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위 잘나빠진 외할머닌 30년전쯤에
바람이 나서 남자랑 도망을 갔다.
막내삼춘이 나보다 4살밖에 더먹지 않아 삼춘들 학교보내기 위해서
우리가족은 할머니집에서 몇달동안..할머니가 맘접고 돌아올동안 생활한 기억이 있다.
그엄마의 그딸들이라구 그놈의 집구석 인간들은 모두 그모양이다.
비숫한 모양새를 모두 두루두루 다 갖추고 살고있다.
모두들 도덕관념이 없다.
내엄마를 비롯한 그모든 인간들.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화냥색기 내엄마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어디서 또다른 문제로 사람 열받게 만들지 걱정만 만들줄 아는 정신병자다.
그래..이해한다..
반신불수 남편과 돈못버는 남편사이에 자식새끼는 4명이나 주르룩 낳아 놓구 대책안서니
남자그리워 밤엔 나다니구 나중엔 아예 나가서 살구 정부한테 받은돈과 청소부한돈으로..
본남편과 자식들 먹여살리느라..꼴랑 정부미 20kg팔아주느라 애많이 썼다.
그덕에 남편과 자식들은 맨날 굶고 살았으며
천장두 없는 쓰레트집에서 온갖추위와 비바람을 몸으로 막아내며
주위의 멸시도 아랑곳하지않는 잡초들마냥 열심히 몸으로 때우며 살아왔다.
그땐 내화냥색기엄마는 잘먹고 잘놀고 잘입고 잘살았다..
본남편과 아이들이 지겹긴 지겨웠겠지..
쌀팔아 주러한번와서
일안하고 놀아 힘만 남아도는 내아버지가 싫은소리 한마디하면
백마디의 비수로 가슴 찢어놓구 그화를 감당못한 무능한 내아버지가 때리면
온갖 친정식구들 떼로 몰려와 엄마를 데려갔다..
당연히 화냥색기무식엄마는 당연하다는듯이 가서 절대 안온다..
어디로 갔는지..
정부한테갔는지..
지네친정식구들하구 잘먹구 잘사는지..
멍청한 화냥색기내엄마땜에
자식들은 멍들어갔다.
한겨울에도 양말이 없어 맨발로 다녔다.
내가 5학년때
엄마는 선불받고 식당에 일하러 간다고 했다.
선불받은돈으로 와서 김장해주고 월세 내주고 쌀팔아주고..
동네사람들이 나더러 시킨다..
" 엄마 도망가지마~~"
난 열심히 손이 발이되도록 동네어귀까지 뛰어가서 엄마치마자락을 붙잡는다.
엄마는 그때부터 남자랑 동거를 하는거였다.
내가 이말 하면 기절하겠지..
미친년이 별걸 다 기억한다구..아니라구 너가 오해하는거라구..
어릴적 내엄마는 이뻤다.
목소리도 간드러지며
애교또한 만점이었다..
물론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그래...나름대로 고생하며 열심히 남편놈하구 자식새끼먹여살리느라구
고생 엄청많았겠지..그래..알아..
음..
서울에도 예전엔 완전 벽촌이 있었다..
그벽촌에서..
나와 동생들은 산에 올라가
바위위에 처량하게 앉아 겨울이구 여름이구 눈이오나 비가오나
동생들 손 꼭잡구 별이뜰때까지 엄마를 기다렸다..
오지두 않는 엄마를..
툭하면 나가서 안오는 엄마..
뭐가 그리 소중하구 좋아서 그리 매달렸는지..
난 아버지두 원망스럽다..
왜 그렇게 사셧는지..
힘들어두 챵피해두 돈좀 벌어서 밥좀 먹여줬으면 학교는 저절루 다 다녔잖아.. 나두 동생들두..
그밥을 못먹여서 그 더러운화냥색기엄마 기다리게 만들었는지..
뭐가 그리 어린 마누라가 사랑스러워서 맨날 때리며 기다리게 만들었는지..
음..
난 아버지 절대 용서못해..
조금만 더 열심히 사셧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돈을 버셧더라면..
아버진 정말 무능력그자체였어..
의처증에 자식구타에.. 마누라구타에..
뭐 하나 배운거 말구는 제대로 한게 없잖아..
아버진 정말 나쁜사람이야..
머리에 든거만 있으면 뭐해..
공부가 밥먹여 주나..
차라리 아이들을 낳지나 말지..
벌떼들 처럼 낳아놓기만 하구..도대체 두인간들이 뭐한건지..
난 결혼10년동안 남편과 싸운후 절대 집밖엘 나간적이 단한번도 없다.
난 남편한테 포악도 안떤다..나름대루.. 남편말을 들어봐야 겠지만..
단지 성질이 더럽단다..무섭단다..뒤도 안돌아 본단다.
난 더러운 내엄마처럼 살기싫어서 절대 집 안나간다.
난 집귀신이다.
싸우면 남편보고 나가라고 한다..
짐다싸주구 나가라고 한다.
