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여행 다녀왔습니다. 컴터에 서툴어해서... 제가 옮겨 왔습니다.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이 글은 오불생활자 카페에 당사자가 올린 글이 있습니다.
1. 사건 상황
2009년 8월 23일 8시 30분경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에서 뉴욕, 도쿄 환승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아메리카 에어라인에서 체크인을 끝내고
브라질을 벗어나기 위해 출국장에서 심사를 받고 있었다.
상파울로 대사관에서 새로 발급받은 전자 여권이었으므로 브라질 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이 이상했는지 담당자는 누군가를 불렀고 그 사람은 껌을 쩍쩍 씹어대며 여권에 왜 브라질 입국 스탬프가 없냐고 하였다.
본인은 페루에서 짐을 도둑을 맞았다. 그래서 페루 내 한국대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 볼리비아로 넘어갔고
다시 볼리비아 내 한국대사관에 가서 여행증명서를 받아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로 들어왔다.
그러나 본인의 비행기가 미국를 경유하는 것이라, 미국 비자를 받아야했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 받을 때는 한달이 걸리지만 전자 여권을 새로 만들면 금방 받을 수 있어서 새로 만들었다.
브라질 입국 스탬프는 아메리카 에어라인에서 체크인을 할 때 승무원이 확인했으며
브라질 입국 스탬프를 받은 여행증명서는 체크인할 때,
가방에 넣어서 보냈기 때문에 원한다면 본인 짐의 표로 가방을 찾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을 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도 여행증명서를 새로 발급받아 이동을 했으며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껌을 씹으며 계속 컴퓨터를 두드리며 시간을 끄는 그 사람이 본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브라질에 입국할 때의 자료가 있으므로 컴퓨터로 조회를 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 컴퓨터로 조회해 보면 나올텐데. 왜 이러지?”라는 말을 하자.
본인을 향해 “닥쳐(shut up)”라고 위협적으로 말을 하였고
그의 행동에 놀란 본인은 “what?”이라고 하자.
출국 심사 스탬프를 찍은 후, 출국 심사장 옆 사무실로 끌로 갔다.
그의 행동에 놀란 본인은 그의 행동에 대해 집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의 이름을 노트에 적으려 하면서 “당신의 이름이 뭐냐? ”라고 했다.
이 말에 사무실 앞에 있던 다른 사람이 위협적으로 검지 손가락을 본인의 얼굴에 들이대며
“닥쳐(shut up)”을 외치면서 사무실로 끌고 갔다.
그가 사무실의 문을 닫자마자, 앞의 쇼파에 본인을 내동댕이치고
뒷머리만을 구타하더니 나가서 한 여자를 데려 왔고
그 여자는 본인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므로 양손으로 머리를 번갈아가며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저항하던 와중에 여자의 오른손 손바닥 방향의 손목에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생겼다.
본인이 경찰을 불러달라는 말에, 자신들이 경찰이라고 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몸 뒤로 손을 돌려 수갑을 채운 뒤, 구타를 했다.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해달라는 말에 시간이 늦었다고 하여,
본인이 포르투갈어와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알고 있으니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하였다.
본인이 이 말을 할 때마다 구타와 폭언을 행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당신의 행동에 대해 브라질 정부를 통해 물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자.
그들이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고 자신들의 언어로 크게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이 상황에 대해 한국에 돌아가서라도 외교통상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사건 서술이 중요하다고 여겨 이름을 보지 못하게 했으므로
인상착의와 당시의 시간을 확인하려고 노력하였다.
처음 본인을 구타하기 시작했던 사람은 대머리에 배가 나오고 그곳의 우두머리인 듯 책상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지시하였다.
본인을 구타했던 여자는 등 정도의 길이를 한 갈색머리, 유럽 계열의 얼굴로 이름은 ....., FED...한 여자였다.
출국심사장에서 껌을 씹으며 컴퓨터를 보다가 본인을 사무실로 데려온 남자는 붉은 기미가 있는 갈색머리, 턱수염을 하였으며
배가 나오지 않은 보통 체형의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출국심사장에서 보던 남자가 본인이 교사냐고 물었고
“맞다. 내 학생들에게 브라질에 대해 잘 가르쳐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잠시 후 한 남자, 본인을 도우려고 애썼던 것으로 보였던 남자가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 체크인할 때 보냈던 짐을 가져왔고,
아메리카 에어라인에서 비자와 브라질 입국 스탬프를 확인했었다고 보고했다.
