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0년 11월 26일 조선 안동 토계리
아침부터 차분히 내리던 이른 눈은 저녁 무렵이 되어 멎었지만 초겨울 바람이라고 하기엔 차갑고 세찬 바람이 대나무 숲의 통해 제법 거대하게 물결 치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눈에도 병색이 짙어 보이는 이황은 발도 쳐 있지 않은, 조금은 곤궁해 보이는 쪽문을 열고 머름 턱에 팔을 기대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멀리 눈 덮인 산과 숲을 바라 보고 있었다.
‘눈이 아무리 세상을 덮어도 소나무의 푸르름을 감출 수 없고, 바람이 아무리 세어도 대나무의 곧음을 휘게 할 수는 없음이니…’
병색에도 불구하고 칠순 노구라하기엔 너무나 맑고 온화하며 정결한 그의 모습은 선비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가 자신의 생에 얼마나 충실하였는지 움직임 하나 하나에도 묻어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이고 나으리 바람이 찹니다.”
마침 이황의 자리를 보러 오던 순덕이는 나으리가 쪽문을 열어 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마루쪽으로 급하게 몸을 옮겼다.
“어허…눈이 미끄럽구나, 조심해서 들어 오거라”
순덕이는 작년 말 첫 딸아이를 낳았다. 한양 성균관에 유학가 있던 이황의 손자 안도가 보내온 증손자 창양의 100일 잔치 소식을 접하고 얼마 후의 일이였다. 그런데 손자 며느리가 창양을 얻은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다시 임신을 하여 젓이 끊기게 되자, 인편을 보내 마침 몸을 푼 순덕이를 창양의 유모를 삼으려고 한양으로 올라오게 하였다. 순덕이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였다. 이제 막 몸을 푼 자신의 건강 상태도 상태였지만, 자신의 젓을 도련님 아기씨와 나눠 먹이기 위해 한양까지 갓 나은 핏덩어리를 데리고 간다면 필시 한양 근처도 가지 못해서 아기가 죽어 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 였다. 하지만 상전의 지엄하신 명령을 어길 수 없었고, 10달을 배 앓고 낳은 금쪽 같은 자식을 죽일 수도 없었다. 순덕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인편이 한양으로 올라가는 날이 다가오는 하루 하루를 칼 산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이름도 붙이지 않은 아이를 끌어 안고 울고 불며 때론 실성한 사람처럼 넋을 놓아가며 지내고 있었다.
그때 아이를 낳아 하루 하루가 즐거워야 할 순덕이가 실성한 사람처럼 우는 모습을 본 이황은 혹 아이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집사를 불러 연유를 물어보았다.
“내 알기로 순덕이가 계집아이를 낳은 지 달포가 넘었는데 저 아이가 왜 저렇게 슬피 우는 것이냐?”
“네?…저 나으리..”
집사는 말을 잊지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황의 채근에 이기지 못하고 손자 안도가 증손 창양의 유모로 순덕이를 한양으로 불러 올린 일과 순덕이가 한양까지 가는 동안 갓 나은 아기를 잃어버릴까 저어하여 저리 실성한 사람처럼 울고 다닌다는 지난 일을 모두 고해 올렸다.
이황은 집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 한양으로 올라가는 인편에 순덕이 대신 손자 안도와 손자 며느리에게 글월을 보냈다.
"몇 달 동안만 밥물로 키운다면 이 아이도 키우고 서울 아이도 구할 수 있다.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가는 그 어미의 마음은 오죽하겠으며 서울까지 가는 동안에 이 아이는 죽고 말 것이고 젖도 막히게 될 것이다. 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다. 어미가 자식 키우는 정은 짐승도 마찬가지인데 학문을 한다는 유가의 체통으로 차마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더냐! 몇 달을 참으면 두 아이를 다 구할 수 있으니 여기 아이가 좀더 자랄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그 때 가서 데리고 가도록 하마."
할아버지의 엄한 꾸짖음에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된 것을 깨달은 손자 안도는 더는 순덕이를 한양으로 불러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양은 겨울과 봄을 겨우 겨우 밥물로 연명하며 넘겼지만 초여름 5월 23일에 죽고 말았다.
