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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문을 두드릴때 ( 밑에 새언니 글을 읽어 본후)

가난한신랑 |2007.10.09 13:01
조회 1,906 |추천 0

제 나이 올해 29

현재 건축사업 전문직에 말단 사원으로 종사하고 있습니다.

연봉은 월 150 연봉 2000 입니다.

2년전 컴퓨터 학원 강사 계약직 우연한 계기로 지금의 여자친구(29)를 만났습니다.

 

가족은 무뚝뚝하시지만 항상 저희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아버지

어렸을때 부터 쭈욱 반장 학생회장등을 지내며 인하대를가고 장학금을 받으며 집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받아 중국 유학까지 갔다온 4학년 졸업반인 남동생

그리고, 약간 창피하지만 도박에 중독되시어 이혼하시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시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사업가 이셨습니다. 그냥 직원수 5~10명되는 조그만 라이타 공장을 운영하시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어린시절은 많이 가난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전업주부 이셨지만 동네에서 벌어지는 안좋은 도박판에 손을 대시어 아버지께서 벌어오시는 수익을 모두 도박에 버리시게 되었고, 저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으로 늘 시끄러운 집이 되었습니다.

 

사춘기 시절까지 저는 전교 5등 정도내에 들었지만 학원을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한 돈을 어머니께서 도박에 사용하시여 심지어는 도시락도 안챙겨주시기에 집을 원망했고 탈선의 길을 걸으며 공부를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때 부터 저희 어머님 소문이 학교에 퍼지게 되자 더더욱 집에 안들어가고 소문내는 애들을 괴롭히며 심지어 금품갈취등을 하고 전혀 관계없는 친구들도 괴롭혔고, 그러다 112에 한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자 경찰은 부모님을 부르기 시작했고 땀범벅으로 도착하신 아버지의 눈물을 저는 처음 보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게 못난 부모님 탓이라고만 하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앞에서 모질게 욕하고 날뛰었던 저였지만 너무 늦게되서 아버지에게 입힌 상처를 치유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탈선의 길을 걷다 고3때 다시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아서 저에겐 수도권내 대학에 갈수 있는 성적과 내신이 안나왔고 학교에서도 제가 취업반에서 복귀하는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것보다 어려운거라는 담임선생얘기에 분노하는 아버지를보며 더 이상 상처를 드리기 싫어 학교에 안나간채 수능공부를 하였습니다. 수능을 보기전 아버지의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문을닫게 되었고 공장을 정리하고 보험 보상금을 합친금액이 약 3억여원 정도였는데 저희 어머니께선 그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해지 하시고 가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일로 인해 전 수능을 보는둥 마는둥 해버렸고 약 280점 정도로 내신없이 지방쪽밖에 원서를 넣을수 밖에 없게 되자 대학진학을 버린채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를 부양하기위해 인천공항에 취직하였고 군대 영장이 나오자 군대를 갔다오고 제대후 다시 취직 돈을 조금씩 모으면서 여유가 생기게 되고 아버지도 건강해지셔서 큰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도와드릴수 있게 되시자.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지방전문대에 수능없이 자격증 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하였습니다.

물론 지방대학이기에 자취방과 생활비등 지출이 많았지만 성적과 학회장 역임등으로 장학금을 지원받아 500만원 정도의 지출로 2년을 버티며 제가 하고싶었던 게임 그래픽의 꿈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후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IT업계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월급 70~100만원 어느 회사를 가던 큰회사가 아닌이상 급여는 동등했고 1~2개월 밀리는건 다반사 결국 8개월 밀린 급여 64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만 받았던 적도 있었고 예전처럼 적금도 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 다른곳을 찾았고 할줄아는것이 컴퓨터 그래픽이기에 그래픽 기능사 자격증 특별반에 임시직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학원에 들어온 원생중에 한명이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 였습니다.

 

제여자친구는 농인(청각장애자)입니다.

말을 하고 (발음과 문법이 좀 엉성함) 들을수 (정면에서 말하면 80%알아들음) 있는 구화인 입니다.

키도 작은데다가 피부도 생기있고 화장도 거의안해서 게다가 동안이라 고등학생으로 봤고  굉장히 귀엽게 생각했었는데 저랑 동갑내기 아가씨였던 것이었죠.

그래서 다른 학생보다 많이 관심을 가졌고 개인적으로 교습시간을내 가르쳐주다 보니 사랑도 같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네 집은 50평짜리 아파트에 부모님 언니 남동생이 살고 있었고 장인 되실분은 명문대 출신으로 크지는 않지만 사업성 있는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이라는걸 알고나니 제 자신이 주눅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정상적인 일반인은 아닌지라 처가쪽에서도 절 좋게봐주셨고 제 직장이 많이 안좋아보이셨는지 반 강제적으로 장인 되실분이 소개시켜주신 회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결혼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 지금 여자친구를 사랑합니다.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지금 여자친구와 할거라고 저또한 다짐하고 잇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 집이 여자친구 집에 비해 가난하다는것 8년전에 3억정도를 가지고 나가셔서 자동이혼이 된다음에 사기를 당하시고 돌아오시고 3년전부터 절 찾아오셔서 매달 용돈 40만원씩을 받아가시는 어머니 그리고 몸이 안좋아지셨지만 자식한테는 손벌리는거 아니라고 늘 힘들게 사시는 아버지 그래도 생활비라고 매달 60 씩 드리고는 있습니다. 공부 잘하고 있는 제 동생 매달 용돈 20만원씩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게임회사 다닐때 월급이 안나와 대출받았던 빛이 있었고 지금은 다 갚게 되었지만 현실상 주머니엔 가진게 몇푼 없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처가 쪽에선 집과 혼수는 다 내줄테니 제 인간성만 믿고 딸을 맡기신다고 하시지만

저는 저희 어머니가 두렵고 (어머니는 처가에 얘기를 안함) 아버지께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제가 결혼을 미뤘습니다.

그걸로 여자친구랑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절 사랑하는지 많이 실망했는데도 헤어지자는 말은 안합니다.

결혼이 두렵습니다.

 

제가 결혼하면, 제 본의 아니게 여자친구의 집에 많은 피해를 끼칠까봐

그래서 여자친구가 많이 아프고 힘들까봐.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를까봐 그게 두렵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밑에 새언니 글보니.

참 뻔뻔하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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