가정은 귀신이라는 것이었다. 귀신이 아니라면, 갑자기 그런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허공에 떠 있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아이들이 귀신이었다는 결론이 쉽게 내려졌다.
하지만, 잠시 문에 기대 힘을 준 채로 생각해 보니, 또 하나의 가능성도 있었다. 바로 내가 헛것을 본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극도의 공포심이 오히려 그 공포심을 강화시키는 환청이나 환각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그 증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자체도 환각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는 그런 것을 봤지만, 나의 정신상태는 정상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여하튼 어떡하던 문을 밖에서 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시급한 문제였다. 문손잡이를 내려다 보니, 안에서도 잠글 수 있게 되 있었다. 문에 달린 자물쇠를 돌리니까 문이 잠기는 것이었다. 문을 안으로부터 잠그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편하게 잠글 수 있는 문을 뭐 하러 경칩도 달고 그렇게 큰 자물통을 달아 놓았는지 궁금해졌다. 밖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서라는 이유는 궁색해 보였다. 왜냐하면 문에 자물쇠가 있었는데, 잠가놓지도 않은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떠오른 생각때문에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로 이 방안에 있는 무언가를 나가지 못하게 하기위해 잠금 장치를 밖에다 설치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더 무서운 생각과 함께 이 방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추어 보았지만, 천장까지 쌓여있는 책상과 의자들 때문에 방 전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천장을 보니, 방은 생각보다 넒은 것 같았다. 문이 잠긴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방안 쪽으로 옮겼다.
정면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자꾸 깜짝깜짝 놀라게 되었지만,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어 보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양쪽으로 가구들이 쌓여 있어서, 그것들 틈 사이는 불빛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괜히 그 틈 사이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무서워졌다. 그리고 잠가놓은 문 쪽이 자꾸 신경이 쓰여 거울을 통해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문은 굳건히 잠겨 있지만, 언제라도 갑자기 열리고 그것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자꾸 더 깊숙이 방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쌓아놓은 가구들 사이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괜히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정면 앞에 있는 거울쪽으로 걸어나갔다. 거울이 걸린 벽면 옆쪽으로 쌓여진 의자 사이로 길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방안쪽으로 다가갈수록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유없이 소름이 쫙 끼칠 정도의 한기였다. 그런데 그 차가움은 그냥 에어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과는 거리가 먼, 기분 나쁘고 으스스한 싸늘함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하고 애써 불길한 생각을 접고 천천히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걸어갔다.
앞에 있는 전면 거울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더구나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치다 거울을 향하게 되면, 불빛이 반사되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되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은 아주 짧은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기도 했다.
그때였다.
손전등을 최대한 거울 쪽을 비추지 않으려고 하다가, 우연히 거울을 보게 되었다. 거울에는 나 말고도 다른 것이 하나 보였다. 처음에는 잘 못 본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좀 자세히 보다가 그것이 무엇인가 알아차리고 머리에 둔기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바로 내 등뒤로 두 명의 여자 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지며,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열살이 좀 너머 보였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과 뭔가 원망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두 아이가 쌍둥이같이 닮았고, 하얀 원피스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 아이들의 시선과 거울을 통해 마주치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움이 느껴졌다. 마치 뱀과 눈을 마주친 먹이처럼 다리도 후둘거리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고개를 몇번 가로지르고 다시 거울을 봤지만, 그 애들은 여전히 서 있었고 천천히 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무서워 미칠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런데 손전등에 비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닫혀있는 문만 보일 뿐이었다.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신경을 집중해서 봤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는 그 아이들의 섬뜩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확실히 그것들은 내 뒤에 있었고, 차가운 표정으로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방안에서도 역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방안에 흐르는 죽음 같은 적막 속에서 나의 겁에 질린 숨소리만 들렸다. 미친듯이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먼지 낀 책상과 의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헛것을 봤을 것이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나는 다시 거울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번 거울에 이상한 것이 보일까봐, 거울을 정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불안함에 나도 모르게 자꾸 거울로 시선이 갔다.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지만, 거울에는 겁에 질린 피투성이가 된 나의 모습만 보였다. 거울에 다가가니 왼쪽은 책장같은 것으로 막혀있고, 오른쪽은 쌓여놓은 책상과 의자 사이로 작은 길 같은게 나 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칠흙같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비추어 봤지만, 건전지가 다 되었는지 몇 미터 앞만 보였다. 손전등이 방 끝까지 비추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이 공간은 꽤 넓은 것 같았다. 손전등의 건전지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가기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창문도 없어 보이는 여기에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었다. 이 정도 넒은 공간이면 빌딩에 설치되어 있는 비상구가 어디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해 보니까 독서실 복도 저편에 비상구가 하나 있으니까, 여기에도 하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약간을 망설이다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불안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거울이 걸려 있는 것만 보였다. 하지만, 점점 불이 약해지는 손전등 때문에 더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애라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아까 들어온 문 옆으로만 책상, 의자가 쌓여있을 뿐 오른쪽으로 돌아오니까 꽤 넓은 공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암흑뿐이었고 '비상구'라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은 왠일인지 급격히 어두어졌다. 나는 더욱더 불안해 지고 무서워졌다.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불빛마저 없어진다면 정말 미쳐서 죽을 것 같았다. 순간 독서실에서 불도 없이 밤 세우다가 얼이 빠져버린 은철이일행의 비극이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하게 손전등을 망치 든 손으로 몇 번 두들기니까 약간이나마 빛이 밝아졋다. 확실히 얼마 안 있으면 건전지가 다 할 것 같았다.
손전등에 신경쓰느라고 주변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그 빈 공간 중심으로 걸어들어왔다. 나는 잠시 내가 어디 서 있는 알아보기 위해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어 보았다. 그런데 이곳은 책상과 의자 대신에 뭔가 검은 자루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만한 검은 비닐 자루가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을 보니까 괜히 섬뜩해 보였다. 더구나 아까 이 방에 들어올때 느꼈던 싸늘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져서, 온 몸에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입김도 나왔다. 그 차가운 기운은 불안한 심리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방 온도가 낮은 것 같았다.
그런 싸늘함과 여기 저기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검은 자루를 보니까 더욱 두려움이 느껴졌다. 비상구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이다가 자루에 어깨가 닫자,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냉가기 바로 그 자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뭔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묵직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이 자루안에 뭔가가 들어있을까 궁금해 졌다. 비상구를 찾는게 시급했지만, 여기에는 없을 것 같고 주인 아저씨가 여기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지 알고 싶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으로 보관할 만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손전등의 건전지가 다 소진되기 전에 이 자루를 열어봐야,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마음 구석에는 이 불길한 곳에서 빨리 나갈 방법을 찾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한가하게 호기심이나 해결하고 있기에는 이 곳에 있는 것이 너무 위험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약간 망설였지만, 희미해지는 손전등의 불빛을 보고 마음을 결정했다. 가장 가까운 자루에 가서 어떻게 열 수 있나 돌려봤다. 비닐로 만들었기 때문에 셔츠 주머니에 있는 칼을 꺼내려고 하는데, 자루 가운데에 세로로 지퍼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손에 든 망치를 내려놓고, 겨등랑이에 손전등을 끼어놓고 자루에 달려있는 지펴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루 윗 부분에 지펴가 있는 것을 찾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지퍼를 밑으로 내렸다. 좀 뻑뻑해서 잘 내려오지 않았지만, 힘을 주니까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한 50센치 지퍼를 내리니까 안에 있는 것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지퍼 내리는 것을 멈추고 손전등을 들어 비추어보았다. 하지만, 뭔가 반 투명 비닐 같은 것으로 한 겹 더 쌓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지퍼를 끝까지 열어서 검은 자루를 벗겨 버렸다. 그리고 그 반투명 비닐을 열 수 있는 지퍼라든지 장치를 찾았다. 그런 것을 찾다보니, 이 반투명 비닐이 단지 내용물을 둘둘말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매달려져 있는 그것을 옆으로 돌리면서 반투명 비닐을 풀어나갔다.
다행히 몇번 안 둘렀는지, 서너번 돌리니까 그 반 투명 비닐이 다 풀어해쳐졌다. 이제 무엇인줄 알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안에는 또 하나의 비닐이 있는 것이었다.
짜증도 났지만,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포장했을까 했던 호기심도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이번 비닐은 이전 포장과 좀 달랐다. 마치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 포장처럼 진공 포장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투명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희미해진 손전등을 손으로 치고, 그 내용물을 보기위해 좀더 가까이 비추었다. 너무 가까이 비추니까 이것이 뭔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안의 내용물은 위부분은 검은색이었고, 그 밑은 노란색이었다. 뭔가 확인하기 위해서 그것을 돌려봤다.
손전등에 비추어진 그 내용물을 알아본 나는 큰 충격으로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람의 시체였다. 그것도 여자아이의. 노란 부분은 그 아이가 입고 있던 티셔츠였고, 검은 부분은 머리카락이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압축비닐로 포장된 그 시체의 눈은 공포로 가득찬 대로 커다랗게 떠 있는 상태였고, 입에서 피가 흐른 채로 포장되어 있던 것이었다.
나는 너무 큰 충격에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평소에 그래도 끔찍한 것에 단련되어있다고 자랑하던 나였지만,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는 구역질마저 날 지경이었다.
그 아이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끔찍한 상태로 비닐 안에 있는 그 시체의 얼굴이 어디 선가 본듯한 생각이 들었다. 아는 아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얼굴을 자세히 보려 했지만, 그 생기 없는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온 몸에 전율이 흐르고 머리 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고, 어지러워서 몸을 못 일으킬 지경이었다.
한 동안 주저 앉아 있던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희미해진 손전등 불빛에 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검은 비닐 봉투들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이것들이 다 시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냥 그대로 있으면, 그 검은 봉투 속에서 시체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 때는 뭔가에 홀린 것인지 아니면 검은 비닐 안에 들어있는 것이 시체가 아니란 것을 밝혀내려고 했는지, 여하튼 나는 옆에 매달려 있는 검은 비닐 봉투들을 미친 듯이 풀어 해치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단지 마음 속 깊이 이건 아무것도 아닐 거야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두 번째 검은 비닐을 풀어 해쳐 봤지만, 이번에도 시체였다. 더욱 고통스럽게 변을 당했는지, 검붉은 혀가 입 밖으로 나와 쳐져 있는 상태에서 퀭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의 숨소리는 더욱 가빠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번 남자 아이의 얼굴도 역시 낯이 익었다…
시체들의 얼굴이 낯이 익자, 이상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왔다. 혹시 여기 있는 모든 아이들이 나와 상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 오히려 시체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다음 검은 비닐 봉투를 풀어 해쳤다. 마치 먹이를 뒤척이는 들개처럼 나는 내 손이 지퍼에 긇혀서 피가 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비닐을 풀어 해쳤다.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흐르는 방안은 나의 흥분된 숨소리와 비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메아리 치는 것 같았다.