평생 성현의 글을 읽었고 또한 선비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고, 또 그렇게 살아온 이황은 자신이 유가로서 하찮은 노비의 딸아이라지만 그 핏덩어리도 사람인지라, 존귀에 상관없이 사람을 경시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 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단 한번 얼굴도 보지 못한 증손자 창양이 죽었다는 생각에 이황은 심히 괴로워 했고, 그 괴로움은 노구에 병색을 더 짙게 만들어 갔다.
“올 겨울은 얼마나 추울련지 초겨울 바람이 소한 추위보다 더 매섭습니다.”
순덕이는 쪽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그나 저나 내가 올 겨울을 넘기기나 할련지 모르겠구나..”
이황은 병풍 앞으로 천천히 자리를 옮겨 책상에 놓은 책을 펼치며 희미한 눈을 가늘게 모아 책을 보았다. 그런 이황의 모습을 순덕이는 말없이 측은하게 바라 보고 있었다.
“나으리, 자리를 봐드리겠습니다”
이황은 아무말 없이 서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으리…”
“아니다, 오늘 밤 늦게 손님이 오시기로 하였구나. 귀한 손님이니 향기로운 술과 좋은 안주를 한상 들여다 주거라. ”
“손님요?”
“그래, 내 이생에서 이 손님을 만나는 게 오늘이 마지막 일게야…”
순덕은 알 수 없는 나으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방을 나왔다. 삼경(23시에서 1시)이 되어갈 무렵 술을 더 들여 달라는 집사의 말에 부시시 일어난 순덕은 혜숙이를 떼어 놓으며 방을 나섰다. 혜숙이는 나으리께서 직접 지어준 딸아이의 이름이였다. 노비의 이름으로는 그 격이 맞지 않았으나 도련님 아기씨 일로 미안하셨던지 딸아이의 이름을 반가의 금지옥엽 외동따님 이름처럼 지어 주셨다. 그리고 서울 창양 아기씨가 잘못된 이후로는 더 딸아이 혜숙이를 생각해 주셨다.
“손님이 오긴 왔나뵈”
순덕은 광에서 술을 담아 나으리께서 계시는 몸체로 갔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기 때문에 몸을 잔뜩 움추린 순덕은 마루 앞에 놓인 한번도 본적 없는 겉가죽이 마치 하얀 사기로 만든 것처럼 미끈하게 생긴 이상하게 큰 신발 2켤레를 보게 되었다.
‘하고마…손님 발이 억척시리 큰가보네…양반 발이 이렇게 우왁스럽게 커서 어떻게 하노 어느 갗바치가 만들었나 소한마리는 홀딱 벗었겠구마’
순덕은 신발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으리께 고했다.
“나으리 술을 더 가져왔사옵니다.”
“어…그래, 수고했다. 거기 문 앞에 놓고 가거라”
“예? 나으리 제가…”
“거기다 놓고 가거라”
이상한 일이였다. 나으리께서는 몸이 불편하셔 술을 가지러 나오시는 것이 힘드실텐데, 순덕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나으리 분부를 안 따를 순 없었다.
“그럼 나으리 요기다 놓고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수고 많았다.”
무엇이 즐거우신지 나으리의 목소리는 기분 좋게 들떠 계셨다. 최근 병색이 짙어 지신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나으리의 힘있으신 목소리였다.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에 순덕이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그때 무언가 가늘고 긴 것이 술병을 잡고 휙 방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순덕이는 나으리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는 소리에 자신까지 기분이 좋아 지는 것을 느끼며 움추렸던 몸을 조금 폈다. 그때 나으리 방 쪽문의 종이 위로 비치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으리의 관모를 쓰신 그림자와 겸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모습이 보였다.
‘어머나 저게 모다냐?’
