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스물셋이 되어가는( 생일이 안지났으니~ 22? 하하하. ) 직장인입니다.
방금 새엄마 새아빠 글들을 보다가..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가슴아프고 서글퍼 글을 끄적이게 되었습니다.
제 23년의 살아온 일들을 이야기 하고 싶어져서요.
혼자만 끙끙 앓아왔던 것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내가 모르는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그러고 나면 속이 좀 편해질지.. 어떨지 모르지만..
사람들마다 문득 문득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기억인데도..
어김없이 행복한 나에게.. 절망적인 나에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기억이 있잖습니까..
그런 기억들이 저에겐 너무나 많아서요.
이야기는..
제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유치원 대략 5~6이었떤것 같네요.
참 이쁠때죠..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시절..
제가 무교가 된 원인도 이시절에 있네요.
원래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 지금은 교회를 진절머리 나게 꺼리는 사람중 하납니다 )
그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교회목사님의 딸이었뜨랬죠.
매우 친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집을 번갈아가면서 자고.. 거의 자매처럼 지냈으니까요.
어느날도 어김없이 그 친구의 집..
목사님댁이죠.
그 집에서 친구와 자기위해 집으로 놀러갔죠.
그런데 마침 그때 친구는 엄마 심부름을 갔고, 엄마도 전도사님들과 전도하러 간다고 나가신 후였습니다.
집에는 목사님밖에 없었죠.
매우 친절하고 자상했으며 평판이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3분 기억인 저임에도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네요.
목사님이 저를 불러 안방으로 들어가게되었습니다.
늘상 들어가던 곳이라 거부반응이 없었쬬.
그런데 들어가서 봤을때 목사님은 속옷차림이셨습니다.
그 어린 아이는 그날 처참히 ... 무너져버렸쬬.
목사 조차 변태적인 성향을 버리지는 못하나 보더라구요.
그후, 그 친구와 사이는 물론이며 교회 근처는 얼씬거리지 않았고,
그 다음날 저는 온몸이 고열을 웃돌며 거의 생사를 웃돌았습니다.
다행히도 제 목숨이 길었떤지 살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매우 내성적으로 변했습니다.
낯도 많이 가렸으며 심지어 집밖으로 나가기 조차 꺼렸으니까요.
그렇게 한 1~2년이 흘렀씁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친어머니가 돌아가셨씁니다.
어머니를 보내고 아버지와 저, 남동생 셋이 살때였습니다.
그때 당시 이사를 가서..
큰아버지가 사시는 동네로 갔었었죠.
엄마 요양한답시고 아버지가 빚을 내어서 집을 지었거든요
남의 집살이 설움을 겪은 엄마를 위해서..
여튼 엄마 돌아가시고..
큰댁에서 친척오빠가 자주 들락달락 거렸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시면
동생과 둘 혼자 있다는 핑계로...
보호자가 같이 있어야 덜 위험하다는 핑계로..
그리고 동생과 제가 같이 있으면 항상 동생에게 과자 사먹으러 가라며 돈을 쥐어줬고..
동생이 집을 나가면..
그 친척오빠라는 사람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했습니다.
그 사람은 장가가기 전날까지 제 몸을 건드렸습니다.
한번은 그 사람의 엄마가 이상히 여겨 밤늦게
집을 나서는 아들뒤를 밟아 우리집으로 왔었쬬.
그때 그 사람이 제 속옷을 벗기고 취하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노크소리가 들리자 그 사람은..
옷을 모두 입고 어린 나를 이불로 둘러씌웠죠.
그리고 문을 열곤 천연덕 스럽게
어린 제가 무섭다고 전화하는 바람에 걱정되서 왔따고 둘러대더군요.
사실 일을 겪기 전까지 제가 제일 좋아하던 친척오빠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빠에게 일나가지 말라고 울고 보채고..
나갈때 문 꼭 잠그고 나가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어린 제말을 과감히 씹어버린 아버지..
문 열고 가셨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아버지가 나간후 일어나서 문을 잠궜죠.