본인이 시간을 확인한 것이 9시 50분 즉 10분 전 10시, 본인의 신상을 확인하고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짐을 가져온 것은 그 이전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야기만 할 뿐이고 그 상태로 계속 있게 하였다.
그들이 계속 웃으면서 무슨 잔치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므로
이들이 문제를 해결할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가방을 열어보면 브라질 입국 스탬프가 찍힌 여행증명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방 안에 있다. 확인해라”,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겠다. 우리에게는 통역관이 필요하다.
포르투갈어와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하겠다”
이 말을 할 때마다 폭행과 폭언이 있었으며
그들은 “우리가 영어를 잘하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통역관은 필요없다. ”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면서 본인을 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으며, 그때는 출국심사장의 턱수염 경찰관이 본인의 짐을 들고 뒤를 따라왔다.
이동 중에 여기저기에서 놀라며 ‘코리아’라는 말을 하는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인을 구타했던 여자가 팔장을 끼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계속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도 황당해서 “너 지금 노래하고 있냐?”라고 하자. 자신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였는지
그때서야 콧노래를 중단하였다.
다른 사무실에서 본인의 가방들을 뒤지면서 시종일관 웃을 참지 못하는 그들을 보았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본인이 그들의 웃음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옷을 담아둔 가방에서 본인의 옷을 공중에 날리며 히히덕거리며 ‘코리아’를 외쳤고
수영복과 속옷(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속옷을 담아둔 비닐을 풀은 것이 아니라 찢어놓았다)을 보면서 낄낄거리는 그들을 보면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본인으로서는 남자들 앞에서 내 속옷과 수영복들이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지금 뭐하는 거냐”라고 하였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흑인 여자가 키득키득거리며 ‘코리아........’ 라고 하면서
신발로 본인의 옷을 짓밟기 시작했다.
이러는 ‘와중에 계속 전화를 하게 해달라’라고 했고 이에 대해 폭행과 폭언이 뒤따랐다.
본인의 목에 가방 두개를 걸려고 하기에, 본인의 짐을 확인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거부하자
얼굴에 무슨 스프레이를 발사하였는데, 이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며 오른쪽 눈을 거의 뜨지 못하게 하였다.
가방 두개를 목에 걸게 한 뒤, 옷을 짓밟았던 여자가 왼쪽을, 폭행했던 여자가 오른쪽을 잡고 문을 나가는데,
두 명의 여자가 보였고 문쪽에 있던 외국인이 놀라 입을 벌리고 한 손을 올려 입을 가리며 ‘코리아’ 하였다.
그리고는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게 공항을 휘저으며 끌고 다녔다.
왼쪽을 잡고 있던 옷을 짓밟았던 흑인 여자가 계속 손을 뒤틀며 팔뚝 안쪽을 꼬집고
몸에 폭행을 가하기에 수갑에 채워있던 검지 손가락을 최대한 뻗어 그 여자의 손을 긁으려 하였다.
오랫 동안을 다녔는데 어디를 다녔는지 잘 모르겠다.
이러는 과정을 거치면서 순간 ‘이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부모님께 연락하지 못했는데...가족들이 나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어쩜 이들에 의해 성추행을 당하지 않은 것이 감사한 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에 본인 두 개의 가방을 걸린 채 ‘개’처럼 공황을 끌려 다닐 때마다 들었던,
‘코리아’라는 외국인들의 말을 들었을 때,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들이 본인이 한국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수치스러웠기에 공황을 다닐 때는 말을 하지 않았고 마지막에 여기에 남을 것이며
전화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도 당연히 영어로 했으며
일본인이 많은 브라질은 본인을 일본인으로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본인을 한국인으로 공통적으로 단정짓는 근거는 무엇일까?
또한 “한국정부는 당신들의 행동에 대해 브라질 정부을 통해 물을 것이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폭소를 터뜨리거나 서로 말을 하면서 껄껄 웃는 것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위협하겠다는 의도로 한 말이 그들에게는 코미디가 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 말에 경찰의 최종 답변은 “여기는 브라질이며 한국인은 여기서 권리가 없다”였다.