그 봉투 안에 든 시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비닐 안에서 무표정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바로 이 독서실에 워크맨을 훔치러 왔던 잡힌 후 실종되었던 종현이었다. 이 시체는 진공 포장할 때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얼굴의 한쪽이 부패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멍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처질 정도였다. 얼굴이 너무 끔찍해서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바로 몇 분전에 그 아이에 관련된 TV 프로그램을 보고 왔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1년 전에 실종된 그 아이가 여기 있다니…
나는 연속되는 충격과 믿을 수 없는 사건 때문에 도저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언뜻 머리를 스치는 사람은 바로 독서실 주인 아저씨였다. 주인이 아니면 여기에 이런 식으로 시체를 보관할 수도 없었고, 이 방을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머리 속에서도 강하게 남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왜 이런 끔찍한 짓을 했다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선량하게만 보이던 이 독서실 주인이 바로 싸이코 연쇄 살인자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실질적인 두려움이 느껴졌다. 만약 그가 진짜 여기 있는 시체들의 살인범이고, 내가 여기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면… 이전까지 느끼던 것과 다른 공포심이 느껴졌다.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범인이 누구던 간에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발견하면, 나는 살아나갈 수 없는 상황이 분명했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밖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어도 상관없고 그냥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란 것이 느껴졌다. 밖에 있을지도 모를 그 무시무시한 아이들의 귀신들을 생각하자, 뭔가 뒤통수를 치는듯한 생각이 머리 속을 지나갔다.
그리고는 나는 아까 처음에 풀어 해친 두 구의 시체쪽으로 가서 그 끔찍한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손전등은 이제 거의 수명을 다했는지, 아주 희미한 불빛 밖에 없었다. 그 손전등을 바짝 시체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빛이 가까운 데서 비치니까 그 섬뜩한 얼굴은 더욱더 끔찍해 보였다. 나는 그 시체의 생기 없는 눈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얼굴 전체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두 명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나는 머리털이 쭈삣하고 서는 느낌이 들었다…
시체로 발견된 두 아이의 얼굴이 낯이 익었던 이유는 바로, 독서실에서 여러 번 목격했던 귀신들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복도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나를 잡아 끌어들였던 그 아이 들었던 것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아이들이 시체가 숨겨진 독서실을 배회했던 것이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의 원귀들이 그 동안 독서실에 일어났던 믿어지지 않는 얘기들의 원인이 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고, 정말 황당한 생각이었지만, 딱히 다르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어간 시체의 원귀들이 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리고 뭔가 해꼬지 할 희생자를 찾고 있다면, 여기서 빠져 나간다고 해도 무사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때, 들고있던 손전등이 결국 건전지가 다했는지 빛이 나갔다. 아무리 두들겨 봐도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전등의 건전지를 교체한 것이 바로 어제인데, 사용한지 몇 분 안 되서 꺼지다니… 예전에 은철이 일행들이 준비했던 모든 불빛이 순식간에 못 쓰게 되듯이, 나도 그런 경우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더 이상 할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불빛이 나가자 밖으로 통하는 창문 하나 없는 이 방은 암흑 그 자체였다. 내 손을 들어 내 얼굴 앞에 갖다 대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주변에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무렇게도 풀어헤쳐진 시체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주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두려움으로 거칠어진 나의 숨소리만 귀에 거슬렸다. 숨소리를 내면, 뭔가가 소리를 듣고 나에게 다가올 것 같아서 소리를 줄이려 했지만, 숨을 쉬지 않는 한 숨소리는 계속해서 적막을 깨놓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되자, 나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움직이면 뭔가가 나를 잡아 끌어들일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공포심으로 피가 머리로 몰리는지 어지러워졌다. 나는 간신히 몸을 추스리며 혹시 불빛이 될 만할 것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주머니에서 라이터가 하나 나왔다. 이제 살았다는 마음으로 라이터를 켰다.
그때였다.
내가 불을 키자 마자, 저 구석에서 뭔가가 쉭 하고 움직이는 것이 언뜻 눈에 띠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지는 못 했지만, 뭔가가 움직이는 것은 확실했다….
이 방에 나 말고도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라이터의 작은 불빛이 암흑에서 나를 구해냈지만, 라이터 불빛 너머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부분이 눈에 들어와 더 무서운 것 같았다. 아예 불빛이 하나도 없을 때는 눈을 감고 있으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게 나의 위치만을 주위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라이터 불빛에 의지해 아까 내려놓은 망치를 집어 들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망치를 집어 들자 약간 자신감이 생겼다.
라이터 스위치를 조정해 불의 크기를 최대로 크게 했다. 그러니 약간 더 밝아졌으나, 주변만 그렇고 불과 1,2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라이터 가스가 타는 소리가 크게 들리길래, 라이터를 보니 불을 크게 했기 때문에 라이터 가스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부터 가스가 별로 없는 라이터 였기 때문에, 다급해졌다. 이 불이 꺼지게 전에 여기서, 아니 이 독서실에서 나가야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닐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무서움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애써 잘못 들였으려니 하고,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딛었다.
내가 다시 움직이자마자,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한군데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확실히 내 등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한 손에 든 망치에 힘을 주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라이터 불빛에 보인 모습은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밀봉된 비닐 봉지 안에 들어있던 시체들이었는데, 그것들이 천천히 비닐에서 몸을 빼내 일으키고 있었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빛에 보이는 끔찍한 시체들의 움직임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무서웠다.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시체들은 비닐에서 몸을 빼면서도, 그 섬뜩한 시선을 내 얼굴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 중 처음에 발견한 여자 아이는 나를 보고 히쭉 거리며 웃는 것 같이 보였다. 등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몸을 돌려 문쪽으로 달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것들은 이제 비닐에서 몸을 빼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불과 2미터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발을 땔 수가 없었다. 그때 라이터를 들고 있던 손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라이터가 불에 달구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뜨거움이 느껴지자 뭔가에 홀린듯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몸을 돌려 문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뜻 돌아보니 시체들은 이제 몸을 다 일으켜 비틀거리며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얼굴에 큰 충격을 느끼고 나동그라졌다.
매달아 놓은 시체 주머니에 정통으로 부딪힌 것이었다. 그 충격에 그 비닐 봉지도 떨어져 나갔고, 나는 그것을 안고 넘어진 셈이었다. 라이터는 어디 론가 나가떨어졌고,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난 시체들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나는 미친 듯이 바닥을 더듬었다. 다행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라이터를 키려 하는데 잘 켜지지 않았다. 나는 우선 몸을 일으키고 보자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는데, 손에 들고 있는 망치가 그 비닐 봉지에 걸렸는지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힘을 주어 획 일어났더니 북 하고 비닐 봉지가 뜯겨나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너무 호되게 넘어져서 여기저기 아팠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우선 라이터를 켰다. 웬일인지 분명히 내 뒤로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그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망치를 든 손에 힘을 주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였지만,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들이 서성이며 어둠 속 어디 선가 나를 보는 것 같아 더욱 두려워졌다.
다시 몸을 돌려 문쪽으로 뛰어가려는 순간, 찢겨진 비닐 사이로 시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였는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몸을 숙여 라이터를 가까이 가져가 그 얼굴을 확인했다. 이 시체는 뭔가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시체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 얼굴의 주인공은 바로 이 독서실의 전 총무였던 서경기였다. 절에서 공부하다 실종되었다는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여기서 발견된 것이었다. 좀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라이터 불빛을 더욱 가까이 대었다.
그때였다.
눈 부신 손전등 빛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빛 쪽을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저쪽에서 손전등으로 나를 비추고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느끼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쪽을 향해 소리쳤다.
"느..누..누구야!!"
그 순간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은, 만약 저 손전등의 주인공이 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놈이라면 나를 살려둘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도 모르게 망치를 든 손이 올라갔다. 그 사람은 대답은 하지 않고, 손전등으로 방안 구석과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다. 손전등을 내쪽으로 비추고 있어 그 사람의 얼굴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손전등으로 방안을 구석구석 살피더니 어디 선가 귀에 익은 기분 나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역시 여기 와 있었군…"
그 얘기를 듣자 마자 나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구란 말야!!"
내 말에, 그는 내게 비추던 손전등을 자신으로 향하더니 자기 얼굴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찔함을 느꼈다. 손전등의 주인공은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독서실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은혜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박 형사였다. 나는 그를 보자, 안도감이 느껴지며,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내 생각과는 달리 싸늘하고 살기까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박 형사의 얼굴표정이 이상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시하고 다급하게 말을 했다.
"형사님! 잘 오셨어요?
여기서 빨리 나가요! 꼼짝없이 여기 갇히는 줄 알았네.."
박형사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안 하고, 다시 방안을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어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일한씨, 이 시체들은 뭐죠? 솔직히 말해보세요.”
나는 그제서야 박 형사는 이 방에 널려져 있는 시체들을 보고 놀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도 이 끔찍한 시체들이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연히 여기 들어왔다가 발견한거예요. 확신할 순 없지만 독서실 주인이 미친 살인범 일거예요. 처음부터 저에게 여기 열쇠도 주지 않고 여기 들어오지 못하게 했거든요. 뭐 숨기는 것도 있는 것 같았고...“
박 형사는 내 얘기를 들으면서, 상의 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권총을 꺼내 나를 겨냥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리둥절해졌지만, 박 형사의 살벌한 얼굴을 보고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 박 형사는 천천히 다가오면서, 놀랄만한 얘기를 했다.
“설마했는데...
인간이 이렇게 될 수까지 있다니.
오늘 제보를 하나 받았소. 독서실 주인한테서. 사실 그 동안 나는 당신과 그 사람을 둘 다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당신이 이 창고에서 뭔가 수상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며, 오늘 밤에 이 창고에서 뭔가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 사람의 제보를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한번 와보기로 했소. 아니나 다를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당신은 이 방에 들어와 뭔가를 하고 있더군. 자기가 죽인 희생자들을 망치로 들고 다시 한번 훼손하려고...
나야 정신 분석학자가 아니라서, 당신의 이런 미치광이 짓의 동기를 알 수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소. 미친놈이지 뭐. 단지 나는 너 같은 새끼 잡아넣는 것이니까.
자 피곤하게 하지 마자고. 하긴 니가 반항하면 나는 더 좋지, 그 핑계로 네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은혜 시체는 어디다 둔거야! 엉?“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정신이 멍해지고 아찔했다. 내가 범인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박 형사는 나의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총을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 수갑을 꺼내며 다가왔다. 독서실 주인이 나를 모함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박 형사님, 이거 내가 한 짓 아니라니까요!
독서실 주인이 미치광이 살인범이라니까요. 나를 모함한 거예요! 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라니까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나는 절규하듯 소리를 치고,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박형사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야, 반항하지 말랬잖아! 누가 독서실 주인 결백하다고 했어? 우선 너부터 잡고, 다음은 그 사람 차례야. 그 놈도 확실히 뭔가 숨기는 거 있어. 그래도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야지. 나는 멀티테스킹에 약하거든. 그리고, 손에 든 망치 좀 내려놓을래. 자꾸 니가 그러면, 나도 손에서 땀이 나서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미끄러질 수도 있거든. 정 원하면 계속 해. 나야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편하니까.”
박 형사의 말을 듣고 보니, 망치를 손에 꽉 쥔 채 마치 뭔가를 내리치기 직전의 자세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망치 든 손을 내리고 애걸하듯이 한 마디 했다.
“형사님, 제발 내 말 좀 믿어줘요.
나는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 놈이 진짜 범인이라니까요!“
박 형사는 내 말에 전혀 동요를 하지 않고 오히려 단호하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야,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고 해도, 아무런 근거 없이 너를 잡으려고 하는 줄 알아? 내가 결정적으로 독서실 주인의 제보를 믿고 여기 오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어. 그 사람이 제보와 함께 자네가 타고 다니던 봉고에서 발견했다며, 피 묻은 칼을 경찰서로 보내왔어. 그 결과 보고 오느라고 내가 좀 늦은 거야.