처음 창문을 열고 제방에 들어왔을때 이불로 제 얼굴을 몽땅 가리고
아랫도리만 홀라당 벗겨서 미친듯이 겁탈하고 나가서는 다시
태연스럽게
대문 초인종 열고 오빠야-
이랬던게 생각이 납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치죠.
창문잠그고 잔 날이면
어김없이 칼을 들고 와서 열려고 버둥버둥 거리다
안열리면 태연스럽게 대문 초인종 누르고
누가 창문을 열려고 하고 있길래 놀래서 와봤다.. 이러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새어머니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당시 아버지께는.. 좋아하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 아주머니는 이혼하신 분이시라 슬하에 자녀가 1남1녀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매우 반대하셨드랬죠.
아버지 술먹으며 이 여자 아니면 애들 엄마 아무도 시키지 않겠따고... 지랄하셨고..
큰어머니들은 니 자식들 생각하면 자식있는 여자들은 아무도 안된다고 하셨쬬.
니 자식 찬밥신세 만들면 죽은 쟤들 애미가 가만히 있겠냐고... 면목 없다고..
저희 엄마가 워낙 애교가 많으셨데요..
그래서 큰어머니들이 많이 좋아하셨데요..
여튼.. 그렇게 해서 그 아주머니랑 억지로 헤어지고 지금의 새 어머니 들어오셨습니다.
그때부터 또다시 고통의 나날이 시작되었죠.
본격적으로 말입니다.
아버지는 재혼후 항상 술을 먹고 들어와 새어머니를 패셨고..
새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진 매질과 상욕들을 버텨내셔야하셨고..
함께 일을 하러 다니셔야했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저와 제 동생에게 돌아왔죠
부모님이 나간 관계로.. 어린 저와 제 동생..
밥 못먹을때 많았고...
겨울에는 안방에 난방을 작동시키는게 있어서..
부모님 오실때까지 떨어야했죠.
그럴땐..
간 크게 안방 창문을 기어 넘어가 난방틀고..
너무 배가 고파..
안방 저금통에서 동전 훔쳐서 과자나 빵을 사먹곤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아니었어요.
술먹고 들어온 친아버지에게서 저와 제동생을 보호했던 사람이
구박을 하던 새어머니라는 거였죠.
언제나 아버지가 늦을만해 지면 새어머니는 저희 남매 일찍 재우기 바빴고..
당부처럼 문은 꼭 잠그고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버지의 술주정이 최고조에 다다랗습니다.
새어머니를 거의 개패듯이 패는 바람에 새어머니도 집을 뛰쳐나간 그 때였죠.
아버지는 미친듯이 저희 남매의 방을 두드렸고..
겁에 질린 저희는 문을 열었죠.
아버지는 우악스럽게 저보다 5살이나 어린 동생을 패고는 방에 가두고
저를 안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직 가슴도 나오지 않은 어린딸에게..
여성용 속옷 브래지어를 대고는 손수 입혀주시더이다...
하.. 그리곤 그 친척오빠라는 놈과 똑같은 짓거릴 하더이다.
내 생애 제일 끔찍한 나날이 시작된거죠.
그후로 새어머니가 없을때 마다 성희롱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슴이며.. 음부며..
손으로 만지고 혀로 핥고.. 자신을 들이 넣었죠.
그쪽 집안 남자들은 다 발정난 강아지 마냥..
저를 그렇게 울렸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들과 내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성교육이라는 것도
중학생이 되어서야 했으니까요.
겁에 질린 저였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한 집이 하필이면 산중턱이더라구요.
말 다했죠.
발길 뜸한 산중턱에..
이사를 갔으니..
아버지라는 사람의 세상 아니었겠습니까?
저는 가출이라는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린 제 동생이 같이 있었고..
그때 나이 15살..
돈도 없고...
그래서 결심한것 하나..
고등학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취를 하겠다...
중3...
담임선생님께서 인문계 가라고 하신거..
부모라는 분들 덕에..
돈없다고 징징거리는 통에...
실업계 갔습니다.. 물론 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나쁜 편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실업계 선택한 이유 단 하나..
빠른 독립이었죠.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자취시작했습니다
아버지라는 분.. 말렸죠.
돈없다
집에서 다녀라.
개소리죠..