나으리와 함께 앉아 있는 그림자는 나으리의 앉은 그림자에 두배는 될 정도로 크면서도 매우 가늘었고, 술을 드는 듯한 팔 또한 하늘 거리는 잠자리 날개처럼 길고 가늘었다. 순덕이는 그만 다리의 힘이 풀리며 제자리에 덜썩 주저 앉고 말았다. ‘저, 저승 사자인가뵈…안되는데, 우리 나으리…아직 안되는데..’ 순덕이는 엉치에 힘을 주고 손으로 차가운 바닥을 잡으며 마루턱으로 기기 시작했다. ‘우리 나으리, 아이고..우리 나으리..이년하고 우리 혜숙이 목숨을 살려주신 은인이여…안되는구마-ㄴ 나, 나를 데려가라구 하면 되겠구만 암 나를 데려가’ 순덕이는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이며 손바닥과 무릅이 초겨울 맨바닥에 까지는 것도 느끼지 못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루를 급하게 기어 올랐다. 마루턱에서 본 방안 그림자는 한길 반은 되어 보임 직한 가늘고 긴 팔과 나팔 꽃잎 모양의 관모 위로 동그랗게 머리가 보이는 저승사자가 나으리와 겸상하고 앉아 있었다.
순덕이는 몸을 잔뜩 움추렸다. 잠깐의 공포가 정수리부터 저린 느낌으로 밀려와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무언가 결심한 듯 어금니를 악물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안되는 구…”
순덕이는 소리를 지르며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순간 자신의 발목이 거대한 무엇에 잡혔고, 얼굴 전체가 거대한 어떤 손아귀에 통째로 거려지며 몸이 번쩍 들리는 것을 느꼈다. 순덕은 이리에게 물린 토끼처럼 바둥거리며 자신의 얼굴을 가린 손가락 틈으로 눈을 돌려 자신을 잡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순간 순덕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나락의 공포로 빠져들어 자신의 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며 온몸 힘이 풀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진한 갈색의 거북이 등처럼 생긴 피부를 한 얼굴에 머리 전체는 털로 뒤 덮여 있었고, 자신의 주먹만한 거대한 눈은 검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하게 굽은 양쪽 귀 아래로는 거머리의 빨판처럼 생긴 것이 그 입을 쫙 벌리고 순덕이를 향해 뱀이 위협하듯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으며, 약간 벌려진 큰 입 사이에는 호랑이 송곳니 같은 이빨이 섬뜩하게 보였다.
‘금, 금강야차구나…’
순덕이는 얼굴이 눌린 채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무슨 소란이냐?”
문이 열리며, 옥음과 같은 나으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오시지 마세요, 나으리 나오시면 안되요.’ 순덕은 몸을 바둥거리며 그렇게 말하려 하였지만 야차의 손아귀에 눌린 얼굴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순덕이 아니냐?”
나으리의 목소리는 조금 당황한 듯이 평소보다 약간 높게 들렸다.
“쯧쯧 그냥 가라고 했더니…얘야 놓아 주거라. 내가 걱정되어 올라 오려 했던 걸께야”
이내 나으리는 예의 침착한 목소리 순덕을 잡고 있던 금강야차에게 하인 다루는 듯한 어투로 말씀을 하셨다. 순간 순덕이의 얼굴을 누르고 있던 야차의 손이 풀리며 순덕은 자신의 발바닥이 마루를 밟는 느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힘의 풀린 순덕의 다리는 몸을 바치지 못하였고, 순덕이는 그만 그 자리에 털퍼덕 누워 버렸고 금강 야차와 눈이 마주친 순덕은 그제야 비명을 지르려 하는데 나으리께서 검지를 입술에 대시며 인자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내 동무들을 보고 많이 놀랬나보지?”
‘동무?’ 순덕이는 온몸이 땀에 젖은 것을 느끼며 마루에 퍼져 있던 몸을 일으키며 옷고름을 바로하며 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미안하오. 갑자기 방으로 올라오려 해서 저지 하려고 했던 것 뿐일 것이오’
순덕이는 하늘에서 들리는 듯 은은히 퍼지는 메아리 같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얀 은빛에 밤색으로 무늬가 새겨진 빛이 나는 옷을 입고 가늘고 긴 팔과 다리를 한 커다란 사람 하나가 마루로 나오고 있었다. 순덕이는 진달래 빛 피부에 동자 없는 커다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는 저승사자를 보고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떨리는 온몸을 겨우 겨우 버티고 서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늘 그런 인자한 미소를 짖고 계신 나으리와 얼굴 뒤 나팔꽃 모양의 빛이 나오는 관모를 쓴 저승사자를 번갈아 봤다.
