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쉰 뒤 우리는 편의점 양 편의 건물 탐색에 들어가기로 했다. 팀을 짠 방식은 나와 수정형으로 한 팀, 태완이와 아름이로 한 팀. 아무래도 아직 수정형과 아름이 만으로 팀을 짜기엔 좀 불안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방식이다. 내 의견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군말없이 동의했다.
일단 (그나마)키가 큰 우리 팀이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왼쪽 건물로, 태완이와 아름이 팀이 유리창을 찾고 내려와야 하는 오른쪽 건물로 가기로 했다.
"안쪽에 좀비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해."
"알았어."
이 편의점이 위치한 골목 안은 좀비들이 적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는. 뭐 좀비사태가 일어났다고 해서 이 나라 어디에서나 좀비들이 득시글거리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니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좀비 사태가 일어난지 겨후 사나흘.. 벌써부터 긴장을 푼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까맣게 타서 죽어있던 그 할아버지와 내 앞에서 죽어갔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되새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아무도 없는건가."
"아무도 라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라고 해야 하나.."
"둘 다죠 뭐. 그 새끼들을 사람으로 취급할 수는 없고, 동시에 사람들을 물건으로 취급할 수도 없.."
"조심해!"
선두에 선 내가 고개를 돌린 채 형과 얘기하며 걷고 있는데 앞을 주시하고 있던 수정형이 내게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도끼를 휘두르며 몸을 낮췄다.
"개?"
중형견이었다. 서 있기만 해도 위협적일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빌라의 복도. 형과 내가 이쪽, 저 개가 저쪽에 서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통로는 가득 찼다. 나는 개들을 무지 좋아하고 평소에 개들도 나를 잘 따르는 편이라 나는 오랜만에 만난 개에게 이 지옥에서 잠시나마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 반가워서 손을 벌리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
"괜찮아, 임마. 안 해쳐."
"진환아, 그 녀석 좀 이상하다."
"에?"
수정형의 말에 나는 다가가던 몸을 멈추고, 날이 개를 향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거꾸로 잡았던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살짝 몸을 뒤로 뺐다.
"그 녀석 입주변좀 봐. 빨갛지 않아?"
나는 눈을 찌푸리고 살짝 먼 거리에서 녀석의 입가를 잘 살폈다. 확실히 뭔가 빨간 빛으로 물들어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생피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질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하지만 긴장하기 시작하면서 말했다.
"짬뽕그릇 갔다놓은 걸 먹었겠죠 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그르르.. 컹! 컹!"
"저 봐. 조심해 진환아. 무기 잘 들어."
녀석은 우리와 거리를 둔 채 우리를 향해서 위협적으로 짖기 시작했다. 개를 키워보거나 개와 많이 접촉해 본 사람은 개가 짖을 때 단순히 위협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짖는 건지를 알 수가 있다. 이 녀석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이쯤 되자 나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좀비견이라던가 하는 건 아니겠.."
"크와아아악!!"
"와나 신발!!"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중형견은 내 가슴팍을 향해 시뻘건 것으로 물든 입을 벌리며 돌진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빼며 넘어졌다.
탕탕탕 탕 탕-
그리고 들려온 수정형의 총성. 숨을 몰아쉬면서 일어난 나는 내 머리맡에서 총탄에 의해 몸이 박살나 곳곳에서 김을 뿜고 있는 개.. 아니 좀비견을 볼 수 있었다. 수정형은 아직 사격이 익숙하지 않은지 많이 들려온 총성에 비해 녀석의 몸에 난 구멍은 겨우 세 개. 그래도 뭐가 어쨌건 놈은 죽었다.
"신발 똥강아지!"
나는 욕을 터뜨리며 개의 시체를 발로 밟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개를 밟아 으깨는 건 좀.. 이 녀석도 살아있었을 땐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성격좋은 애완견이었을 수도 있었겠지.
"후우..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 알아 진환아?"
수정형이 숨을 몰아쉬고 벽에 기대며 내게 말했다. 나는 말도 말라는 식으로 손을 흔들면서 무기를 집고 일어났다. 이젠 좀비견이냐.. 작작좀 하시지 그래.
"동물한테도 감염이 되는 모양이네요. 그나저나 형, 총 그렇게 쏴도 돼요?"
형은 탄창을 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는지 자루 부분을 손톱으로 깔짝거리며 말했다.
