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인四색 # 2
현의 생각
내 키의 족히 열 배는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 빛을 빨아들인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그 무엇인가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 어두운 밤 손전등도 없이 난생 처음으로 걸어 보는 길이 마치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골목길처럼 친숙하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빛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정신은 아득해 오고 향기로운 냄새는 나의 후각을 자극한다. 장미꽃? 아니다. 해바라기 꽃과 같은 냄새다. 단 한번도 해바라기 꽃의 냄새를 맡아 본적은 없다. 해바라기 꽃이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저 그런 느낌으로 한 발 한 발 빛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어느덧 눈앞에는 빛 바랜 회색의 낡은 이층건물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하고 있다.
우의 생각
나는 삼 일에 한 끼 밖에는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동안 죽을 고비를 넘겼다거나 심하게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때론 아빠와 엄마 아니 아버지와 단과 – (각기 다른 이유로 아버지는 내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단은 내가 엄마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함께 식사하는 것이 왜 나에게만 허용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본적은 있다. 딱히 그들과의 식사가 즐겁기만 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늘 혼자서 그들과 다른 것을 먹어야 하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는 나의 건강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남들보다 조금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을 뿐…… 그 동안 한번도 아파 본적은 없다. ‘아버진 의사 선생님 이니까…… 건강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막연히 추측 해볼 뿐이다.
단의 생각
이제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 졌는데도 아직 나의 감정 조절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이렇듯 힘들게 찾아온 손님을 아무런 감정 없이 대한다는 것은 손님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왔던 일이기에 여기까지 온 손님은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창 밖을 바라보며 ‘현’을 기다리던 나는 이제 아래층으로 내려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거울을 보면 비치는 나의 모습…… 깨끗하고 하얀 얼굴, 오뚝 솟은 코…… 조금은 슬퍼 보이는 큰 눈. 내가 원했던 것이다. 지키고 싶었으니까…… 딱히 화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조금은 진한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줌도 좋으리라.
악의 생각
나의 두 눈은 감겨있지만, 나의 오감이 말해주는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었다. 고작 몇 분이 늦었다고 해서 단의 실력을 의심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아직 그녀는 단 한 번도 열두 시를 넘겨 일을 처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이제 단이 가진 잡념은 그 위험수위를 넘었을 수도 있다. ‘또깍.. 또깍… 또깍…’ 아래층으로 향하는 단이 내는 하이힐의 청량한 굽 소리가 조용한 나의 집을 울린다. 감았던 눈은 조용히 떠지고 불안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설까?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 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