내가 장학금 받아서 살겠다
방세만 보태라
이런식의 대화로 자취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말에 집에가는 날이면 어김 없이 성희롱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울부짖으면서 하던 사람..( 웃기네요.. 하면서 왜 우는건데요? )
이제 씨익 웃으면서 합디다..
그 나이.. 이제 알거 다 아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아무에게 말 못했습니다.
왜? 수치심이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치부중 하나고 수치심중 하나지만..
이대로 저만 알기엔 억울하거든요.
이대로 저만 알고 죽기엔 너무 억울하거든요.
그래서 나도 모르고 나를 모르는 여러분들께 하소연 그냥 해볼려구요
저 정말 빨리 독립하고 싶어서 취업
공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사실 돈 좀 많이 주지 않습니까. 초년생에겐.. 갖 돈맛을 알게 된 나이에
그 금액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거든요
나름 계획도 다 세우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새어머니의 동생.. 이모로 인해 무너졌죠.
아니 제 귀가 얇은 탓이겠군요
이모가 워낙 말을 잘하시는 덕분에
담임샘도 넘어가셨고..
저도 넘어가서 결국
이모 밑에 갔습니다.
그러나 저와 맞지 않고...
또한 사실 이모라는 존재자체도 껄끄러운데 그분 아래에 있는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였습니다.
말끝 마다 가족~ 가족~ 가족~
집에 전화해~ 전화해~ 전화해~
하. 하. 하. 하.............
사실요.. 저.....
가족따위 없다고 생각한지 오래됬습니다
가족 없다고 생각한지..
정말 오래됬죠.
아버지라는 분이 저를 망쳤을때..
새아버지라 생각했습니다.
저와 상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뚜렷히 밖혀있는 명제..
" 친아버지가 나를 범했다. 상습...적으로다가 "
이 사실 하나가요..
정말 죽고 싶게 만듭니다.
멀쩡히 잘 있따가도 어김없이 저를 덥칩니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종종 생각이 나버리는 바람에
번번히 일찍이 쫑나기 일쑤입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게 분명한거겠죠.
이런 저에게 지금..........
정말 너무나 다정하고 착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과 저.. 나이차가 좀 많아요..
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 사람 저에게 자주 나이 이야기를 합니다.
어쨌거나..
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가고..
이 사람이 저를 좋아해주는 마음이 커져가면 갈수록..
저.. 이 사람과 헤어지고 싶어집니다.
제 자신이 너무 더럽고 짜증나고.. 기분나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 사람은..
저에게 왜 집에 연락안하느냐..
타지에 나오면 집이 제일 생각난다던데..
넌 왜 그러냐..
그럴때면 울컥 울컥 ..
하..
참 인생 뭣같다는 생각들고..
너무 좋아하는 지금...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왠지 너무 미안해서요...
왠지 너무 죄송해서요...
그래서 ..
얼마전 술먹고
멀쩡한 정신으로다가 그 사람에게 하마터면 사실데로 고백할뻔했죠
나 이런 여자라고..
나 이런 사람이고..
나 이래서 가족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노라고...
당신 만나게 된거 미안하고..
당신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그래서 말인데 그래서 말인데...........................
여기까지 말하고 뒷말..
헤어졌음 한다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 좋아하는 제 욕심에... 그 말이 쏙 들어가더라구요..
저.. 여전히 집 연락 끊었습니다.
그래서 핸드폰 번호도 바꾸었구요..
걸리는거 전혀 없지만
단 하나..
제 동생과 연락 못하는게 걸립니다...
동생과 연락하려면..
집으로 전화해야하는데..
진절머리나게 싫거든요..
얼마전 직장으로 전화가 왔더라구요.
이모가 말이죠..
" 너거 아빠가 니 무척 궁금해한다- 전화좀 해라. "
쓴웃음 머금고 넘겼지만..
뒷목이 잡히더군요..
너거 아빠..
너거 아빠..
그날 눈물 났습니다..
왜 죽은 사람이 내 어머니가 아닌
저 사람인지...
언제가 제가 좋아하는 그 분.. 제 손으로 또 떠나보낼 것 같네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까요..
하...
정말.. 개같은 오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