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 판을 보고 들어올때마다 울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따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컴맹인 우리 언니께도 전화해서 여러분의 응원을 전했습니다 ^^
제가 우리언니와 형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압화제품을 판매할라고 하는
오해가 생길까 해서 메일주소를 메모하셨던 분들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45세에 언니가 돋보기까지 끼고 한 작품을 여러가지로 자랑이 하고 싶습니다
순수 한국생화를 말려서 압화제품을 만드는 동영상까지도..이젠 할매눈이 되어버린
우리언니와 형부의 모습까지도..우리언니와 형부를 응원해주신 분들께 보답할께요
언니와 제가 사는 곳은 거리가 멀어요 저는 한달에 두번휴일이구요
담달에 이 두 주인공들을 강제로라도 사진을 찍어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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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해서 질질짜보긴 첨입니다 ![]()
감사합니다
헤드라인에 올라와있는 제 이야기를 보고 눈물에 콧물에 범벅입니다
이렇게라도 그동안 언니와 형부가 살아온 삶과 이 보다 더 한 생활을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될수있으면 더욱더 고맙겠습니다.
쇼핑몰에 관해서는 옥x에서 판매를 했었지만 제가 일 땜에 해외로 나가는 일이
생겨서 그 후로는... 아직도 인편으로 팔고 계신답니다 ㅠㅠ<언니는 컴맹>
제가 11월에 언니집에 갑니다 그때 인증샷을 많이 올릴께요
옥x에서 판매를 했던 기록이 30-1일까지만 조회가 가능해서 지금은 나오지 않더군요
걱정해주시고 격려해주신분들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형부의 누나가 족발집 운영해서 번돈으로 아파트 샀다고 자랑하고 그럴때
우리 언니는 압화 만드느라 눈이 많이 나빠지셨습니다
그럴때 우리형부 새벽6시에 나가서 죽도록 일하셨습니다
형부 누나 아이들 학교 입학했다고 비싼옷 사줄때 우리조카들 남들이
버린 헌옷입고 입학했습니다ㅠㅠ
지역을 말씀드리자면 형부가 일하셨던 곳 구리시였습니다
아이쿠 울면 안되는데 자꾸 억울함에 눈물이 나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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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봉이야기가 많은듯 합니다
제 이야기는 아니구요 저희 둘째형부 이야기입니다
형부나이는 49세 언니는 45입니다
저희 형부는 세탁소에서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냥 일반적인 세탁소가 아니라 모텔이나,호텔등 대량으로 세탁물을 관리하는
일명 세탁공장이라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우리집안에서 가장 짠돌이인 둘째언니 천원짜리 한장 쓰는 것도 발발 떨정도로..
그렇게 알뜰살뜰해서 월세집에서 지금의 아파트를 사기까지 사기도 당했고
아이둘 학원.학교 보내느라
엄청 고생하고 살았던 흔적이 얼굴이 고스란히 남더군요
저는 그렇게 사는 언니를 이해 못해서 전화연락도 잘 안했습니다
저희 둘째 형부는 10여년전 처음 입사당시 월급 90만원으로 시작해서 130만원의
월급을 받기까지 고생도 말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세탁일은 새벽에 일찍나가십니다 새벽 6시경에 출근을 해서
저녁 5~6시에 돌아오시더군요
형부의 월급봉투는 12년정도 지나서 20만원이 오르더군요 지금은 150만원입니다
귀가막혀서 언니와 노동청에도 가볼 생각이었지만 그나마 그 공장에서 잘릴까
걱정하는 언니때문에 접기로 했죠
월급은 올랐지만 한번에 오른게 아니지요..보너스..이런건 꿈도 안 꾸십니다
받아온 금액은 뻔하니까요 5~10만원 선물이라곤 허접한 그런것...
언젠가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형부가 일하시는 곳에 다녀왔지요
시내와는 떨어져있고 100평정도 공장부지에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계소리가 들리더군요
새벽 6시에 형부만 나오셔서 일하고 계십니다
월급은 그렇게 주면서 공장장이라는 직위를 주셨서 형부가
가장 먼저 나가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형부는 언니와 결혼당시 파주에서 열처리를 하셨습니다 일 잘하고 있는
형부를 형부의 누나가 족발집 동업하자고 해서 형부는 그만두고 함께
족발집을 운영했었습니다
<그분께서 꼭 이글을 읽고 깨닫기 바랍니다 ㅡㅡ그분의 얼굴이 떠오르는군요>
오토바이 타고 배달도 다니시고 비가오거나
눈이오거나 오로지 배달만 죽도록 다닌 형부에게 돌아오는건
월급이 아닌 하루생활비 2만원 식대비 1만원이었습니다<조카를 태어나기전>
언니는 신혼생활부터 그렇게 쪼들리게 시작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월급도 없는 생활이 계속된 나머지 형부는 다른곳에서 일을 찾으셨던 곳이
지금 일하시는 세탁공장입니다
형부가 세탁공장에서 일하셔서 받아오시는 150만원의 월급도
언니는 행복하다고 합니다
월급도 없이 하루에 2만원 받는 것 보단 훨씬 마음이 편하다구요..
조카들이 커가고 학원에,학교에 그것도 한살터울을 보내려니 많이 힘들어하더군요
형부가 받아오시는 월급은 뻔하고 언니와 형부는 무일푼으로 낯선 땅에서
정착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쪼들린 생활을 하면서도 형부는 언니를 절데로 밖에서
일을 못하게 하십니다<조카들 교육때문에..>
그래서 언니는 집에서하는 일을 했습니다 압화와 세탁수선을 했습니다
말린꽃으로 목걸이나 장식용 악세사리등..인편으론 팔기엔 한계가 있어서 제가
언니에게 인터넷으로 팔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만들어서 사진을 찍어서 저에게 파일을 보내면 저는 편집해서 올리고 그렇게
언니를 조금이라도 도울수가 있었습니다
지역이 같았으면 가서 직접 도와주겠지만 저도 제 직업이 있기에 .. ㅡㅡㅠ
온라인에 올려놓은 압화는 천원짜리부터 스탠드 10만원짜리까지 다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물품을 팔고 수수료를 떼고 남은 돈은 언니 통장으로
직행했죠 저의 수고비는 언니의 말한마디였습니다<고맙다^^>
언니는 통장에 찍힌 작은 액수의 금액에도 활짝웃으며 좋아했습니다
언니와 형부의 사랑과 오랜끈기 끝에 6개월전에 조금 낡은
아파트로 입주를 하셨습니다 <짝짝짝>
지금 이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때의 언니와 형부의 신혼때부터 지금까지
고생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합니다
그래도 잘 참아준 언니와형부께 그리고 조카들에게 고맙고,감사합니다
언니의 깊이 파인 주름살을 걱정해서 못난동생이 1년에 한번씩 화장품을 선물합니다
월급적다고 불평불만 하지마세요 살아서 숨쉬는것 만으로,그리고
일할수 있는 기쁨을 생각하세요
저희 형부의 연봉은 이천만원도 안되지만 그 어떤 대기업 직원
연봉보다 소중하고 귀하다 생각합니다
연봉을 따지기 전에 빚이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줄아세요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 보면서 느끼는 거 없으신지요!!
지금은 힘들다고 할진 모르겠으나 훗날엔 행복한 미소를 지으실겁니다.
ps:부디 이 글을 그 공장사장이나 가족들께서 읽으셨음하는데요..
월급올려달라고 했다가 한번 자르셨죠!! 그랬다가 다시 일해달라고
사정해서 올린 월급이 20만원입니다
참 대단하시분입니다..