"나는 물건을 쓸 수 있을때 쓰자는 주의라서 말야.. 아껴놓을 만한 건 아껴놓아야 하지만 급한 상황에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얻은 총이었지만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놈의 시체를 살피기 위해 몸을 숙였다.
이미 눈앞에서 골이 빠개지고 배가 터진 시체들을 몇수십이나 보아온 터라 개의 시체는 거의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얼굴을 살폈다. 예상대로 눈이 시뻘건 게 대단히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눈깔이 빨개요."
"상처로 좀비의 피가 들어갔는지 좀비의 살점을 먹어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빌라 안에 있는 개가 감염되어 있다면 답은 하나지."
"이 안에도 좀비가 있단 건가요."
갑자기 공기가 바뀌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침을 삼키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공간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뀌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에 더욱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빌라의 구조는 상당히 특이했다. 입구를 들어가면서부터 복도가 쭉 펼쳐져 있고 양 쪽에 방이 하나씩 있다. 복도 끝엔 미는 철문이 달려있고 거기서부턴 램프계단 식으로 빙글빙글 꼬여 올라간 계단이 있었다. 나는 계단 위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계단은 좁은데 가다가 좀비라도 만나면 진짜 끝내주겠네요."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말자 진환아.."
수정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하고 싶은 말이다. 좁은 공간에 식인괴물과 맞딱트려 피를 튀기고 싸운다니.. 말이야 쉽지. 나는 저 좀비견을 이곳보다 훨씬 협소한 곳에서, 혹은 혼자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를 상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방금만 해도 수정형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 지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냄새맡는 변종좀비에게 당한 오른쪽 귀가 새삼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아냈다.
총성이란 건 생각보다 대단히 시끄럽다. 이럴 때 무전기라던가 단시간에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면 옆 건물로 간 태완이와 아름이에게 조심하라고 일렀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기계는 우리에겐 없었다. 나는 녀석들이 총성을 들었기를 희망하면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해라 얘들아..
계단 홀로 들어서자 왼쪽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형이 나를 붙잡았다.
"막 누르지 마."
"왜요? 작동하면 좋지. 다리도 아픈데.."
"영화같은데서 보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나도 안다. 형은 '너도 알지?' 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나 대신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엘리베이터는 작동했다. 엘리베이터는 꼭대기인 3층에 있었다. 우리는 얼른 뒤로 빠져 문이 열리는 순간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보조무기로 가져온 쇠파이프로 견제할 준비를, 수정형은 빗나가지 않게 무릎을 낮추고 총을 입구 부분에 조준했다.
땡
벨이 울리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형보다 앞쪽에 서 있던 나는 엘리베이터 안의 광경을 보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안엔 사람 한 명이 목과 다리에 물어뜯긴 자국이 난 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끄러져 죽어 있었다. 목 부분은 특히 심하게 물어뜯겨 괴기스러운 각도로 꺾여져 있었다.
"언제나처럼.. 실망시키지를 않는구나, 이 현실은."
좀비가 된 후에 죽은건지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허옇게 뜬 시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여행이라.. 나는 싫다.
"걸어가야겠죠."
"그러자."
수정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 그런 이유를 떠나서 우리가 만약 이 건물 옆에 붙은 편의점에서 머무르기로 한다면 좋으나 싫으나 이 건물 안에 있는 위험요소를 치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별로 하고싶지는 않지만.
덜컹
"..덜컹?"
몸을 돌리고 수정형을 따라가려던 나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시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형! 좀비!"
"뭐?"
이미 2층까지의 계단을 반쯤 올라간 형이 급히 내려오며 총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계단 위로 펄쩍펄쩍 뛰어올라가며 쇠파이프를 꺼내들었다.
"께아아아아악!!"
"우악!"
광속처럼 굴러일어나며 이쪽으로 뛰어오는 좀비를 보며 나는 식겁해서 비명을 지르고 몇 계단을 더 뛰어올라갔다. 놈은 전력으로 달려와 계단에 온 몸을 충돌시켰다. 계단을 온몸으로 기어올라오며 나를 향해 팔을 휘젖는 모습을 보며 나는 패닉에 휩싸였다.
뛰는 좀비다!
나는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수정형에게 말했다.
"으아아 형! 이새끼 뛰어요! 빨리 위로!"
"뭐? 제기랄, 갈수록 태산이구만! 피하기보다 지금 내가 총으로.."
"빨리!"