검사 결과는 네가 생각하듯이, 바로 니가 이 서경기를 살해할 때 쓴 칼이었어. 칼에 묻어있는 혈액은 서경기 것으로 확인되었고, 칼 손잡이에는 네 지문이 더덕더덕 찍혀있었어. 나머지를 살해할 때 쓴 것은 아직 발견하지 않았지만, 우리 시간은 많으니까..
여하튼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해? 내가 판사라면 내가 여기서 목격한 것과 그 칼 한 자루로 너 같은 놈은 곧장 사형시킬걸. 자 조용히 이 기분 나쁜 곳을 빨리 떠나자니까!“
나는 그 박 형사의 말을 듣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놈이 물질적인 증거까지 조작해서 나를 모함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박 형사 말대로 이 정도의 증거만 있으면, 나의 결백 주장은 미친놈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 같았다. 그런데 확신에 찬 박 형사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살기에 찬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반적인 경찰이고 내게 그런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런 구차한 설명도 하기 전에 체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이런 미친 살인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파트너 없이 혼자 온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나는 박 형사도 이 시체들과 어떤 식으로도 연관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끔찍한 광경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박 형사가 단순히 나를 잡으러 온 경찰이 아니고,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좀 더 다급해졌다. 박 형사는 한 손에는 권총을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나도 그 사람이 다가오는 것에 따라 뒷걸음질쳤지만, 박 형사가 총을 더욱더 위협적으로 겨냥하며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내 바로 앞까지 와서, 양손을 머리위에 들고 뒤로 돌아서라고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손을 올리면서 뒤로 돌았다. 운이 좋아 그냥 여기서 경찰에 잡혀간다고 하더라도, 내 누명이 벗겨질 확률이 높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무죄라고 주장해도 내 지문이 묻어있는 칼이 증거로 있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박 형사가 이 사건의 공모자는 진범이라면 나 역시 내 발 밑에 핏빛 없는 얼굴로 널브러져 있는 서경기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박 형사는 뒤로 돌아선 나를 보고, 뒤춤에서 수갑을 꺼내려는지 철그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로 뒤로 힘껏 찼다. 박 형사의 복부에 퍽 하고 발길에 허리 부분이 차이는 소리가 들리고, ‘억!’하는 짧은 비명소리와 손전등, 권총등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는 충격에 의해서인지 박 형사가 들고 있던 손전등이 불이 나갔다.
방안은 다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새까만 암흑이 찾아왔다. 나는 뒤돌아볼 것도 없이 무조건 앞으로 뛰었다. 발끝에 시체 같은 것이 채이고, 얼굴이 시체가 들어가 있는 매달린 비닐 봉투에 부딪히고 제대로 몇 발짝 갈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강아지!”라는 소리와 함께 방안 전체가 떠나갈 듯하게 큰 소리로 “탕!”하는 총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에 총알이 스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박 형사가 권총을 쏜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손전등을 찾지 못해 아무데나 보고 쏜 것 같았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최대한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 어디가 출입구 쪽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박 형사는 이제 몸을 일으켰는지 콜록콜록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이 강아지야!
얌전히 가자고 했지! 강아지.
대갈통을 날려 버리겠어!
어디 있어? 씨팔!!“
나는 최대한 숨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박 형사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박 형사 역시 불이 없는 여기에선 귀 밖에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숨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나를 자극하려는지 갑자기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이봐. 자네가 이러는 거 이해 못하는 거 아냐.
자네, 지금 여기 있는 시체들 보고 놀랐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독서실 주인이 자네 모함한 것 같고... 그게 맞을 수도 있어. 내가 틀렸고. 그러니까 한번 가서 조사해 보자니까. 여기서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부 자네가 진범이라고 생각할 거야. 누명을 벗을 기회를 놓치는 거지. 안 그래?“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그 질문에 대답할 뻔 했다. 박 형사는 내가 말을 하게해서 내 위치를 찾아낼 생각인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전에 책에서 읽은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기억 못한데.. 다중인격장애도 그런 것 중에 하나지. 내가 읽은 증세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혼자 있을 때 또는 특정한 시간이 되면 원래 자기와 전혀 다른 성향의 행동을 한다고 해. 그리고 잊어먹고...
자네 뒷 조사 해봤어. 열렬히 좋아했던 여자 친구는 교통사고로 죽고 학교에는 취미도 잃고 군대 갈 생각이나 하고. 아무런 낙도 없는 생활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어. 그러던 차에 늦은 시간에 독서실이라는 자네만의 공간이 생긴거야.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 그 때 자네는 변했을 거야. 다들 증언이 그래. 자네 어머니도 독서실에 늦게 돌아올때 마다 자네 방에 들어가 괴로운 듯 술을 마시는 등 변했다는 거야. 그 때 귀찮게 하는 사람들 하나씩 없애기 시작했지. 자네 일에 자꾸 간섭하는 괴팍한 고시 준비생이며 이전에 여기 총무였던 서경기나, 귀신 얘기하면 자꾸 자네를 귀찮게 하던 은혜나... 자네 잘못 아냐. 자네 속에 숨어있는 괴물이 한 거지, 그러니 나와 같이 가서 의사를 만나자니까.“
다시 기억하기 싫었던 가슴아픈 기억이었던 은영이의 얘기를 꺼내기까지 하면서,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데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서 소리치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설마 하면서도 내가 정말 이런 짓을 저지른 것 아닐까라는 의심도 조금씩 드는 것 같았다. 갑자기 괴로워졌다. 그런데 박 형사가 그 말을 하면서 뭔가 “탁탁” 하고 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얘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그 소리는 들려왔다. 무슨 소리가 의아해하는데, 그 소리의 의미를 아는 순간 내 심장박동을 빨라졌다.
박 형사는 손전등을 찾아서 불을 켜기 위해 손으로 손전등을 치고 있던 것이었다. 박 형사가 불을 켜면 내 머릿속에 총알이 박히던지 누명을 쓰고 경찰서로 끌려가던지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탁탁’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박 형사는 결국 손전등의 불을 켰지만, 박 형사를 향해 몸을 던지던 내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나는 미식축구 하듯이 박 형사를 덥쳤고, 손전등은 불 켜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손전등 불빛이 비춰지는 가운데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역시 경찰이라 격투기에 단련 받았는지, 넘어지는 순간만 놀랐지 힘으로도 나를 압도했다. 순식간에 나는 박형사 밑에 깔려서 얼굴에 주먹 세레를 받게 되었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얼굴이 붓고 입안에 피가 터져서 찝찌름한 핏맛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흥분되는 것 같았다. 나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두르던 박 형사의 목을 조르듯이 잡고 옆으로 내동댕이 쳐댔다. 박형사는 갑작스런 나의 반격에 놀랐는지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급히 박 형사 위로 올라타 복수하듯이 얼굴을 갈겨댔다. 손이 아픈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박 형사의 얼굴에서 피가 튀자 은근한 쾌감마져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두들겨 맞고 있던 박 형사도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의 강철 고리 같은 손가락이 내 목을 감고 있어, 아무리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쳐도 꼼짝도 안하는 것이었다. 목을 조이는 손을 풀기 위해 바동거렸지만, 어림없었다.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 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버둥거리는 내 손끝에 떨어트린 망치가 다았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나는 간신히 망치를 쥐고, 내 몸을 죄고 있던 손을 향해 쳤다. 아무리 쳐도 꼼짝을 못하던 박 형사의 손이 풀리고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내 속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증오가 밀려왔다. 이 놈이 나를 죽이려했다는 생각과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실 둘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사실 등이 머릿속에 뒤섞이면서 내 눈앞에 있는 이 놈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팔이 고통스러운지 내 밑에 깔린 채 움직이지 못하는 박형사의 목을 한손으로 쥐고, 망치를 쥐고 있던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그의 정수리를 겨낭했다. 그대로 내리치면 박형사는 머리가 꺼져서 죽을 것이 확실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했다. 겁에 질려 커질 대로 커진 그의 눈을 보니 나의 승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대로 망치를 내려치라는 마음 속 명령이 점점 강해졌다. 내가 여기서 박 형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내리쳤다.
“깽!” 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는 박 형사 머리를 비켜 바닥을 쳤다. 나는 박 형사의 목을 잡았던 손을 풀고 옆으로 비켜 앉았다. 박 형사도 나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던 내 자신의 잔인함이 놀랍고 무섭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일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뻔 한 것이었다. 우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와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박 형사에게 먼저 말을 했다.
“이제 나를 믿어요? 헉헉...
안 믿어도 할 수 없지... 경찰소로 갑시다. 거기서 밝혀지겠죠. 헉헉...“
박형사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말을 했다.
“당신 생긴 갓과는 달리 주먹이 맵군.
으윽. 허리도 다쳤나 봐.
이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더 이상 뒹굴지 말고 나가지.
나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면서 얘기하자고...“
박 형사와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떨어진 손전등과 권총을 집어 들었다. 아직도 나에 대한 의심이 전부 가시지 않았던지 권총을 내게 겨누었다.
“자, 이번에는 정말 그냥 나가자고. 나도 흥분 가라앉혔으니까...
자 앞장서지.“
박 형사는 권총을 흔들면서 나보고 앞장서라고 했다. 나 역시 박 형사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인마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권총까지 들고 있는 상황에서 등을 보이기 싫었지만, 체념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서있던 박 형사가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앞으로 고끄라졌다. 나는 놀라 바라보았다. 쓰러진 박 형사 뒤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삽을 들고 서 있었다. 너무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박 형사가 들고 있다 놓친 권총을 집어 들어 나를 겨냥했다. 그리고는 지옥에서나 들려올 것 같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는데..
너 잘 하다가, 왜 마지막에서 땅 바닥을 쳤니?
너 제대로 했으면, 내가 폭력을 쓸 필요가 없었잖아. 안 그래?“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독서실 주인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평소에 약간 멍청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사악한 기분까지 풍기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목소리 역시 싸늘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일 소름이 끼치는 것은 그 광기가 넘치는 그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는 쓰러진 박 형사를 발로 슬쩍 건드리고는 나를 향해 결어왔다.
“이 새끼 아직 안 죽었네. 오히려 잘 되었지. 이렇게 죽으면 더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
자네는 이번 작품의 주연이니까, 가만히 내 말 잘 들으라니까“
나는 너무 놀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이 모든 일의 범인은 독서실 주인이었던 것이었다.
“당신이... 당신이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당신은 도대체 뭐야?“
“나? 그냥 보통 사람이야. 너랑 똑같은...
단지 다른 것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용감한 사람이고 너는 소심한 병신이지...“
그런 말을 하고는 권총을 겨누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시체를 발견했을 때 보다 더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보더니 천천히 한 손에 든 삽을 옆으로 쳐들었다. 나는 여기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겨냥한 권총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뱀에 눈에 홀린 먹이처럼 온 몸의 힘이 쫙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서웠다.
그는 나를 보고 씨익 하고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좀 있다 준비 끝난 다음에 보자고.”
그러더니 들고 있던 삽으로 내 옆머리를 내려쳤다.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이 아득해지며 다리가 풀리고 몸이 거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내 눈에 보인 것은 독서실 주인의 사악한 미소였다...
갑자기 차가움이 느껴지고, 눈이 떠졌다. 온 몸이 불편한 것이 느껴지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잘 떠지지 않았다. 차가움과 축축함이 한 번 더 느껴졌다. 찬 물이었다. 물이 피와 섞여서 입에 들어왔다. 찝찌름한 피맛이 느껴졌다. 눈을 뜨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데 다시 한번 귀에 거슬리는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더 이상 잘 시간 없으니까, 이제 슬슬 읽어나지.