이 위협이 통하지 않자, 강한 위협과 양심에 호소하기 위해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를 판단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이것도 먹히지 않았는지 ‘GOD.......’라고 하며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최종적으로 끌고 간 곳은 처음에 들어갔던 사무실, 상황은 동일했다.
결국 이 상황은 하나님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예수님이 생각났다. 본인은 옷이라도 입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으며
구타를 당했을지도 죽을 만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렇게 수치심과 분노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예수님은 어떠셨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은 본인이 사랑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 세상은 내 나라가 아니라 내가 이러한 일을 당한다’ 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고
본인의 처지도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그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본인이 기가 죽어서 눈물을 흘린다고 여겼는지 한 경찰이 다가와 여기 있을 것이냐, 본국으로 갈 것이냐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기 위해 눈을 감자. 본인을 사무실로 끌고 나왔고
본인이 저항하며 “여기에 남을 것이다.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질질 끌고 항공기까지 몸을 누르고 강하게 얼굴을 손으로 짓눌러 땅으로 향하게 하여,
그의 손을 제치고 눈을 똑바로 보며 노려보려 보았다.
그가 본인의 몸을 더욱 강하게 억업하자.
아메리카 에어라인 사람을 의식했는지 한 경찰이 너무 강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지 얼굴을 강하게 눌렀던 손을 치웠다.
그들의 이름을 볼 수가 없었고 포르투갈어를 몰라 들을 수도 없어
이름을 모르는 상황이므로 정확히 이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했다.
그래서 인상착의는 설명할 수 있도록 관찰해놓은 상태이므로
그 날짜 근무한 상파울로 출국장 옆 사무실 총책임격인 경찰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그날 근무한 경찰을 중심으로 사진 파일로 찍어서 보여 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날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러한 본인을 위협하며 저지하려고 했으나 에어라인측의 사람을 의식했는지,
한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본인에게 8월 23일이라고 말해주었다.
날짜를 재확인하고 시계를 보았을 때가 10시 50분이었다.
항공기에 들어오면서 수갑을 풀어주어서, 항공사측에 본인의 짐을 확인하겠다고 하여 두개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에어라인측 사람으로부터 마이애미, 시카고, 도쿄, 한국이라는 말을 확인하고 표를 받았다.
그리고는 정식으로 그들에게 선전 포고를 하기 위해
가방을 매고 옷 매무새를 다듬고 자세를 곧게 한 후 그들 전체를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90도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천천히 힘을 넣어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국 정부는 당신들의 행동에 대해 브라질 정부를 통해 물을 것이다.
한국에 들어간 후의 나의 대처행동을 기다려라”라고 했다.
이 말에 그들은 그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웃음을 다시 보였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서 본인이 조소하며 “ 당신들 지금 웃느냐?”라고 했고
최대한 힘을 주어 “그 웃음이 눈물로 변할 것이다. 기다려라”라는 말을 남기고 기내로 들어가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 세세한 것을 놓칠 것아
본인의 펜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옆 승객에게 펜을 빌려 상황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계속 기록을 하며 최대한 상황에 조그마한 요소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2009년 8월 24일 8시 경에 마이애미에 도착했고
8시 30분 시카고행 환승 비행기를 타기 위해 미국 입국 심사소에 갔으나
담당자가 모든 절차를 끝낸 뒤 본인의 비자를 확인이 필요하다고 사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다 종료하고 비행기를 놓쳐
아메리카 에어라인에서 항공 일정을 다시 잡으면서야 알았다.
본인의 옷은 사건 당시 본인의 가방들을 풀어제치고 정리한 후,
본인의 목에 가방들을 걸려고 할 때, 본인의 가방을 확인한 후
움직이겠다고 말하고 목에 거는 가방들을 거부하는 본인에게 그들이 발사했던 스프레이로
옷 전체가 얼룩져 있었고 구타를 당하면서 이리저리 밀치면서 거지처럼 지저분해져 있었다.