놈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는 나는 무엇보다 어서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떻게 이놈의 세상은 불안한 상상을 하면 그대로 재현을 해주는 거야!
"헉- 헉- 헉-"
놈은 아직 계단에 부딫혀 넘어진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놈의 저 꺾인 목.. 온몸에 피칠을 한 채 7자로 꺽인 목으로 나를 바라보며 팔을 휘적거리는 모습은 나를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건강한 두 다리를 두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기어서 계단을 올라갔다. 진짜 미칠 지경이었다. 뛰어올라가면 놈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텐데 도저히 그러기가 힘들었다.
"으아아! 빨리!"
어느새 나한테까지 내려온 형은 총을 혁대에 끼우고 나를 일으켜세워주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탕 탕
"제길 안 맞아!"
수정형도 적잖게 당황했는지 허둥거리며 총을 쏘았지만 요란스럽게 버둥대며 계단을 기어올라오는 좀비를 맞추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놈들은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형! 일단 위로 올라가서 생각해요!"
"알았어!"
나는 이를 악물고 계단 옆의 쇠 보조대를 붙잡은 채 전력으로 위를 향해 뛰어올라갔다. 만약 이 빌라 안에 또다른 좀비가 있어 이 소동을 눈치채고 위에서 나타나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게임오버겠지만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유따위는 없다. 나는 놀고있는 손에 손도끼를 쥐었다.
"헉.. 헉.."
기어올라오는 놈보다는 아무래도 우리가 훨씬 빠르다. 벌써 3층에 도달한 나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철컥
"젠장할! 안 열리잖아!"
나는 불안한 눈으로 아래를 쳐다보았다. 2층 복도까지 기어올라온 좀비는 디디고 있는 곳이 평평해지자 몸을 곧추세우고 제대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계단에 접어드는 순간 곧바로 다시 넘어져 계단에 얼굴을 비볐다. 좁은 빌라 안에서 쿠당탕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지며 나를 한층 더 어지럽게 했다. 수정형이 아래쪽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어쩌지? 싸운다면 지금 내려가서 죽여야 해!"
"형! 잠깐만 그 총좀 줘봐요!"
"뭐? 왜?"
형은 내게 물으면서 총을 건네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손도끼를 형에게 건넨 뒤 총을 들고 문고리 살짝 옆을 겨냥했다.
타앙
"큭!"
총의 반동은 생각보다 거셌다. 나는 다시금 총을 쥐고 다섯발 가량을 손잡이와 그 근처에 쏴넣었다.
"제발 열려라!"
콰앙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손잡이 옆을 발로 차자 문고리가 박살이 나며 문이 열렸다. 나는 기어나오다시피 하며 옥상으로 나왔다. 수정형도 다급히 밖으로 나와 내게 손도끼를 건네며 총을 가져가 곧바로 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세를 잡기 무섭게 좀비놈이 기어올라왔다.
탕 타앙
형이 총을 두 발 쏘았지만 한 발은 놈의 얼굴을 스치고, 한 발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놈의 목이 꺾여 머리가 이상한 방향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목이 덜렁거릴 정도로 꺾여 머리가 가슴팍에 붙어있는 걸 본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지만 놈이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자 나는 이를 소리나게 물며 손도끼를 들고 돌진했다.
"으아아아!"
빠직
나는 무리해서 머리에 손도끼를 꽂아넣으려 하지 않았다. 내 손도끼가 작렬한 곳은 놈의 덜렁거리는 목뼈. 비스듬히 꽂힌 손도끼는 놈의 목을 더럽게 잘라버렸다. 목을 잃어버린 신체가 눈앞에서 흔들거리자 나는 욕을 뱉으며 놈에게 앞차기를 선사해주었다.
"뒈져!"
퍽
좀비의 몸뚱이는 몸을 푸들푸들 떨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뒤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곧바로 내 발치에 떨어진 좀비의 머리통을 걷어차 빌라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헉.. 헉.. 아 진짜 무서웠다. 홈런이구나~"
수정형은 손을 미간에 대고 짐짓 멀리 보는 척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신발을 벗고 발등을 문질렀다.
"헉.. 헉.. 사람 머리란게 생각보다 무쟈게 무겁네.."