한 5년은 진짜 나가서 지네엄마집에가서 자구 오더니.이젠
들은척두 안하구 한자리 걔긴다.
내가 착한 남편 만나서 울홧병 다스리며 살고 있다.
난 절대 비싼옷 화장품 안사입는다..
내엄마처럼 되시 싫어서다.
난 내아이들 엄청 옷 잘입힌다..
선생님들이 오죽하면 친척이 누가 옷장사 하냐구 물어본다.
그런데..간혹
포악을 히스테리를 부린다..내딸들한테..
난 미련스럽고 포악하고 잔인한 ... 화냥색기친정엄마의 딸인가보다.
난 내가 싫다.
정말 내가 싫다.
사는데 미련두 없다.
난 유언을 미리 써놨다..
혹시 먼저 가게될까봐..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사랑 듬뿍 못주구 가서 미안해서..
화장해서 뿌려줄곳도 정해놨다..
장기기증도 할것이다.
무서워서.. 시신기증은 못하겠다.
난 정말 사는데 미련이 엇다..
아이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남편한데두 정말 미안하다..
나같이 정신적으로 문제많은 여자만나 고생이 엄청 많다.
내엄마가..내아버지가..
자식들한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줬는지..
글로 써보니
책을 한권 내두 되겠다..
책제목 " 유식무능아빠와 색기화냥엄마의 인생탈출기 "
부제 - 그휘하 멍청한자식새끼들 -
이모들과 삼춘들이 우리형제들을 보면 늘상 하는말이있다.
" 너희들은 부모도 없이 참 반듯하게 잘나랐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말을 이해를 못했다.
내가 이렇게 정신병자다..
아버지가 되돌아 보게 해주시고 가셧다..무능한 나쁜 내아버지.
전혀 모르는줄알았는데..나름대루 알면서 덮으면서 살아왔던거다.
난 나의 부모? 와 형제들의 고통을 무관심이라는 최대의 단어로 완전무장하며 모르는척하며
살아왔다.
완전한 가정은 없다.
노력하며 서로 보듬어 주며 맞춰주며 사랑으로 감싸주며 만들어 가는거다.
내아버지의 무능함과 의처증 구타 . 가정의등한시
내엄마의 충천한색기 . 가정의 등한시.
남은자식들의 가난에 찌들은 무기력한 생활.
가난한 집에서 인재나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부모의 부재속에 가난과 슬픔을 한끼의식사로 대용하며 커온 나와 형제들.. 여기선 남동생은 빼고싶다.
정말 나의 웬수같은 엄마와 똑같은 동급이다..
무절제한 부모와 현실성 떨어지는 정신력으로 버텨온 나와 내여동생들..
우린 셋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엄청나게 많다.
나의 부도덕한 엄마는
아들을 낳았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까..잘 모르겠다..그놈의 속을 보여줘야 알지..
맛있는 과일두 동생만 먹였다..
막내여돋생하고는 3살차인데..막내여동생도 안줬던기억이 난다..
어린마음에 먹고 싶었지..
물어보고 싶다..
왜 남동생만 줬냐구..
내가 엄마이긴 하지만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어린아이라 꼭 먹여줘야햇는지..
말로는 내부도덕한 엄마의 친정엄마 (외할머니) 의 차별땜에 가슴시려서
너희는 절대 그렇게 차별하며 안키운다더니..
결론은 집담보에 적금에 마이너스통장에 카드에 몽땅 다 해주고 있다..
내가 결혼할땐 뭐해줬나..내 부도덕한화냥색기 엄마가..
생각이 없다..뭘해줬는지..
결혼준비도 하다못해 실과바늘까지 내가 다했다..
그러면서도 난 당연하듯이 돈 안벌어주구 시집가서 미안해 하며 죄인처럼 살았다.
화냥색기충천한 내엄마는
외할머니와 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그이유가..
" 돈벌어서 동생들 안가르치구 집안안보태줬다는 거였다"
이말은 잘나빠진 내부도덕한 엄마의 여동생들의 말이다..
암튼 엄청난 집구석이다..
그래서 내엄만
친정식구들과의 융화를 위해 그리도 애를 많이 썼다.
난 당연한듯이 늘상 찾아뵙구 인사드리구
놀러가구..암튼 노력 엄청 많이 했다.. 엄마를 위해서~~
그 포악하고 심술맞은 외할머닌 우리형제들이 다 커서야
" 놀러와라~` 뭐해놨다 먹으러와라~~ "
나와 여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하다..
생전 그런대접을 받아본적이 없어서이다..
암튼 대단한 외갓집 인간들이다.
내가 중학교때
외갓집엘 동생들과 엄마없을때 놀러갔다..
그ㄸ댄 왜이리 외갓집이 부럽구 좋았는지..
온집안식구들이 워커힐을 간단다..
내가 중학교때면 도대체 몇년전인가..
적어두 20여년전인가 보다..
그때 온식구가 다 출동해서 아들..딸.. 며느리 손자.손녀 다 데리구 갈정도면 ..어느정도의 경제력인지..