또한 얼굴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좀 멍하게 있었으니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약 2시간 정도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시카고행 비행기가 떠나 다음 비행기 예약을 하는데 환승 연결이 잘 안되지 않았다.
아메리카 에어라인에서 최대한 빠른 한국 입국 날짜라고 하면서 27일 한국 입국 일정을 주었다.
25일까지가 1년 안에 쓸 수 있는 연가 일수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에
26일, 27일은 결근 처리가 되어 승진상의 마이너스와 행정상의 불이익, 봉급의 삭감, 퇴직 때까지는 계속 남는 기록 등의
불이익이 주어지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25일에 입국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여 27일 11시 30분 경에 한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상파울로 공항에서 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탑승한 후의 본인의 상태는 놀라웠다.
몇 단계를 걸쳐 몸이 반응했다.
처음 반응은 약 2일간을 넘게, 그렇게 피곤한데도 몸이 눈을 감기지 않았다.
들어올 때가 11시 경이었으므로 모든 승객들이 잠을 자는데도 계속 무엇인가를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현상은 좀 오래갔다.
나중에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도 수면 상태는 하루에 약 2시간 정도, 많으면 4시간 정도의 이상을 넘지 못했다.
온 몸의 긴장과 정신적 충격, 치밀어오는 분노로 인한 것 같았다.
두번째 단계는 계속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답답하여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세번째 단계에는 멍하니...그냥 있었다.
시카고에서 도쿄까지 약 13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낼 때,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등받이에 몸을 기대지도 않고 꼿꼿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서서히 본인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네번째 단계는 눈물. 그때는 생각하면서
눈물을 조금 흘린 후부터는 멍하니 있다가 가만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를 몇 차례...
환상은 아니고, 내면에 본인의 모습이 보였다.
조여오는 좁은 공간에서 그 벽을 양쪽으로 밀치면서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놈의 거만했던 얼굴과 웃음,
수영복과 속옷을 보면서 낄낄대고 공중에 본인의 옷을 날리고 짓밟았던 사건 당시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놈을 잡아다가 본인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죽여도 본인의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사건 당시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멍하니 있다가 울기를 반복하면서 이러다가 본인이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브라질 경찰에 대한 처분보다도 본인의 상태가 더 걱정되었다.
예전에 억울함을 참지 못해 결국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고
약 10년을 넘게 지금까지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을 떠올랐다.
잘못하면 본인이 그 사람처럼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내에 방영되는 영화를 틀어놓고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이 쉽지 않았다.
27일 11시 30분 경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갔다.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에 자료를 남기고 약 5시 10분 경에 외교통상부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에게 브라질에서 겪은 일을 간단히 말하고 이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분을 연결시켜 달라는 부탁에 대해....
상담원은 상파울로 대사관과 한국 주재 브라질 대사관 전화번호를 알려줄테니 해결하라는 답변을 하였다.
본인은 상파울로 대사관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며 여권과 미국 비자 문제로 상파울로 대사관에 갔었던 일을 말했다.
상파울로 한국대사관에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않고 성실히 본인의 말을 수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화가 나서,
타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의 존재 목적과 신뢰성의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었다.
대사관은 타국에 있는 한국을 돕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타국에 있는 한국인의 경우,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대사관 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타국에 나와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대사관측의 말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는 말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 있는 성실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 대사관측은 말과 행동의 불일치로 인해 본인으로 하여금 힘들게 하고 있다라는 본인에 말에,
대사관측의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대사관은 한국을 떠나 대사관이 있는 해당 나라에서 긴급상황에 처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에 대해
주재 한국대사관이 그들을 도와줄 의무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직원도 없다.
단지 불쌍해서 도울 뿐이다’라고 그들의 입장을 표명했었다.
상담원에게 외교통상부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평생 한국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면,
당신이 대한민국 국적을 버릴 생각이 없다면 지금의 내가 당신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교통상부는 지금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므로 본인이 해결하라는 것이냐.
만약 미국 정부라면 어떻게 대응했겠는가?