나는 얼른 계단 아래쪽을 다시 보았다. 다행히 다른 좀비들이 뛰어올라온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다시 건물을 탐색해야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기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옥상을 살펴보았다. 돌난간이 쳐져있는 평범한 옥상이었다. 저쪽 구석에 안테나 접시가 보이고 빨랫감을 거는 줄도 보였다. 나는 한쪽 신발을 벗은 그대로 그냥 걸어서 편의점 옥상을 내려다보았다. 높이가 대충 3미터가 좀 넘어 보였다.
"형 이거 뛰어내릴 수 있겠어요? 난 할 수 있겠는데."
"글쎄.. 나는 행동파가 아니라서. 하하."
나는 대충 거리를 가늠해본 뒤, 문 쪽으로 돌아가 신발을 다시 신었다. 살짝 계단 아래를 보니 아까의 좀비 몸뚱아리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뭐 당연한가.. 목이 날아갔으니. 소뇌에서 보낸 신호를 통해 몸을 움직이는 건 척수.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해주는 게 다름아닌 목. 목뼈를 보는 순간 그 생각이 퍼뜩 나 실행한 비책이 빛을 본 것이다.
..뭐 그것에 대한 생각은 이쯤 하자. 어쨌건 살아남았으니. 이런식으로 주절거리는 건 태완이나 할 짓이다.
나는 신발을 탁탁 치며 난간 위에 올라섰다.
"형 이정도 높이면 잘못하면 다치니까 저 잘 보고 따라해봐요."
프리러닝이라는 스포츠가 있다. 흔히 야마카시라고 잘못들 알고 있는데, 내가 한때 그것에 빠진 적이 있었다. 뭐 흉내만 내 본 정도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낙법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익혀 두었다. 나는 몸을 곧게, 하짐나 무게중심을 살짝 앞으로 잡으며 뛰어내려 착지하는 순간 몸을 앞으로 굴리며 일어났다. 내가 먼지를 탁탁 털자 형이 위에서 외쳤다.
"우와~ 대단하다!"
"기본이죠. 형도 빨리 내려와요."
"으으.. 그냥 니가 안에서 열어주면 안 돼? 난 계단으로 내려갈게."
"안에 좀비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외치자 형은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알았어. 해볼게."
수정형은 내 시야에서 잠시 사라진 뒤, 훌쩍 나타나 이쪽으로 뛰어내렸다.
"앗 형! 몸에 힘.."
쿠당탕
"아이고.."
"낙법을 해야지 뭐하는 거예요! 안 다쳤어요?"
몸을 곧게 하고 다리부터 잘 떨어져야 몸을 굴리기가 쉽다. 형은 온몸에 힘을 주고 뛰어내린 바람에 제대로 충격흡수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형은 숨이 막히는지 쿨럭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쿨럭.. 으응.. 다치진 않은 것 같아. 나는 너처럼 몸이 날래질 못하다구."
드르륵
내가 수정형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는데 갑자기 저쪽에 있던 창문이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내가 있던 자리에서 달려 멀어지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연 건 다름아닌 태완이와 아름이었다.
"여어 진환아! 벌써 내려와 있었어? 무사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면 모르냐! 빨리 와. 좀비인줄 알았네.."
우리와는 다르게 그 창문은 옥상에서 거의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녀석들은 가뿐히 아래로 내려왔다.
"총소리를 들었어."
"어어.. 좀 난리좀 쳤지. 새로운 소식 하나 있다. 좀비 바이러스, 개한테도 감염되는 모양이야."
"네?"
아름이가 놀라서 외쳤다. 뭐 내가 반대 상황이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리는 눈이 충혈된 개라.. 하하. 산책하다 맞딱뜨리기는 싫은 상대지.
태완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 동물한테도 감염된다는 소린가. 위험한데."
"뭐 그래도 변종 좀비들보단 아니지."
내가 말하자 태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도 않아. 만약 좀비의 시체를 파먹은 비둘기떼 같은 것이 다 좀비화되어버려 우리에게 달려든다고 쳐봐."
"으으.."
수정형은 가히 상상히 간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도 그렇군. '다른' 동물들이 좀비화된다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 보았군.
까악- 까악-
다음 순간 머리위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흠칫 놀라며 위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그건 그냥 날아가고 있는 까마귀였다. 나는 잔뜩 쫄아서 위를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거 걱정하는 건 너무 이르고, 일단 여기까지 온 것 만으로도 자축할 일이야. 그쪽 건물은 어땠어?"
"깨끗해. 좀비는 한 마리도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편의점의 옥상 문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제대로 이사 할 때가 온 건가. 우리들의 새 집을 한 번 구경해보자구."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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