워커힐에 무슨 쇼두 보구 칼질하러 간다구
너희들은 집에 가라~` 그러는 거다..
그래서 서러움을 가슴에 꼭 차곡차곡 담고서 돌아왔다..나와 내동생들이..
잘난 화냥색기엄마 없어서 그래두 할머니집이라구 놀러갔는데..
천덕꾸러기는 어디가두 천덕꾸러기다..
음..내가 그런일을 당하구서두 외갓집하고는 발을 끊질 못했다..
지금두 마찬가지다..
난 왜이리 궁상떨며 사는지 정말 내자신이 한심하다.
내엄만 잘난 부모형제들하구 부딛끼며 살고싶어서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았다..
덕분에 난 집에서두 일..밖에서두 일..
외갓집가서두 일..
교복입구 설날에 외갓집가서..중1때..
용돈 백원준다구 설겆이 한사람이 나다..
그때 큰숙모 있었다..젊디 젊은 이모들 있다..
내 막내이모가 나보다 9살 많다..
음..
그런 이모 숙모들이 못입구 못먹구 말라빠진 조카들 돈 딸랑 백원주구 일을 명절날 하루종일 부려먹는다구 생각해 봐라..얼마나 가슴아픈일인가..
난 절대 우리딸 일 안시킨다..
심부름도 안시킨다..
지겨워서..
내자신이 지겨워서 절대 안시킨다..
그렇다구 버르장머리 없게 키우는건 아니다..
내손은 갈구리 손이다..
화냥색기내엄마보다 내손은 더 갈구리다..
반지도 못낀다..
손이 두껍구 못생겨서..
손마디마디가 60대시골 할머니처럼 툭 불거졌다..
내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잘나빠진 엄청 이쁜 내이모들..
나와 내여동생들한테 한마디씩 한다..
" 너흰 왜 그렇게 손이 못생겼니~~"
욕나온다..
십팔~~
그렇게 말하는 너희는 편하게 살았잖아..
우린 우물물 길어가며 힘들게 살았다..어쩔래..
우리아버진 정말 무능력에 한심한 인간이었다..
추운 겨울새벽에 전깃불도 안켜진 골목길을 지나가서 한참가
양동이 두개..양쪽으로..
지게를 지고 물을 길르러 다녀두 한번두 물을 길어준적이 없다..
집에서 핑핑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꼴에 남자라구 마누라 구타에 자식구타까지 일삼은 무능력에 한심한 인간이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난
잘나빠진 이모들이 입다버린 속옷을 입고 생활을 햇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다큰딸들을 그 정신병자인 이모들이 입고 버리는 ( 잘살아서 깨끗한거 버린다..)
브래지어.팬티.. 속옷만이랴..
맞지도 않는 외출복..( 집에서 입는것들 허드레..) 까지 좋다구 일본에서 사온거라구
입구 회사엘 다녔다..
내가 미친년이지..
화냥색기엄마 돈 조금 갖다주구 옷좀 사입구 다닐껄..
그래두 사랑하는 남편만나 1년동안 그동안 못사입은 옷사입고 살았다..
그게 첨이자 마지막이었다.
내여동생들도 나랑 처지는 한결같이 똑같았다..불쌍한 내동생들..
그놈의 잘나빠진 화냥색기엄마는 그때두 집에 안들어오구
놀러다니구.. 롯데하구 웬수진거마냥 쇼핑만 하러 다녔다..
암튼 돈쓰는게 최대의 낙인 사람이었다..
속이 곪아터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할 지경인 딸자식들은
거지같이 화냥색기이모들이 던져주는 지네들이 못입는 옷들 갖다 입구 직장다니구..
잘나빠진 도둑사기꾼남동생새끼는 사고만 치구 다니구..
한번씩 속이 뒤틀리는 아버진
엄마를 한번씩 잡아서 난리굿이구..
암튼 난 이런 지옥에서 살았다..
엄마에 대한 애증과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늘상 교차한다.
왜 내가 엄마를 버리지 못할까~~
이젠 버릴것이다..
내가 엄마를 버릴것이다..
속이 후련하게 버릴것이다..
미련없이 던져버릴것이다.
잘나빠진 내사춘들은
인간대접받고 컸다..
부아가 난다..
우린 거지거지 상거지 꼴하며 살았는데..
나와 내동생들은 그집에 가면 늘상 일에 치이며 살았다..
나의 잘나빠진 화냥색기충천한 엄마는 당연하다는둣이 나와 여동생들을 시킨다..
나의 사춘들을 절대 안한다..
지네 엄마들이 절대 시키지 않는다.
남자아이들 빼구 여자아이들이 하다못해 구멍가게 심부름도 안시킨다..
나의 잘나빠진 엄마는 먼저 나서서 너가 해라..니가해라..
나와 내여동생들만 식순이다.
잘나빠진 젊은 이모셋과 잘나빠진 숙모가 셋이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젠 그럴일두 없겠지만..
암튼 속이 후련하다..
악마같은 할머니..
악마같은 친정엄마..
악마같은 이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