“안돼 나으리는 못데려가”
순덕이는 겨우 겨우 숨을 고르며 이 몇 마디를 숨이 넘어갈 듯 외쳤다. 그리곤 갑자기 눈앞에 쏟아지는 새하얀 빛이 곧 검게 사그라 드는 것을 느끼며 천길 만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듯 무너지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나으리는 못 데려가…아직…아직 안되는데…’
D-23 시스템 3호 행성
AD 2259년, 우주력 298년 8월 21일
D-23 태양계
지구연합 G13 CEB(Colony Exploitation Base : 식민지 개척 기지) 함대 사령부 아드미랄급(464,350t) 스타 쉽 이지스호 함교 사령실
카키색 궁수 자리 은하수는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폴 머레이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기 위해 함교 왼쪽으로 그 끝 부분이 보이는 궁수자리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스타 쉽 중력 장치의 가동음이 깊은 계곡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살았다던 중세 유럽 괴물의 숨소리처럼 존재하지 않는듯한 낮은 소음을 내며 스타 쉽과 사람들 모두에게 울림을 전하고 있었다.
“스캔 완료 보고 입니다.”
D-23 시스템 3호 행성에 파견된 순양함에서 스캔 완료 연락을 받은 통신 장교는 라이언 제독에게 3호 행성에 대한 스캔 완료 사실을 보고 하였다. 검은 피부와 어울리지 않는 하얀 은발의 라이언 제독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시가를 물고 있는 폴 머레이 총독의 눈치를 살폈다.
“영상 모드로 연결하라.”
라이언 제독은 거만한 총독의 행동이 심사가 뒤틀리면서도, 이번 기회에 폴 머레이 총독에게 신임을 얻어내야만 한다고 생각되었다. 우주 개발이 시작된 지 300년이 가까워 지는 현재까지 지구 연합은 우리 은하에서 몇몇 외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외계 문명과의 조우나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은 공식적으로 보고되어 있지 않았다. 식민성 개척 중 자신의 함대에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라이언 제독에겐 이 은하계 변방의 구석에서 벗어나 지구 연합 사령부내로 승진 발령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며, 이례적으로 총독이 자신의 스타쉽에 동승하였다는 사실은 그 기회를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순양함 제비 3호 함장 호소가와 소령입니다.”
화면 속 20대 후반의 젊은 장교가 굳은 얼굴로 자신의 관등 성명을 보고 하였다.
“스캔 결과는 어떠한가?”
라이언 제독은 마른 침을 삼키며 젊은 장교에게 물었다.
“외계 문명이 확실합니다. 3호 행성 북극 지하 270M 지점에서 약 700만 평방M 크기의 외계 구조물과 EMI급 이상의 기술로 제작된 전자기구 및 무장 시스템으로 보이는 구조물 등을 확인 하였습니다.”
순간 라이언 제독은 승진 발령이 된 듯한 기쁨의 화색으로 검은 피부가 검붉은 빛으로 눈에 띠게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소가와 소령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그런데 라니?”
라이언 제독은 젊은 호소가와에게 더 자세한 보고를 독촉하듯 말꼬리를 잡으며 되물었다.
“외계 구조물에 대한 스캔 중 약 2732개의 고등 생명체가 스캔이 되었습니다.”
