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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기독교 다같이한번 죽어볼까?(2)

하하 |2007.07.27 01:48
조회 355 |추천 0

< 로마 카톨릭의 기원 >

3세기까지도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 많은 교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로마교회가,

중세기를 장악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되고, 지방 교회의 일개 장로에 불과했던 로마교회의 감독이,

세계 교회의 머리가 되어 중세기를 호령한 것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 후의 신성 로마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콘스탄틴 황제(AD 306-337)와 유스티니안 황제(AD 527-565)는 교황권을 양육하여 중세기의 주인으로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312년 10월 27일 콘스탄틴황제가 꿈과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났다는 "불붙는 광채의 십자가"를 힘입어, 적수였던 막센티우스황제를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이긴 뒤, 그리스도인에 대한 로마의 태도는 일대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313년 3월에는 「밀란의 칙령」이 반포되어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고, 성직자들에게는 병역, 세금 및 각종 시민의 의무가 면제되고(AD 313), 사법상의 특전도 베풀어져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성직제도는 졸지에 타락하여 성직매매가 성행했고, 민중의 호응과 인기를 얻기 위해 교회의 문지방은 낮아질대로 낮아져 세속과 이교(異敎)의 물결이 넘쳐 들어왔습니다.
>>그래, 지금 개신교랑 다를게 뭐냐 ?


예배는 극도로 이교화하였고, 321년 3월 7일에는 아직도 콘스탄틴황제가 현직 대제사장이었던 페르샤의 태양신 미드라(Mithras)의 예배일인 일요일에 휴업하라는 포고가 내려졌습니다.
이러한 틈 새에서 국가의 비위를 맞추며 꾸준히 정치적 기반을 굳혀 온 로마교회의 감독은 황제의 이러한 종교정책을 열렬히 환영하며, 세계교회의 머리가 되기에 안간 힘을 썼습니다.

>>지금 그래서 개신교들이 큰교회 세우려고 난리들인거 ??

326년 콘스탄틴황제는 선동죄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는 황후 파우스타 (Fausta)의 라 테란 궁전을 로마교회 감독 실베스터(Sylvester)에게 주어 공관을 삼게 했습니다.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틴노플로 옮기게 되자, 로마교회의 감독은 황제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교권을 확장하게 됐습니다.

375년 이제까지 로마황제들이 공식명칭으로 쓰고 있던 이교 대제사장의 칭호인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Maximus)를, 그리스도인인 그라시안(Gracian) 황제가 비로소 포기하자,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했던 로마교회 감독은 즉시 이를 채택하여, 자신의 칭호로 삼아 오늘날까지도 교황의 공식 칭호가 되고 있습니다.
476년 서로마가 망한 뒤, 로마교회 감독은 황제의 이미지로 군림하여 정치와 종교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496년 게르만 민족의 강자인 프랑크의 국왕 클로비스(Clovis)를 개종시켜, 로마교회의 양자로 삼음으로써 중세기 동안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했습니다.
특별히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안은 로마교회 감독으로 하여금 세계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서로마의 잃어 버린 통치권을 되찾고, 이전의 통일된 대제국을 이룩해 보려는 목적으로 황제는 로마교회의 영항력을 십분 이용하려 했습니다.
유스티니안은 493년 아리안주의(Arianism) 게르만 민족으로 하여금 이탤리 반도와 로마교회를 위협해 온 헤루리를 정복하고, 534년에는 같은 이유로 반달족을 정복했습니다.

533년에는 로마교회 감독을 "세계교회 머리"로 공식 인정하고 이 사실을 534년에 그의 법전에 편찬했습니다.
538년에는 아직도 이탤리 반도와 로마교회 감독의 지상권에 도전하는 마지막 아리 안주의 게르만족인
동고드를 군사력으로 정복하여, 마침내 교황권을 중세기의 권좌 (權座)에 앉혀 놓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서유럽의 실력자가 된 프랑크왕 피핀(Pepin 741-768)은 왕위를 찬탈한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준 데 대한 감사로, 로마교황을 적극 후원하여, 754년에는 롬바드에게서 빼앗은 동로마제국의 영지를 교황에게 주어 교황령이 되게 함으로써, 로마교회는 이제 영토를 가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피핀 왕의 아들 촬스 대제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곤경에 빠진 로마교황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원한 뒤, 서기 800년 크리스마스에 성 베드로 사원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음으로써, 역사적인 신성 로마제국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막을 내리기까지 1,000여년 간 교황권의 성실한 보호자 구실을 했습니다.

>> 앞으로 이렇게 되겠네? 전세계를 기독교 나라로 만들꺼니?

 십자군을 일으켜 알비젠스, 왈덴스등 개혁파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허스와 제롬을 불사르고, 루터의 종교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편의와 힘을 제공한 것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개신교 애들이 이단을 잡아 먹으려하는군


따라서 카톨릭은 초대교회를 계승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이방종교를 흡수한 혼합종교이고, 정치적 후원으로 성장하였으며, 권력과 금력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상적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엄청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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