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몇년만에 6년전인가 그당시 고부간의 갈등으로 집사람이 가출을해서 갑갑한 마음에
네이트에 글을 올린이후 6년만에 다시 글을 올리는군요
이야기는 길지만 요점만 정리하자면...저는 30중반이 아이둘의 아빠입니다.
어린나이에 집사람을 만난 지금의 큰애기를 낳게돼고 집사람이 시엄마싫다고
우리 애들엄마는 신혼초 제가 동생들에게 잘해줘도 질투를 하더군요..
시어머님이 싫다구 그집식구들싫다고...이리말하면 저희가족이 그럴만하니까...
그런문제가 생겼겠지 하겠지만..사실 저도 몰랐읍니다..어린나이에 집사람을 만난
그냥 집사람이 안스럽고 또 그당시 저도 힘들었던 시기에 집사람과 만나면 위안을 받았으니까..
그당시 오로지 집사람 흔히 눈에 꽁깍지라고하지요...
집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장인어른을 잃고 장모님이 키우셧는데 3남3녀 40이넘어서 얻은 막내입니다.
장모님에게 인사드리는데 장모님이 제손을 잡으면 그러더군요 자네가 많이 이해하고
살아야할것이네 성질이 좀있다고.. 저는 그당시 그냥 인사치례정도로 알았읍니다.
그러고서 우리둘 정말 열심히살았읍니다..
집사람은 애기를 가졌다고 임신1달정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저는 그래 아직젊은데 뭐그당시 팔팔20대초반이니.. 정말 안입고 안먹고 그리하면 집사람과 살았지요...
거기서 부터 동생들이 사실 저희아버님이 몸이안좋으셔서 제가 학교시절부터 동생들 용돈 학용품 학비 를 충당했읍니다 아르바이트로 그래서그러지 동생들이 저를의지를많이하고 저또한 어린시절 부모님이 시골할머님댁에 저를 보내 저는 그당시 엄마가 있는줄 몰랐읍니다.지금도 기억나네요.
시골 마을회관길을 가는데 고모가 어떤여자와 가던군요. 고모하고 달려가는데 그여자를보고 언니
많이컸지...그러네요 그러면 저를안더군야 그러면서 고모가 엄마야 이러는데 저는 놀랬읍니다^^
그러고서 터미널서 엄마를 따라 그당시 딸기콘 먹던기억은 아직도..할머니 저를 보내면서 우시면서 카라멜을 사서보내시고 저는 사실 그당시 마을 아이들에게 엄마없는아이 그리고 형제있는 애들이
왜 그리부러운지...그리고서 엄마를 따라 어느집을 가니 흑백티브에서 수사반장인가 뭐 그런비슷한것이 하고있고 그옆에는 어떤남자가 ^^(우리 아버님) 여보 데리고 왔어 아빠야 이러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그나이에 무엇을 느꼈는지...그러고서 옆에 자그마한 아이둘이서 정말귀엽더군요 동생들이야 저 순간 기뻤읍니다. 나도 부모님과 동생들이 있구나 사실 시골서 형제있는애들이라 사우면 표현이 그러치만 다굴이라고-- 그런데 저에게 정말 이쁘고 구여운 여동생 남동생이..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그러면서 집안형편도 좋아지고 그러던중 중1때인가 아버님이 하시는 일마다 안돼고 아프시고 그리3년을 가다가 고1때 정말 집안 꼴이 말이아니었지요..
그래서 식당저녁 배달. 등등 다니면서 손님이 먹다남긴 족발등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그돈을받아
열쇠있는 저금통에모아 동생들 학용품 준비물 용돈 등을 해주었지요..그래서 그런것인가..
동생들은 저를 무지따르고 부모님말보다는 저의 말을 더잘듣고 ...^^
그런와중에 사회에 나와 돈을 받는데로 어머님을 드리고..그리몇년을 하니 집안이 조금 편해지고
아버님도 건강을 찾으셔서 근데 외롭더군요..사실 저를 좋다하는 여자는 학창시절부터 있었지만.
저의 사정이 그러다보니..언제나 제가 멀리하고 그렇게 20대 초반이 지나가고 있을무렵..
우연히 한 회사를 들어갔는데 저에게 자꾸 요즘 말로 들이대더라구요 직장상사 (개인적으로아는형님) 에게 저오빠 좋아한다구 소개해달라구..그런압력이 들어오길래..저는 아직은 제가 너무나 힘든상황이라 저는 여자나 그리고 결혼은 아직생각없다 이리말했더니 그분하는말이 임마 그냥즐겨 그럴길래 형 나는 장난으로 누구를 만나고싶지않아. 그분에게 나는 아직 그런여우가 없다고 말해줘..
그냥 독신주의자라고...이리말하고 며칠 지나니 그여자가 저에게 오빠 제가 싫으세요 그러더군요..
사실 저는 여자를 많이 만나보지못하고 그래서 순간 당황했지요..
아니 너가 싫은것이 아니라 나의 사정이 누구를 만나서 챙겨줄수있는 사정도아니고 그리고 나는 독신주의자야..이리말하고 돌아섰지요...