순간 스타 쉽 함교 사령실의 대원들은 그 엄청난 보고에 조용하지만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 였다. 지구연합은 우리은하 내 60여 개의 CEB를 배치 운영 중이였으며, 각 CEB는 군사적 목적에서의 식민성 개척 뿐만 아니라 과학적 상업적 목적으로 영내의 탐사활동도 병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탐사 활동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2142년 목성 궤도에 최초의 웜스테이션이 건설되면서부터 였으므로 120여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G8 CEB와 G27 CEB에서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은 사건과 G11 CEB 함대에서 파괴된 외계 우주선의 잔해를 발견한 사건 등이 가장 거대한 외계 생명체와 관련된 사건이 였으며, 간혹 식민 행성에 대한 동식물 이주 계획인 제너시스 계획 실행 단계에서 다세포 생물이 발견된 경우는 있었으나 아직까지 지구연합이 관리하는 그 어떤 행성에서도 고등 생명체가 발견된 예는 없었다. 또한 다세포 생물이 발견된 경우에도 제너시스 계획의 실행 단계에 있는 행성에서 민간 기업은 다세포 생물의 발견 시 제너시스 계획의 전면적 중지를 명시한 지구연합 헌법 조항과 제너시스의 단계별 기술을 모두 지구연합정부에서 독점 관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므로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해당 영내 주요 정치인과 군부에 막대한 뇌물을 이용한 로비 활동을 펴 제너시스 계획에 돌입해 버리는 경우가 있어 더욱 더 외계 생명에 대한 보고는 매우 희소한 것이 되어 버렸다.
폴 머레이는 순양함 제비 3호의 호소가와 소령의 보고에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아무도 눈치 못 채게 흘리다가 능숙하게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낯을 바꿨다.
5일전 인젠사(社)의 G13 지부 이사장 한스 플리쳐가 총독 사저로 찾아와 자신들의 연구선이 D-23 시스템 3호 행성에서 찾아낸 생명체와 외계 구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은밀히 꺼낼 때만 해도 하등 생명체에 대한 함구의 대가로 돌아올 거대한 이익 정도를 예상을 했었다. 그리고 제너시스 1단계 완료로 하등생명체가 깨끗이 소독, 전멸하게 된 후 외계 문명이 발견되었다고 언론에 흘릴 경우 돌아올 자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분명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 시켜 줄 것이라는 계산하였다.
“이 이건 지적 생명체가 아닙니까?”
다음날 한스 플리쳐와 영내 투자 유치 설명회를 핑계 삼아 가진 회동에서 인젠사의 D-23 시스템 3호 행성에 대한 스켄 자료를 보고 받자 폴 머레이는 뜨거운 물에 데인 듯 놀라고 있었다.
“지적 생명체인지는 알 수 없죠. 그저 조금 거대한 다세포 생물인 것은 확실하지만…아마도 지구보다 중력이 약한 관계로 생물체가 조금 크게 진화하고 있는 가 봅니다. ”
늙은 한스 플리쳐는 구렁이와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행성 내 생명체에 대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스캔 자료에는 거대한 지하 구조물과 함께 구조물 내부에서 생활하고 있는 다수의 생명체가 감지 되어 있었으며, 각종 전자기 장치와 무장들이 발견되어 있었다.
“이런 하등 생물 때문에 영내 투자 계획에 차질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그리고, 1단계 제너시스 진행 중엔 외계 구조물에 대한 어떤 손실도 없을 테니…”
폴 머레이는 늙은 한스 플리쳐에게 속내를 들킨 듯 움찔하였다. 한스는 교활한 장사꾼이였다. 그는 약삭빠르게도 언론 플레이를 예상하고 있던 폴 머레이의 심중을 꽤 뚫고 있었다.
“그렇군요…하등 생물 때문에 영내에 투자 유치가 지연되어선 안되겠지요. 모두가 G13 CEB의 발전을 위한 조치가 아니겠습니까?”
폴 머레이는 짐짓 상한 기분을 과장된 웃음으로 가려버렸다.
“그렇다면 제가 플리쳐 이사님께 드릴 도움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폴 머레이는 아주 뻔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인젠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제너시스 1단계에 돌입하는 것이 였으며, 이를 위해 G13 함대의 현장 답사와 현장에 대한 최종 승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총독님께서 그렇게 질문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한스 플리쳐는 총독 가까이 돌아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때 폴 머레이의 눈엔 스캔 자료 중 EMI급 이상의 전자기 장치와 각종 무장에 대한 스캔 자료가 눈에 띠며 한스 플리쳐의 이야기 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꿈꾸어 왔던 그것이 빠르게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폴 머레이는 반쯤 피운 쿠바산 하바노 시가를 깊이 빨아드리며 상기된 표정으로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함교 사령실의 장교들을 내려다 보았다. 라이언 제독은 그런 총독을 힐끔 쳐다보았다.