일제 시대도 아닌데 왜 본인이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고 언론사에도 알려 공론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하자,
외교통상부 측 상담원은 지금 시간이 그러므로
(전화 전에 공무원 근무 시간이 6시까지임을 확인하고 약 5시 정도가 된 것을 보고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 통화 종료를 확인한 시간이 5시 30분. 퇴근 시간 30분 전 )
즉, 퇴근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다음 날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보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다음 날 오전 중으로 전화를 주겠다고 하였다.
2009년 8월 28일. 그 상담원은 정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업무 담당자를 연결시키지 않았고
본인이 브라질 대사관에서 한 말이라고 하면서 외교통상부 측의 입장을 설명했다.
결론을 말하면 외교통상부의 입장은 ‘대사관은 여권 업무만을 담당한다.
그 외에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고 싶다면
그것은 본인의 일이며 참관 등의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이는 대사관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파울로 대사관의 태도는 결국 외교통상부의 근본 태도에 기인한 것임을 확인하고는
더이상 이런 방식으로 외교통상부와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결정했다.
상담원에게 지금까지 전화상으로 말한 내용이 녹음되었음을 확인했다.
나중에 이 녹음 내용을 사용할 것이니, 자료 요구 시 녹음 내용을 달라고 말하고 외교통상부와의 상담을 끝냈다.
외교통상부의 이러한 반응을 보고 당시에 느꼈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왜 본인이 브라질 경찰들에게 ‘한국정부는 당신들의 행동에 대해 브라질 정부를 통해 물을 것이다’라는 할 때,
동시에 폭소를 터뜨리고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웃어댔는지, 본인의 위협이 왜 코미디가 되었었는지
왜 공항에서 놀란 사람들이 ‘코리안’을 외쳤던 모습....어떻게 한국인인 줄 알았을까?
그렇게 당하는 것을 보니 한국인이구나라고 당연히 여기는 그들의 순간적인 반응의 의미를...
왜 브라질 경찰이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구타를 할 수 있었는지를...
결국 브라질 경찰이 한국인이기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잔치를 하듯 구타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한 것으로, 그 상황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한국 정부였다.
타국에 있는 한국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외교통상부과 대사관,
역설적으로 그들이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인의 신변을 위협하는 근거가 되고 있었다.
대사관과 외교통상부의 이러한 태도 앞에서 많은 한국인이 사건 해결을 그들에 대한 처벌이 아닌
분노의 감정을 삭히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러한 한국정부와 한국인의 반응은 그들에게 강화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 즉 한국인이기에 구타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우리였다.
2. 원인, 영향, 대책
2009년 8월 23일 8시30분 경부터 10시 50분까지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에서,
한국인 여자이기 때문에 브라질 경찰에 의해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인 여자’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
남자의 폭력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여자를 의미했다.
그러기에 입국심사장도 아닌 출국장에서 단지 브라질 입국 스탬프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서
서슴지 않고 구타를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꼬투리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컴퓨터로 조회를 못했다면,
본인이 제시한 증거대로 그 자리에서 전화로
아메리칸 에어라인에 입국스탬프 확인 여부를 물을 수도 있었고,
짐의 표를 제시했기 때문에 가방을 찾아서 말이 맞는지 보면 되는 사안이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구타를 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우리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 중의 하나가 본인이 보기에는
그들이 한국인을 구타하며 모욕주는 것을 무슨 잔치를 벌이듯 신나해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끌고 다니면서 무의적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짐 가방을 뒤질 때는 연실 좋아하며 옷을 공중에 던지고 ‘코리아’를 외치고
신발로 옷을 짓밟는 행동들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했던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혹시 한국인에 대해 어떠한 분노의 감정과 비슷한 부정적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국에서 발생했던 한국인에 대한 흑인 폭동 사건이 떠올랐다.