준비는 그럭저럭 다 되었으니까...“
나는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 나는 쪽으로 보았다. 거기에는 독서실 주인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시체를 둘러싸 놓았던 비닐들이 풀어져 있었다. 나는 움직이려 했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묶여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건 포장할 때 쓰는 비닐 노끈으로 온 몸이 동여매져 있었다. 아무리 움직여봤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 하는 짓이야!”
“소리질러봤자 소용없어. 지금 밤 3시가 넘었고 이 빌딩에는 아무도 없어. 아마 근방 2,3 킬로미터 반경에 눈 뜨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걸...
그건 그렇다지지만, 생각할 수록 아까워. 아까 형사를 조질 때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하던데...
끝장을 내버리는 게, 형사놈 한테는 더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끔찍한 광경이 눈에 띠었다. 박 형사는 온 몸에 칼로 난도질한 상처를 입은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온 몸에 담배로 지진 자국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욱 잔혹한 것은 그 상처에 소금을 대고 비빈 흔적이 보이는 것이었다. 다행히 박형사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누구한테 까지 보고했는지 좀 알아보려고 했는데... 별것도 알지 못하고 설친 거였어. 괜히 걱정했네. 너랑 은혜년만 조지면 되는 것이었는데..”
“무슨 얘기야...”
“내가 그랬지. 여기서 시키는대로 총무일만 하라고. 괜히 은혜년 말 듣고 쓸데없는 짓 하다가 피보게 되었잖아? 안 그래. 여하튼 너랑 은혜 그년 때문에 그 동안 아무런 문제 없는 이 보금자리를 없애야 되잖아. 복잡하게 머리도 좀 쓰게 되었고...”
그는 얘기를 하면서 기름통을 방 주변 여기저기 뿌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려 애써 봤지만, 뒤로 묶인 손가락과 목만 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이 방을 아예 태워버릴 생각인지 기름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는 것이다. 기름을 뿌리던 주인은 이제 다 끝났는지, 몸을 일으키더니 장갑 낀 손으로 칼을 들어 매달려 있는 형사에게 다가가 등에 칼을 대고 죽 그어대었다. 박 형사는 의식이 돌아왔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났다. 칼로 박 형사의 몸에 그어대면서 나를 보고 기분나쁘게 웃더니 얘기를 했다.
“걱정마,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을 거야. 상처와 이 칼이 발견 되야 되니까. 그러면 어떤 흉기로 상처 받았는지 알게 되고, 자연히 이 칼의 지문 주인을 범인으로 생각할테니까...”
나는 그제서야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박 형사를 그 칼로 죽인다음 나에게 모든 누명을 뒤집어씌울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던 시간을 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다 죽인 거지? 도대체 왜 이 많은 사람을... ”
“이유라? 내가 설명하지 않았나, 하고싶어서라고.
그러다 방해하는 놈들도 처치해야 했고.
서경기도 총무주제에 너무 많이 알려 했어. 결국에 독서실을 떠나더니 다시 나타나서까지 귀찮게 했으니까 응징을 받아야지. 그 워크맨 도둑놈도 그래. 그냥 걸렸으면 사라질 것이지. 여기서 본 것의 정체를 파헤친다고 난리치다고 이 방에 까지 들어오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애는 자기 동네 독서실 가다가 납치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뭔가 알아내려 여기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일을 했다. 대답하게도 기름을 방안에 뿌려놓고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잘 부축이면 그가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까지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여기에 시체를 숨켰죠? 그런데, 왜 암매장하지 않고, 여기다 보관했죠. 그것도 이상하게 포장하고.”
“자네도 알아낸 게 별로 없군. 내가 왜 독서실을 시작했는 줄 알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간섭이 적은 곳이야. 경찰도 정부도 대충 환경기준만 맞추어 놓으면 노터치야. 더구나 애들 공부하는데를 누가 건드려. 그리고 총무만 고용하면 봉고 몰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지. 또 독서실 간판 단 봉고에는 한 밤중에 애들을 태우고 다녀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지.
시체도 그래. 어디 산에다 묻어놓았다가 누가 발견하면 그 때부터 실종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 되어 경찰이 조사해 나서잖아. 차라리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좋지. 또한 이렇게 포장하면 부패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잖아. 왜 사냥꾼들이 사냥한 동물들을 박제로 만드는지 나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 이렇게 걸어놓으면 뿌듯해. 솔직히 말하면 황홀하지. 흥분되기도 하고...한마디로 죽이지... 이렇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칼로 난도질을 하는 것을 그만두었지. 죽일 때의 쾌감도 쾌감이지만, 계속해서 그 황홀함을 맛 볼 수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 이해 못 하겠지?“
그가 칼이라는 얘기를 했을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내 셔츠 앞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칼이 생각 났다. 총무실에서 나올때 집었다가 망치를 발견해서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이 기억난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시체 몇 구를 골라놓고 한 구씩 어깨에 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고개를 숙여 입으로 셔츠 주머니에 있는 칼을 꺼내 보려 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을 몸을 흔들어보니까, 간신이 입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칼 손잡이 닿을 듯 했다.
그 순간, 주인은 다음 시체를 나르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바로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있었다. 그는 나를 힐끔 보고 한마디 했다.
“지루하지. 이제 2개만 더 처리하면 너랑 놀아줄게. 기다린 보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는 다음 시체를 어깨에 걸치고 나갔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입으로 칼을 꺼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목이 끊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입을 대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칼 끄트머리를 물 수 있었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의자 뒤로 묶여있는 손으로 칼을 떨어트려 보려 했다. 목에 쥐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렸지만, 기껏해야 어깨 위로 밖에 칼을 옮길 수 없었다.
주인이 독서실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급해졌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입에 문채 고개를 반대쪽으로 했다가 반동을 이용해서 어깨너머로 던졌다. 워낙 힘이 약해서 어깨를 맞고 뒤로 떨어졌다. 칼은 오른쪽 어깨위에서 건들거렸다.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왔다. 어깨를 위로 쳐올렸다. 칼은 아슬아슬하게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주인이 들어왔다. 다행히 칼은 의자위에 내 손위로 떨어졌다.
주인은 나를 보았지만,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옆에 치워진 마지막 시체를 들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체를 짐처럼 들고 나가는 주인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다 대고 한 마디 물어보았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게 있어. 이 독서실에 맴도는 희생자들의 원귀들은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나타나면 더 많이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아무런 기척도 없고 잠잠하잖아. 나 혼자 있을때는 소름끼칠 정도로 많이 나타났는데...”
주인은 내 질문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그것들... 그 조그만 것들 무섭지. 소름도 끼치고... 자나 깨나 자기들 여기 있다고 알리려고 난리고.. 그러니까 내가 너 걱정해서 일찍 나가라고 했잖아. 그 놈들 꽤 무섭거든. 나도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찾았지. 그 이후에는 나도 발 쭉 뻗고 잘 수 있었지”
그리고는 시체를 들고 나갔다. 나는 손으로는 칼로 노끈을 끊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그가 말한 비책을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끝없는 원한으로 가득 찬 귀신들이 꼼짝을 못하는 것일까. 무슨 주문일까, 십자가 일까, 마늘일까, 아니면 무슨 부적일까... 좀 생각해 봤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순간적인 고통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더구나 옆에 피투성이가 되어 매달려 있는 박 형사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더욱 멈출 수 없었다. 칼로 노끈을 긁을수록 손목을 움직이기가 쉬어졌다.
주인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서 손목을 묶은 끈을 끊었다. 이제는 손이 자유로워졌다. 그가 돌아와서도 눈치 채지 못하게 끈을 헐겁게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대충 보기에는 여전히 꼭 묶여있는 것처럼 했다.
그가 방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어깨에 뭔가를 지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시체를 다시 가져온 줄 알았는데, 그가 내려놓은 것을 보고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것은 은혜였다. 정신을 잃었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동안 고생을 했는지, 얼굴도 핼쑥해지고 옷도 지저분해졌지만 확실히 은혜였다. 나의 표정이 바뀐 것을 눈치 챘는지 주인이 먼저 한마디 건냈다.
“걱정마, 안 죽었어. 너와 함께 오늘의 하이라이트인데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없지. 자 이제 여기서 치울 것도 다 치웠으니까 슬슬 시작해볼까...”
그러더니 우선 물을 부어 기절해 있던 은혜를 깨웠다. 은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괴로운 듯이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는 박 형사를 밸때 썼던 피묻은 칼을 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아직 차리지 못한 은혜를 향해 쳐들었다...
그걸 보고,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나는 끈을 풀고 은혜를 향해 칼을 쳐든 주인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은혜를 향해 칼를 들고 있는데 신경쓰고 있는 그는, 생각지도 못한 나의 기습을 받게 되었다. 그는 들고 있던 칼을 놓치고 나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박 형사와 격투를 생각하면서,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가볍게 내 주먹을 피하고, 나의 옆구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지만, 복부에 받은 충격이 심해 고개를 둘 수도 없었다.
그는 떨어진 칼을 집어들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넌 새끼야, 끝까지 말 듣지 않는구나!
원래는 널 끝까지 남겨둘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시간만 일찍 가 있어라!“
나는 그가 칼을 들어 나를 내리찍으려 하는 것을 빤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꼼짝마! 멈춰!”
칼을 들고 있던 그도, 배를 움켜쥐고 움직일 수 없었던 나도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총으로 우리를 겨냥하며 서 있었다. 그는 나와 박 형사가 그리고 몸부림치며 의식을 회복해가는 은혜를 쳐다봤다. 주인은 그를 알아본 듯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제발 용서해... 참을 수가 없었어... 제발.”
도대체 누구길래, 그 살인마가 두려워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 사람이 얼굴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나올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그 사람은 군복을 입고 완전 무장한 채, K-1 기관총을 들고 있는 탈영을 했다는 은혜의 오빠 은철이 였다. 그의 얼굴 표정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띤 채로 주인을 향해 당장이라도 발사할 것 같은 기세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은철이란 것을 알아본 순간,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철이는 자기 여동생 은혜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독서실 주인과 연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무장 탈영을 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제 시간에 도착해서 여동생의 죽음도 막을 수 있게 된 것 뿐만 아니라, 나와 박형사의 목숨도 구하게 된 것이었다.
복부의 통증도 잊고 몸을 일으킨 나는 은철이에게 말을 건넸다.
“은철씨, 잘 왔어요. 이 놈이 바로 살인마예요. 동생 은혜도 죽이려고 했어요. 여기 피칠갑을 한 채 묶여있는 것은 은혜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박 형사예요. 자 우선 이놈부터 묶어놓고 빨리 경찰을 부르죠. 아마 경찰에서도 은철씨 탈영한 것 이번 일을 해결한 것으로 상황 참작해서 없는 일로 할 거예요.”
내 말은 들은 은철은 오히려 나를 보고 경계심을 풀지 않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그런 말 하는 당신은 누구야?”
나는 그제서야 은철은 나를 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은혜가 준 사진을 통해서 그에 대해서 알았지만, 은철은 나에 대해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저는 유일한이라고, 이 독서실 총무입니다. 은혜로부터 은철씨 얘기하고 은철씨가 겪었던 불가 사이한 얘기 다 들었어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빨리 이 놈부터 묶죠.”
내말을 들은 은철은 그제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총을 독서실 주인으로 겨냥한 채 다가왔다. 그리고는 매우 흥분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가 너 이전부터 그럴 줄 알았어. 이런 미친 짓이나 저지르고!”
