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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1주기 결코 잊혀저선 안될일

임원택 |2003.06.26 10:49
조회 227 |추천 0

결코 잊혀져선 안될 일..."

서해교전 1주년 전적비 제막식...유족등 인터뷰

24일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있은 서해교전 전적비 제막식에서 한 유가족이 전적비에 새겨진 순국 장병들의 청동부조를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한국i닷컴 유영근 기자

지난해 6.29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전적비 제막식이 24일 오전 조영길 국방부장관 문정일 해군참모총장 전사자 유가족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 평택기지 충무동산에서 열렸다.

길이 11.6m, 폭 6m, 높이 13m 크기로 화강석, 청동 등으로 제작됐고 해군 함정들이 편대를 이뤄 바다를 지키는 모습을 형상화 한 전적비 전면에는 손과 발이 절단되는 순간에도 방아쇠를 놓지 않았던 357정 장병들의 모습이 새겨졌고, 후면에는 전사자 6명의 얼굴을 새긴 청동부조를 부착했다.

이 전적비는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박병희 교수가 설계하였으며 해군사관학교 최영호교수가 비문을 지었다.

비문은 서해교전의 전황과 전과를 소개하고 "포연탄우(砲煙彈雨)속에서도 임전무퇴의 기상을 발휘해 조국의 바다를 끝까지 지킨 2함대 장병들의 숭고한 감투정신과 빛나는 무훈을 민족의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산화한 젊은 영령들의 전공을 높이기리고자 전적비를 세운다"고 기록했다.

서해교전 전적비 제막식
/ 이석만, 유영근 기자

제막식에 참석한 유가족과 참전용사들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벌써 국민들의 기억에서 서해교전이 잊혀져가고 있다며 아쉬워 했다.

故 황도현중사의 어머니는 "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젊은이들이 깊이 새겨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이땅에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故 한상국 중사의 어머니 문화숙씨는 "아들은 육군입영통지서가 나왔음에도 해군에 자원입대, 이곳에서 숨졌다"며 "외아들의 죽음자체는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나라를 지키다 끝내 가버린 내 아들이 장하다"며 울먹였다.

이해영 상사는 "애통하게 자식을 보낸 유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며 "그분들에게 자식이 되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조영길 장관은 추도사에서 "참수리 357호 장병들은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정장이 전사한 상황에서도 일사분란하게 대응해 적을 격퇴하고 북방한계선을 사수했다"면서 "장병들의 불굴의 전투의지와 뜨거운 전우애는 우리 군의 귀감이 될뿐만 아니라 국군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교전은 온 나라가 월드컵 4강진출로 들떠있던 지난해 6월 29일 서해상에서 북한의 선제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전투다.

그날 오전 10시 25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온 북한 경비정은 이를 근접 차단중이던 해군 함정 참수리 357정에 85mm포를 비롯 가공할 만한 화력을 기습적으로 퍼붓었다.

서해교전 전적비에 새겨진 순국장병들의 청동부조/한국i닷컴 유영근 기자

정장 윤영하 소령이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부장 이희완 중위가 정장 대신 함정을 지휘하려는 순간 적의 포탄이 왼쪽다리에 관통했다. 북한 함정에 대응사격을 하던 나머지 병사들도 순식간에 쓰러져갔다. 부장 이희완은 마지막 순간까지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다리가 잘려져 나간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정을 지휘했다. 우리군의 대응사격을 받은 북한은 함정 한 척이 대파되고 한 척도 부분파손됐으며 38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우리측은 이날 교전으로 정장을 비롯 5명이 사망 실종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실종됐던 한상국 중사는 교전 41일만에 침몰했던 고속정에서 시체로 발견됐고, 부상당한 장병들 사이로 오가며 응급처치를 하던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다리절단 수술 끝에 22일만에 사망했다.

일부 장병들은 손에 방아쇠를 거머쥔 상태에서 전사,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했었다.

/한국i닷컴 기획취재팀

이희완중위 인터뷰

"국민의 투철한 안보의식 절실한 때"

서해교전 당시 참수리357호의 부장이었던 이희완 중위(현 해양연구소 연구원)/한국i닷컴 유영근 기자

교전후 9차례에 걸친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끝에 오른쪽다리를 절단, 의족을 하고 왼쪽 다리마저 총탄이 박혀 목발에 의지하고 있는 이희완중위는 앞서간 전우들을 생각하며 울먹였다. 이중위는 해군사관학교 부설 해양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며 사관생도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이중위는 전사자 6명의 얼굴이 부조된 제막비 뒷면에서 당시 참수리 357정 대원들과 함께 묵념한 뒤 한사람 한사람 이름과 계급을 부르며 추도했다.

"윤영하 소령~박동혁병장. 당신들은 이 나라에 훌륭한 일을 하고 가셨습니다. 오늘 이 제막식을 통해 가신님들의 영전에 저희들의 마음을 바칩니다. 그곳에서 영안하시옵고 비록 영령들은 저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저희는 잊지않고 있습니다. 정장님 조타사~ . 정말 고생많았습니다. 부디 그곳에서 건강하시고 357정 대원들 열심히 사는 모습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이중위의 애틋한 추도사에 유족들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렀다.

다음은 이희완 중위와의 일문일답

- 건강상태는?

재활치료를 마치고 잘 걸어다닌다.

- 전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슬픔을 말로 다할수 없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고귀하고 숭결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한다.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국민의 관심과 군의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 앞으로 각오.

새로 태어난 인생이다. 남보다 새로운 각오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 군함을 타고 직접 전투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내가 가르친 후배 사관생도들이 영해를 수호하면 그 또한 내가 영해를 수호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 교전후 치료를 받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전사자에 대한 비애가 가장 힘들었다. 교전직후 한동안 꿈속에 나타나 견디기 어려웠다. 9번의 수술 등 육체적인 교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전사자들을 추모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그분들은 숭고한 전사를 한 것이다. 남에게 알리기위해 전투를 한것이 아니다. 해야할 일을 했을뿐이다. 댓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다. 유사시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무를 다하는게 군인이다.

국민들이 알아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전사들의 희생정신은 알아달라. 국민들의 투철한 안보의식이 절실한 때이다.

/한국i닷컴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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