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어느 날이였다. 일산에 어느 대형 쇼핑몰에서 같은 반이던 여고 동창을 만났더랬다.
정말 인형같이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다가 (상위1% 성적의 친구) 아버지는 그 당시 중령이여서 가끔
군인이 몰고온 지프를 타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
무남독녀인 그 아이는 다리도 정말 이쁘고 (사실 얼굴 예쁜 사람이 다리까지 길고 곧게 예쁘면 얼마나 부러운데...)
피아노도 잘 쳐서 교내 합창대회에서 내가 지휘하고 그 친구는 반주를 했었다.
전교 부회장인가 했던 기억이 있는 흔히 말하는 일명 엄친 딸.
인기도 많았지만 시기도 많이 받았던,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선생님들에게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모범생이였던 친구다.
그 때 나는 그 친구를 만난 대형 쇼핑몰에서 여는 문화센터 강사로 초빙받아 강의를 준비 중이였고
그 친구는 그 곳에 쇼핑을 나와있었다. 아줌마 수강생들에게 잘 보이려 최대한 꾸미고 온 나와
수더분하게 차를 끌고 장을 보러온 그 친구와는 5분정도 대화하고 전화번호 교환도
없이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전화번호 만이라도 남길 걸 그랬다.
어머 반갑다를 동시에 외치고 요즘 뭐하고 사는지 서로 안부를 물어보고 있었는데
학창시절에 나도 가끔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봤던 나보다 미모와 재능이 넘치는 아이였는데
집에서 주부로만 사는 중이였고 나는 잡지에 인테리어스타일리스트로 바쁜 활동을 하던 때였다.
그 친구와 알고지낸 몇년 동안 처음 받아보는 나를 향한 부러운 시선 앞에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 엄마때문에 이화여대로 들어간 것까지는 알았는데 이렇게 졸업하고서 그냥 주부로 살 줄은 몰랐어. 너처럼
재능 많은 친구가 살림만 하기엔 아깝다." 사실 진심을 담아 말했던 것 같은데 받아 들이는 쪽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 말에 차분하게 " 그래서 사는게 편하지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약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표정 만은 감추지 못하고 동창은 대답했었다.
순간 실수를 깨달은 나는 "머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 사니? 나도 일산 가까운 강서구에 사는데..." 하고 안부
삼아 물었는데 그 때에 친구의 표정에 우월감이 느껴지며 "응, 강선 마을 우성에 살아. 나중에 우리집에 놀러와."
하고는 헤어졌다. 나중에 놀러오라면서 연락처도 아파트 동호수도 안 알려주고 말이다.
그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여고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아까운 친구가 살림만 한다고 한탄했던 기억난다.
나중에 일산 문화센터에서 강의하면서 알게 된 것은 30대 초반에 주부가 살기엔 강선마을 우성아파트가
굉장히 큰 평형에 아파트였다는 것이다. 일산에 살지 않아 그것도 모르고 아무 감흥도 없이 " 그래... 가까운데
살았네?"하고 말았지만 그 때 그 친구에 표정에 드러난 뿌듯함이 겨우 남편 잘 만나 넓은 아파트
산다는 자부심이 였구나 하는 마음에 씁쓸해졌었다.
솔직히 그게 부럽지는 않았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어른들은 흔히 말한다.
뭘 담는지에 따라 운명이 바뀌니 뒤웅박 팔자라고도 하고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만 따고 구멍을 내
속을 파냈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뒤웅박 팔자라고도 했다지.
그렇게 공부도 잘하고 미모도 출중해서 넓은 평형의 아파트에 살 정도로 재력가 남편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 친구는 성공한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그 친구 남편에게는 대보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남자을 만났지만 내 능력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내가 밖에서 안심하고
활동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의 나의 부재를 메워 줄 만큼 열린 사고를 가진 남편을 가진
내가 성공한 삶일까? 지금은 어떻게 사는 지 몰라 비교할 수 없지만 나는 그 때에 넓은 아파트가
부럽지 않을 정도 자부심에 넘쳐 살고 있었다.너도 좋은 남편 만난 덕이라고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좋은 남편으로 만든 것이다
인생사 끝을 봐야 안다지만 그 때의 그 친구의 모습은 그냥 남편이 가진 것을 내 것인양
착각하는 어리석은 여자에 지나지 않아 보였었다. 남편의 것이 내것일 수 없다. 부부일심동체라지만
헤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부부 아닌가? 자기만 가지고 있는 것이 내것인 것이다.
내가 가진 감각. 내가 맺고있는 인맥, 내가 가진 감성, 나만 갖고 있는 재능과 개성을
통해 이뤄 질 모든 것들만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워킹맘이 훌륭하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주부는 별볼일 없다고 폄하 하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절대 아니다. 프리랜서인 나는 가끔은 일한다고, 바쁘다고 살림을 등한시 하는 때도 많아 반듯하고
깨끗하게 집을 가꾸는 주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가 일이 계속 없으면 집에서 살림만 하고
지낸다. 그러면 가끔 그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해도 해도 끝없이 반복되는 살림살이가 지겨워
우울해 하기도 한다. 나는 다만 여자라서 당연히 살림을 하는 주부지만 좋은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살림만! 오로지 살림만! 하는 그 친구 같은 인재가 아깝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친한 성당 친구가 어렵게 중년에 구한 직장을 1년만에 포기하고 퇴사하고 말았다.
다시 구할 거란 직장은 지금 까지 구해지지 않았다. 내가 왜 그만 두었냐고 물었을 때 "나 장롱 면허인데,
회사가 파주 시골에 건물을 짓고 이사했잖아. 교통편이 너무 나쁘고 직접 운전해서 출근하기도 무섭고
사실 직장다니니까 살림할 때보다 힘들더라." 그 답변에 내가 너무 아쉬워서 소릴 꽥 질렀던 것이 기억난다.
'야!!! 친구야. 너 운전전면허도 있잖아. 집에 차도 있고 그럼 그냥 천천히 몰면서 다녔어야지. 지금 운전 면허는
기본적인 생활 도구야. 특히 여자에게 기동력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않아? 나도 15년 전에는 장롱
면허였지만 지금은 운전한지 12년이 넘었잖아. 면허만 따놨던 때랑 내가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면서 생기는
자신감은 얼마나 다른 지 알아? 솔직히 남편하고 헤어지거나 과부가 되더라도 마을 버스나 택시라도
몰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잖아? 나 우리 친정이 양주로 이사갔을 때에 남편이 없으면 애들 데리고 꼼짝도
못했는데 이제는 내가 혼자 다니니까 엄마가 주는 반찬에 김치에 마구 마구 챙겨 주는데로
다 받을 수 있고 정말 좋더라. 너 이번에 운전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왜 포기했어, 직장까지 버리면서.
그런 좋은 기회를 왜 버렸냐구." 하면서 내내 쫑알 쫑알 붙들고 잔소리를 해댔었다.
사람이 사는 모습과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특히 여자의 삶과 남자의 삶도 각각 다른 모습이다.
남녀 평등을 외친다고 하지만 가끔 절대 평등하지 않은 것이 여자와 남자이다.
사회적 구조나 인식도 그렇고 신체적 다름이나 정신적 다름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남녀를 떠나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개개인의 몫인것 같다. 딸을 가진 엄마로서 능력 많은 이 땅의 딸들이
가진 것 만큼 펼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것을 썩히지 말고 적극 활용하는 인간으로
살라고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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