상파울로에서 놀랐던 사실 중의 하나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잘 산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모여 사는 곳이 각각 있었다. 일본인 거리는 먹는 것을 중심으로 그냥 상가인 반면
한국인이 모여사는 곳은 동대문, 남대문, 명동처럼 의류 및 패션 용품의 상가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곳으로
상파울로 경제가 그곳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할만큼 활성화된 곳이며
그 주변에 상파울로 대표 부촌 세 곳 중의 한 곳이 그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브라질에서 상당히 잘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쩜 그들에 대한 알지 못하는 분노 등의 감정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말도 안 되는 꼬투리로 구타를 하면서 잔치를 하듯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원인은 주재 한국대사관이 본인 업무라고 여기고 있는 부분의 인식과
그로 인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에 대한 태도 즉 대사관은 여권 업무만을 하며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
긴급한 상황에 처한 한국인을 도울 의무가 없다는 식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경찰들은 한국정부는 한국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들이 어떤 짓을 해도 뒤탈이 없다고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들을 당한 많은 한국인들이(대부분은 대학생과 교포일 가능성이 많음)
외교통상부와 대사관의 이러한 태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 포기하는 것으로,
분노를 삭히고 사건을 잊는 것으로 사건을 종료하는 행동들은
경찰들의 가치관과 행동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이번 여행이 대사관 투어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대사관에 대한 현지인들과 여행사들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보고 놀랐었다.
예를 들면 택시 운전사가 한국대사관의 위치를 모른다고 하여 그 나라의 경찰서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경찰이 약 2시간(9시부터 11시까지)을 헤매더니만 안되겠는지 경찰 본부에 내려 주었다.
본부에서 11시부터 2시까지 장장 3시간 동안 전화를 붙잡고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메일로 아는 여행사가 위험한 일 있을 때,
도움을 청하라고 보내준 현지 숙박업을 하는 분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하여 통화를 했다.
11시부터 2시까지 3시간을 통화를 시도했는데 전화가 되지 않는다.
혹시 이들이 제시하는 번호와 본인이 적은 번호를 동일한데 이 번호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하자.
그분의 답변이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전화 받지 않는 상태에서 가봐야 소용없다. 아마 점심 시간인가보다 기다려라. ’라고 하여
11시부터 2시까지가 점심 시간이냐고 하자. ‘개네들이(대사관 사람들) 여기서 하는 일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사관 사람들은 자신들을 돕는 사람들이 아니라,
본국(한국 외교통상부)에서 잠깐 피신 나와서 골프치고 놀고 있다가
자신이 피신했던 원인에 해당하는 문제가 잠잠해지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다.
페루 경찰관들에게 우겨서 전화 통화를 못한 상태에서 한국대사관을 찾아 갔을 때는
3일간 페루 국경일이라 한국 대사관이 휴무인 날이었다.
부탁하여 대사관 내에 들어가 짐을 다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카드 2개를 정지하고 속옷에 가지고 있던 달러와 체크 카드만으로 움직여야 했고
항공 아웃 변경이 불가능한 비행기표였으므로 육로로 브라질까지 가야 하며 미국을 경유하기 때문에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본인이 천식 환자이므로 고산 지대가 무척 위험하다.
천식 약을 가져오기는 하였으나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페루와 볼리비아를 빠른 시간 내에 움직여서 한다를 이야기했다.
전자 여권으로 할 것인지, 여행증명서로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다가 결국 여행증명서로 가기로 결정했다.
대사관은 3일 간 휴무일이니 3일 후에 오면 대사관에 본인이 도착하는 즉시 발급해 주겠다고 했다.
천식 환자다. 고산증은 일반인에게는 두통 등의 작은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천식 환자는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으며
약이 그리 충분하지 않음을 이야기한 상태였다.
처음 이런 일을 겪는 일이라 휴일에는 불가능한 것인가보다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그것을 본 여자 직원이 대사관에게 오늘 해줄 것을 우겨서 당일 발급 받게 되었다.
다음날 볼리비아 내 한국 대사관 주소를 찾았는데...
예전의 자료로 볼리비아 대사관 철수 등의 내용을 보고는
현재 볼리비아에 한국 대사관 여부를 재확인하기 위해 페루 내 한국대사관을 다시 찾았다.
만약 볼리비아 내에 한국 대사관이 없다면 그곳에 들어갔다가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갈 수 있는 여행증명서를 다시 만들지 못하면,
약이 떨어져서 본인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다급하게 휴일이지만 다시 찾아가 한국인을 찾았다.
그리고는 볼리비아 내 한국 대사관이 있는지 물었다.
그 대사관 왈 ‘인적사항 좀 대봐’ 이 말에 좀 화가 나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죄를 지어서 경찰서에 온 것도 아니고,
언제 본인을 봤다가 처음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것이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인적사항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짐을 도적 맞은 것과 어제 대사관을 만난 것을 이야기하면
천식 환자이므로 페루, 볼리비아가 본인에게 위험하다.