주인은 총이 두려워서인지, 연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지껄였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제발 용서해 줘. 다시는 이런 일 없을거야...
우리사이에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잖아. 내가 너 독서실 다닐 때 얼마나 잘해줬니?“
나는 독서실 주인의 변명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나를 묶었던 노끈을 들어 독서실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은철이 노끈을 든 내 손을 밀쳐내며 K-2로 주인을 겨낭했다. 나는 은철이 흥분되서 그냥 독서실 주인을 쏴 죽이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은철씨, 이 새끼 죽이려는 거 이해되지만, 그러지 마세요. 어짜피 이 놈 사형당할테니까 조그만 참아요! 그래야 모든 것이 세상에 밝혀지고, 은철씨도 피해 받지 않을 거예요!
제발 참아요!“
은철은 내 말을 듣고 동요되는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나를 돌아다보고 이해할 수 없는 한 마디 했다.
“너는 얘기들은 것만큼 참 귀찮은 놈이기는 하지만, 생각했던 것 만큼 똑똑한 놈은 아니군...”
나는 은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잠시 멍했다. 은철은 그런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더니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면서, 갑자기 들고 있던 총을 들었다. 그러더니 개머리판으로 내 얼굴을 내리쳤다.
큰 충격과 함께 얼굴 빰에서 피가 터지는 것이 느껴졌다. 충격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 나는 아픔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은철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간신히 손으로 땅을 집고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은철을 봤다.
은철은 나를 보더니 군화발로 내 복부를 한번 더 걷어찼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나가떨어진 나는 배를 움켜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
은철은 쓰러진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또 다시 주인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건냈다.
“너 내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잖아!
이게 왠 엉망이야! 아마추어 같이... 너 또 분출되는 욕구를 못 참았지?
만약 내가 좀 늦었으면, 개판을 만들 뻔 했잖아! 병신같이 나이만 쳐 먹고!“
은철의 욕을 얻어먹은 주인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은철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이 대답했다.
“미안 미안, 내가 좀 못 참잖아... 그래도 봐라. 혼자서 이 정도 준비한가 봐... 내가 만들었던 작품은 이미 봉고에 실어놨어. 여기 있는 것만 처리하면 되. 그러니까 화 풀고 빨리 마무리 짓자.”
나는 그제서야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은철은 은혜를 구하러 탈영한 것이 아니었다. 은철은 독서실 주인의 공범으로 잔인한 살인들을 같이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나는 복부의 통증보다 이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언제부터 같이했어?”
내 질문에 둘은 동시에 뒤돌아 보았다. 은철이 비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어짜피 곧 살인범으로 죽을 놈인데, 그거 정도 알려주지.
이 아저씨가 독서실 만들기 전에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하고싶은 일들을 했지.
나는 주로 동네 놀이터가 주 사냥터였고, 이 사람은 심야에 독서실이나 학교 근처 돌아다니며 쓸만한 애들 골랐지. 그러다 여기서 만나거야. 계획은 내가 더 잘 세웠고, 실행은 이 사람이 더 잘했지. 여하튼 우리는 이 방을 우리 전시장으로 만들기 시작했어. 그런데...“
“야 은철아, 그런 일까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줄 필요 있어? 곧 날이 밝을 텐데 빨리 끝내자고...”
“좀 참아라. 가끔씩 우리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있어야 되잖아... 특히 목숨이 30분도 안 남은 놈이라면... 자, 짧게 끝내지. 한동안 우린 잘 나갔지. 한 가지 원칙만 지켰어. 이 독서실에 오는 애들은 아무리 탐스럽다고 해도 안 건드린다고. 우리 보금자리가 시끄러워지는 거 원치 않았거든.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 이 전시장에 있는 시체들의 원귀들이 귀찮게 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나도 좀 무섭더라고. 하지만, 그걸 구한 후부터 아무런 문제없었지. 한번 테스트하기 위해 내 멍청한 친구 둘 데리고 독서실에서 한 번 밤을 세워봤지. 그 두 놈들은 완전히 맛이 갔지만, 그 놈들이 기절한 후 그것을 달아봤지. 효과가 직방이더구먼, 그 원귀들은 꼼짝도 못하고 나타나지 못하더라고. 더 좋은 것은 그걸 달면 사람을 사냥할 때 쾌감이 두 배가 되는 것 이야. 아마 그것의 전주인이 더 좋아하는 거라서 그럴 거야... 이 정도는 적당하지?”
나는 은철의 얘기를 듣고 다시 한번 충격을 느꼈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거꾸로였다. 백이 흑으로 흑이 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머리 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수 많은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해결할 때가 아니었다. 이 놈들이 지금 꾸미는 것이 무엇이고,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이 놈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를 그냥 죽여 버리지, 도대체 무슨 어떤 생각이 있는 거야? 아무리 너희들이 난리 쳐도 여기 관련된 우리를 전부 죽인다고 하면 의심을 피할 수 없을걸!”
내 도발적인 질문에 그 놈들은 그냥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은 후에 은철이 대답했다...
 

“야 새끼야, 내가 너보다 바보인줄 알아?
내가 왜 탈영한 줄 아니? 내 사랑하는 여동생과 그것을 수사하던 형사를 죽인 범인을 살해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알고 봤더니 독서실에서 일하던 그 살인범은 은혜 납치 사건 용의자였고, 이전에도 여러 사람을 살해해서 자기가 일하는 독서실 창고에 숨겨두었지. 자세한 증거는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확실할 수 없게 되고. 나는 희대의 연쇄 살인범을 사살한 공로로 네가 얘기한 대로 탈영죄는 가볍게 처리되고, 이 독서실 주인은 불이 난 거에 대해 화재 보험을 두둑이 타고 다른 곳으로 옮겨 더 좋은 새로운 독서실을 열고... 한 가지 보너스는 독서실 주인을 의심하고 있던 형사도 죽는 바람에 비밀은 영원이 묻히게 되고. 어때 이 정도면 괜찮은 생각이지?“
나는 은철의 설명을 듣고 전율이 느껴졌다. 그 애 말대로 진행된다면, 나는 꼼짝없는 희대의 잔인한 살인마가 될 것이고, 진범들은 유유히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범죄를 저지를 것이고. 하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너,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해도 그렀지, 자기를 끔찍이 위하던 친 여동생을 죽일 생각까지 하니? 하긴 미친놈에 무슨 이유가 있겠냐마는...”
자극하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은철의 반응은 이외로 격렬했다.
“친동생이라고? 누가 그래? 은혜가? 너 이 새끼 알지도 못하면서 그만 지껄여!
남들은 외아들이라고 해서 특별 보호를 받지. 나는 외아들인데도 찬밥이었어. 특히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랑 얼굴도 마주치기 싫어했지. 술만 먹고 들어오면 나를 두들겨 팼지. 하지만 딸들에게는 항상 끔찍했어. 특히 막내인 은혜라면 껌뻑 죽었지. 지금도 은혜가 실종된 것 때문에 난리 났을걸... 난 탈영한 거는 신경도 안 쓸거야. 다도 처음에는 아들이라 강하게 키우려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진실을 알게 되었지. 나는 그 위선적인 인간들이 아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고아원에서 입양해 온 아이야. 키울 자신이 없으면 입양을 하지 말지. 지네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학대를 해 개년 놈들!!! 은혜가 이렇게 되는 것은 그 연놈들 탓이야!“
우리가 얘기를 하는 동안 독서실 주인은 5구 정도의 시체를 구석에 쌓아놓았다. 끔찍한 것은 장갑을 낀 채로 그 칼을 들고 시체를 다시 난도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검붉고 걸쭉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개의치 않고 칼자국을 시체에 냈다. 마치 소고기를 다지듯이 일부러 칼 자국을 크게 내었다. 상처와 칼자국이 쉽게 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았다. 그 칼에 내 지문이 묻혀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여기서 죽는 것도 겁이 났지만,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로 몰린다는 것도 괴로웠다. 이제 복부의 통증은 괜찮아졌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날 기회를 노렸지만 은철은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총으로 나를 겨누고 있었다.
이들의 계획에 따르면, 나는 은철의 총에 사살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도 모를 목숨이었다. 매달려 있는 박 형사를 내려놓고, 무슨 약물을 복용해서인지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있는 은혜를 기름이 뿌려진 벽 쪽으로 옮겨놓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준비는 끝난 것 같았다. 박 형사는 묶여있지는 않았지만, 주인에게 받은 고문이 심해서 인지 신음소리만 낼 뿐 바닥에 쓰러져 죽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은철은 총구를 옆으로 흔들면서, 나 역시도 기름이 뿌려진 바닥 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은철은 은혜의 뺨을 몇 번 때려서 은혜의 정신을 들어오게 했다. 몇 번을 강하게 뺨을 때리니까 은혜가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이 들려는 것 같았다. 은혜는 간신히 눈을 뜨고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박형사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내 얼굴을 보더니 비명부터 질러대었다. 은철은 거의 실성한 것 같은 은혜의 어깨를 잡고 흔들면서 조용히하라고 소리쳤다. 은혜는 은철을 알아보고 울면서 애원했다.
“오빠, 무슨 일이야, 날 구해줘! 저 독서실 주인 아저씨가 오빠일로 갈때가 있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이상한 주사를 놓았어.. 그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들을 수 있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지옥이었어. 오빠 빨리 우리 구해줘!”
은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은철을 보고 도움을 요청했다. 은철은 그런 은혜의 모습을 눈썹하나 까닥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은혜야, 눈을 감고 있으면 일찍 끝날 거야. 저 아저씨는 좀더 긴 즐거움을 원하지만, 그래도 너와 나는 한지붕에서 살았잖아. 내가 도와줄게...”
은혜는 은철의 얘기를 듣고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못하는 등 계속해서 울면서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은혜는 그 동안 기절해 있어서인지, 은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은혜야, 너는 잘 못 한 것 없다니까... 잘 못 한 것은 이 독서실 총무와 여기 누워있는 아저씨야. 오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그리고는 총을 왼손으로 잡고,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아까 주인이 시체를 난도질 하던 칼을 들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은혜를 구하려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주인이 박 형사의 권총을 들고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은철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 은혜를 보면서 오른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계속해서 울고 있던 은혜는 은철의 칼을 든 손이 올라가는 것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다음 순간, 은철의 눈빛에 싸늘한 살기가 돌면서, 흐느끼고 있는 은혜를 향해 피 묻은 칼로 내려쳤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우연이었는지 은철이 칼로 내려치는 순간, 은혜는 와락 은철의 품에 안기면서 여기서 자기를 빨리 꺼내달라고 다시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은혜의 모습을 보니 가슴마저 아파왔다. 은혜는 떨쳐내려는 은철에게 계속해서 매달리면서 계속해서 울먹거렸다.
은철도 갑작스런 은혜의 행동에 좀 당황한 듯, 잠시 가만히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철의 표정이 다시 표독스럽게 바뀌더니 안겨있던 은혜를 앞으로 밀쳐 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번에는 은혜가 그 칼을 본 것 같았다. 그런데도 별로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바로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던 애 같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고 어떻게 보면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은철도 은혜의 그런 변화를 느꼈는지, 칼을 쳐들었다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했다...
 
“이제 달관한 모양이지. 죽기 전에 알려주지. 나는 너의 친 오빠가 아니고, 여기 있는 시체들은 다 내가 난도질 한 거야. 그리고 지금은 네 차례고..."
나는 은혜가 그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 기절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한 사람처럼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침착한 표정으로 은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손에서 뭔가를 꺼내며 아주 침착한 어조로 얘기했다.