‘도대체 저 속엔 뭐가 있길래 이런 상황에서 미동도 않는담.”
그는 총독의 침착함과 대조적으로 상기된 채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지적 생명체인가?”
“2667개의 생명체는 인간보다 약간 큰 체구를 갖춘 두 가지 종류로 지적 생명체라 짐작됩니다. 그리로 인간과 동일해 보이는 13개의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있으며 나머지 생명체는 크기와 종류가 모두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인간과 동일한? 호소가와 소령의 보고를 받은 라이언 제독은 순간적으로 무언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순간 다급한 목소리의 순양함 제비 3호의 함교 관측경보 장교의 보고가 이어졌다
“제독님, 3호 행성 내에서 본 함선을 스캔하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무장 장교의 보고가 이어졌다.
“제독님, 3호 행성 내에서 본 함선으로 향한 무기가 장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기의 종류와 어택 스타일이 전혀 보고 된 바 없는 형식입니다.”
제독의 검은 얼굴은 좀 전의 상기된 붉은 빛에서 하얀 색 긴장으로 변색되고 있었다.
“제독님 본 순양함을 향해 외계 무기가 장전되고 있습니다. 스캐닝 타입은 본 함대와 동일하지만 어떤 종류의 무장 시스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영상 화면 내 호소가와 소령은 순양함 제비 3호 사령실의 급박한 보고를 받아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스캐닝 타입이 동일해?’ 라이언 제독은 감전된 듯 찌릿하게 퍼지는 온몸의 소름을 느끼고 있었다. 함선에 대한 스캐닝은 공격전 함선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내 가장 큰 타격을 주기위해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그렇다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스캐닝 타입이 지구연합 함대의 의도와 동일하다면 그 의미는 공격 직전의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 였다. 라이언 제독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제비 3호 전속력으로 3호 행성의 궤도를 벗어나라”
“알겠습니다.”
젊은 호소가와 소령은 거수 경례를 하며 선내 승무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전속력으로 벗어난다. 보호막 최대치 상…”
순간 함교 사령실 영상화면으로 엄청난 밝기의 빛이 전송되었다. 너무나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이였지만 그 밝은 빛은 사령실 내부의 요원들이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가려야 할 정도로 매우 밝았다. 그리고 함교 사령실 영상 화면은 끊어진 통신으로 인해 블루 스크린을 내보내고 있었다.
“제독님 제비 3호와 통신이 끊어 졌습니다..”
“제비 3호가 공격을 받은 것인가?”
제독의 목소리는 노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어떤 공격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제비 3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런, 이런, 이런 9만톤급 순양함이 완전히 사라지다니 말이 되나? 공격을 받았다면 가격한 것은 무엇인가? 미사일? 페이저포? 열화빔? 어떤 것이냔 말이야?”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무기입니다.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런…그렇다면, 잔해, 잔해는?”
“제비 3호의 최후 위치에 약 지름 2센티정도의 티리움 합금 잔해가 띠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내부 폭발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순간 선내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티리움은 스타쉽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핵심 합금으로 태양의 온도 표면 온도인 6,000도씨의 열에도 견디는 초합금이였다. 그런 티리움으로 이루어진 순양함 제비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외계의 공격에 의해 너무도 무력하게 작은 조각 덩어리만 남긴 채 파괴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 였으며, 그 공격이 어떤 종류의 것이였고, 어떤 타입으로 이루어 진 것인지 조차 파악이 안되는 상황에서 승무원들의 얼굴은 공포에 휩쌓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조금 전 외계문명에 대한 흥분으로 상기된 표정과 다른 긴장과 공포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순양함 제비 3호의 인명 손실입니다. 탐승요원 340명, 전원 사망”
관측 장교의 보고는 침울과 공포로 심해 깊숙이 가라앉듯이 잦아들고 있었다.
