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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산책(13) 덕수궁-동양과 서양의 만남

그린그림 |2009.08.13 14:21
조회 150 |추천 0

고궁산책 마지막을 장식할 궁은 덕수궁입니다.

그 동안 경복궁을 시작하여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을 거쳐 드뎌 덕수궁을 갔다오면서 고궁산책을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다섯개의 궁이 얼핏 "다 가기서 거기 아니겠어?" 이렇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비슷한 듯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멋을 자랑하고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진 모두가 소중한 유산들입니다. 베이징의 자금성보다 규모는 모두가 작은 궁이지만 우리의 서울은

다섯가지의 멋을 가진 아름다운 왕궁을 가지고 있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궁밀리어네어에서 미션을 수행하며 퀴즈를 맞추는데 난 왜이리 싶던지 ㅋㅋ

주위에 한국, 아니 서울에서 살면서도 다섯 궁을 모두 가본 서울시민이 의외로 많지 않더군요. 어때요 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덕수궁은 하면 전 고종황제가 먼저 떠오르는 군요.  

덕수궁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실까요? 고고고~~

[덕수궁]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되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 1907년 7월 20일에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전위 하자 선제가 거처하는 궁이 되어 덕수궁이라 하였다.

 

설명을 보니까 덕수궁이라는 이름에 슬픈역사가 담겨있다. 경운궁이라 불러야 할듯...

 

 

최근 대한문앞이 故노무현대통령 서거와 관련해서 뉴스에 많이 등장한 장소여서 인지 오늘은 그 자리가 더 특별하게 보이네요.

 

덕수궁은 다른 궁에 비해 도심에 자리 잡에 서울의 현재와 과거가 잘 비교되는 곳이다.

 

덕수궁에는 서양식 건물 2채가 있는데 하나는 덕수궁미술관과 석조전이다.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지금 보테르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궁에서 산책도 하고 미술관도 관람하고 일석이조^^

 

덕수궁미술관과 석조전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석조전은 기둥 윗부분은 이오니아식,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한 서양식 건축기법이 특이하다.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건축양식을 따른 것으로 당시 건축된 서양식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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