“내가 말했지. 이상한 주사를 맞으면 움직일 수 없어도 얘기는 다 들을 수 있다고... 그리고 얘기 중에 예전에 오빠가 했던 일이 기억났어. 그날 오빠 친구들과 독서실에서 밤새운다며 준비할 때 오빠는 여기저기서 이상한 부적들을 모았잖아. 그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었어. 핏빛처럼 아주 빨간 줄에 매달려 있는 빨간 가죽 같은 거. 오빠는 그것이 돼지 심장 말린 거라고 했어. 물론 지금은 그것도 믿지 않고 있지만.
여하튼 그 날 이후, 오빠는 모두 쓸모 없다고 부적같은 거 전부 버렸지만, 그 돼지 심장 목걸이는 보지 못했어. 오늘 여기 오빠가 매고 있는 것을 볼 때까지.
자 이거 맞지? 이거 없으면 오빠도 어떻게 되는 줄 알지?”
그리고는 손에 든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빨간 덩어리를 목걸이에서 때어서 입으로 꿀걱 삼켰다. 너무 의외의 일이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은철과 주인은 은혜가 하는 일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은혜가 그것을 삼킨 후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은철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 팽개치며 괴성을 지르며 은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은혜가 그 붉은 덩어리를 삼킨 후였다.
은철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얼굴로 은혜의 입을 벌리고, 얼굴을 무참히 후려갈겼다. 그 때 내가 은철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은철의 광기보다는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두려움과 공포였다. 은철은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며 은혜를 공격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무리 은혜를 때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은철은 독서실 주인을 보고 소리쳤다.
“저기 땅에 떨어진 칼 가져와!!!”
독서실 주인 역시 뭔가 두려운 듯이 황급히 칼을 집어 은철에게 주었다. 나는 이 때다라는 생각에 독서실 주인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은철이 미쳐 날뛸때 여차하면 독서실 주인이 가지고 있는 권총을 뺏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철의 다음 행동을 보고, 나 역시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은철은 칼을 받아 들고, 은혜의 배를 갈라서 그 붉은 덩어리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은혜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제대로 칼을 찌르지 못하고, 팔과 어깨에 상처만 내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장면이었다. 아무리 죽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그냥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죽는다는 생각으로 은철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은혜의 바동거림이 방해가 되었는지, 은철은 독서실 주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신발! 보고만 있지 말고, 이 개년 빨리 잡고 있어!!! 시간이 늦기 전에 위를 갈라서 그것을 찾아내야 돼!!! ”
그렇게 황급하게 소리치던 은철이 독서실 주인 뒤에서 뭔가를 봤는지 겁에 질린 소리를 질렀다...
“저거 뭐야!! 씨팔! 벌써 나왔단 말야! 안돼!!”
나는 은철이 보고 놀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태우려고 쌓아 놓았던 5구의 시체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얼 보고 겁에 질렸는지 몰랐다. 그러나 잠시 후, 시체에서 뭔가 희미한 것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연기인 것 같기도 한 것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은철은 그걸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된 은혜를 팽개치고 피 묻은 칼을 든 채, 그 시체 쪽으로 향했다. 나는 처음에 그가 공포에 질려서 그 시체를 다시 한번 난도질 할 생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오산이었다.
은철은 시체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서 있던 독서실 주인에게 다가간 것이다. 그리고는 대뜸 칼로 주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악!!! 무슨 짓이야!!”
주인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은철을 밀쳐냈다. 주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인은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트리고 뒤로 넘어졌다. 은철은 자기 군복에 피에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누운 채로 뒷걸음질치던 주인에게 다가가서 그의 목을 뒤졌다. 그제서야 나는 은철이가 왜 주인을 공격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주인 역시 그 붉은 덩어리를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은철은 피를 흘리며 버둥거리는 주인에게서 그 붉은 덩어리를 빼앗아 자기 목에 걸었다. 시체 근처에서 피어나던 기운은 이제 완연한 사람 모습, 즉 그 시체의 모습이 되었다.
그것들은 곧장 은철과 독서실 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것들의 무표정하지만 끔찍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나 역시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 졌다. 그것들은 천천히 하지만 똑바로 독서실 주인쪽을 향해 갔다. 독서실 주인은 피가 흘러나오는 옆구리 상처를 손으로 막으며 누은 채로 뒷걸음질 쳤지만, 피 때문에 미끄러운지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정말 지옥을 들여다 본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은철은 이제 좀 냉정을 찾은 모양으로 누운채로 발악을 하고 있는 독서실 주인을 보고 냉소적으로 한마디 했다.
“너도 알았잖아? 우리가 영원히 같이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나보다 조금 일찍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할 거야... 잘 가. 그 동안 재미있었다고...”
독서실 주인은 은철을 보며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했지만, 시체에서 나온 그것들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은철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너희들도 잘 봐! 죽기 바로직전에 이렇게 재미있는 광경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는 일이나까...”
그때였다. 피를 흘리며 거의 죽어가던 독서실 주인이 괴성을 지르며 발악하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은철을 덮쳤다. 너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은철도 땅 바닥에 넘어졌다...
 

주인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그 붉은 덩어리를 찾으려고 했고, 은철 역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나는 은혜 쪽으로 접근했다. 다행히 은혜는 상처는 여러 군데 났지만,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얼이 빠진 사람처럼 내 말에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것이었다. 너무 무서운 상황에서 의외의 용기를 부리다가 두려움과 충격에 잠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박형사 쪽을 돌아보니, 박 형사 역시 아직 몸을 뒤척이는 것 보니 살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갑자기 “다다다” 소리가 나더니, 은철이 가지고 있는 총에서 총알이 나가기 시작했다. 둘이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은철의 총이 발사된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총일아 내 귓 옆을 지나가는 듯한 경험을 또 한번 하게 되었다. 고개를 숙이다 보니, 둘이 서로를 죽이려고 씨름하는 바로 옆에 박 형사의 권총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가서 짚고 싶었지만,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 줄 몰라 접근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쪽을 쳐다보다 반대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그것들과 눈이 맞추치니 등골이 오싹하고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둘 중에 누구 한 놈이 이기게 된다면 우리 역시 죽음 목숨이다 라는 생각에 천천히 권총 쪽으로 다가갔다.
한 두어 발자국 쯤 전진했을 무렵, 다시 ‘다다다’ 하고 귀청을 뚫어놓은 것 같은 총소리가 울렸다.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던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맞은 걸로 끝나지 않았다. 총알이 쌓아놓은 독서실 의자 쇠다리를 맞고 불똥이 티더니, 기름을 뿌린 곳에 옮겨 붙어 순식간이 방안이 불길로 가득 찼다.
그 둘은 불길이 거세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했다. 그들이 굴러서 바로 내 앞까지 왔다. 시체에서 나온 그것들 역시 자기 시체들이 불에 타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이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옆구리 상처가 무리였는지, 주인이 헐떡대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은철이 총 개머리판으로 주인의 얼굴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총으로 쓰러져 있는 주인을 겨누었다.
“강아지, 결국 이렇게 될걸. 불까지 내고 지랄이야!”
나는 순간적으로 여기서 은철이가 주인을 죽이게 되면, 우리 역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주인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은철이 뒤로 달려들어 목에 걸려 있는 붉은 덩어리를 잡아채는 것과 동시에 발로 그의 등을 그것들 쪽으로 밀었다.
하지만, 내 발길질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은철은 넘어지지 않고 금방 내 쪽으로 휙 돌아섰다. 그리고 붉은 덩어리를 내게 빼앗긴 것을 알아차리고 나를 향해 총을 겨냥하고 소리쳤다.
“이 새끼! 너마저 죽음을 자초하는 구나!! 죽어라 씨팔놈아!!!”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가슴에 총알이 뚫고 들어오는 고통을 대비했다. 이렇게 죽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일이 나지도 않고, 오히려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악!!! 악!! 이거 놔!! 제발!!!”
눈을 떠 보니,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은철의 팔 다리에는 그것들이 달라붙어 입으로 은철의 살점을 뜯어내고 먹어치우고 있다. 은철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그것들을 때어놓으려고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휘져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은철의 팔 다리를 마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먹듯이 먹음직스럽게 먹어치우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끔찍했다. 은철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더욱 끔찍한 것은 불속에 들어가서도 그 원귀들은 은철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팔을 먹어치우고 있던 악령들이 은철의 팔을 불길 밖에서 잡아당기고 있고, 다리를 잡은 것들은 불길 쪽에서 잡아당기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들 장난 하듯이 은철이 몸을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은철은 상반신을 멀쩡한 채로 하반신이 타들어가는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은철은 정말 듣기에도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멍하는 은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은혜를 일으켰다. 아무런 대답없이 멍하니 있는 은혜의 뺨을 몇 번 때리고, 소리쳤다.
“은혜야!!! 정신 차리라니까!! 은혜야!!”
소용없었다. 불길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쓰러져 있는 박형사는 곧 불길에 휩싸일 것 같았다. 나는 은혜의 손을 잡아챈 채로 박 형사에게 다가갔다. 온 몸이 쑤시고 통증을 느꼈지만, 있는 힘을 다해 피투성이 박 형사를 어깨에 들쳐매었다. 다리가 휘청하고 중심을 잡기 어려웠지만, 여기서 포기 할 수 없었다.
나는 한쪽 어깨에 박 형사를 들쳐맨채, 반대쪽 손으로는 멍하니 서 있는 은혜를 잡고 출입구 쪽으로 뛰어갔다. 불길이 사방에 붙어서 그 열기에 숨도 쉬기 힘들었지만, 간신히 출입구 쪽에 도달했다.
그 긴박한 상황에 내가 왜 뒤를 돌아봤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호기심이었는지, 살인마들에 대한 증오심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목격했던 불가사이 했던 현상들의 마지막 확인이었는지...
여하튼 나는 박형사를 맨 체로 힘겹게 출입구를 빠져나와, 고개를 돌려 그 방안을 보았다. 방안은 한 마디로 불지옥이었다. 쌓아놓은 독서실 책상과 의자들은 맹렬하게 타고 있었고, 벽까지 불길이 활활 타고 있었다.
은철은 아직도 생명이 붙어있었는지, 목까지 불길에 휩싸인 채로 몸부림을 치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직도 옆구리에 피를 흘리고 있던 독서실 주인은 간신히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아직 포기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뭔가 살길을 찾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램과는 다르게 은철을 괴롭히던 그 아이들이 이제 주인쪽으로 하나 둘씩 다가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출입구 옆에 쌓아져 있던 책상과 의자들이 불길과 함께 무너지면서 출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 주인이 우리를 돌아보았고, 내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절망이나 이전에 보였던 두려움의 눈빛이 아닌 뭔가 광기와 결의에 찬 눈빛이었다. 0.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뭔가 자신감에 찬 눈빛이었다.
불길이 독서실 전체로 번질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그 방 출입구에서 지체할 수 없었다. 독서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워낙 다급했고 위기 상황이었는지 70키로가 넘는다는 박 형사가 하나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은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독서실 건물을 빠져나왔고, 건물 앞 공터에 쓰러지듯 박 형사를 내려놓았다. 은혜는 아직도 멍한 상태였다. 나는 심장을 터질 것만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불길이 치솟고 있는 독서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독서실 봉고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독서실 봉고에 실었던 시체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 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불길은 독서실 전체로 번졌다. 아니, 불길이 생명이 있는지 그 참혹한 기억이 있는 독서실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복잡한 심정으로 불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박 형사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는지, 힘겨우나마 말문을 열었다.