얼마후 우연히 그여자가 근처 회사직원과 사귀다 그남자가 바람끼가 있더군요 아는 후배와 조금아는 사이더군요 그사람과 끝나고..힘들어 하던 시기더군요..
다음날 저를 찾아와서 오빠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하세요..저는 아무말안했지요
그러더니 순간 차도로 달려가는폼을 저는 그러지마..그래 한번 시작해보자 사실 저도 그아이가
마음에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진실로 다해줄수없을것같아..제마음을 숨기고있었지요..
그러고서 빠르게 우리는 가까워지고 정말 그때 저는 행복했읍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자신을 아끼고 또 그러한 누구가를 만나다는 사실...
그런데 집사람이 동생들이 우리집 오는것을 무지싫어해요 자주오는것도아니고...
또 우리집 식구를 그다지 어머님 앞에서도 설거지 하다가 그릇 크게소리내고 인상쓰고
저는 집으로 오면 언제나 달래고 그런일상을 보내고 6년전
어머님이 물김치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셔는데 집사람이 왜전화하셧데 저는 순간 화가나 무어라그러고 그순간 집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당시백일지난 둘재아이 까지데리고나가서 3달을 연락이없다가 집으로 와서 이혼하자 그러고 아이들을 놔두고 가더군요..
정말 그당시 이혼을 할려다가 잠들어있는 작은넘 우유병을 마시면 방긋웃던 그미소 순간 내가 내 애기들에게 죄를 짓는구나 집사람을 찾아가 몇번을 찾아갔지요 그당시 둘째오빠집으로 가서있더군요 매일찾아가 무릎꿇고 처가집식구들이 모인자리에 집사람에게 물어보더군요 왜 이혼하자는거냐
그냥 시어머님이 싫어요 순간 다 어이없어 하더군요 다른문제없어 신랑하고 그러더니 집사람 하는말 우리 신랑은 머리에 어떡하면 애들과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그생각만잇는데 시어머님은 싫다.
우리 어머님이 전화하는것조차 싫어합니다..그러고서 집으로 와 많은 생각했읍니다..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보니 그러고 집사람에게 가서 그래 연락끊고 살겠다 그러고 우리는 이사하고
2년을 연락없이 지내다가 동생이찾아왔더군요 너무연락이없어 어머님이 걱정하신다..
그러고서 며칠후 어머님이 오셧지요 그날저녁 집사람 집을나가더군요.. 정말 미치겠더군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부모님게 우리어머님에게 불효를 종이와 펜을가지고가서 앞으로 몇년간 우리집을찾아오지않고 연락않는다 어길시 얼마의 위약금을 준다는 정말 저같은 넘이 어디있을가요
어머님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쓰는 어머님의 심정은 그래도 저는 지키고 싶었읍니다.
제 자식과 가정을...어머님도 이혼보다는 그것이낳지 그러면서 어떤 심정으로..
그리고 일주일후 그것을보여주고 은근쓸적 들어오더군요..
그리 또몇년이지나 제가 일하는곳에서 돈이 잘안나오던군요 3달정도 3달동안 집에20만원 주엇읍니다.. 자꾸 돈을미룬다 좀 지나서 안돼면 고소할생각이야
저는 집사람과 만나서 그당시있던직종에서7년정도를 더하고 IMF이후 너무나 힘들어져 흔히 말하는 아기 분유값이라 그러면서 잡부를 시작하게돼었지요..
다행히 저는 저를이뻐하는 사장님들이많아 정말 여러가지 분야의 일을다니던중..
그리몇년정도 지나자 조그만 건설(시공)회사의 부장님이 저를 좋게보시고 그부장님라인으로
일당으로 시작해서 관리직가지 올라가 과장까지올라갔지요 말단직원부터.....
물론 현장 감각이 좋다는 이유가 크겟지만..그리보내다가 회사에 여러가지 싸움이 있고..
저를 키워준 부장님은 밀려나고 저는 2년을 더버티고 회사사정도 급격히나빠지고
여러가지 이유가 물려 일단 그회사를 나오고 공백기 동안 집사람이 둘째 오빠일을 잠시 도와주었지요 둘재형님 사정이 너무어려워 돈하나못받고 제가 모아둔 비상금 형님 활동자금하라면좀드리고
공사 적자나서 인건비 모자를때 드리고 하니 정말 힘들더군요..그러고 저는 일단은 식구들 건사해야 겠다는 생각에 이일저일하면서 그것이 작년말 정도의일입니다...
그런데 그형님이 올해 중반에 돌아가셔는데...애들 외숙모가 저를 찾아와서 정리를 부탁하더군요.
사실 전부빛이라 누구하나 나서지않고 처가집형제들 다 몰라라하고
처가집오빠 3명이있는데 큰형님-알콜중독(술먹으면 정말 개나리)이형님 저보면 날새도록먹고 주정부리면 집사람 오빠라 다받아주고 막내형님-사이비종교 광신교 저만보면 믿어라 하는데 이것참..