“전함내 전투 모드, Seed 장갑 ON, 전자기 장갑을 가동하고, 보호막을 150% 상승시켜라”
마른 침을 삼키며 라이언 제독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옛, 함내 전투 모드, Seed 장갑 ON, 전자기 장갑 ON, 보호막 150%”
다급해진 제독의 명령에 따라 무장 관련 장교들은 명령을 복창하며 스타쉽의 방어 시스템을 가동 시키고 있었다. 스타 쉽 내부는 붉은색 경보등이 켜지며, 메인 컴퓨터를 통해 함내 경보음과 전투 배치 안내가 울리기 시작했다.
“제독님 3호 행성 내 생명체의 변화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현재 스캔 자료에 의하면 인간과 동일하다고 판단되었던 생명체의 개체수가 2개만 남았으며, 다수를 차지하던 종류의 생명체는 2667개에서 2617개로 개체수가 줄었습니다.”
“적들의 개체수가 어떻게 변하건 상관없다. 무장 현황 보고하라”
“옛, 열화미사일 12기 발사 준비 완료, 페이저포 조준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DX-123 스마트 미사일은?”
“발사 준비 40초전 입니다.”
“열화 미사일로 우선 적의 지하 기지까지의 통로를 만든 후 페이저포와 미사일로 적의 기지를 초토화 시킨다. 알겠나?”
“옛”
사령실 내부는 요원들의 비장한 열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요원은 모두 긴장으로 더 빛나는 눈빛을 한 채 서로의 열기로 인해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기 시작 했다.
“제독님 제비 3호가 공격 받기 전과 동일한 타입의 스캔이 본 함선을 향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스마트 미사일 발사까진 얼마나 남았나?”
“발사 준비 완료까지 26초 남았습니다.”
라이언 제독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제너시스 기폭탄을 발사하시오”
폴 머레이는 시가를 검지와 중지 사이로 잡아 입에서 떼며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하..하지만 행성 내 생명체 보호 조항…”
순간 폴 머레이가 버럭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난 목소리로 라이언 제독에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을 하는가 제독! 지금 우리 함대의 순양함이 공격을 당해 전멸하였고, 이번엔 우리 차례가 될지도 모르는데 6000광년이나 떨어진 지구연합의 법조항을 따르란 말인가?”
주위의 모든 시선은 폴 머레이 총독과 라이언 제독에게 쏠렸다. 폴 머레이는 다시 차분히 자리에 앉으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책임은 모두 본관이 지겠다. 대신 라이언 자네는 그 옷을 벗어야 할꺼야…”
라이언 제독은 고개를 숙였다.
수초 후 필리핀 쌀알 모양의 타원형 두개를 겹쳐 놓은 듯한 모양의 거대한 이지스호 함미의 해치가 열리며 원기둥 모양에 길고 가는 안테나 3개가 달린 제네시스 1차 기폭탄이 3호 행성을 향해 발사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지스호는 광속으로 돌입하여 D-23 시스템 저 너머로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제너시스 기폭탄은 D-23 시스템 3호 행성 궤도로 접근하며 상단 안테나 부분과 하단의 8개 기둥으로 분리되어 각각의 궤도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안테나 부분에 위치한 메인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독립된 각 기둥은 각각의 궤도에 위치하자 엄청난 속도로 D-23 시스템 3호 행성 지표면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리고 각 기둥은 지표면 근처에 접근하자 기둥 하부의 포신 형태의 관을 통해 열화 빔을 지표면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지표면은 엄청난 온도의 열화빔에 의해 녹으며 거대한 구멍이 만들었고 그 구멍 속으로 각각의 기둥은 지상에 꽂히듯 박혀 버렸다. 순간.
각 기둥은 거대한 노란색 빛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그 빛은 서서히 폭을 넓혀가며 3호 행성 전체를 뒤 덮어 버렸다. 지표면 위 대기뿐 아니라 지표면 아래 깊숙한 곳에서까지 그 빛은 행성 전체에 작은 지진과 같은 흔들림을 일으키며 넓게 퍼져 갔다. D-23 시스템 3호 행성은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이 우주를 전체를 향해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