“우리... 살아난 건가요?”
“휴우... 예 살아나긴 살아났아요...”
“경찰에 연락했나요?”
“아직요... 좀 견딜 수 있으시겠어요? 제가 저기 내려가서 구급차부터 부르죠..”
“필요없어... 아직 버틸 만 하고... 이 불을 보고 곧 소방차가 오겠지... 그 때도 늦지 않아요...”
박 형사는 몸의 상처가 고통스러운지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신음소리를 내었다. 내게 몸을 좀 일으켜 독서실에서 불나는 것 좀 보게 해달라고 했다. 불을 보면서 박 형사는 자기 직업 정신을 잊지 않았는지, 자기가 기절하는 바람에 알 수 없었던 사실에 대해 내게 물어봤다. 박 형사 상처도 심했지만, 워낙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 저 방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사건을 기억했다. 사건에 전말에 대해 모두 얘기하고 나자 박 형사가 부탁을 하나 했다.
“깜빡 잊었는데, 소방차를 기다리기 보다는 당장 여기 전화 좀 해 주쇼. 전화해서 아무런 얘기하지 않고, 은혜를 찾았고 독서실로 당장 오라고 얘기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한치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피곤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워낙 진지한 부탁이라 한 100미터 떨어진 구멍가게 앞에 공중전화로 갔다. 알려준 대로 전화를 했더니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 들려왔다. 나는 박 형사 시킨 대로 아무 말도 안하고, 그 말만 전했다. 상대편은 내 얘기를 듣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한 마디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독서실 쪽으로 올라가는데 박 형사가 손가락으로 불길에 쌓인 독서실을 가르켰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가르킨 쪽을 올려다 봤다.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나는 또 한번 c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이 보인 것은 총무실 부근 창문이었다. 바로 독서실 주인이 아직도 죽지 않고 총무실 부근 창문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불길이 강해 제대로 보지 못 했지만, 그는 잠시 창문너머로 우리들을 노려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도 이내 사라지고 불길은 더욱 세졌다.
나는 황급히 박 형사에게 달려갔다. 박 형사는 자신도 바로 직전에 봤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 주인이 다시 보이나 하고 창문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한참을 쳐다봐도 역시 활활 타오르는 불길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박 형사가 뭔가를 봤는지 내 팔을 꽉 잡는 것이었다.
나도 그것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불길이 타오르는 창가에는 그 독서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던 아이들과 서경기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렬로 늘어서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지만, 시선을 땔 수 없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니까 가슴 속까지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왠일인지 그들의 슬픔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참혹하게 희생된 영혼들...
어느 순간 그들은 창문에 사라지고, 불길만 보였다...
 

우리는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릴 때까지, 한참을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문득 이 거대한 사건의 중심에 서서 현실과 직면한다는 것에 겁이 났다. 잘못 하면 미친 놈 취급 받을 테고, 잘 해봤자 미친 살인을 목격한 사람으로 알려져 평생 괴로움에 떨면서 살 것 같았다.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결정해야 했다.
마음을 굳히고, 나는 박 형사에게 얘기를 했다.
“박 형사님. 말도 안 되는 줄은 잘 알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요...
저를 이번 사건의 관계자에서 빼주실 수 있는지... 하나 뿐인 목격자 은혜 역시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제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박 형사님 뿐이에요.
범인들도 다 죽고, 박 형사님도 처음부터 다 알고 계시니까, 제 증언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재판도 없을테고... 제가 왜 이러는 지는 박 형사님도 아실 것입니다. 제발 부탁이예요. 더 이상 이런 악몽과 연관돼서 살기 싫어요...“
박 형사는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의 은인이고, 내가 범인이라고 실수한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못 들어줄까요...
일한씨가 얘기를 안 해도, 제가 먼저 제의할 생각이었어요.
나중에 알겠지만, 이번 사건은 그냥 평범하게 끝나지 않을 거 예요.
아마 신문에도 한 줄 나지 않을 걸요...
그러니 신경 너무 쓰지 마세요...“
평범하게 끝나지 않을거라니... 나는 박 형사의 대답을 듣고 기뻤지만, 많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싸이렌 소리가 다가오고 있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은혜에게 다가갔다. 은혜는 아까 은철이 산채로 위를 갈아내려고 했을때부터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아직도 얼이 빠진 멍한 표정으로 저 너머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은혜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
“은혜야, 네가 꼭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얘기한다.
넌 정말 용감하고 착한 아이였어. 너 덕분에 나와 박형사님이 살아날 수 있었어. 그리고, 앞으로 희생될지도 모를 많은 생명을 구했고... 너는 잘 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니 주변에 일어난 일은 제발 잊어버려라.
그 일 잊어버리고, 우리 한번 다시 만나자... 그럼...“
은혜는 마치 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멍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이제 싸이렌 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리고, 불빛이 저 너머에서 보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독서실을 올려다봤다. 이제 어느 정도 불길이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절뚝거리면서, 큰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뭔가가 잡혔다. 바로, 은철에게서 뺏은 그 붉은 덩어리였다. 괜히 불길해 보였다. 이런 걸 은혜가 삼켰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나는 좀 망설이다가 그것을 박 형사에게 던져 주었다.
“아마 이 사건의 불타거나 훼손되지 않은 하나뿐인 물질적 증거 같네요...
잘 쓰세요...“
“일한씨, 이 사건으로부터 물질적으로는 해방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해방되는 것은 일한씨 몫이예요. 나중에 술 한잔 합시다...”
박 형사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상처가 도지는지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나 역시 손을 흔들어 주고 발길을 제촉했다.
얼마 안 가 싸이렌 소리를 내면서 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나가는 차들이 소방차가 아닌, 검은 차들이었다. 이것이 박 형사가 말한 평범하지 않은 사건의 마무리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간신히 큰 길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차창으로는 희미하게 뜨는 태양이 보였다. 택시 운전사는 나를 태워다주고 해장국으로 아침 먹을 것이라며 계속해서 내게는 의미 없는 얘기를 지껄였다. 나는 백미러를 통해, 독서실 쪽에서 나오는 연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때지 못 했다...
 

그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잠에 들었다. 잠을 자면서 수 많은 악몽에 시달렸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의 몰골은 악몽보다 더 심했다. 얼굴은 터지고 붇고, 온 몸은 화상과 타박상 투성 이었다. 부모님의 추궁과 잔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것이 내가 현실로 돌아와 삵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듣기 좋았다.
박 형사 말대로 이상할 정도로 그 독서실에 대한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화재 뉴스라도 날만 한데 신문을 뒤져봐도 한군데 그것에 관한 기사가 없었다. 호기심은 생겼지만, 더 이상 알아볼 의욕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관두었다.
그런데, 내 운이 그랬는지, 아니면 누구의 힘이 작용했는지 2달에서 4달 뒤로 연기되었던 군대 입대가 갑자기 앞당겨져서 그 사건이 있은 날 닷새 만에 입대해야 된다고 영장이 나왔다. 부모님은 갑작스런 입영에 서운해하시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는 지옥 같은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입대했다.
많은 부작용이 있는 군대 훈련이지만, 잡념을 가질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명령만 따르고, 밤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냥 쓰러져 자는...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 받고 고참들의 갈굼을 받으며 하루하루 군대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으로 면회가 왔다고 했다. 자대 배치 받은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외부 면회가 되지 않을 텐데 좀 이상했다. 내무반 고참들이 한마디씩 듣기 싫은 소리를 했지만, 부대장이 걱정 말라며 면회소로 데려갔다.
면회소에서 웃으면서 들고 온 치킨을 꺼내놓는 사람은 바로 박 형사였다. 얼굴 몇 군데 흉터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와는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자기 친한 친구가 여기 중대장이라 면회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시작한 면회는 결국 그 사건 얘기가 나왔다.
“신문에 안 나 이상했죠? 그 사건...”
“예, 하지만, 그때는 신경쓰기도 싫어서 일부러 모른 척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죠? 그렇게 큰 사건이...”
박 형사는 담배를 하나 집어물고 잊지 못할 얘기를 시작했다.
“그전에도 얘기한적 있죠. 은혜양 아버지가 청와대 거물이라고... 사실은 비서실장이고,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예요. 명목상으로는 2인자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질적 대통령은 그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여하튼 그 사람 입장에서 자기 아들이 아이들을 납치해 엽기적으로 죽이는 살인마라는 것이 소문나기만 해봐요. 차기 대권은커녕 현 정권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큰 스캔들이 되겠죠. 그러니 당연히 은폐에 들어간 것이죠. 수사 담당자는 나 하나 밖에 없었고, 목격자도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 은폐를 암묵하는 댓가로 나는 2단계 특진을 받아 현재 강력반 반장이예요. 세상이라는 게 참 쉽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은혜는 어떻게 되었죠?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나요?”
“나도 잘 몰라요. 내가 아는 것은 은혜의 정신적 붕괴가 생각보다 심각해 스위스에 있는 요양소로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마 은혜 역시 나중에 정치적 부담이 될까봐 보낸 것 같아요... 보통 부모라면 그렇게 하지 않죠. 아픈 자식이 있으면 어떻게든 주변에 두고 치료하려고 들지...”
 

“은폐 되었다고 하는데, 그럼 전혀 수사도 안 하고 은폐되었나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내가 수사팀장이 되어 안기부의 지원을 받아 일한씨 훈련소에서 뺑이 치던 한 달간 샅샅이 조사했죠. 물론 아직도 의문투성이지만...”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은철이 목에 걸고 있던 붉은 덩어리를 꺼내며 얘기를 했다.
“기억나죠? 일한씨가 이걸 보고 이번 사건의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증거라고...
이게 뭔지 알아요? 돼지? 물론 아니죠.
조직 검사 결과 나왔을 때 놀란 것 생각하면... 사람의 심장이라는 거예요.
사람의 심장 근육을 말린 거라는 거죠.
이게 누구의 심장인가 조사해봤죠. 부적으로 쓰이는 것으로...
답은 쉽게 나왔어요. 은철이가 외국 잡지 어디선가 보고, 아버지 이름을 팔고 에콰도루 대사관을 통해 구입했더군요. 황당하죠? 은철이 방에서 발견된 그 심령 잡지에 따르면, 아이들 원귀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부적은 아이들을 수십명 죽인 살인마의 심장이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은철이와 독서실 주인은 희생자들의 원귀에 대항하는 부적을 구한 것이죠.“
“그럼 이 살덩어리의 주인공도 살인마란 말씀이에요?”
“그것도 사상 최악의 희대의 살인마예요. 안데스의 괴물'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으며 지난 80년 57명의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실제로는 300명 이상을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희대의 살인마입니다. 이 자가 사형 당했을 때 한 의대에서 살인 유전자를 규명해본다고 연구과제로 이 사람의 시체를 기증받았는데, 거기서 누군가가 심장을 도려내 갔다네요. 아마 이것도 거기서 나온 한 조각이고...”
박 형사의 놀라운 얘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실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더 중요한 일때문이예요. 일한씨는 알아두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화제가 진화된 후 수사반이 투입되 그곳에 남아 있던 모든 시체를 수거 부검했어요. 은철을 포함한 모든 시체는 다 발견되었는데, 바로 그 독서실 주인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불타는 방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 독서실 주인의 기분나쁠 정도의 광기어른 표정이 생각났다. 박 형사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얘기를 계속했다.