어제 만났던 대사관님과 통화하고 싶으며, 볼리비아 내 한국대사관 존재 여부를 알고 싶다고 밝혔다.
기분이 상했는지 답변을 해주는 대신 ‘명색이 대사관인데, 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했다.
인사를 했으나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트집....이 말을 들으면서 조금은 화가 났다.
‘본인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인데,
지금 대사관님에 대한 존경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냐,
그리고 본인이 죄를 지어서 경찰에 왔느냐 보자마자
인적사항을 물어보고 언제 봤다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반말을 하느냐.
본인은 보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따졌었다.
여행사 분의 경우, 한번은 여행객 중에 한 사람이 페루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국경 부근에서 심장 마비로 죽어서
칠레 대사관에 찾아갔었다고 한다.
칠레 대사관측에서는 토요일 쉬는 날 나와서 일하게 만든다고 투덜거리며
죽은 것이 페루였으면 페루 대사관으로 갔었야지 왜 칠레 대사관으로 왔냐고 따지더라는 것이다.
결국 칠레는 몇 시간이 올 수 있고, 페루는 며칠을 걸려서 가야하는 상황에서,
페루에서 발생한 일이니 시체를 가지고 페루 대사관으로 가야한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과테말라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생명이 위험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했으나 ....알 것이다.
대사관이 본 기관의 업무가 여권 발생만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를.......
다행히 그곳에 미국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서 헬리콥터를 보내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그 비행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대사관의 태도는 실질적으로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은 나라없는 국민이 된다’는 말처럼
어려움에 처한 상황의 한국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잊고 있는 것 같다. 국민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러한 한국 정부에 대한 태도로 인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그곳에서 미국의 국익에 이바지는 양상을 초래하며
한국에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살기에 희망하게 만들고 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본인도 자식이 있다면 떨어져 살 수는 없으므로 할 수만 있으면
미국시민권을 갖고 한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부유층의 산모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미국에서 출산을 시도한다는 일이
보도되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욕을 했던 그 상황이 이해가 됐고 현재의 상태라면 본인도 할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 같다.
현재 한국 정부는 나라를 위한 국민이 되기를 요구하고 강요만 할 뿐,
국민이 없이 한국정부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도록,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부가 아닌,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정부가 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외교통상부의 태도에 항의하면서, ‘ 당신이 평생 한국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면,
당신이 대한민국 국적을 버릴 생각이 없다면 지금의 내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미국 정부였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 같냐?’라는 말을
한국인이 정부에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조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한민국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는 나라이다. 본인은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믿는다.
외교통상부는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게
‘대사관 업무는 한국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여권 발급 업무에 있다’는 식의 태도로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북돋우는 것이 아닌 좌절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냥 잊어라’라는 식의 태도는
브라질 경찰이 한국인이기에 서슴없이 구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국제 변호사를 선임하여 그 나라까지 가서 싸워보겠다는 마음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좌절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할 말을 잃게 한다.
23일 저녁에 출발하여 27일 오전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가서 최대한 자료를 남기려고 노력하고 돌아와서 지금 글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도 그냥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여기고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본인이 이렇게 당했던 것은 그렇게 포기했던 한국인에 의한 것이었으며
본인의 포기로 인해 또 누군가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그렇게 당할 수 있을 것이며
이제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본인에게는
그 대상이 본인이 가르치던 학생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의 노력이 그리 쉽지는 않다.
본인 힘만으로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자그마한 것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동일한 물이지만 한통의 물을 보면서는 느끼지 못한 위압감을 이과수 폭포를 보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작은 물은 힘이 없지만 그 물이 모여졌을 때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외교통상부와의 통화를 통해, 본인의 힘만으로는 대사관과 외교통상부를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브라질 경찰에 대한 고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입이 모인다면 그들이 제대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힘이 필요하다.
언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열띤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여행자가 먼저 앞장 서야 된다고 보았다.
정부의 태도의 변화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구타의 원인이 아닌, 방어의 도구가 되기를,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스러운 사실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