그래서 알았다하고 저녁마다 정리를했지여 전부빛이라서.....며칠하니 코피가나더군요..(제가 건강체질이라 코피 2번쏟아는데 그중에한번)집사람 고맙다 말한마디없더군요 오히려 그정도도못해
그러고서 몇달일거리가 있다해서 가서일하는데 돈이안나오더군요...차비없어하면 10만원씩..
그것 집사람 준돈임 3달동안20만원..집사람 나한테 성질내고 그러다가 추석 어느정도의 돈을받았지요 그러고 집에오니 더이상 실기힘들라는 쪽지만남기고 애들은 밥도못먹고 있더군요..추석 전날인데...제목처럼 저는 어찌해야할지 연락도없네요...
이제는 이혼할까생각중입니다..그동안 다른일 준비해온것도 조금씩 비전도 보이고...
못받던 돈도 어느정도 해걸돼고 저는 다이해할수있읍니다..제가3달동안 돈20만원 가장으로써..
집사람으로써 힘들겟지요..그러나 제가 이해할수없는것은 애들 밥도안해주고 굶고있더군요.
제가 돈받기위해 며칠지방에 내려갔다옴..(우여곡절이많음) 애들이 전화해서 어제밤에 엄마가
안들어왔다 우리큰애기 전화하는데 부랴부랴 집에오니 애들 밥먹었어하니 아니...이러는데
저는 저에게 어떠한것도 다이해할수있읍니다.그러나 아이들을 그리방치하고 돈이라돈은 다들고 나간 집사람을 다시 받아들이기 힘들것같읍니다...돈문제를 떠나 이제는 지칩니다..
단지 집사람이 나의20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고 나에게 처음 안식이라는것을 준 여자라..
어찌하던...같이 노년을 맞이하면 살고싶었지만..이제는 저도 지치고 많은부분이 용납안돼요 특히아이들..물론생활비 못준것 저 여지껏 돈벌어온것 전부집사람에게 갓읍니다.회사다닐대도 제통장아닙니다 집사람명의 통장으로 입금돼고 더이상은 정말지치네요 애들반찬준비하다가 너무 힘들고
여기모인분들이 저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선택을할지...
글을 끝가지 읽으신분들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p/s 우리동생들 언제나 올케 형수 에게 미안해서 언제나 앞에서 성질내고 짜증부려도
형이이해해 오빠가이해해 이러고서 우리집 자주안옵니다.
어머님도 가끔 명절때보면 잘해주실려고하고 전화한번 우리집가자는 소리절대안합니다
혹시라도 그런일 터질까봐
저 어느순간은 냉정하게봅니다. 어떤분들은 위글을보고 얼마나 시집살이..
명절때 잠깐 보는것 우리집 아버님이 아프신후 친척이고뭐고 아무도없이
우리 식구만 모입니다...설거지나 그런것 어머님이 거의다 하시구요
시누 도련님 명절대보면 그래도 저의집사람이라고 편하게 해주고 싫은 소리안합니다.
여동생하고 동갑인데 놀러가도 여동생이 다 지불하지요
남동생하고 가도 그렇구요...
뭐 원래 우리집사람이 무지짜요 또 동생들도 나하고 살아주고 고생하는것이
고마워 언제나 예의를지키고 오히려 저의 집사람이 성질내고 눈치주고...
뭐 사줄때는 그나마 좀나아져요....그래도 본성은 착하고 여린 여자라 믿고
이해하고 안아주면 살고싶엇는데...이번일은 저에게 정말 ...
리플 감사합니다.
일단 이혼은 연락이 오면 진행해야할듯 싶네요 일단 아이들과 저부터 적응훈련을 거쳐야할듯그나마 아이들이 엄마를 안찾아요 어느정도 커서그런것인가 초5 7살 어머님 집근처로 이사도생각했지만 큰아이와 상의한결과 전학을 하면 왕따 풍습이있다하네요 아이에게 정신적 고민은 더이상 주기싫네요 물론 어머님집근처로 이사하면 제가 조금은 수월한듯싶지만..
다행히 애들이 아빠하고살거야 이러니원 ..요즘애들이 이런것인가 싶네요
생각보다 정신적인 성장이 빠르네요 뭐 티도안내요 엄마애기도없구 둘이웃고떠들고잘합니다.
저도 어렵게 자라서인가 또래보다는 생각을 많이하면 살았는데 아이들에게도 그런아픔을 주는것같아 그저 아이들에게 죄인입니다. 반찬같은것 인터넷뒤지면 하는데 ^^ 물론 어머님께 공수할수있지만 글에서 나왔듯이 부모님게 그런것을 요구한내가 무엇을...그저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고개숙이고있읍니다..일단은 제가 제자리서 흔들리지 말아야하지요 제가 흔들리면 아이들이 힘들어하니 조금식 조금식 아이들과저 자신을 훈련시킬 생각입니다 뭐 언제가는 연락이 오겠지요...저의마음은 아직 약간의 미련인지몰라도 아마 정일듯 싶네요 일단 제자리서 조금식 준비할것입니다...그리고 연락이오면 다시 진행해야지요 이혼이던 결합이던 지금마음으로는 이혼이 더많은 자리를 잡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