“더 기괴한 것은 은철의 시체예요. 온 몸이 이빨 자국이 나 있고 살점이 뜯겨나갔어요. 그런데 그 이빨 자국이 거기서 발견된 아이들 시체의 치아와 일치했어요. 수사반 모두 황당해 했죠.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은철의 심장이 누군가에 의해 도려내진 거예요. 그 상처는 날카로운 칼로 만들어진 상처였고... 여기서 머리 나쁜 내가 할 수 있는 추리는 하나밖에 없어요.
주인은 아이들의 살인마였던 은철의 심장을 도려내서 자기의 부적으로 쓴 거예요. 그 부적을 이용해 원귀들을 피해 거기서 탈출했고...
사실 말이 안 돼요.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을 정상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시 생각해도 말도 안 돼죠...
휴... 이런 얘기를 주변에 해봤자 정신병자 취급받는 거 압니다. 원귀며 부적이며... 그 현장에 없었던 사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얘기죠... 그래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일한씨를 찾아온 거예요...“
나는 박 형사, 아니 박 반장의 얘기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 살인마인 독서실 주인이 살아있다니... 얼이 빠져 있는 나에게 박 반장은 마지막으로 일어나면서 한 마디 더 했다.
“오늘 자로 저 1년 휴직 했습니다. 휴직한다고 하니 모두들 좋아하더군요. 위에서는 더 이상 이 사건 가지고 시끄러워질 걱정 없다며, 밑에서는 갑자기 올라간 놈 부담스러웠는데 휴직한다고 잘 되었다며... 이 사건 은폐하는 댓가로 팔자 고칠만할 돈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 얻은 시간과 돈을 가지고 그 주인 놈을 끝까지 추적할까 합니다. 어짜피 경찰에서는 공식적으로 없는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제게는 1류 안기부 팀들과 국과수 팀들이 1달 동안 조사하고 분석한 자료도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파기된 자료지만요...
혼자 하는 싸움이지만, 가끔 말상대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일한씨 찾아왔습니다. 나중에 시간나면 또 들리죠...“
너무 충격적인 얘기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놈 뒤를 쫓겠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박 반장을 이걸 노리고, 은폐를 묵인한 것이지도 모른다. 박 반장이 진상을 폭로해 봤자 믿을 사람 아무도 없고 수사도 못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협력하는 척 하고, 필요한 것 얻어내고 자기가 원하던 수사를 시작한 셈이었다.
위병소에서 멀어지는 박 반장의 뒷모습을 보니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박 반장에게서 두 번째 연락이 온 것은 그 때 헤어지고 나서 거의 1년 후의 일이었다. 그 때는 직접 찾아오지 않고, 편지로 왔다. 내무반에 앉아서 TV를 보면서 졸고 있던 어느 봄날이었다.
<일한씨.
군대 생활 잘 하고 있다고 들었소.
나는 아직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소. 고생만 하고...
제일 궁금해 할 얘기부터 하죠. 아직 그 놈 못 잡았소. 하지만 살아있다는 증거는 몇 가지 찾아냈소. 이렇게 쫓다보면 언젠가 만나리라 생각하고 있소.
그리고 나쁜 소식 하나 전해드리죠.
스위스 요양원에 있던 은혜 양에 관한 얘기예요. 치료를 받고 완쾌되길 바랐지만, 더 악화된 모양이요. 사실 좀 심하게 악화되었소. 같은 요양소에 있던 어린 환자 둘을 죽였다는 거요. 동기도 모르고, 본인도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 못하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알프스 산 어디에 있는 특별 감호소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소... 너무 상심마세요. 일한씨 탓이 아니니까...
나는 그 주인 놈을 찾기 위해, 우선 연쇄살인범들의 동기를 찾았소. 하지만 대부분은 정신 질환이나 특정한 동기가 없었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주인 놈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뒤져봐도, 어린 시절 기록이나 학교 기록이나 아무 것도 없어요. 그 사람이 등록한 주민등록 번호는 47년 전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의 것이었고. 그 이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요. 참 이상하죠. 마치 살인을 하기 위해 나타났다가 사라진 악마 같아요.
혹시 참고가 될지 모르니까 제가 그 동안 조사한 그 놈과 나름대로 유사점이 있는 각국의 악명높은 연쇄 살인범들에 대한 짧은 기록이예요.

* 루이스 가라비토(콜롬비아)= 91년부터 5년간 189명을 살해한 혐의로 835년형을 받고 보고타 감옥에 수감
* 페드로 로페스 몬살베(에콰도르)= '안데스의 괴물'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으며 지난 80년 57명의 어린이를 성폭행ㆍ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실제로는 300명 이상을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받음
* 자베드 이크발(파키스탄)=100명의 어린이를 토막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 받음
* 델피나, 마리아 데 헤수스 곤살레스 자매(멕시코)= 자매가 함께 윤락업소를 운영하며 80명의 여성과 11명의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64년 40년형 선고받음
* 아나톨리 오노프리옌코(우크라이나)=어린이 10명을 포함 52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음. 불과 5개월 사이 43명을 살해했음
*안드레이 치카틸로(구소련)=지난 78~90년 성욕 충족을 위해 52명의 목숨을 앗은 교사출신 연쇄살인범. '로스토프의 백정'으로 불렸으며 지난 94년 2월 사형됨
*존 웨인 게이시(미국)= 아마추어 광대출신의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광대 살인광'으로 불림. 33명의 젊은이들을 성폭행, 고문하고 목졸라 죽였으며 사체를 자신의 집에 파묻는 대담함을 보임. 지난 94년 3월 사형됐다.
*데니스 닐센(영국)= 78~83년 런던 북부 자신의 집에서 15명의 젊은이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 선고. 사체를 삶아 변기에 버리는 방식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했으나 인근 하수구가 막히는 바람에 엽기 살인행각이 발각됨
*피터 수트클리프(영국)='요크셔의 살인마'라는 별칭을 지녔으며 지난 75~80년창녀 등 13명의 젊은 여성을 살해. 다른 미제(未濟)살인사건들의 혐의도 받고 있음. 지난 81년 종신형이 선고됨.
*로즈메리 웨스트(영국)= 영국 글로스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친딸을 포함해 10명을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음. 남편인 프레드릭 웨스트와 함께 9명을 더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음. 남편은 재판을 앞두고 감옥에서 자살했으며 자살 전 12명을 더 살인
 

자세히 읽어보면, 뭔가 나올 것 같죠. 아직 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 그리고 재미있는 얘기 하나 드릴께요. 아마 일한씨도 알고 있는 일일 거예요.
그 독서실에서 워크맨을 훔치러 들어왔다 희생된 남학생 있죠. 그 학생에 대한 TV 프로그램이 있었잖아요. 그 프로그램에 따르면, 그 학생 납치당할 때 찍힌 CC-TV를 분석해 보면 뭔가 불가사이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보이죠. 수사할 때 나도 참 황당했죠. 그런데 PD를 만나 조사해본 결과 더욱 황당한 일을 알아냈어요. 바로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방송국에서 시청율을 위해서 카메라 조작을 한 거였어요. 정말 황당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방송국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한데요. 참 믿을 게 하나도 없죠...
아직까지는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없지만, 다음번에 연락할 때는 꼭 한걸음 그 놈에게 더 가까이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p.s. 저 다음달로 경찰 그만 둡니다. 이제 자유스럽게 그 놈 뒤를 쫓을 생각입니다.
지옥 끝까지라도... >
이게 편지의 끝이었다.
나는 은혜의 소식을 받고 큰 충격을 느꼈다. 그럴 애가 절대 아닌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은혜가 저지른 살인의 원인인 단 한가지뿐이었다. 그 연쇄 살인범의 심장 조각을 삼키는 바람에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허황된 추측이고 가슴만 아파왔다. 한참을 즐겁게 살 아이가 이런 끔찍한 일에 휘말려 또 하나의 괴물이 된 것이...
그리고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그 놈 뒤를 쫓는 박 반장이 안쓰러워졌다. 박 반장의 집념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놈을 쫓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 반장에 대한 생각도 몇 주 가지 않았다. 시간이란 마약은 참 대단한 것임을 다시 느꼈다. 그 끔찍하고 괴로웠던 사건이 이제는 예전과는 달리 가끔씩 꾸는 악몽거리로 전락하였다. 망각이라는 인간이 갖은 최고의 간사함과 편리한 기능을 느끼며 감사했다.
 

박 반장에게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바로 며칠 전이었다. 나는 그 독서실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다 잊어버리고 살게 되었다. 솔직히 그 사건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한 것은 그 이후 독서실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빼고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도 나이가 들어 갈수록 독서실 갈 필요가 없으니까, 거의 불편한 것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박 반장에 대해서도 가끔씩 생각나는 사람정도지, 내 인생에 별로 중요한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씩 그 사람이 생각나면 느껴지는 감정은 안쓰러움이었다. 지금쯤은 포기하고, 자기 생활 하고 있겠지... 라며 나의 무책임감을 애써 합리화 시키려 했다.
유학 준비를 끝내고, 출국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알지 못하는 주소로부터 메일이 왔다. 발신인을 보니 박 반장이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박 반장이 보낸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어디에 있어도 연락하는 것을 보니, 역시 경찰이라는 것과 연락할 때 마다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하는 것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 웃음은 단 두 줄인 메일 내용을 보자마자 사라졌다.
< 오늘 9시 뉴스를 보세요.
그 놈이 세상에 다시 나왔답니다...>
하루 종일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 미친 살인마가 다시 나왔다니...
시계가 9시를 가르치자 나는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TV를 켰다.
9시 뉴스의 탑 기사거리는 역시 몇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었다. 거기에는 예의 은혜의 아버지의 가증스러운 얼굴이 여러 번 나왔다. 그리고 여름 장마 뉴스에 휴가철 피서지 뉴스등 별로 쓸데없는 뉴스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박 반장이 틀렸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뉴스 앵커가 심각한 표정으로 “급증하는 어린이 유괴” 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요즘 여름 방학을 맞아 어린이들 실종사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지난 한달간 3명의 어린이가 실종된 성남시 하이 빌리지 주상 복합 빌딩입니다. 성남의 부유층이 모여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이 빌딩은 지난 93년 화재가 나고 부도난 채 버려진 빌딩을 S 그룹이 사들여 최고급 주상복합으로 건축한 뒤 지난해 분양한 아파트입니다...>
나는 화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아파트 자리가 바로 독서실이 있던 빌딩 자리였던 것이었다. 기사는 계속되었다.
<... 이 아파트 에서는 요즘 어린이 실종 사건이 급증해서 주민들 모두 불안해 떨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실종된 뒤 아무런 협박 전화도 없어서 경찰은 실종 사건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데, 오늘 입수된 화면에 의하면 유괴사건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자 아파트 CC-TV에 잡힌 모습을 보시죠...>
그 CC-TV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는 여자 아이에게 날씨에 맞지않게 코트와 모자를 걸친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남자가 여자 아이를 잡아서 입으로 뭔가 약품을 먹인 후 코트 안으로 안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짧은 순간이어서 뉴스는 나름대로 확대하고 슬로우 비디오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CC-TV의 한계로 그리 선명한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코트를 입은 범인 역시 CC-TV를 의식했는지 모자와 얼굴에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확대 정지 화면에서는 그 남자가 아이를 코트 안에 안은 채 고개를 돌려 CC-TV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과 공포를 느꼈다. 뉴스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CC-TV에 비추어진 그 범인의 눈빛은 내가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그 독서실 주인의 싸늘한 그 눈빛이었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